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존재의 순환을 담아

오늘부터 그린㊲ 살아있는 플라스틱

살아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떠올리면 살아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살아있는 존재는 당연히 죽음을 맞이한다.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의 생명력에서 죽음의 당위성을 수긍하게 된다.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랐던 이파리가 가을에 지지 않는다면, 봄에 새싹들이 자리할 틈이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죽음이 없이 태어나기만 한다면! 상상한 지구의 모습은 끔찍했다. ‘살아있다는 건 죽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 뿌리내리며 자라났다.
썩었으면 좋겠다!
기존에는 광택이 나는 합성 섬유로 주로 작업을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원단을 자르고 재봉하며 조형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생명력을 작업에 담으면서 반짝거리던 소재가 더 이상 빛나 보이지 않았다. 재사용 합성섬유를 써보기도 했지만,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새것 같은 모습에서 좀처럼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재료가 좀 썩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소멸할 수 있어야 현재 살아있는, 생명력을 가진 재료가 아닐까? 썩을 수 있는 재료를 찾다가 만나게 된 것이 바이오 기반 소재였다. 이미 많은 예술가, 디자이너가 재생 가능한 천연 원료로부터 폴리머를 가공하거나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바이오패브리케이션(biofabrication)’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1년, 과일 껍질과 바이오 폴리머로 원단을 만들고 가방을 만든 디자이너의 작업을 마주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 2년여간,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해외 웹사이트에서 바이오패브리케이션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실험을 해봐도 사진에 보이는 소재를 만들 수 없었다. 뚝뚝 찢어지거나 변형이 심했고, 금세 곰팡이가 호로록 펴버렸다. 매일매일 재료의 비율을 다르게 배합해서 테스트하고, 데이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재료를 녹이는 온도, 젓는 방법, 건조 방법, 분리 시기 등을 매번 달리하며 매일 1시간씩 실험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사진에서 본 형태가 하나, 둘씩 만들어졌다.
한참 샘플 테스트를 하던 시기, 장마철에 2주간 작업실에 가지 않았다. 창문이 없어서 바람이 통하지 않고, 해가 들지 않았던 작업실에서 바이오 소재가 곰팡이가 잔뜩 피우며 썩고 있었다. 실험 초기여서 하나하나의 샘플 조각들이 소중하던 시기였다. 이론적으로 썩는 재료라고 알고 있었지만, 아까워서 썩히는 실험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곰팡이가 잔뜩 핀 소재 샘플을 보고 안심했다. 썩는구나! 그동안 살아있었구나!
  • 바이오 소재 연구
  • 곰팡이가 핀 바이오 소재
바이오 텍스타일: 다시, 돌아갈 채비
‘텍스타일’(textile)은 공예미술의 한 종류이다. 수공예나 공업을 통하여 천을 짜고 엮고 염색하거나 수를 놓는 것을 뜻한다. 공예 분야에서 텍스타일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되지만, 산업 분야에서 텍스타일은 패션·인테리어 제품 등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소재가 된다. 그렇기에 텍스타일은 다른 존재로 변환하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2024년 개인전 《바이오 텍스타일: 다시, 돌아갈 채비》를 통해 텍스타일 자체의 의미를 되살려 보고자 했다. 완성과 동시에 다른 형태로 변이할 수 있는 존재, 소멸과 동시에 다시금 생성되는 ‘순환성’을 텍스타일로 표현했다.
다양한 배합 비율 데이터를 갖게 된 이후로 소재의 강도를 조절하여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재봉이 가능한 강도와 유연성을 가진 배합 비율로 바이오 텍스타일을 만들었다. 동물의 피부로 만든 젤라틴을 바이오 폴리머로, 여기에 차·커피 찌꺼기, 음식 분말, 식물과 곤충의 빛깔을 담은 천연염료, 돌가루 등을 더하여 원단을 만들었다. 자연물 재료 고유의 색과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텍스타일을 제작하여 전시했다. 자연의 색과 질감을 담아 완성한 원단은 다른 존재로 변이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변환된 모습으로 그 쓰임이 다하면 자연에서 곰팡이를 피우며 사라질 것이다. 또다시, 다른 존재로 변이를 준비하며.
  • <살아있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에 바람을 쐬어줘
살아있기에 소멸할 수 있는 재료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자 2024년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살아있는 플라스틱>을 개발하여 서울문화재단 서울시민예술학교 용산에서 진행했다. 동물과 곤충,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어린이, 지구가 걱정되는 어린이, 새로운 재료로 만들기를 하고 싶은 어린이를 초청했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나는 나무와 풀, 그 속에 사는 곤충과 동물 등 다양한 ‘살아있는’ 생명체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환경을 함께 떠올렸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존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소멸·죽음이라는 것을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과 다르게 어린이들은 생명체의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순환’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죽음은 인생을 다 산 후에 잠드는 것이다”
“모든 생물이 한 번씩은 겪게 되는 것”
“죽음은 언젠가 겪게 되는 것이다”
“지구, 자연의 법칙, 되돌아 가는 것”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삶이 끝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생성을 하면 어떤 것은 소멸이 되고, 내가 어릴 때 키우던 햄스터가 죽기도 하고”

<살아있는 플라스틱> 참여 어린이의 ‘죽음·소멸’에 관한 생각

하지만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은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지 않아서, 썩지 않아서 지구를 힘들게 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래서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삶과 죽음이 있는 플라스틱을 만들어 작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살아있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생명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생기 가득한 플라스틱 작품을 만들었다.
수업을 마무리하며, 살아있기에 죽을 수도 있는 작품이어서 보관을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 나눴다. 흥미를 잃고 여기저기 놓아도 변하지 않는 석유 플라스틱 장난감과 다르게, 우리가 만든 ‘살아있는 플라스틱’ 작품은 습한 날에는 바람을 쐬어주고 살펴줘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반년이 흘렀다. 생명을 담은 작품들이 부디 지금도 생기를 잃지 않고 살아있기를 바란다.
피경지
피경지
교육하는 예술가. 생명력을 주제로 작업하며, 환경에 친밀한 소재와 방식을 작품 제작에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작가 브랜드 ‘다정한 직물’을 통해 다정함의 미학을 담아 건강한 섬유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 기반의 생분해성 소재를 개발하여 아트 패브릭을 디자인하고, 교육과 전시를 통해 이를 알리고 있다.
피경지 인스타그램 @philoso_pi
다정한 직물 인스타그램 @the.kind.cloth
사진제공_피경지 공예가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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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4월 18일 at 3:24 PM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존재의 순환을 담아
    오늘부터 그린㊲ 살아있는 플라스틱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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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4월 18일 at 4:13 PM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존재의 순환을 담아
    오늘부터 그린㊲ 살아있는 플라스틱
    기대만점입니다

  • author avatar
    박선희 2025년 04월 21일 at 9:48 PM

    참여 어린이의 ‘죽음·소멸’에 관한 심오한 생각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플라스틱을 통해 생과 사, 자원순환까지 다룰 수 있다니 참 귀한 프로그램입니다.

  • author avatar
    진종철 2025년 04월 24일 at 2:42 PM

    친환경 소재로 만든 작품들을 직접 전시로 보고 싶네요!

  • author avatar
    이승희 2025년 04월 27일 at 3:28 PM

    어린이들이 써내려간 죽음, 소멸에 대한 단상들이 노랍고 대견합니다.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과 환경. 자연과 연동하여 생각하는 뜻깊은 읽을거리여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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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4월 18일 at 3:24 PM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존재의 순환을 담아
    오늘부터 그린㊲ 살아있는 플라스틱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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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4월 18일 at 4:13 PM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존재의 순환을 담아
    오늘부터 그린㊲ 살아있는 플라스틱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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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희 2025년 04월 21일 at 9:48 PM

    참여 어린이의 ‘죽음·소멸’에 관한 심오한 생각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플라스틱을 통해 생과 사, 자원순환까지 다룰 수 있다니 참 귀한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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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종철 2025년 04월 24일 at 2:42 PM

    친환경 소재로 만든 작품들을 직접 전시로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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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5년 04월 27일 at 3:28 PM

    어린이들이 써내려간 죽음, 소멸에 대한 단상들이 노랍고 대견합니다.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과 환경. 자연과 연동하여 생각하는 뜻깊은 읽을거리여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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