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텍스트와 콘텐츠로부터, 읽는 힘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예술의 힘이 필요할 때
2015년 2월 13일 뉴욕 주립극장, 발레의 살아있는 전설 프리실라 로버츠의 볼레로가 막이 오른다. 프리실라 로버츠 스스로 “무용수에는 두 종류만이 있어요. 볼레로를 출 것이 허락된 무용수와 그렇지 않은 무용수”라고 말해왔기에 발레 팬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막상 막이 오르고 나자 관객들은 평범한 볼레로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날 [뉴욕타임즈]에 실린 공연 오케스트라 악장 타버튼의 인터뷰를 보기 전까지. 타버튼은 프리실라 로버츠가 공연 전 “점점 페이드아웃하듯이 음악을 멈춰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희대의 발레리나와 함께 공연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합을 맞춰온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녀가 음악을 무시한다고 느껴 분노했고 ‘당해봐라’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5분 동안 전혀 연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아무도 음악이 멈추었음을 알지 못했다. 프리실라 로버츠가 춤을 통해 2,800명 관객의 머릿속에 음악을 연주한 것이다.
이 만화 같은 이야기는 소다 마사히토의 만화 『스바루』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세상이 어지럽다. 예술이 정말 세상 바꿀 수 있을지 의심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쉽게도 음악이 전쟁을 멈출 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춰야 해’하는 기분을 불러일으킬 힘은 있습니다.”라는 말을 되뇌어 보지만 여전히 총칼을 든 무리들에게 예술과 문화로, 기분으로 맞설 수 있을지 의심된다. 이렇게 ‘예술의 힘’이 의심될 때 만화를 본다. 나는 헤롤드 사쿠이시의 만화 『벡 BECK』을 보면서 유키오의 음성을 들었다. 이시키 마코토의 만화 『피아노의 숲』을 보면서 이치노세 카이의 피아노 연주를 ‘분명히’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무용하다고 느껴질 때, 예술의 이 작은 기적을 다시 경험하고자 만화를 본다. 그러면 그 작은 기적이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믿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힘이 필요할 때
한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의 현장. 요리 경험이 전혀 없는 참여자부터 유학파 쉐프까지, 20명의 참여자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3톤의 양파를 3mm로 자르는 것이다. 양파를 3mm로 자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방식이나 평가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우왕좌왕하던 참여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양파를 썰기 시작했다. 심사결과 4명의 참여자가 A를 받았다. 가장 빠르게 많은 양파를 썬 참여자들은 A를 받지 못했다. 썰어낸 양은 적었지만 양파 껍질과 심을 가장 적게 버리며 양파를 썬 참여자, 양파를 써는 동안 끊임없이 주변을 정리한 참여자, 양파를 썰어본 경험이 없어서 다른 참여자가 어떻게 써는지 관찰하고 익숙해 보이는 참여자에게 어떻게 썰어야하는지 물어본 참여자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참여자들은 A부터 F까지 성적을 받았지만, 이날 첫 미션에서 탈락자는 없었다.
채널 ENA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이다. 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진행해온 교육과 평가에 대해 여러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많은 교육자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기술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그 말을 저 프로그램만큼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위생을 중요시하는 참여자를 보면서 백종원은 요리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 사람들의 건강을 위하는 마음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양파의 수율을 높인 참여자를 보면서 음식과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를 읽었다고 생각한다. 질문하는 참여자에게서는 배움의 태도를 보았을 것이다.
미션이 진행되면서 지나친 고집으로 나의 분노를 유발하는 참여자가 있었다. 그 참여자는 협업 미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메뉴 ‘오징어순대’를 고집해 결국 혼자 요리하고, 바비큐 장인의 조언에 잘못된 방식으로 맞서다가 바비큐 불을 지피는 데 실패했다. 아내와 함께 신나게 흉보고 있었는데 그 참여자의 과거 이야기가 나왔다. 가족과 탈북을 시도하다가 혼자 성공해 한국에 왔다고 한다. 아마도 ‘오징어순대’는 그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어머니가 즐겨 해주시던 메뉴가 아니었을까? 방법론에 대한 고집은 자신이 탈북과정에서 했던 결정과 그 결과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아내와 나는 더 이상 손가락질하지 못했다. 한 시간짜리 TV 예능을 보면서 몇 날 며칠 밤새워 읽은 교육이론서보다 많은 생각을 했다.
세상을 읽는 힘이 필요할 때
몇 년 전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던 중에 ‘간신배’라는 단어가 나왔다.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는 그 단어의 뜻을 알았지만 2학년인 둘째는 “그게 뭔데?”하고 형에게 물었다. 하지만 첫째에게도 그 단어의 뜻을 가르쳐줄 능력은 없었다. 그러자 둘째는 유튜버에 간신배를 검색하고 영상 섬네일을 쭉 보고 영상 몇 개를 눌러보다니 “아! 간신배는 형이네. 저번에 엄마한테 아빠 담배 피운 거 일러가지고…” 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충격이었다. 스마트폰을 들길래 나는 당연히 네이버나 사전을 검색해 볼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조카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싶어 했던 노력을 이날 멈췄다. 그리고 나도 세상을 유튜브로 읽기 시작했다.
최근 인상 깊게 본 콘텐츠 중에 〈피식대학 너드학 개론: 기원〉이 있다. ‘찐따’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생겨나고 유통되는지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코미디(?) 콘텐츠지만 1990년대 이후 미디어 환경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 현상을 42분 만에 완벽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정리하고 있다. 일기장-다이어리-싸이월드-페이스북-인스타를 하나의 흐름으로 읽어내면서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보게 되었다고 집어낸다. AI에 대해서는 그것이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부분을 넘어 사고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통을 삭제(집을 나서기 전에 주변 사람에게 ‘오늘 날씨 어때?’하고 묻는 대신 AI에 정보를 얻는)하는 현상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현시대, 특히 MZ 세대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텍스트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읽는가?’만큼 ‘어떻게 읽는가?’가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어느 때보다 다양한 형식의 텍스트가 널려 있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라는 산책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밤톨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어서 그 산책길을 최단 거리로 가로질러 가장 높은 나무에 열린 가시 가득한 밤송이 사이에서 가장 빛나는 밤을 남보다 먼저 따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부추긴다. 과연 그 밤이 누구에게나 최고로 맛난 밤일까? 어쩌면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맛있는 밤톨을 외면하고 저 멀리 나무 위 밤송이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상에 널려 있는 책을 포함한 모든 텍스트가 어지러운 세상을 사는 모두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주성진
주성진
문화용역. 다수의 문화기획 교육과정에 관여하며 멘토를 사칭하고 청년들에게 문화기획과 삶의 즐거움을 배우고 있다. 만 50세에는 탁구와 골프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체육인으로 변신하려는 원대한 꿈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interang@gmail.com
페이스북 @sungjin.choo
유튜브 [문화기획TV]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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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uki 2025년 02월 18일 at 9:45 AM

    일부분이겠지만 위 만화를 고르는 결이 너무나 일치한 취향으로 기사를 끝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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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진 2025년 02월 18일 at 4:06 PM

    저 또한 조카들이 어떤 단어의 의미를 찾을때 백과사전이 아닌 유튜브를 통해 검색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요! 정말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더이상 ‘무엇을 읽을까’가 아닌 ‘어떻게 읽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읽는 힘’에 대해 여러가지 관점으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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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2025년 02월 18일 at 4:26 PM

    만약 시리즈 지면이 아니였다면 이런 글을 썼을 꺼에요^^

    < 책을 접어야 읽을 수 있는 것들>

    저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을 안 읽은 지 4년 6개월 지났습니다. 물론 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에 양심이 간질거리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봄이 오면 습관처럼 가판대에 서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뒤적거립니다. 탐닉하던 작가의 신작 소식을 듣거나, 궁금한 개념을 잘 정리해놓은 책을 알게 되면 유혹에 빠져 다시 온라인 주문 버튼을 누르고 만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순간 그 유혹을 운동이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책의 유혹이 찾아오면 제가 책에 빠져 지냈던 날들을 다시 떠올리곤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시간이 날 때 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분들이었고, 때문에 집안 곳곳에 책이 쌓여있었습니다. 쉽게 책에 노출되었고 독서의 쾌락에 빠져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 자체도 즐거웠지만 책을 읽으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었고,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친구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책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책은 TV나 수다에서 얻을 수 없는 지식의 우월한 원천이라는 사고가 굳어졌고, 어느 순간 앎의 수단으로써 독서에 대한 일말의 의심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인터넷이 나오고, SNS가 나오고, Youtube의 시대가 왔음에도 책은 그런 것들과 다르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답이 담긴 책들을 큐레이션해서 읽으면서 내가 옳음을 재확인하는 과정과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Youtube 콘텐츠를 통해 편견이 강화되는 과정에 차이가 없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을 통해 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쓴 무언가에서 쉽게 답을 찾으려는 행위가, 성조기를 들고 거리를 싸돌아다니며 남의 말을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는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처럼 머릿속을 부유하는 수많은 활자들이 소통되지 못 할 또는 실천되지 못할 지식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녹지 않는 소금처럼 말이죠.

    계기는 탁구였습니다. 평생을 책이나 봤지 운동은 1도 안 해보다가 생존을 위해(과체중, 고지혈증, 콜레스테롤…) 나이 40이 넘어 탁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탁구를 배우기 시작하자 제 버릇 강아지 못주고 탁구에 대한 지식들을 섭렵하기 시작했습니다. 탁구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유명한 탁구 선수의 인터뷰와 강의를 찾아보았습니다. 3개월도 안되어서 저의 탁구 지식은 탁구장 관장님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그 지식을 1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평생 몸을 제대로 써본 적 없었고, 특히 (체육시간이나 군대 등과 달리) 스스로의 의지로 어떤 움직임을 잘 해보려 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지식과 움직임 사이에는 크나큰 괴리가 있었습니다. 특히 내 몸에 힘이 내 의도대로 빠지지 않았습니다. 강하게 치려 할 수 록 몸에 힘이 들어가 근육이 경직되어 강한 공을 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헛스윙을 난발했습니다.

    ‘공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니 라켓이 지나가는 궤도에 공이 있다고 생각해봐’라는 말을 열 명도 넘는 사람에게 백번은 들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고 몸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된 다음날, 집에 있던 (거의)모든 책을 팔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간단한 실험을 제안합니다.(사진 참고) 주먹을 쥔 양손을 눈높이로 들어 검지만 펴보셔요. 오른 손 검지는 손톱이 보이게(손바닥 쪽이 앞을 향하게) 들고, 왼손 검지는 지문이 보이게(손바닥이 몸쪽을 향하게) 오른 손 보다 십오 센티 정도 뒤에 일직선으로 들어보셔요. 그리고 두 가지 행동을 해보는 겁니다. 첫 번째 행동은 왼손을 고정한 채로 오른손 검지 지문을 왼손 검지 지문에 빠르게 정확히 닿고 멈추는 겁니다. 두 번째 행동은 똑 같은 행동을 하는데 양손 검지 지문이 닿자마자 멈추지 말고 정확하게 맞추려고 하지도 말고 툭툭 치면서 그대로 지나가는 겁니다. 두 번째 행동에 비교해서 첫 번째 행동을 할 때 손가락, 손목은 물론 어깨까지 경직되는 것을 느껴지지 않나요?

    독서도 배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원고 청탁서의 요지는 ‘문화예술분야에 종사하는 독자들이 현장을 지켜나가는데 비밀무기가 될 수 있는 책 2권을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독서를 포함한 앎을 위한 모든 행위의 목적이 좁고 명확해 질 수 록 공을 정확하게 맞추려고 할 때나 왼손 지문을 정확하게 맞추려고 할 때처럼 힘이 들어가서 그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책 2권을 추천하는 대신에 책을 읽는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대신 해보고 싶었습니다. 습관적 독서의 해악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산책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밤톨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어서 그 산책길을 최단거리로 가로질러 가장 높은 나무에 열린 가시 가득한 밤송이 사이의 가장 빛나는 밤을 남보다 먼저 따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과연 그 밤이 누구에게나 최고로 맛난 밤일까요? 세계 최고 석학의 문화예술교육 이론은 과연 내 수업의 간을 맞추는 가장 좋은 소금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맛있는 밤톨들을 외면하고 저 멀리 나무위의 밤송이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힘 빼는 법을 깨닫고 탁구에 재미를 한참 붙여갈 때쯤 또 다른 시련을 마주했습니다. 포핸드는 만족스러운데 백핸드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젊은 코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코치는 제가 탁구 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더니 ‘형은 팔꿈치부터 손목이 남들보다 기네요, 그러니까 남들이랑은 당연히 다르게 쳐야죠.’라고 말했습니다. 그 코치와 며칠 동안 이야기 나누면서 책에 나와 있는 정석과 다른 ‘저만의’ 백핸드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그 방법을 통해 지금도 즐겁게 백핸드를 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 분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책을 읽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책들이 여러분의 삶과 수업을 정말 행복하게 변화시켰습니까? 아니라면 얼마나 더 읽으면 그런 변화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까? 이제는 책을 읽는 시간을 조금씩 운동과 산책에 써보시면 어떨까요? 책 대신 내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조금씩 다르게 읽어보면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내 머릿속에 녹지 않고 쌓여있는 소금들을 녹여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내 삶과 수업의 간을 더 짭짤하게 맞춰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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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만경 2025년 02월 18일 at 5:55 PM

    작성자 분의 글에 의도를 충분히 동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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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2월 20일 at 12:26 PM

    일상의 텍스트와 콘텐츠로부터, 읽는 힘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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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2월 20일 at 1:55 PM

    일상의 텍스트와 콘텐츠로부터, 읽는 힘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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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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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uki 2025년 02월 18일 at 9:45 AM

    일부분이겠지만 위 만화를 고르는 결이 너무나 일치한 취향으로 기사를 끝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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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진 2025년 02월 18일 at 4:06 PM

    저 또한 조카들이 어떤 단어의 의미를 찾을때 백과사전이 아닌 유튜브를 통해 검색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요! 정말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더이상 ‘무엇을 읽을까’가 아닌 ‘어떻게 읽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읽는 힘’에 대해 여러가지 관점으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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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2025년 02월 18일 at 4:26 PM

    만약 시리즈 지면이 아니였다면 이런 글을 썼을 꺼에요^^

    < 책을 접어야 읽을 수 있는 것들>

    저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을 안 읽은 지 4년 6개월 지났습니다. 물론 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에 양심이 간질거리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봄이 오면 습관처럼 가판대에 서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뒤적거립니다. 탐닉하던 작가의 신작 소식을 듣거나, 궁금한 개념을 잘 정리해놓은 책을 알게 되면 유혹에 빠져 다시 온라인 주문 버튼을 누르고 만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순간 그 유혹을 운동이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책의 유혹이 찾아오면 제가 책에 빠져 지냈던 날들을 다시 떠올리곤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시간이 날 때 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분들이었고, 때문에 집안 곳곳에 책이 쌓여있었습니다. 쉽게 책에 노출되었고 독서의 쾌락에 빠져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 자체도 즐거웠지만 책을 읽으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었고,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친구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책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책은 TV나 수다에서 얻을 수 없는 지식의 우월한 원천이라는 사고가 굳어졌고, 어느 순간 앎의 수단으로써 독서에 대한 일말의 의심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인터넷이 나오고, SNS가 나오고, Youtube의 시대가 왔음에도 책은 그런 것들과 다르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답이 담긴 책들을 큐레이션해서 읽으면서 내가 옳음을 재확인하는 과정과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Youtube 콘텐츠를 통해 편견이 강화되는 과정에 차이가 없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을 통해 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쓴 무언가에서 쉽게 답을 찾으려는 행위가, 성조기를 들고 거리를 싸돌아다니며 남의 말을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는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처럼 머릿속을 부유하는 수많은 활자들이 소통되지 못 할 또는 실천되지 못할 지식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녹지 않는 소금처럼 말이죠.

    계기는 탁구였습니다. 평생을 책이나 봤지 운동은 1도 안 해보다가 생존을 위해(과체중, 고지혈증, 콜레스테롤…) 나이 40이 넘어 탁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탁구를 배우기 시작하자 제 버릇 강아지 못주고 탁구에 대한 지식들을 섭렵하기 시작했습니다. 탁구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유명한 탁구 선수의 인터뷰와 강의를 찾아보았습니다. 3개월도 안되어서 저의 탁구 지식은 탁구장 관장님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그 지식을 1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평생 몸을 제대로 써본 적 없었고, 특히 (체육시간이나 군대 등과 달리) 스스로의 의지로 어떤 움직임을 잘 해보려 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지식과 움직임 사이에는 크나큰 괴리가 있었습니다. 특히 내 몸에 힘이 내 의도대로 빠지지 않았습니다. 강하게 치려 할 수 록 몸에 힘이 들어가 근육이 경직되어 강한 공을 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헛스윙을 난발했습니다.

    ‘공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니 라켓이 지나가는 궤도에 공이 있다고 생각해봐’라는 말을 열 명도 넘는 사람에게 백번은 들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고 몸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된 다음날, 집에 있던 (거의)모든 책을 팔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간단한 실험을 제안합니다.(사진 참고) 주먹을 쥔 양손을 눈높이로 들어 검지만 펴보셔요. 오른 손 검지는 손톱이 보이게(손바닥 쪽이 앞을 향하게) 들고, 왼손 검지는 지문이 보이게(손바닥이 몸쪽을 향하게) 오른 손 보다 십오 센티 정도 뒤에 일직선으로 들어보셔요. 그리고 두 가지 행동을 해보는 겁니다. 첫 번째 행동은 왼손을 고정한 채로 오른손 검지 지문을 왼손 검지 지문에 빠르게 정확히 닿고 멈추는 겁니다. 두 번째 행동은 똑 같은 행동을 하는데 양손 검지 지문이 닿자마자 멈추지 말고 정확하게 맞추려고 하지도 말고 툭툭 치면서 그대로 지나가는 겁니다. 두 번째 행동에 비교해서 첫 번째 행동을 할 때 손가락, 손목은 물론 어깨까지 경직되는 것을 느껴지지 않나요?

    독서도 배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원고 청탁서의 요지는 ‘문화예술분야에 종사하는 독자들이 현장을 지켜나가는데 비밀무기가 될 수 있는 책 2권을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독서를 포함한 앎을 위한 모든 행위의 목적이 좁고 명확해 질 수 록 공을 정확하게 맞추려고 할 때나 왼손 지문을 정확하게 맞추려고 할 때처럼 힘이 들어가서 그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책 2권을 추천하는 대신에 책을 읽는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대신 해보고 싶었습니다. 습관적 독서의 해악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산책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밤톨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어서 그 산책길을 최단거리로 가로질러 가장 높은 나무에 열린 가시 가득한 밤송이 사이의 가장 빛나는 밤을 남보다 먼저 따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과연 그 밤이 누구에게나 최고로 맛난 밤일까요? 세계 최고 석학의 문화예술교육 이론은 과연 내 수업의 간을 맞추는 가장 좋은 소금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맛있는 밤톨들을 외면하고 저 멀리 나무위의 밤송이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힘 빼는 법을 깨닫고 탁구에 재미를 한참 붙여갈 때쯤 또 다른 시련을 마주했습니다. 포핸드는 만족스러운데 백핸드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젊은 코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코치는 제가 탁구 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더니 ‘형은 팔꿈치부터 손목이 남들보다 기네요, 그러니까 남들이랑은 당연히 다르게 쳐야죠.’라고 말했습니다. 그 코치와 며칠 동안 이야기 나누면서 책에 나와 있는 정석과 다른 ‘저만의’ 백핸드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그 방법을 통해 지금도 즐겁게 백핸드를 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 분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책을 읽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책들이 여러분의 삶과 수업을 정말 행복하게 변화시켰습니까? 아니라면 얼마나 더 읽으면 그런 변화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까? 이제는 책을 읽는 시간을 조금씩 운동과 산책에 써보시면 어떨까요? 책 대신 내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조금씩 다르게 읽어보면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내 머릿속에 녹지 않고 쌓여있는 소금들을 녹여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내 삶과 수업의 간을 더 짭짤하게 맞춰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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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만경 2025년 02월 18일 at 5:55 PM

    작성자 분의 글에 의도를 충분히 동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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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2월 20일 at 12:26 PM

    일상의 텍스트와 콘텐츠로부터, 읽는 힘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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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2월 20일 at 1:55 PM

    일상의 텍스트와 콘텐츠로부터, 읽는 힘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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