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여행하는 부표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전국 연안에서 수거한 해양쓰레기는 13.8만 톤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54%는 폐어구와 부표로, 바다를 떠다니며 미세플라스틱을 방출해 해수를 오염시키고 해양 생물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준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으로부터 국민공감 문화예술교육 행사의 일환으로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제안받았을 때 ‘폐부표’가 떠올랐다.
내가 부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10년, 캐나다 서부 해안가에서 우연히 ‘조개표’라는 글자가 적힌 부표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낯선 곳에서 한글을 발견한 반가움도 잠시, 광활한 바다를 홀로 떠돌다 밀려온 그 부표는 마치 나와 같은 여행자로 느껴졌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이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친구처럼 여겼던 것처럼, 나도 그 부표에 작은 구멍을 뚫어 전구를 넣으며 ‘지구여행자’라 칭하게 되었다. 지구여행자는 조명의 오브제가 되어 성수동 리도엘리펀트와 경주예술의전당,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에서 전시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제주도에서 플로깅 활동을 하던 중 해안가에서 다시 폐부표를 접하여 새롭게 작업하기도 했다.
순환과 각성의 연습
먼바다에서 항해하고 돌아온 부표들을 작업실 한쪽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오면 다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늘 한편에 있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2024년 부산에서 ‘자연의 회복을 위해 시민과 함께 생명 존중의 빛을 만들기’라는 주제로 국민 참여형 예술치유 워크숍 〈바닷속 빛 소리〉를 진행하게 되었다. 워크숍에서는 더욱 단순한 제작 방식으로 조명을 만들어 볼 수 있게 준비하였고, 워크숍을 통해 순환의 중요성과 환경에 대한 새로운 각성의 메시지를 교육 참여자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퍼지던 10월의 끝자락, 부산 녹산 산업단지 인근 공원에서 근로자들과 먼저 교육을 진행했고, 전시 기간에는 영화의전당 로비에서 부산 시민과 함께 부표 조명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산업단지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에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소중한 점심시간을 내어 참여할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나 해양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폐부표에 멸종위기 동물을 그리거나 환경문제에 대한 자기반성의 글을 적기도 했다. 한 참가자는 예술교육을 통해 잠시나마 휴식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영화의전당 로비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은 사전 예약을 통해 운영되었지만, 전시를 보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참여한 분들도 꽤 많았다. 산업단지와 전시장에서 시민이 만든 조명 작품들은 영화의전당 비프힐(BIFF Hill) 곳곳에 설치되어 전시의 일부가 되었다.
“행위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은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의 흔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부표에 내가 적은 글이다. 나는 폐부표에 일정 시간마다 온·오프되는 점멸식 블랙라이트 시스템을 설치하여, UV 잉크로 새겨진 메시지들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도록 연출했다. 시민이 직접 그린 멸종위기 동물과 자연을 위한 다양한 글귀를 본 관람객들은 해양오염의 심각성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전시장 내부에서는 13m 길이의 〈고래낙하〉를 설치했다. 시민들이 제작한 부표 조명과 고래 소리, 실제 고래와 같은 크기의 거대한 작품이 어우러져 마치 심해 속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고래의 갈비뼈 사이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 차 있는 충격적인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게 되었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래의 뼈 사이사이에 재생 플라스틱으로 표현하였다.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전달하는 작품이다 보니, 작품을 구상할 때도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투리 부분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재료 절단 시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고래 갈비뼈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재료가 거의 없도록 효율적으로 제작했다. 그럼에도 작품을 제작하며 불가피하게 나오는 나머지 재료들을 활용해 작품의 연작으로 스툴 작품을 설치하여 관람객이 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회복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노력
부산 녹산 산업단지 근로자와 시민 200여 명이 함께한 워크숍에서 무엇보다도 회복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자신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플라스틱처럼 자연 분해가 되지 않는 재료들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동식물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인간 역시 머지않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을 진행하며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은, 많은 참가자가 환경 보호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누구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회용 제품을 줄이고 분리수거에 신경 쓰며, 음식물 포장 시 텀블러나 개인 용기를 사용하고,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는 샴푸 바와 같은 제품을 선택하며, 에코백으로 비닐봉지 사용을 자제하는 등 작은 실천이 모이면 아픈 지구는 조금씩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 강재준
-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환경문제를 주제로 설치, 조각, 그림으로 표현한다. 주로 기후변화와 멸종위기 동물을 다루며, ‘순환’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상상의 꽃》(2024, 솔거미술관) 전시에서는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처럼 공간을 옮겨가며 분해와 조립이 반복되는 작품을 통해 자연의 순환구조를 비유적으로 담아냈다. 《플라스틱 숲》(2024, 영화의전당) 전시에서는 재생 플라스틱을 활용해 대왕고래를 실제 크기로 재해석한 설치 작품을 선보이며, 심해에서 벌어지는 환경문제를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Born 本 Bone》(2024, j25409) 전시에서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환경문제와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경각심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3년 ‘해양 폐기물 새활용 예술작품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jaejunekang84@gmail.com
인스타그램 @light_house____ - 사진제공_강재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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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돌던 부표가 띄운 각성의 메시지
오늘부터 그린㉟ 생명 존중의 빛 만들기
공감이 갑니다
지구를 떠돌던 부표가 띄운 각성의 메시지
오늘부터 그린㉟ 생명 존중의 빛 만들기
기대만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