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씨앗으로 어느새 꽃을 피운 ‘우리’

대구관천초등학교 ‘관천우드윈드연합오케스트라’

나의 악기는 클라리넷이었다. 찬란한 은색 키가 마치 아름다운 식물의 줄기나 잎처럼 검은 몸체를 유연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에 반했다. 무엇보다 악기가 다섯 조각으로 분리되어 역시나 검은색에 은색 테가 둘린 작은 케이스에 깔끔하게 들어갔다. 악기도 가방도 참 예뻤다. 정말 세련된 악기라고 생각했고, 그 외모에 단번에 반했던 것 같다. 한 학년이 한 반이나 두 반 정도 되는 시골의 작은 학교였고, 시범사업으로 오케스트라가 시작되었다. 읍내라고 해도 음악과 관련된 것은 배울 수 있는 곳은 피아노 학원 한 곳이 전부였던 작은 마을이었다. 대구관천초등학교에 관한 기사를 찾아 읽고 활동 영상을 보는 동안, 클라리넷 가방을 소중히 들고 대회에 참가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쉽게도 어린 시절 내가 클라리넷을 배울 수 있게 했던 그 시범사업은 2년 후 중단되었다. 하지만 대구관천초등학교는 2015년 ‘예술꽃 씨앗학교’(6기) 지원을 시작으로 ‘관천우드윈드오케스트라’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로 9년, 2025년이 되면 10년이다. 예술꽃 씨앗학교(2015~2018)와 예솔꽃 새싹학교(2019~2020) 지원사업 종료 이후에도 긴 기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시대도 환경도 그때와는 다르지만, 아마 자신의 악기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과 멋진 소리를 내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순간들, 대회에 참가하는 설레는 마음, 모두가 함께 쌓아 올린 소리가 화합하는 순간의 감동 같은 것은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 악기를 시작하는 학생들과 같지 않을까 생각하며 대구관천초등학교로 향했다. 11월 중순 완연한 가을빛으로 물든 교정에서 관천우드윈드연합오케스트라 최용준 지휘자와 대구관천초등학교 오케스트라 담당 이지은 교사를 만났다.
단원들의 열정으로 싹틔운 예술꽃 씨앗
관천우드윈드연합오케스트라는 올해 제48회 대한민국 관악경연대회에서 특별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쉽게 대상을 놓친 적은 있지만, 수상을 하지 않은 해는 없을 정도다. 졸업생이 성인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음악 전공자의 길을 선택한 졸업생도 있다. 졸업으로 학교를 떠난 후에는 달리 악기를 연주할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는 졸업생도 있고, 전교생의 수가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기도 해서 2022년부터는 졸업생과 함께하는 연합 오케스트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결과를 우선하는 것은 아니나, 매년 수상을 하니 역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재학생들의 연습 시간은 화·목·금요일 방과 후에 한 시간 반 정도, 3월부터 11월까지는 연합 오케스트라로 졸업생들과 함께하는 토요일 연습이 추가된다. 그러니 일주일에 4일을 악기와 함께하는 것이다. 방학에는 당연히 쉴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지만, 방학은 없다. 1년 중에 유일하게 쉬는 때는 개학하기 전 단 1주일뿐이라고.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빠짐없이 가기도 어려운데, 주 3일, 방학 없는 연습에 토요일 연습까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으니 최용준 지휘자는 “학생들의 열정”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며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강사로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던 동력이라고 한다. 처음에 들어오면 음악을 잘 모르고 악보를 보는 것도 힘들어하던 학생이 초견이 늘어, 새로운 악보를 받으면 바로 읽어낸다. 3학년에서 6학년까지 함께 하니 서로 멘토와 멘티가 되어 서로 가르쳐주기도 한다. 연주하는 게 재밌어서 자기 악기를 사려고 용돈을 모으는 학생도 있다.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모습, 의젓해진 모습에 학부모들이 놀라기도 한다. 공부 대신 오케스트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던 학부모들도 학생들의 변화를 보면서는 오케스트라 활동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신다. 먼 태백에서 대회가 진행될 때도 함께 다녀오고, 올해 대전 공연에는 많은 학부모가 함께 해주었다. 최용준 지휘자는 “처음에는 수동적으로 악기를 배우지만 곧,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스스로 탐구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것이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힘이 아닌가” 말한다. 이지은 교사는 “학생도 학부모님도 선생님들도 문화예술이 정서적으로, 또 성장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치는 힘을 목격한다”라고 말한다.
최용준 지휘자는 2016년부터 오케스트라 음악 지도를 총괄하는 강사로 함께 해오다가, 2022년부터는 지휘까지 맡게 되었다. 공립학교는 교원순환제로 4년마다 근무 학교가 바뀌는데, 기존에 지휘를 맡은 교사의 전보 후 학교에서는 지휘를 담당할 교사를 초빙하려고도 해보고 희망자를 지원받아 보기도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해온 최용준 강사가 지휘까지 맡게 되었다. 이런 결정은 오히려 오케스트라가 오래가는 단단한 발판이 된 것으로 보인다. 2016년부터 오케스트라 단원인 학생들과 직접 부대끼며 음악 지도를 해왔고 지휘까지 맡아 전체적인 운영을 총괄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4년마다 학교를 떠나야 하는 교사와 달리 연속성을 가지고 오케스트라를 보완할 수 있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을 함께한 최용준 지휘자가 운영의 구심점이 되어, 새롭게 들어오는 신입 단원부터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졸업생 단원까지 모두가 함께했던 선생님이니 혼란도 없다. 최용준 지휘자뿐 아니라 다른 음악 강사들도 오래 함께해온 이들이 많다. 이 같은 이유도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이어 올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었으리라.
  • 리허설
지역과 주민의 지원과 지지를 얻어
대구관천초등학교는 예술꽃 씨앗학교와 예술꽃 새싹학교 총 6년 지원 종료 후 대구 북구청의 지원을 받고 있다. 북구청의 지원은 매년 조금씩 증액되어 올해가 가장 지원액이 높다. 하지만 그것이 오케스트라 운영 전체 예산은 아니어서 부족분은 학교 운영예산을 사용한다. 작은 학교이다 보니 전교생의 3분의 1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다. 이에 학교에서는 오케스트라를 관천초등학교의 자랑으로 여기고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또한 매년 예술꽃 축제 겸 정기연주회를 진행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에 맨발 걷기를 하러 오는 주민들과 어우러진 ‘맨발, 예술꽃 길 걷다’와 같은 마을 축제로 진행하기도 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맨발 걷기가 중단된 후로는 어울아트센터 공연장에서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다. 매년 행사를 열기 위해서는 공연장 대관, 차량 대관, 의상 준비 등 크고 작은 일이 많다. 보내야 할 서류만도 가득하다. 그렇지만 학교와 선생님의 의지가 있기에 모든 일이 가능하다.
올해 축제도 12월 6일에 대구북구어울아트센터 함지홀에서 진행되었다. 학생들이 노력해 온 것을 멋진 공연장에서 모두 앞에 펼쳐 보이고 박수받는 경험, 한해의 마지막 축제인 이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축제는 아이들이 가장 신나는 때다. 대회라는 부담을 떨치고 다양한 곡을 부담 없이 선보일 수 있는 무대다. 또한 친구들과 부모님, 지역 주민, 졸업생이 함께하는 축제인 만큼 새로운 곡을 연습한다. 클래식 악기지만 이때는 학부모님과 지역 주민이 좋아하는 영탁 노래도 연습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좋아하는 인기곡도 연습한다.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에 맞춰 춤도 연습한다.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축제다. 축제가 끝나면 오케스트라 신입 단원 모집이 시작되고 겨울방학 전에 오디션을 진행한다. 그렇게 또 다음 한해가 시작된다.
‘학부모 예술 도우미’도 빼놓을 수 없다. 자원한 학부모를 중심으로 교내든 대회든 행사가 있으면 함께하며 돕는다. 짐도 같이 옮기고, 차량 이동도 돕는다. 머리부터 의상까지 매무새를 하나하나 만져준다. 이들의 손길에 아이들이 무대 오를 준비가 완료된다. 또한 예술 도우미 간에 서로 소통해서 대회 일정을 공유하고, 큰 행사 때는 도우미를 더 모집하기도 하는 등 보이지 않는 단원이 된다. 한 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 졸업 단원의 동생이 다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다.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고, 경험으로 형성된 신뢰가 있기에 그 신뢰는 다시 이어진다.
주민과 학교는 맨발 걷기로, 또 축제로 공연을 선보이며 관계 맺고 있다. 매년 현수막으로 오케스트라 수상 소식을 알려서인지 지역에 소문이 나 있어 학생들이 단복을 입고 지나가면 잘하고 오라고 주민들이 응원도 해준다. 지역의 자랑이다. 대상을 탔다는 소식에, 예정에도 없었던 짜장면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지역과 학부모, 주민이 함께 보이지 않는 지원자가 되어준다.
  • 2024 학부모 참관 연주회
  • 2021 관천 맨발음악회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지속되려면
개인의 재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 재능을 잘 살피고 이끌어 내는 것이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제도권 교육에서 개별 학생의 재능을 찾아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이 꼭 필요하고, 이런 경험이 학생들의 인생에 얼마나 자양분이 되는지 대구관천초등학교 학생들과 지낸 9년여 세월이 말해주지 않나 싶다. – 최용준 지휘자
이처럼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의미와 필요성은 분명하나, 오랜 기간 중단되지 않고 활발히 운영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올해 대구의 다른 학교 오케스트라 해산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물론 예산 문제도 있겠지만, 지속하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운영 방식이다. 대구관천초등학교가 실무뿐 아니라 지휘까지 담당할 교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말이다. 대구관천초등학교 이지은 담당 교사는 오랜 합창부 지도 경력이 있고, 음악으로 아이들과 호흡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운영에 필요한 각종 행정 실무를 담당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보람만으로 대신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결국 사람이다.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들여다보면 해결책이 보인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문화예술교육은 마음에 작은 싹이 움트고 자라고 어느새 송이송이 꽃들이 피어나는 일이다. 어느 날 이기지 못할 것만 같은 일을 눈앞에 마주할 때, 좌절할 때, 그럴 때 마음에 피어난 그 꽃으로 작게 미소 지을 수 있는 경험을 쌓는 일. 나는 그 시절의 세련된 클라리넷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꽤나 풍요로워진다.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벌어진 클라리넷 리드를 통 하나에 모아두고 가끔 들여다보며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나를 여전히 기억하듯, 이것이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힘이고 또 의미가 아닐까.
대구관천초등학교의 9년은 이렇게나 많은 사람의 마음과 수고로움, 애쓰고 노력한 시간, 그리고 모두가 서로를 지지하면서 이뤄낸 것이다. 막 입단한 신입 단원, 먼저 입단한 선배, 학부모, 학교, 담당 교사, 전문 강사, 지자체, 그리고 맨발 걷기 하러 왔다 관계 맺은 지역 주민까지 모두가 함께 일궈가는 음악이다.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범위가 커진다. 이렇게 대구관천초등학교에는 차곡차곡 시간 속에 많은 씨앗이 심기고 꽃들이 피어난다.
  • 제47회 대한민국 관악경연대회
    관천우드윈드오케스트라
김인혜
김인혜
더폴락 공동대표. 더폴락은 2012년 대구에서 처음 문을 연 독립출판서점이자, 지역 관련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책들을 발간하는 출판사이기도 하다. 기획공연 <폴락이다>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독립출판마켓 <아마도 생산적 활동>을 기획·진행하고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커뮤니티를 운영, 문화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북성로 맵시』 『다방 소파에 기대어』 『늦은 밤이면 술렁이는 바람들이 긴 글이 되어 전해졌다』 『여름, 긴 밤이 지나는 동안』 등이 있다.
더폴락 페이스북 @thepollack5
사진제공. 대구관천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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