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나는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의 올리비에 대극장 객석에 앉아 〈페리클레스〉(Pericles)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5세부터 83세까지 나이도 제각각인 225명의 참여자가 마음을 담아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이 무대는 영국 국립극장의 전국 단위 커뮤니티 프로그램인 ‘퍼블릭액츠’(Public Acts)로 제작된 첫 작품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퍼블릭액츠 프로그램과 공연의 감독으로 이 과정을 함께하는 특권을 누렸다. 우리의 사명은 ‘극장과 공동체의 비범한 행위를 창조하는 것’이었고, 바로 이 순간,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벅찬 감정을 느꼈다.
8명의 아이 엄마인 라히마와 13살 아데가 마지막 대사를 마치고 암전이 되자 내 주변 1천여 명의 관객이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극장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 넘쳤다. 배우들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울고, 웃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관객들의 박수를 만끽하고 모든 감정을 온전히 느꼈다. 이 순간에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능동적인 존재가 된다. 참여자 조지의 말로 표현하자면,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는 느낌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느끼게 만든다”라는 것이다. 그 느낌은 뼛속에 새겨지고,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실시간으로 행해지는 연극은 참여자가 자신의 영향력을 몸소 느끼고, 직접 보고 들으며,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24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제5회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에 연사로 초대되었다. 작년 서울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의 연결뿐만 아니라, 수많은 훌륭한 커뮤니티 연극 활동가와의 만남을 경험하면서 이 모든 과정에 퍼블릭액츠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투영되었다고 느꼈다. 바로,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중요한가에 관한 공유된 감각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퍼블릭액츠: 우리가 하는 일
국립극장은 런던에 위치한 커다란 콘크리트 건물이다. ‘국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는 영국 전역의 커뮤니티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과 협력한다. 국립극장은 전국의 학교, 청소년 그룹, 지역 극단과 협력하는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공동체를 대상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은 ‘퍼블릭액츠’가 유일하다. 퍼블릭액츠는 커뮤니티센터, 자선단체, 사회적기업, 청소년 클럽 등 모든 나이·성별·인종·배경과 다양한 삶의 경험을 아우르는 지역 단체나 극장과 협력한다.
지역사회 파트너 단체가 참여할 준비를 마치면 작업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는 협력 기관·단체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협력 예술가(Associate Artist)를 매칭해 두 학기 동안 워크숍을 진행하며, 파트너 기관·단체의 조직 목표를 더욱 강화하는 연극 기술을 탐구한다. 예를 들어, 고령자 구성원의 신체적 웰빙 증진을 위한 무용 프로그램을 커뮤니티센터에서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접근성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자 커뮤니티 환경에 맞춰 작업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자신 있게 극장을 방문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주거 지역을 벗어나 보기는커녕 극장 방문 경험도 없기에, 우리가 먼저 그들을 찾아간다.
프로젝트의 두 번째 단계는 바로 대규모 연극 공연 제작이다. 이 단계에서 모든 워크숍 참여자가 창작팀, 연주팀, 전문 배우 등 예술가와 함께 무대에서 하나가 된다. 또한, 가스펠 합창단이나 전문 댄스 크루 같은 지역 그룹을 카메오로 초대해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커뮤니티 구축을 위한 연극 작업 과정에서 커뮤니티 내 모두가 참여하고 포함되었다는 느낌을 경험하길 바란다. 함께 공연을 만드는 공동 목표를 통해, 도시 내 개인과 조직 간에 연결을 만들며, 장소에 대한 감각, 자부심, 소속감을 형성하고, 커뮤니티 결속력과 회복 탄력성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공연 제작이 끝난 뒤 유산 단계(legacy phase)로 넘어가면 ‘액츠오브조이’(Acts of Joy)라는 시즌 행사를 주최한다. 전국적으로 계속 확대되는 커뮤니티 참여자들을 워크숍, 크리스마스 퀴즈 등 행사 프로그램에 초대해 친목을 다지며 참가자와 파트너가 지속적으로 그들만의 참여형 연극 프로젝트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현재까지 제작된 퍼블릭액츠 작품은 총 9개이다. 그중에는 잉글랜드 북부 탈산업화 도시인 동커스터(Doncaster) 지역 주민 120여 명이 협력하여 브레히트의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The Cacucasian Chalk Circle)을 뮤지컬 버전으로 각색한 작품도 있다. 5부작 대서사시 〈오디세이〉(The Odyssey)를 재해석한 작품에서는 영국 전역에 위치한 커뮤니티가 각각의 에피소드를 창작하고 160여 명의 참여자가 국립극장에 모여 다 함께 피날레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영국 북동부에 위치한 선덜랜드(Sunderland)에서는 현재 커뮤니티와 음악적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춤과 음악을 결합한 〈퍼블릭 레코드〉(Public Record)라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다.
우리의 작업 방식은 가치 중심적이며, ‘개방성’, ‘관대함’, ‘용기’라는 핵심 가치로 정의한다. 우리의 연극 작업은 항상 세대를 아우르며, 모두를 포용하는 활동을 지향한다. 또한, 파트너십을 통해 서로에게서 배우며 더 훌륭한 결과물을 내고, 각 커뮤니티의 차이점과 끊임없는 변화를 고려하여 늘 반응한다. 제대로 발현된 포부가 존엄을 부여하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높은 예술적 기준과 기대를 품고 일한다.
퍼블릭액츠는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개인, 기관·단체, 그리고 문화·사회 분야에서 영향력을 고려하며 작업한다. 개인의 경우,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수많은 사례와 경험담이 있다. 20대 여성 루스는 다년간 만성 불안으로 고생하다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자신감을 얻어 첫 직장에 도전했고, 70대 여성 릴라는 특별히 제작된 그녀의 반짝이 의상을 입고 스팽글 옷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아 옷장을 통째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처럼 참여형 연극은 변화와 상상의 도구로서 크고 작은 방식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재조명하도록 만든다.
단체·기관, 그리고 문화·사회 분야에 대한 영향력도 있다. 로열홀러웨이런던대학교 헬렌 니콜슨(Helen Nicholson) 연극공연학과 교수는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래로 퍼블릭액츠를 추적하며 작업의 영향력을 뒷받침할 증거를 꾸준히 기록해 왔다. 니콜슨 교수는 2023년 〈오디세이〉 제작을 기록한 보고서 「오디세이: 근본적 희망과 집단적 기쁨에 관한 이야기」에서 퍼블릭액츠의 영향력과 전 지역에서의 필요성,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 퍼블릭액츠는 사람, 장소, 활동, 파트너십에 눈에 띄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 퍼블릭액츠는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살아가고… 건강과 웰빙을 눈에 띄게 개선한다.
• 퍼블릭액츠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강화해, 더 회복력 있고 통합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 퍼블릭액츠는 극장이 지역 기회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 퍼블릭액츠는 창조적 산업이 어려운 시기에도 국가의 문화적 기반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 퍼블릭액츠는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살아가고… 건강과 웰빙을 눈에 띄게 개선한다.
• 퍼블릭액츠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강화해, 더 회복력 있고 통합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 퍼블릭액츠는 극장이 지역 기회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 퍼블릭액츠는 창조적 산업이 어려운 시기에도 국가의 문화적 기반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또한, 니콜슨 교수는 “퍼블릭액츠는 변화를 이끄는 프로그램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양질의 커뮤니티 중심 프로그램은 각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라면서 “전국적 변화를 선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극장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라고 전국적인 퍼블릭액츠 프로그램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설명했다.
심층 탐구 1: 커뮤니티 환경에서의 작업
퍼블릭액츠의 세 가지 중점 영역 중 첫 번째는 ‘커뮤니티 환경에서의 작업’이다. 커뮤니티를 찾아가면 노숙자, 이민자, 중독자 등 다양한 이유로 문화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다년간 커뮤니티 파트너와 협력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하며 몇 가지 중요한 배움이 있었다.
1. 차 한잔은 절대 거절하지 말 것! 전방위 접근법으로 파트너십을 쌓는다. 파트너 조직의 맥락을 더 잘 이해할수록 의미 있고 효과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다. 최대한 많이 함께 차를 마시며, 가능한 많은 사람과 교류하려고 노력한다. 파트너 기관·단체의 직원들은 워크숍과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데, 이렇게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직 문화 전반에 대한 교류는 우리가 떠난 후에도 그 조직의 사고방식과 작업 유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2. 참여하게 만드는 건 사람이다! 돌봄과 꾸준함의 문화를 구축한다. 주로 사람들은 아이디어보다도 사람을 이유로 참여를 결정한다. 우리는 워크숍 진행자로 가장 경험 많은 예술가를 찾는다. 이 예술가는 커뮤니티 참여자가 창의적 공간에서 마주하는 첫 경험이기에 그 역할의 무게가 무겁다. 우리가 협력 예술가에게 유일하게 요청하는 것은, 모든 참가자를 VIP로 여기고 사소한 것까지 챙겨 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기 전 정확한 이름과 발음을 미리 숙지하는 것, 쉬는 시간에 모두가 좋아하는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 시작과 종료 시간을 지켜 참여자들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부분을 세심하게 챙기면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3. 우리도 모르는 것이 있다! 전문성의 경계를 지킨다. 우리는 커뮤니티 파트너 기관·단체의 직원이 참가자에 대한 사전 정보(경험)를 바탕으로 보호할 책임을 지도록 요청한다. 이동 수단을 함께 알아봐 주거나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고용주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등 커뮤니티 파트너 직원들은 참여자의 프로젝트 참여 경험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커뮤니티 파트너들은 계속해서 참여자를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참여자는 커뮤니티 단체에서 소외되지 않고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4. 작은 한 걸음이 긴 여정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극장을 방문하는 것부터 화려한 의상을 입고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극장과 개인 간 심리적이고 실질적인 격차를 서서히 메우기 위해 구체적인 이정표를 만든다. 예를 들어, 첫 학기에는 그룹별로 극장에 초대해 공연을 관람하고, 두 번째 학기가 끝날 무렵 모든 그룹의 참여자를 극장에서 열리는 종강 파티에 초대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참여자는 더 큰 그림을 보게 되고, 스스로 어떤 위치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심층 탐구 2: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협업
퍼블릭액츠가 출범한 초기에는 ‘과정’과 ‘결과물’ 중 어느 쪽을 더 중시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나에게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과정은 결과물에 희생하지 않도록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함께하는 방식 자체가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셀리의 70번째 생일과 제임스가 암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한 날을 함께 축하하는 것은 무대 피날레 안무를 익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뉴욕 퍼블릭웍스(Public Works) 창립자 리어 드베소네(Lear deBessonet)의 말을 빌리자면, 퍼블릭액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항상 두 개의 무대가 펼쳐진다. 하나는 연습실에서 만들어지는 공연 무대이며, 또 다른 하나는 모범적인 사회(model society)이다.
돌봄의 문화와 과정 속에서 우리는 엄격함, 숙련, 근면뿐만 아니라 훌륭한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낼 역량을 키운다. 과정에서 형성되는 안전감과 소속감은 끈기와 가능성이 느껴지게 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 결과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레이아는 “이것을 해낸 경험이 있기에, 나는 앞으로 삶에서 늘 더 많은 것을 원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전문 배우의 참여를 도모하는 세 가지 주요 이유 중 첫 번째를 잘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1. 전문 배우의 참여는 작업을 더 나아지게 한다. 우리는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전문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이끄는 놀라운 일을 만들어내고 싶다.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건 공동의 목표뿐만 아니라 목표 달성에 따르는 어려움과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 느껴지는 자부심과 관련이 있다. 전문 배우들의 참여는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특히 국립극장과 같은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공간에서 작업할 때 핵심 요소가 된다.
2. 모두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한때 전문 예술가와 작업하면 커뮤니티 참여자의 재능을 약화시키고 무대에서의 영향력을 희석시켜 참여자가 자신을 ‘덜 중요한 존재’로 느끼게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한 번도 공연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좋아하는 TV쇼에 출연한 유명 배우와 함께 연기한다면, 참여자는 스스로 ‘더 중요한 존재’이고 공연을 해낼 수 있다고 느끼게 되며, 그것은 열망과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3. 전문 분야에 영향을 끼친다. 항상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술가이다. 예술가는 참여자와의 작업을 통해 예술의 순수성과 목적을 다시 연결할 기회를 얻는다. 퍼블릭액츠의 대사(ambassador)가 된 이들은 자신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하는 일의 위상을 높이고 인정과 품격을 부여한다.
전문가들을 모집할 때 우리는 퍼블릭액츠가 추구하는 가치와 기대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한다. 퍼블릭액츠에서는 개인의 자아를 내세울 여지가 없다. 배우들은 유연성, 관대함, 인내심을 갖고 작업해야 한다. 인격적 조화는 매우 중요하며, 처음부터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샤론 던컨-브루스터(Sharon Duncan-Brewster), 아예사 다커(Ayesha Dharker), 주빈 발라(Zubin Varla)와 같은 뛰어난 배우들과 작업할 기회를 누렸다. 이들은 퍼블릭액츠의 가치를 구현하며 모두에게 귀중한 영감과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심층 탐구 3: 공연 소재 선정 – 각색 vs 창작
다음은 작품을 선택할 때 하는 질문들이다.
• 다양한 나이, 정체성,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는 무엇인가?
• 무엇이 이 이야기를 ‘이곳’과 ‘지금’에 적합하게 만드는가?
• 어떻게 해야 지역사회 단체가 스토리텔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왜 이 이야기는 지역사회 단체가 참여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참여하기 ‘때문에’ 더 잘 전달되는가?
• 대규모 무대 이미지, 대규모 움직임, 합창, 인적 스펙터클(human spectacle)을 표현하기 위한 기회 요소는 무엇인가?
• 무엇이 이 이야기를 ‘이곳’과 ‘지금’에 적합하게 만드는가?
• 어떻게 해야 지역사회 단체가 스토리텔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왜 이 이야기는 지역사회 단체가 참여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참여하기 ‘때문에’ 더 잘 전달되는가?
• 대규모 무대 이미지, 대규모 움직임, 합창, 인적 스펙터클(human spectacle)을 표현하기 위한 기회 요소는 무엇인가?
또한, 작품 안에서 우리 극단을 어떻게 표현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퍼블릭액츠를 시작하기 전, 나는 30~50명 참여자의 경험과 기여를 바탕으로 창작하는 참여형 작품을 제작했다. 퍼블릭액츠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규모다. 어떻게 수백 명의 참여자와 함께 그들의 다양성을 진정으로 반영하면서 작품을 공동 창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커뮤니티 전체를 대표하는 극단을 만들 때,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정치적‧개인적 견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용한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통일되고 일관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모든 커뮤니티 구성원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대체로 백인이자 진보적인 극작가가 그들의 의견을 편집한 공연 사례를 나는 너무 많이 보아왔고, 이러한 공연에는 내가 무대 위에서 경험한 다양성은 반영되지 않았다.
기존 이야기나 신화를 각색한 작품의 큰 장점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페리클레스가 딸과 재회하는 장면을 처음 구현했을 때, 최고령 참여자였던 해리는 전쟁고아였던 시절과 성인이 된 후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여성을 만난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공연 자체가 그의 경험을 대변한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 별도의 자료를 제공할 필요도 없었다. 반면에, 창작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직접 기여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잘 드러난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을 수 있다. 현재 공연 중인 〈퍼블릭 레코드〉는 음악과 움직임 중심의 공연이지만 자전적인 텍스트가 섬세하게 얽혀 있는 구간이 있다. 참여자들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공연에 깊이 있게 녹여내는 기회를 즐기고 있다. 기존 작품에 대한 각색도 창작 작품도 모두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나, 창작 과정은 세심함과 기민함을 더해야 한다.
기존 작품을 각색하는 주요 이점은 다음과 같다.
1. 주인의식(ownership)을 부여한다. 누군가에게 셰익스피어를 통달하고, 복잡한 ‘약강 오보격’(영시(英詩)의 대표적인 운율 형식-편집자 주)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준다면, 그는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보는 방법이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더 넓은 문화적 맥락에서 이야기를 보는 방식을 알게 될 것이다. 모두가 국가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전 작품에 대한 권리를 가진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강력한 민주화의 힘을 지닌다.
2. 모두가 ‘다른 존재’가 될 기회를 가진다. 자신을 연기하는 사람이 없는 허구의 이야기에서 누구나 강요받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연결될 수 있다. 다양한 삶의 경험과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과 작업할 때(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이 원하는 게 아니라면 무언가를 가져와야 한다고 요구받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건강한 접근법이다.
3. 옛이야기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구상한다. 연극 분야는 오래된 고전 작품에 새 생명을 끊임없이 불어넣고자 한다. 커뮤니티와 지역 예술가들은 그들의 직접적이면서 다양한 삶의 경험을 작업에 녹여내며, 현대적이고 강렬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창작 작업을 좋아하는 세 가지 점은 다음과 같다.
1. 반응성이 있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작품을 빚어낼 수 있는 자유로움이다. 참여자의 이야기에 온 마음을 다해 반응하며 참여자에게 소유권을 부여하면 그들은 새로운 방식의 자부심, 연결성, 예술성을 느낄 것이다.
2. 움직임과 음악 중심의 작업이 가능하다. 움직임과 음악은 텍스트와 대비되어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 음악과 춤은 사람들을 공연에 참여하게 만드는 가장 즉각적이고, 접근 가능하며, 즐거운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표현주의적이며 비문학적 형태의 예술인 음악과 춤은 텍스트보다 더 확장 가능하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다.
3. 제작 시간이 줄어든다. 우리 공연은 지금까지 제작한 공연 중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제작 시간을 기록했을 것이다. 창작 작업은 본질적으로 느리게 진화하고 반복적인 과정이기 많기 때문에 이 사실이 다소 놀라울 수 있다. 그러나 리허설 시작 전 대본과 악보를 확정해야 하는 뮤지컬과 달리 우리의 움직임과 음악 중심의 창작은 제작 시간을 더 쉽게 관리하고, 작품을 발전시키기 위해 리허설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연극을 제작하면 많은 이점이 있다. 커뮤니티 환경에서 예술가와 일반 참여자가 협업하며, 작품을 각색하거나 창작 작업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보장하려면 모든 결정은 돌봄의 문화를 기반으로 해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협력하면서 발생하는 복잡성과 현실에 대한 깊은 존중이 필요하다.
우리 작업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은 ‘촉매제’(catalyst)다. 현재 극장은 그 어느 때보다 과소평가 되고 재정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며, 커뮤니티는 연대하고 치유할 방법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 퍼블릭액츠의 작업이 극장과 커뮤니티 간의 긴밀한 연결을 촉진하길 바란다.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창조하려면, 사회를 조명하는 사고방식의 중심에 혁신적·포괄적·교차적 커뮤니티 접근방식이 있어야 한다.
* 이 원고는 필자가 〈제5회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2024.11.13., 코엑스)에서 발표한 ‘세대와 지역을 잇는 연극교육의 새로운 시도: 퍼블릭 액츠(Public Acts)를 통한 아동, 가족, 지역사회의 연결’을 바탕으로 한다.
- 에밀리 림 Emily Lim
- 연극 연출가이며, 커뮤니티 구축 및 근본적인 즐거움 추구의 한 형태로 연극을 탐구하고 있다. 극장, 학교, 축제, 커뮤니티센터 등 다양한 곳에서 협업해 왔다. 현재 영국 국립극장 대표 커뮤니티 프로그램인 ‘퍼블릭액츠’ 감독으로서 전국적인 대규모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2025년 브래드포트 영국문화도시 행사 폐막식을 연출할 예정이며, 현재 국립극장 협력예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 영국 국립극장 ‘퍼블릭액츠’
사진제공_영국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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