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시는 대한민국에서 석탄이 최초로 발견된 지역으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깊다. 1921년 본격적으로 석탄 생산이 시작되면서 급격히 발전하고 산업화하였다. 태백시는 석탄산업의 발전과 함께 번창하면서 한때 12만 명이 넘는 인구를 자랑했다. 그 결과, 1962년에는 삼척군(현 장성군) 장성읍에서 독립하여 태백시로 분리되며,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며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흐름과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석탄산업은 급격한 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특히 2024년 6월, 태백의 마지막 석탄 광산인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석탄산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때 석탄산업에 의존해 왔던 지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으며 위기를 맞았고, 많은 주민이 일자리를 잃고 지역을 떠났다. 이를 반영하듯,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여 현재는 4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과거의 산업 중심지로서 번영했던 시절은 먼 기억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 태백은 새로운 방향과 미래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움직이는 생각들이 만나고 엮이면
탄탄마을의 여정은 2018년에 ‘놀며일하는공간 무브노드(MOVENODE)’라는 코워킹스페이스에서 시작되었다. ‘MOVE’(움직이다)와 ‘NODE’(마디·교점) 두 단어가 합쳐진 ‘무브노드’라는 이름은 ‘움직이다가 만나게 되는 곳’ ‘움직이는 생각들이 연결되는 곳’이라는 의미다. 이 공간은 그 자체로 사람들과 아이디어들이 교차하는 지점, 즉 변화를 만들어가는 장소를 뜻한다. 무브노드는 조용하고 느린 시간이 흐르는 태백의 하장성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과거 읍사무소가 위치했던 구도심으로 역사적인 유산이 풍부한 지역이다. 광산과 가까운 이 마을에는 과거 100년 동안 못 쓰는 탄을 쌓아 검은 산을 이룬 폐경석장, 일본식 건축물인 (구)등기소, 슬레이트 사택,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던 우물 등 다양한 역사적 흔적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과거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우리는 자연스럽게 광산 문화와 그 영향을 흡수할 수 있었다.
특히, 작은 마을이라는 특성상, 무브노드는 디지털 노마드뿐만 아니라 태백 지역 사회 활동가도 자주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지역 주민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중심지로 기능하며 비산업적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는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지역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거의 산업 중심지였던 태백에서 비산업적이고 창의적인 프로젝트들이 탄생하고 운영되는 과정은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변화를 제시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배경과 경험을 지녔지만, 모두 하나의 큰 꿈을 가지고 협력하고 있다. 그중에는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도 있고, 자신의 지역이 답답해서 새로운 환경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한 청년도 있다. 오랜 시간 지역에서 빵을 구워온 부부도 있고, 팬데믹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지역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청년도 있으며, 지역 청소년을 위해 신경을 쓰고 그들과 소통하는 미술작가도 있다. 이 외에도, 광산의 이야기를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풀어내는 다큐멘터리 감독도 이곳에서 함께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의 만남이 2022년 ‘탄탄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이하 탄탄마을)이라는 조직을 만들어냈다.
예술로 날땅 찾기
탄탄마을은 원래 도시재생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주민 중심의 조직이었다. 그러나 점차 그 규모가 커지고, 운영이 부담스러워지면서 주민들만으로 프로젝트를 계속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던 청년과 주민이 손을 맞잡고, 다시 한번 그 조직을 새롭게 재구성했다. 새로운 형태의 조직은 단순히 지역 주민만이 아닌, 청년과 이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제 탄탄마을은 지역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문화예술로 엮어내는 다양한 실험을 활발히 진행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적 활동을 전개하며 지역 공동체를 위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 활동이, 사람들의 움직임과 창의적인 에너지에서 비롯된 문화와 예술이, 결국 지역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다.
그중 2023년 진행한 ‘비엔날레 날땅’은 단순히 예술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았다. 개간되지 않은 땅, 즉 지역 내 비어 있거나 의미가 있는 공간을 발굴하고, 그 공간을 갤러리로 변모시키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시각 예술 프로젝트로 마을을 미술관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예술과 지역이 하나로 연결된 공간에서 협력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며 주민과 함께 지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석공마트(석탄공사마트)에서는 오래된 탁본이 전시되었고, 6.25 전쟁 당시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인 망루에는 과거의 슬픈 기억을 상쇄할 수 있는 행복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또한 태백에 최초로 지어진 성당에는 대천사상이 놓여, 주민이 예술 작품을 더욱 가깝게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 외에도 마을 곳곳을 연결하는 작업을 통해, 지역민과 함께 마을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나갔다. 관람객이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도록 매일 세 번씩 마을을 다니며 도슨트 투어를 진행하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특별한 비엔날레는 한 달 동안 진행되었으며, 368명의 어린이와 1,000여 명의 일반인이 관람했다.
광산을 머금고 자라는 아이들
비엔날레 날땅의 시작은 지역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다.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 지역 주민에게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창작과 표현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했던 열망이 이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다. 2년마다 지속적으로 비엔날레를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홀수 해에는 비엔날레를 열어 문화예술의 경험을 제공하고, 짝수 해에는 그 준비 과정을 통해 지역 어린이에게 예술 표현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2024년에는 ‘관계작가’라는 개념을 도입해, 비엔날레 날땅에 참여한 작가들과 지역 어린이들이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관계작가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작가가 지역을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비엔날레 날땅은 올해 2회차를 맞이한다. 10년 후, 20년 후에는 지역 어린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에 상상하며 실험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 실험은 단지 예술을 통해 지역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2024년에는 ‘로컬디자인페어: 자유영토’를 열었다. 태백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석포제련소는 황량한 자연환경 속에서 불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제련소를 처음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종종 석포를 방문하곤 했다. 그곳에서 바라본 제련소의 황폐한 풍경은 항상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석포제련소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표현을 하게 될까?’ 아이들은 자신이 자란 환경을 흡수하므로, 산속에서 자란 아이는 산을, 바다 근처에서 자란 아이는 바다를, 도시에 자란 아이는 도시를 흡수한다. 그렇다면 광산에서 자란 아이는 광산을 자연스럽게 머금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그린 그림 속에는 종종 산에 뻥 뚫린 동굴과 그 안에 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기찻길이 등장하고, 깊은 계곡에 자리 잡은 마을은 새벽녘 신비로운 물 아지랑이를 무의식적으로 담고 있다. 산은 자연스럽게 뾰족하게, 밤하늘은 어두운색으로 그려지고, 광산촌의 검은색 반짝임은 그곳에서 자란 우리의 무의식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는다. 석포제련소를 보며 깨달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는 광산에서 자란 아이가 남길 수 있는 표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결핍이 아니라, 서울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며 채워진 고유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고유한 지역의 디자인을 찾고자 했고, 이를 위해 지역에 비어 있는 폐교를 활용하여 다양한 로컬 디자이너의 콘텐츠를 담았다. 우리는 그들과 ‘고유한 지역 디자인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지역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디자인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내기 시작했고, 2년마다 지속적으로 로컬디자인페어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천천히 진행하고 있다.
광산 역사와 문화예술이 만나면
자체적인 문화예술 공급이 부족한 지역은 자연스레 그것을 소비하는 대상에 머물기 쉽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문화예술을 정답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다 보니, 지역 특유의 다양성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또한, 창작과 표현을 실현할 기회 또한 지역에서는 찾기 힘들다. 이는 지역이 가진 생태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문화예술 요소가 지역의 소멸 위기와 맞물려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예술이 단순한 여가의 수단을 넘어, 자신을 이해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알고 있다. 특히, 폐쇄적인 지역일수록 이러한 문화예술이 더욱 필요하지만, 오히려 점점 더 위축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의 현재 모습이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것을 우리가 만들어 갈 다른 모습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한때 결핍이 동력이 되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우리가 가진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서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방식과 특성을 이야기하고, 변화와 성장을 만들고자 했다. 우선 개별적인 역사성과 고유한 특성을 지닌 지역의 사례를 직접 살펴보고자 작년 12월 말, 13일간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프랑스 파리와 프로방스, 독일 에센, 영국 런던과 리버풀을 방문하며 각 나라의 역사성에 뿌리를 둔 건축물, 음식 문화, 대화 방식 등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고, 지역마다 다른 모습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지켜왔고, 무엇을 새롭게 융합하여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독일의 졸페라인(Zollcerein)은 광산 지역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멀리서 보이는 상징적인 권양기(捲揚機, winch)를 따라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마을에 있는 제2수갱의 권양기도 독일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매일 보던 그것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넓은 잔디밭 위로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이곳은 한때 광산 시설을 되살려 사람들의 생활 가까이에 두고 있다. 과거의 기능을 잃은 광산 시설을 박물관과 갤러리로 바꾸어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광산이 가진 산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삶, 문화, 식물, 광물,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어 지역의 역사적 입체성을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졸페라인은 지역의 역사성을 강조하며 이곳을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지만, 매끄럽고 정돈된 공간에서는 아쉽게도 광산이 가진 ‘살아있는’ 에너지와 매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가동되는 광산을 방문했을 때, 뿜어나오는 연기와 움직이는 벨트, 쿵쾅거리는 소리 등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에 그 경험이 깊이 인상에 남았다. 그 힘찬 역동성을 우리의 광산에는 어떻게, 그리고 안전하게 다시 구현할 수 있을까?
이번 유럽 여행을 통해 우리는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도시의 발전은 개인이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과거의 토대 위에 현재가 존재하듯, 도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갖춰가니까. 특히 폐광 지역의 재생은 이러한 도시 발전의 중요한 사례이다. 광산이 폐쇄된 후 지역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자산으로 삼아 새로운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한 졸페라인이 그러했다. 우리의 광산도 지난 10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100년을 문화예술로 채워나가며, 건강한 표현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일은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은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방문객에게는 독특한 문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의 광산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 김신애
- 탄탄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강원도 태백에서 문화예술기획자로 활동하며 건강한 표현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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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마을 홈페이지 - 사진제공_김신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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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흥망성쇠를 넘어 지역의 역동을 만드는
문화예술로 채워가는 탄탄마을의 미래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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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로 채워가는 탄탄마을의 미래
기대만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