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큰 나무가 자라는 언덕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되어 간다. 창밖 풍경은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나무들의 빛깔과 형태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화는 그렇게 한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나고 나면 전과는 다른 어떤 것이 되어 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주축으로 10년을 이어온 영광학생예술동아리 ‘락(樂)뮤(Musical)’를 취재하고 돌아오니, 문득 창밖의 나무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같은 일을 일상처럼 반복했을 뿐이지만 어느새 멀리까지 걸어온 락뮤의 10년을 들여다보자.
다름이 아닌 자연스러운 환경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늘어나는 이주민의 존재는 사회 전체의 대비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2008년에는 「다문화가족 지원법」이 제정되어 다문화 주민을 어떻게 우리 사회에 받아들일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15년 전남교육청 특색사업의 하나로 락뮤가 시작되었다. 다문화 학생들과 일반 가정의 학생들이 참여하되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영광 관내 모든 학교 학생이 참여하는 동아리가 탄생한 것이다. 이때 함께 시작되었던 다른 지역의 동아리 사업이 종료된 후에도 락뮤는 꾸준히 지속되어 지금까지 10년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를 함께 연습실에서 보내고 있다.
“락뮤 동아리는 다문화 가정 학생 수가 증가하면서, 이들이 예술적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2015년 창단되었습니다. 예술 활동을 통해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감수성을 키우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사업이에요.”– 류성우 영광교육지원청 주무관
다문화 동아리로 시작되었고, 지금도 다문화 학생 비율을 50% 내외로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락뮤 구성원 사이에서는 더 이상 이것이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다문화 환경이 인위적인 계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락뮤에서 다문화 학생과 일반 학생이 함께 활동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환경일 뿐이다. 오히려 다문화 학생이기 때문에 뭔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어른과 외부인의 편견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다문화라서 뭔가 좀 다를까, 내가 좀 조심해야 할 게 있을까 했는데, 사실 똑같아요. 그냥 할머니 집이 외국에 있다는 것 정도? 간혹 부모님이 한국말을 잘 못하는 친구들이 적응에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1, 2년이 지나면 똑같이 성장해 있어서 차이가 전혀 없더라고요.”– 장지원 가창 및 연기지도 강사
무대 위에서 커지는 자존감과 자긍심
락뮤가 주목받는 이유에는 ‘다문화 동아리’라는 점이 크지만 정작 아이들도 지도하는 선생님들도 그런 사실을 잊을 정도로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가 함께 참여하고, 노래와 연기를 하는 뮤지컬팀과 연주를 하는 밴드팀의 호흡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한해 한해 나아지는 학생들의 실력과 그 안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자체가 더 주목받아 마땅했다. 그래서 락뮤를 오랜 시간 지켜온 류성우 주무관과 한종신 총감독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아이들에게 자존감과 자긍심을 키워주는 일이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자존감 향상이에요. ‘내가 무대 위에서 이걸 해냈어’라는 성취감을 경험하고 나면 처음 왔을 때와는 전혀 달라져요. 대사 한 줄을 못 외우던 아이가 무대 위에서 순식간에 몰입해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선보였던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요.”– 한종신 총감독
그 감동은 지켜보는 사람의 것만은 아니다. 무대 위 조명 아래에 서서, 관중의 박수를 받고, 변화한 자신을 발견한 아이들은 가족 모임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뒤로하고 2월부터 11월까지 열 달 이상 매주 토요일 오후 시간을 연습으로 채운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아이가 열정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첫해를 보내고 공연 무대를 경험하고 나면 자발적으로 연습에 참석하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무대에 서는 경험은 아이들의 세상을 변화시킨다. 한편으로는 애쓴 만큼 인정받는 과정도 중요하다. 그래서 단원 전체가 교육장상을 받기도 하고, 팀으로 교육감상을 받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자부심도 키워줄 수 있었다.
이런 성취감을 얻기까지는 긴 과정이 필요했다. 1년을 일정으로 진행되는 연습과 공연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매년 1월이면 그해 공연 주제를 정하고 공연 준비를 시작한다. 초창기에는 주로 다문화와 환경을 테마로 했지만,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자 역사적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2018년), 영웅이된 유관순(2019년) 5.18 광주민주화운동(2020년), 여순사건(2022~2023년) 등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뤄왔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사전에 총감독을 비롯한 모두가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인 주제를 찾더라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지역과의 관계가 확장되고 관심과 애정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여순사건을 다룬 공연 〈여순사건-YOU가족〉(2023년)은 여수와 순천에서 특별공연을 하게 되어 모두 좀 더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꼈던 공연이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여순사건과 연관이 깊은 4‧3항쟁을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제주 4‧3기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역사와 지역에 눈길을 돌리면서 만들게 된 공연이 2024년 정기공연으로 무대에 올린 〈강항, 영광을 품은 조선 포로의 기록〉이다. 조선 중기 학자이자 의병장으로 영광 토박이도 잘 몰랐던 영광의 인물인 ‘강항’을 주인공으로 공연을 만들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지역과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키울 수 있었다.
다문화, 학교의 경계를 넘어
락뮤의 지난 10년은 다문화 학생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예술적 능력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 구성원이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작은 연습실에서 시작된 몸짓이 학교의 경계를 넘어 지역까지 확장된 것이다. 단지 매주 토요일 오후에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연주하며 보냈을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 아이들은 자존감을 높이고, 꿈을 키우고, 성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 누군가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을 해야 할까, 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락뮤가 지나온 10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락뮤 첫해부터 참여했던 아이가 올해 대학에 진학했다. 시간이 쌓였다는 실감이 난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앞으로가 더 궁금해진다. 이들이 생각하는 락뮤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지속성이에요. 문화예술교육은 1회, 2회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계속되어야만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도 이제 연차가 된 친구들은 스스로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내고,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주게 돼요. 그런 걸 보면서 문화예술교육의 지속성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종신 총감독
사실 교육청에서 학생들의 동아리를 직접 지원하고 운영하는 것이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락뮤가 꾸준히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믿고 맡겨주는 책임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담당자, 진심을 가지고 성실히 임하는 지도 강사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성원들의 헌신이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 아닐까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락뮤의 담당자가 바뀌고, 감독이 바뀌더라도 영광의 동아리로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 모두 마음을 같이 했다. 그런 점에서 락뮤는 교육지원청이 운영하는 학생 동아리라기보다 영광의 로컬 동아리라는 말이 적합해 보였다. 그러니 락뮤의 아이들은 다문화냐 아니냐를 떠난, 영광의 아이들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짓궂은 질문을 하나 던져 보았다. 혹시 외부의 간섭 때문에 공연이나 운영의 방향이 달라진 적은 없을까? 한종신 총감독은 “매주 연습을 지켜보시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봐 주시는 것 외에는 전혀 간섭 같은 것은 없었어요.”라고 답한다. 락뮤의 운영은 총감독과 지도강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고, 영광군교육지원청은 락뮤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 영광군과 교육청, 그리고 외부에 락뮤를 알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어린 단원의 탈퇴 문제를 놓고 고민이 생기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단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논의를 거듭했지만 결국은 끝까지 함께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간의 걱정과 우려가 무색하게 성공적으로 공연을 해낸 아이를 보면서 이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 힘이 동력이 되어 10년을 달려온 락뮤의 시선은 여전히 미래를 향해 있다.
“밴드팀은 뮤지컬에서 음악파트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무대 위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를 하게 되는데요. 나중에는 밴드만으로의 공연도 시도해 보고 싶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외부 행사에서도 연주를 해보고 싶고요.”– 박찬민 밴드 지도 강사
지금까지도 많은 것을 이뤄왔지만 여전히 선생님들은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고, 좀 더 나은 공연을 만들고, 그래서 더 많은 공연 기회를 주고 싶은 선생님들과 함께 락뮤는 벌써 2025년 공연 준비를 시작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 영광과 광주에는 모처럼 겨울다운 눈이 펑펑 쏟아졌다. 눈길을 헤치고 집에 돌아와 내다보니 창밖의 나무는 여전히 가지만 남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렇게 매일매일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딱딱한 가지 끝에서 연두색 잎을 틔워낼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조금씩 자라는 것은 아이들도, 나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할 일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지켜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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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0회 영광학생예술동아리 락뮤_ 강항 영광을 품은 조선 포로의 기록 하이라이트 영상
[출처] 영광교육지원청
* 인터뷰는 영광교육지원청에서 락뮤 지원을 담당하는 류성우 주무관과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는 한종신(총감독), 장지원(연기, 노래지도), 박찬민(밴드지도) 선생님과 진행되었다. 인터뷰 전 마지막 정기공연을 마치고 휴식에 들어간 터라 아이들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락뮤에 대한 애정으로 인터뷰를 꽉 채워주신 네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 오은영
- 문화정책과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문화정책 연구를 업으로 삼다가 훌쩍 인도로 떠나 티베트 난민촌에서 6년을 살았다. 오스트리아에서 평화학을 공부하고 고향인 광주로 돌아와 평화와 문화가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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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문화예술교육은 꾸준히 지속하는 것에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응원합니다.
지난 10년의 락뮤의 대표적인 성과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지역 역사와 문화의 공유와 확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락뮤는 여순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을 무대에 올려, 여수와 순천을 순회 공연하며 지역의 아픈 역사와 기억을 되새겼습니다. 또한, 무대에 오르며 지역을 넘어서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올해 공연에는 < 국회 교육위원장의 축전>을 받는 등, 락뮤의 활동은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으로는, 락뮤가 지속적으로 지역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전파하는작품을 선보이며, 다문화 교육을 더욱 강조할 예정입니다. 또한,전남의 지역 교육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락뮤의 활동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교육적 의미와 문화적 통합을 실현하는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입니다.
느리지만 꾸준히 자라는 영광의 아이들
영광학생예술동아리 ‘락뮤’
공감이 갑니다
느리지만 꾸준히 자라는 영광의 아이들
영광학생예술동아리 ‘락뮤’
기대만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