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동네의 골목 안 골목, 낡은 집과 집 사이에 복도처럼 난 샛길로 찾아 들어갔다. 허리를 굽혀 낮은 문을 지나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은은한 풋내가 났다. 공간은 담갈색부터 암갈색까지, 켜켜이 쌓인 갈색의 스펙트럼으로 직조되어 있었다. 나무로 만든 것들과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가득했다. 어지럽고도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는 갈색의 공간. 그곳에서 남머루 작가를 만났다. 한 해의 끝자락이었다.
나무를 깎는 시간
남머루 작가는 나무살림도구를 만들고 나무를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는 나무 작업자다. 그가 놀며 쉬며 일하고 만나는 공간인 우드카빙 스튜디오 ‘어제의 나무’가 어느덧 만 10년 차를 맞았다.
Q.

스튜디오 이름이 ‘어제의 나무’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A.

내가 작업하는 이 나무들이 어제는 숲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의미다. 나무로 작업하고 나무로 만든 것들로 살아간다는 건 결국 숲에 기대어 작업하고 산다는 이야기다. 처음 이름을 지을 때는 좀 더 거창한 포부를 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단출하고 간소한 의미만 남는 거 같다.

Q.

개인 작업 외에도 나무를 매개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워크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A.

행위는 다르지만 개인 작업이나 워크숍이나 나에게는 둘 다 작업이다. 혼자 나무를 깎든 사람들과 같이 깎든, 결국 나무를 깎으며 사는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나무와 만나고 친해지고 나무와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재밌는 것은 대상자가 어린이일 때는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어린이들은 나뭇가지 하나만 쥐여줘도 알아서 논다. 이를테면 나뭇가지 그대로 칼싸움하다가 끝을 뾰족하게 깎아서 창을 만들고, 그러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꽂고 이어 붙이며 뭔가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아이들이 나무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류사적인 진화 과정을 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반면에 대상자가 성인일 때는 조금 더 목표를 확실히 설정한다. 그렇다고 결과 자체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결과에서 최대한 떨어뜨려 놓으려고 노력한다. 완성하든 하지 못하든 나무를 깎는 일과 그 시간 자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한다.

Q.

나무를 깎는 시간이 가지는 속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A.

언뜻 보면 어렵고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한 토막의 나무에서부터 시작한다. 손에 칼을 쥐고 그 나무를 깎아나가는 단순한 과정이다. 오래 걸리고 지난한 작업일 수도 있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다. 손만 움직이면 되는 작업이니 귀도 한가하고 입도 한가하지 않나. 작업 시간도 줄이고 완성도도 평준화시키기 위해 내가 기계로 밑 작업을 미리 다 해놓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서로에게 남는 것이 없다. 나무와 교감하는 시간이 곧 나를 감각하고 타인과 교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숟가락을 만드는 일
문화기획자였던 남머루 작가를 나무 작업자의 길로 이끈 것은 창작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과 우연히 만난 『젊은 목수들』이라는 책 한 권이었다. 대단한 포부나 남다른 기대도 없었다. 그저 책 속의 목수들이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무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의외로 ‘사람’이었다.
Q.

나무 작업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가.

A.

목공을 배우면서 가장 신났던 것이 ‘나무로 무슨 작업 할까’가 아니라 ‘나무로 사람들과 무슨 일을 벌일까’였다. 나무 작업을 매개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를 가장 설레게 했다. 그런데 가구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과정 자체가 너무 무겁고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장벽이 높았다. 그러다 가구 만들고 남은 자투리들이 아까워서 우연히 숟가락을 깎게 됐는데 간단한 수공구로 몇 시간 앉아서 깎으니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숟가락 하나가 완성되더라. 작업과 삶이 바로 연결될 수 있겠다고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다.

Q.

하나의 숟가락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하다.

A.

일단 나무를 구한다. 벌목 업체에서 사기도 하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버려진 것들을 주워 오기도 하는데 주로 밤나무나 벚나무같이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무들을 쓴다. 나무는 제재소에서 판재로 썰어와 씻고 말린다. 디자인은 주로 컴퍼스로 작도해서 그려낸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오면 그것을 그대로 합판에 옮겨 일종의 탬플릿을 만든다. 이 탬플릿을 나무에 옮겨 기계로 재단하는 작업까지를 ‘블랭크’라고 부른다. 칼로 깎기 직전의 상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다음부터는 단순하다. 칼로 깎는다. 주로 세 가지 종류의 칼(카빙나이프, 후크나이프, 환도)을 쓰고 마무리도 사포를 사용하지 않고 칼로 하는 편이다. 사포로 다듬는 건 칼의 흔적을 지우고 분칠하는 느낌이라 선호하지 않는다.

Q.

나무로 숟가락을 깎아 만드는 일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A.

숟가락은 밥을 먹기 위한 도구다. 다시 말해 나를 먹이는 도구, 나는 살리는 도구인 셈이다. 밥숟가락을 놓는다는 표현으로 죽음을 비유하기도 하지 않나. 한 인간의 일생을 관통하는 도구가 바로 숟가락이다. 그러니 숟가락을 직접 깎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한 일일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소비를 통해 살아간다. 먹거리를 사다 먹고 살림살이를 사서 쓴다. 삶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우리는 자기 삶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온전히 나를 살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 살림도구 하나라도 스스로 만들어 쓰는 행위는 내가 내 삶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숟가락이 가지는 상징이 크다. 내 손으로 숟가락을 깎아 쓰는 생활은 곧 내가 나를 먹이는 일, 나를 살리는 일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삶과 연결된다. 하나의 숟가락을 깎는 시간이란 결국 내 삶과 온전히 연결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나를 돌보기 위한 비움과 채움
우리 사회에서 평범이란 같은 공간 안에서 비슷비슷한 일상을 보내며 경쟁적으로 시험을 치르고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평범한 삶은 때로 내가 나의 욕망을 들여다볼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세상의 시간표대로 떠밀려 가는 삶이 보편적 삶이라면 남머루 작가 역시 철저히 그 범주에 속해 있었다. 나무와 함께하는 지금의 삶이 이전에 비해 대단히 특별해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반걸음쯤은 자기 삶에 가까이 다가간 듯 보인다.
Q.

나무를 깎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A.

나무 작업을 하면서는 자주 감탄하는 삶을 산다. 가족들이랑 훌쩍 여행 갔다가 길에서 쓸만한 나무토막을 발견해도 멋지다고 감탄하고, 그 덩어리를 가져와 도끼로 쪼개놓고는 나뭇결을 보고 감탄한다. 한칼 한칼 깎으면서 드러나는 질감과 무늬에도 매번 감탄하고 기름에 적셨을 때 새롭게 발견되는 빛깔을 보고도 감탄한다. 예전에는 아무리 좋은 기획서를 쓰고도 감탄하는 일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할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는 그렇게 매일 나를 놀라게 만들고 새로운 자극을 준다. 그러다 보니 점점 겸손해지더라. 나무를 그저 내 작업의 소재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내 삶을 감탄의 순간으로 채워주는 존재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무 앞에서 더 신중해지고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Q.

한때 우드 카빙이 대단히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만 본다면 대단히 힘들고 반복적인 작업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나무를 깎는 행위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A.

내가 추구하는 작업 방식 자체가 단순하고도 반복적이다. 그래서 워크숍을 하다 보면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한번 세어 본 적이 있는데 칼질을 1초에서 1.5초마다 한 번 하더라. 숟가락 하나 깎는 데 세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어림잡아 만 번은 칼질하는 셈이다. 같은 동작을 만 번이나 반복한다고 생각해 봐라. 머리가 멍해지고 생각이 비워진다. 나는 이 비움의 순간에서부터 휴식이 시작된다고 본다. 나무를 깎는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워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렇게 비워내야만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넣을 수 있다. 나무를 쥐고 깎으며 전해지는 손끝의 감각, 몇 번의 칼질로 달라지는 나뭇결을 발견하는 기쁨, 내 손으로 매일 쓰는 생활 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성취감, 조금 더 깎고 싶고 잘 깎고 싶다는 아쉬움까지도 에너지가 된다. 일상 속의 비우기와 채우기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나를 지키고 쉬게 해주어야 한다. 작은 나무 한 토막과 칼 한두 개만 있으면 누구나 매일 스스로를 비우고 채울 수 있다.

Q.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궁금하다.

A.

나무가 있고 숲이 있는 곳에서 숟가락도 깎고 그릇도 깎으며 살고 싶다. 나무로 살림살이를 만들고 나무로 살림살이를 만들어 쓰는 삶을 나누는 일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일을 통해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으면 좋겠다.

남머루
남머루

나무작업자. 나무로 살림도구를 만드는 공방 ‘어제의 나무’를 운영한다. 나무 살림은 나무를 살림이고 사람을 살림이며,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의 삶이기도 하다는 믿음으로 숲에 기대어 작업하고 있다.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는 2022 직장인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예술로 레벨업’ <쉼의 비법, 오늘밤 ○○한 잔>(2022), 인천시민문화대학 예술체험 워크숍 <쉼이 오는 곳, 우드 카빙>(2022), 부평문화재단 일상 회복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삐-클라쓰’ <사각 사각>(2022), 문화예술교육 원데이 클래스 ‘예술을 만나자’ <함께 나무로 놀이> <나무로 살림>(2022)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나무와 사람이 만나 느림과 반복의 시간을 통해 얻은 생각을 정리한 『카빙노트, 나무로 살림』(2018)이 있다.
· 어제의 나무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treeofyesterday
박유미
박유미
설치와 영상을 중심으로 작은 서사에 주목하는 미술작가. 2018년 개인전 《바다에서 만날까》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글과 영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2018년 <찔레꽃>을 연출했다. 현재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 ‘효창서담’을 운영 중이다.
gomako1983@gmail.com
인터뷰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남머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