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식적인 대화는 어색하지만 근황 이야기부터 해요. 어떻게 지내시나요. 최근 집 근처에 월세로 공간을 하나 구했다고 들었어요.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작업실을 ‘복많관’이라고 부르거든요. 복이 많은 곳이라 ‘복많관’인데, 좁기도 하고 점점 놀러 오는 사람도 늘어서 공간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한두 달 전부터 동네 매물을 보러 다녔죠. 구체적인 목적을 두고 계획한 일은 아니지만 자꾸 끌리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월세만큼의 수익은 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 년 뒤에 ‘여기서 정말 잘 놀았다, 이 행복은 들인 돈보다 값지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해볼 만하겠더라고요. 일단 저질렀습니다. 공간의 이름은 ‘복많관 플러스’고요, 조만간 공식 오픈할 예정입니다. 엊그제는 남편(이하 ‘이반장’)이 참여하는 동네 보드게임 모임 사람들이 와서 하루종일 놀다 갔어요.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발견하신 거로군요.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빨리 저지를 줄은 몰랐어요.
수도권에서만 살다가 멀리 이사를 한다거나 시골의 흙집을 사서 고쳐 보거나 하는 몇 번의 큰 결정을 하다 보니 확실히 선택하는데 망설임이 줄었어요. 사실 이번 일은 10월, 11월 한창 바쁠 때 결심한 거예요. 이때가 슬슬 재미는 점점 줄고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잖아요. 이대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나를 이렇게 나답지 않게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머릿속에서라도 딴짓을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해야 할 일들도 할 만해지고 마음도 다시 설레더라고요.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경험이 중요해요. 꿈꾸는 게 허황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 또다시 꿈꾸게 되고, 주변에 같이 하자고 부추기기도 하고요.
그렇게 주변을 부추겨서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는 거군요? 올해만 두 번 마당문화 활성화사업 <복많 비엔날레>와 <재능낭비 데이>를 열었잖아요. 기획서 한 줄, 지원금 한 푼 없이 이루어진 큰 프로젝트인데,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궁금해요.
가만, 어떤 맥락이었더라. 생각이 잘 안 나요! 오히려 잘 놀면 더 잘 잊는 것 같아요. 그때 일단 이사 온 집 마당이 너무 좋아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을 부를 구실이 필요했는데, 예술이라는 자리를 활용해 본 거죠. 우리 집 마당은 분명히 복이 많다, 여기에 와보니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래서 뭔가 만들었다, 이걸 가지고 놀아보니까 좋더라, 같이 해보자, 같이 잘 살아 보자. 이런 이야기를 말랑말랑하게 할 수 있는 자리가 예술이니까, 예술 분야에 적극적으로 발신했고 많은 문화예술인이 와주셨어요.
동네잔치가 따로 없었죠. 그런데 혹시 <복많 비엔날레> 같은 이름에도 의도가 있는 건가요? 이런 기획을 하게 되는 사적인 동기가 궁금해요.
사람들이 예술을 선택하는 이유가 예술이 현실과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나를 다르게 보여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마음속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을 예술로 표현하기보다는 3순위, 4순위 정도인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매일의 삶을 가릴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저는 제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하고 싶었어요. 떠나간 강아지가 그리워서 괴롭고 슬플 때는 강아지에 대한 노래를 만들며 충분히 슬퍼했어요. 그랬더니 그 슬픔 자체가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예술 영역에서 ‘비엔날레’라는 커다란 이름이 주는 의미와 아우라가 있잖아요. 저는 그 이름을 삶의 영역으로 가져와서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수도권을 벗어나 보니 예술가가 아닌데도 누구보다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이 보이더라고요.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순간을 더 자주 만나기도 하고요. 굳이 이 모든 것을 ‘이것도 예술’이라고 힘주어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기획도 하고 예술도 하는 우리의 이모저모를 드러내고, 응원하고 응원받고 싶었어요. 이런 과정이 서로의 다음 작업을 위한 힘이 될 거라고 믿거든요.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재능낭비 데이> 때는 참여자로서 고민이 많았어요. ‘스스로를 위해 재능을 낭비해 보자’라며 초대해 주었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처음에는 ‘재능’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심란했는데, 점점 ‘낭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저에겐 창작이 이미 엄청난 무리이자 낭비거든요. 있는 재능을 쥐어짜서 간신히 일하는 편인지라 나를 위한 낭비는커녕 에너지든 뭐든 바짝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에요.
압니다. 저 또한 긴 시간 동안 재능이든 에너지든 다 쏟아서 누군가의 담론에 기여하거나 좋은 그림을 그려주곤 했으니까요. 그것이 공공에 의미 있는 일이라면 내가 활용됐다 할지라도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런 순간이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오롯이 스스로를 위한 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낭비 말인데요, 지금 시대에 예술이 낭비되는 게 가장 예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다 뭐다 하면서 예술이 여기저기서 보편적이고 적절하게 활용되기를 바라잖아요. 예술로 지역 문제도 해결하고 커뮤니티도 활성화하라는 식의 사업이 계속 설계되고 있고요. 저는 예술이 그 어디에도 쓰이지 못하고 우리 집 앞마당에서 낭비되고 사라지는 것을 꼭 보고 싶었어요. 용기내서 먼 길을 온 사람들만 그 재미를 가져가고, 다른 사람은 그 재미를 몰라버리면 묘하게 통쾌할 것 같았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이 오셨고 잘 놀다 가셨어요. 저도 좋았고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말 몰라서 궁금해하는 바깥의 반응도 재밌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알 것도 같아요. 저도 그렇고 방문했던 사람들도 그렇고, 저마다의 재미와 의미를 챙기면서도 편하고 즐거웠단 말이죠.
사실 <복많 비엔날레>나 <재능낭비 데이>나 그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우리가 문화예술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콘텐츠를 어디에 두면 어떻게 작동해서 어떤 효과를 낼 거라고 기대하면서 자꾸 그 내용을 개발하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그것이 이루어지는 자리의 분위기나 그 자리를 만든 사람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번에도 대단히 특별한 콘텐츠를 두고 사람을 초대한 게 아니잖아요. 그냥 제가 마음에 여유가 있었고, 마당도 넓고, 강아지도 있고, 방문한 사람들도 여행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갔기 때문에 즐겁고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 제가 무언가 기획할 때, 물론 내용도 신경 쓰지만, 우선 내 상태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는 집을 공개하는 건 괜찮았나요? 사적인 공간에 낯선 사람이 잔뜩 오는 건데, 저 같으면 못 할 것 같거든요.
오히려 우리 집이니까 안전하다고 느껴요. 가방에 재료 잔뜩 담아서 ‘문화예술교육’하러 어디 낯설고 멀끔한 곳으로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는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학교에 수업하러 가면 신경 쓰이는 학생이 꼭 생겨요. 그럼 저는 그 학생이 하는 표현이나 그를 둘러싼 친구들의 반응이나 교사가 개입하는 이유 같은 게 계속 궁금하고 마음이 쓰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2시간 후에 가방 들고 나와야 하는 존재잖아요. 자칫하면 과하게 열정이 넘치거나 오지랖을 떠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어느 순간 이렇게 관계 맺는 방식은 제가 그 순간 존재하는 것에 있어서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좀 덜해요. 사람들이 일단 제 공간으로 오는 거니까요.
잠깐만요. 제가 생각한 거랑 반대예요. 사람들이 집으로 오는 게 더 안전하다고요?
제가 낯선 곳에 가서 강의하면 사람들은 제가 하는 ‘말’만 듣잖아요. 저도 저를 표현할 방법이 내 몸뚱이와 언어밖에 없고요. 하지만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대충 정리된 마당이라든지, 여기저기서 데려온 강아지들의 면면이라든지, 이반장과 함께 고친 작업실이라든지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 별말이 필요 없어요. 내가 한 ‘말’만 기억하고 돌아가지도 않고요. 오히려 왜 이런 집을 구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기도 하면서 저를 궁금해하더라고요. 저도 더 편안한 상태에서 상대에게 충분히 집중할 수 있고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자) 물론 엄청나게 힘들죠. 모두가 돌아가고 나면 완전히 뻗어요. 재미있었으니까 괜찮은 거고, 또 하고 싶은 거죠. 솔직히 말하면 그냥 제 성향이 그래요. 사람이 좋고 궁금하고, 하고 싶은 거 해야 하고, 일을 크게 벌이고요.
올해 <프로그램을 이겨라>라는 이름으로 경기문화재단과 협력하여 문화예술교육 전문 인력 매개자 연수를 기획하셨잖아요. 3회차였나요? 참여자들에게 새우깡 2개, 오징어 1줄, 땅콩 3알이 담긴 주머니를 나눠주셨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각자 흩어져서 개미들에게 밥을 주자고 제안하셨잖아요. 이제는 왜 이런 기획이 나왔는지 알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아시니까요. 그 아이디어도 살다가 발견한 거예요. 강아지들에게 사료를 주다가 딱 한 알을 작업실에 흘렸는데, 조금 이따 보니까 수십 마리의 개미가 줄을 지어서 들어오더라고요. 단 한 알이지만 개미들에게는 잔치가 열린 거죠. 조금씩 뜯어 먹기도 하고, 힘을 합쳐서 옮기려고 야단이었어요. 당시 매개자 연수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불안하더라도, 불확정성을 향해 예술가도 기획자도 한번 가보자는 거였어요. 불안사회에 대한 기존의 담론처럼 거시적이고 무겁게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는데, 마당의 개미들을 보고 떠오른 거죠. 그날 비가 왔었잖아요. 비 오는 날 멀리까지 연수를 들으러 왔는데 얻어가는 게 없을까 봐 불안한 사람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개미같이 작은 곤충들의 세상에 큰 잔치를 열어줬다는 명분이라도 가져가길 바랐고요. 제 경험담인데, 불안하면 의미와 명분을 찾게 되고 거기서 위안을 얻기도 하더라고요.
불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이제 겨울이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예술가와 기획자가 불안해하는 시기란 말이죠. 아시잖아요. 어떻게 해야….
그런데요, 삶은 지원사업의 사이클과 무관하게 흐르잖아요. 12월에 애인과 헤어질 수도 있고, 3월에 예상치 못한 행운이 올 수도 있죠. 이런 사건들이 창작 활동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나 동기가 되기도 하는데, 지원사업이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결국 지원사업 때문에 예술가들이 불안할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다른 종류의 불안을 갖자고 말하고 싶어요. 불안도 중요한 창작 동기니까요.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오는 불안이라든가, 변하는 사회 속에서 전문성이 사라져가는 나에 대한 불안이라든가. 불안과 옥신각신하면서 자신의 사이클 속에서 살면 좋겠어요.
저에게 너무 익숙한 일이라 잊고 있었어요. 다 같이 지원 제도 사이클 속에 있기 때문에 다 같이 같은 시기에 불안했던 거예요.
몇 년 전까지 저도 계속 그랬어요. 문화예술과 관련된 기관이면 어디든 즐겨찾기를 해놓고 매일 확인했어요.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계기가 있었죠. 일단은 제가 계속 지원사업만 찾고 있다는 걸 인지했어요. 지원사업은 좋지만, 예술가로서의 질문을 이곳에서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원사업이 점점 다양해지고 세분화하면서 ‘예술가들이 지금 이런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주제를 정해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저로부터 시작된 질문이 아니라면 선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멀리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어요. 또 한 가지는 예술가든 기획자든 자신의 지속성을 문화예술 정책을 향해서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정책이 부족하거나 변해서 일상성을 확보할 수 없다면, 예술 활동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꼭 모두가 문화예술 분야에 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저와 이반장은 건강하게 이 분야를 벗어날 생각도 하거든요. 제가 그리고 있는 미래상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오늘 문화예술기획자를 인터뷰하러 오면서 문화예술 분야를 벗어나도 된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요!
돌이켜보면 예술 학교를 졸업할 때, ‘그런 생각도 좋아’ ‘그래,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신호를 주는 선배나 선생님이 한 명도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모두가 함께 만들어 놓은 굉장히 협소한 틀 안에서 같은 목표만 바라보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다수가 그리지 않는 상을 그려나가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한평생에 걸쳐 진짜 하고 싶은 작업 한 번만 하고 다른 거 하면서 살 수도 있다, 예술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를 좀 덜어낼 필요가 있다, 이런 이야기가 더 많아지고 자주 들렸으면 좋겠어요. 저는 저의 활동과 삶으로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이야기할 거예요.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힌트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으로 묻는 게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요. ‘최선영’을 대체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좋을까요?
문화예술기획자라고 명함에 써 놓기는 했지만 일단 내가 나로 살아가야 예술가도 되고 기획자도 되는 것 같아서요, 저는 어떻게든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10년 전에는 매사에 치열했는데 지금은 좀 편안해진 사람이요. 저와 제 기획에 대한 피드백으로 ‘편안하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데, 이만하면 스스로 편안한 사람이라고 소개해도 되겠죠? (일동 웃음)
· 티스토리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 인스타그램 @bokman_choi
- 이려진
- 궁금한 게 많은 시각예술 작가, 기획자. 그림 그리고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yriojin@gmail.com
인스타그램 @yriojin -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제공_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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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면서도 편안하게, 쓸모를 잊고 나답게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공감이 갑니다
치열하면서도 편안하게, 쓸모를 잊고 나답게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기대만점입니다
생각해보면 해결하려고 힘을 쓰느라 경직되는 것 같아요, 나 답게, 치열하면서 편안하게, 유머러스하면서 여유가 느껴지는 낭비 .
답이 없다는 말이 가장 보편적이면서 편안하게 사용되는 문화예술영역에서 그렇게도 답을 찾으려 발버둥치던 시기에 1박2일 밤밤밤에 운이 좋게 참여 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시간 긴여운으로 1년이 훌쩍넘은 지금시간까지 현장에서 꼼지락 꼼지락 실현을 하고 있는것 같은 경험으로 매번 막연한 감정의 토네이도가 밀려올때, 이렇게 구체적인 힌트를 얻어 갑니다.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의 행보에 박수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응원하는 마음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크게 공감하고 응원하는 마음 보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