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이라는 말이 다소 걱정스럽지만 나에게 이성적인 판단보다 작업에 중요한 자극이 되는 아이템이 뭘까 접근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거울, 빛 그리고 버려진 물건이라는 단어들이 추려졌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나를 자극한다기보다 서로 유기적인 형태로 나와 내 작업에 어우러져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낸다. 그 시작이 된 작은 사건이 있었다.
  • <눈부신 위장술>
    (버려진 폐선, 유리거울 조각, 여의도 한강공원, 2018)
경계를 통과하는 – 거울과 빛
나는 생계 때문에 졸업 후 바로 작업을 하지 못했다. 타일 모자이크 벽화로 돈을 벌었지만, 9년째 될 즈음 고용주가 건넨 ‘넌 재능이 없다’라는 말 한마디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나의 재능은 무엇인가? 그 긴 세월이 과연 인생의 헛된 시간이었나?’를 홀로 수없이 되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앞을 빠르게 지나치던 빛을 목격했고, 무의식적으로 그 빛을 발산하는 곳으로 이끌려 갔다. 그곳은 인천 재개발 철거 지역이었는데, 빈집들 사이로 누군가가 사용하고 버린 소소한 오브제와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좀 더 그 빛을 향해 걸어 들어가 보니, 그곳은 화장실이었다. 삭아버린 실리콘 접착제에 간신히 붙어 바람 방향으로 거울 한 조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조각은 어두운 빈집 공간을 넘어 내가 걷고 있던 일상 공간까지 가느다랗지만 예리한 밝은 빛을 냈다.
폐허 속에서 가느다랗지만 교묘하게 모든 경계를 통과하던 조각 거울의 빛을 통해, ‘나의 위치와 형태는 무너졌지만 나는 아직 빛(재능)을 발하고 있다’라는 내면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오브제가 그 사용(존재) 목적을 잃자마자 버려진다. 부서진 건축 폐기물은 더하다. 그것은 주인(갑)의 필요에 따른 그 순간의 결정일 뿐, 물건의 영원한 폐기 기준이 될 수 없다. 재능을 다해 버려진 물건이 아니라, 더 창의적으로 쓰지 못한 갑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안타까운 물건이 될 수 있다. 생계 때문에 중단했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 2013년 해고됨과 동시에 버려진 오브제를 새롭게 사용할 줄 아는 ‘창의적인 갑’으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거울, 빛, 버려진 물건은 나의 모자이크 기술과 더불어 작은 빛이라도 다양한 각도로 몇 배로 증식시키는 거울모자이크 설치 작업의 키워드가 되었다.
  • <눈부신 위장술>
    (페인트 통+유리거울조각, 2022)
  • <살아난 구조 no2>
    (32X27X23cm, 설치, 버려진 콘크리트 조각 및 유리거울조각)
감각을 연결하는 – 버려진 물건
빈 페인트 말통은 보통 추운 겨울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몸을 녹이기 위한 임시 난로로 쓰이곤 한다. <눈부신 위장술>은 인천 재개발 철거 지역에서 버려진 거울조각과 페인트 말통에 타일 모자이크 기술을 이용해 작업한 설치작품이다. 이전에 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기억을 모티브로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힘겹게 불을 붙여 급하게 피어오르던 흰색 연기의 모습과 냄새를 기억해 내며 인천 근대사 유물인 향로와 연결해 보았다. 향로는 장례식이나 제의 등에서 고급 나무로 피우는 향을 꽂는 물건으로 중요한 인물을 후각으로 추모하는 오브제다. 나는 살기 위해 페인트 통에서 피워냈던 연기 속에 폐자재의 역한 화학적 냄새가 노동자들을 기억하는 일종의 향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울을 통해 사방으로 아름답게 퍼지는 빛은 모두가 코를 막던 역한 냄새에 대한 눈부신 위장술이 된다.
<잔잔하고 거친 떨림>은 인천 동구 만석동 일대를 리서치하다 착안한 작업이다. 작품의 전체 형태를 이루는 직육면체 덩어리는 리서치를 시작한 첫날 굉음을 내며 지나가던 트럭의 바퀴에서 튀어나온 깨진 보도블록 조각을 본 떠 만들었다. 갑자기 거대한 충격 뒤에 튀어나온 보도블록에서 살아있는 듯한 떨림과 온기를 느꼈고, 만석동의 과거와 현재가 그 덩어리를 통해 체감되었다. 개발 속도에 튕겨 나갈까 떨었을 이들과 그와는 반대로 기대감에 떨렸을 인천 동구 지역의 다면적인 모습을 하나의 보도블록 덩어리로 캐스팅하였다. 그리고 거울모자이크와 진동모터를 통해 그 떨림을 관객에게 빛으로 전달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새집으로 이사 가거나 혹은 새로운 가게를 열면 ‘축’이란 글씨를 써서 선물하며 그곳의 미래를 축복하는 오브제가 바로 거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할 때 그 거울을 챙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버려진 거울이 햇빛과 다른 버려진 물건을 서로 비추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순간을 목격했고, 그 순간은 나의 작업으로 영구히 담겼다. 지금 버리려는 당신의 물건, 감정, 일, 관계 등은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혹은 당신에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그 순간을 여러분도 곧 만나길 바란다.
  • <잔잔하고 거친 떨림> (2022)
최성균
최성균
버려진 것들에 관한 관심을 거울을 이용한 빛으로 재해석 해내는 거울모자이크 작업을 주로 해왔다. 최근에는 새 거울을 제작하기 위해 버려지는 자투리 부분을 다시 그들만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거울로 아트상품을 제작해 작가의 콘셉트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잔잔하고 거친떨림》(2022, 우리미술관), 《거울집》(2022, space xx)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_작가편》(2023, 서울대학교미술관)에 참여하였다. 작가의 작업이 궁금하다면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거울배 <눈부신 위장술>(2018)을 찾기를 바란다. 현재 윤주희 작가와 컨템포로컬(콜렉티브)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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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최성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