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예술가의 감성템'

최신기사

집이라는 세계에 온전히 계절을 담아

예술가의 감성템⑳ 마당, 이름, 이웃

2021년 여름, 주변 반경 2km 이내 편의점 하나 없을 정도로 한적한 동네에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서울을 떠나 이렇게까지 멀리 올 수 있었던 건 팬데믹 이후 일하는 방식이 유연해진 사회 전반의 분위기 덕분이었다. 도시에 비해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막연하게 짐작한 정도였을 뿐, 이 집을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운 사건과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예상하지 못했다. 살피고 살피는 – 마당 집의 일부이자 외부 공간이기도 한 마당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공간이다. 마당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구석구석을 열심히 살피고

나를 명료하게 하는 동작

예술가의 감성템⑲ 푸시업과 스쿼트

푸시업(push-up)은 몸을 엎드려 팔을 굽혔다 펴기이고, 스쿼트(squat)는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 동작이다. 어떤 느낌이 떠오를 듯 말 듯 할 때, 생각이 복잡해서 정리가 잘되지 않을 때,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푸시업이나 스쿼트를 한다. 익숙하면서도 정교한 움직임 양손, 양발로 바닥을 짚고 몸통을 곧게 펴서 엎드린 후 크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잠깐 숨을 참으며 팔을 굽혀 몸을 낮춘다. 다시 팔을 펴면서 숨을 길게 후~ 하고 내쉬며 원래 자세로 돌아온다. 여덟 번이나 열 번 아니면 열두 번 정도씩 컨디션에 따라 무리하지 않는 정도로 푸시업을 하고

법석이면서 가만한

예술가의 감성템⑱ 모빌의 세계

아기였을 때, 내가 누워 있던 곳에도 이게 있었을까. 고향에 내려갔을 적에 때마침 궁금해졌다. “엄마, 우리 집에도 모빌이 있었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투로 묻는다. “있었지.” 엄마는 짧은 대답으로 대화를 끝내려고 한다. “언제 있었어? 어떤 모양이었어?”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답하면서도, 엄마는 아들을 위해 기억을 더듬는다. “알록달록했지. 세모, 네모, 동그라미가 공중에 매달려 있었어. 너는 특히 동그라미가 빙그르르 도는 걸 좋아했어. 꺼이꺼이 울다가도 동그라미가 회전하면 그걸 응시하느라 눈물을 뚝 그쳤으니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웃는다. 공중에 매달린 동그라미가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놀이로 시작하여 용기로 돌아오는 순환의 삶

예술가의 감성템⑰ 철, 아프리카, 업사이클

나에게는 과거를 지나오며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영감을 준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아프리카 유학을 하며 가치관의 변화를 겪은 과거, 철로 꿈을 형상화한 현재, 친환경 업사이클로 사람들과 공존하고픈 바람을 써 내려가는 상상 속 미래다. 시간의 흐름을, 오늘과 어제의 예술을 돌아보며 내일을 써 내려간다. 이로써 나의 영감은 현재진행형이다. Fe01 재생복합 문화공간 삶의 아름다운 원소 – 철 애정을 갖고 정크아트에 몰두하니 어느새 십수 년의 시간이 흘렀다.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열정으로 보내는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유학을 마치고 다양한 경험을

재능과 쓸모의 새로 고침

예술가의 감성템⑯ 거울, 빛, 버려진 물건

감성이라는 말이 다소 걱정스럽지만 나에게 이성적인 판단보다 작업에 중요한 자극이 되는 아이템이 뭘까 접근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거울, 빛 그리고 버려진 물건이라는 단어들이 추려졌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나를 자극한다기보다 서로 유기적인 형태로 나와 내 작업에 어우러져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낸다. 그 시작이 된 작은 사건이 있었다. <눈부신 위장술> (버려진 폐선, 유리거울 조각, 여의도 한강공원, 2018) 경계를 통과하는 – 거울과 빛 나는 생계 때문에 졸업 후 바로 작업을 하지 못했다. 타일 모자이크 벽화로 돈을 벌었지만, 9년째 될 즈음 고용주가 건넨 ‘넌 재능이

길 잃는 사이에서 만난 것들

예술가의 감성템⑮ 생각, 몸, 헤매기

유년 시절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져 있는 작은 동네에서 살았다. 우리 집 뒤편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산과 들이 펼쳐져 있었다. 다른 쪽으로는 회색 도시가 둘러싸고 있었다. 도시개발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시기 우리 동네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개발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나는 그 더딘 시간 덕분에 자연을 즐기며 그곳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살았다. 나를 지지하는 – 생각 어느날,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어떤 집을 송충이 떼가 뒤덮었다는 소식을 듣고 열심히 달려갔다. 털이 송송거리는 귀엽지만 징그러운 송충이 떼가 한 집을 뒤덮은

쓸모 이상의 상상,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

예술가의 감성템⑭ 철물, 탐조, 쌍안경

흥미진진한 가능성 – 철물 어린 시절 살던 집에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붙박이장이 있었다. 성인 한 명이 웅크리고 들어갈 크기의 작은 창고였는데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면 못, 나사, 철사와 끈은 물론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데 필요한 톱, 망치, 끌과 같은 수동 공구와 전동드릴, 직쏘(전동톱의 일종)와 같은 전동 공구가 들어있었다. 그 외에도 용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부속품이 많았다. 어린 나는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가끔 붙박이장을 열어 보고는 했다. 이것저것 꺼내다 못과 톱날에 찔리고 긁히기도 했지만 그곳은 그 어떤 장난감보다 흥미진진한

64개의 말을 펼쳐 행동을 읽는다

예술가의 감성템⑬ 체스, 체스, 체스

나의 아침 루틴은 커피와 체스 게임으로 시작한다. 승리하는 날은 컨디션이 좋다는 신호이므로 하루를 즐겁게 맞이하면 된다. 패배하는 날은 머릿속에 잠투정을 부리는 세포들이 증식하고 있다는 찌뿌둥함을 남긴다. 이날은 이마에 삶은 달걀을 부딪치는 벌칙을 받는다. 느슨해진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은 이유는 밤잠을 설쳐 피곤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스는 체중계처럼 몸을 돌보는 체크 도구로도 쓸모가 있다. 귀띔 체스(2015) 아름다운 기보를 위한 – 핸드메이드 체스 체스의 세계를 기웃거리던 초짜 시절, 안목을 기르기 위해 고수들이 득실거리는 체스클럽을 찾아갔다. 클럽에서는 당일 게임 참가비를

작가가 아닌 감상자로서

예술가의 감성템 ⑫ 기타, 오디오, 음반

‘좋은 감상자가 좋은 예술가도 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다. 좋은 감상이라는 것이 단순히 감각을 이용한 체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많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관점과 정보로 이야기하며 생각했던 질문에 다가가게 한다. 대화의 결론이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생각의 마침표가 아닌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때가 더 많지만 나에게 좋은 감상은 그렇게 대화하는 느낌에 가깝다. 나의 감성템들은 작가보다는 감상자로 있었던 음악 장르와 관련된 물건들이다. 미술가로서 미술에 접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산자라는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듯이 취미와 관심으로 바라보는 음악과 관련된

길 위에서의 마주침

예술가의 감성템⑨ 낙엽, 의자, 하늘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보는 편이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낙엽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바람과 함께 굴러다니기도 한다. 나뭇잎의 떨어짐을 천천히 느끼며 거리를 걷다 보면 보이지 않는 리듬이 느껴진다. 느닷없이 춤을 추고 싶어 여러 번 길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떨어진 낙엽을 유심히 보면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길 위의 낙엽 하나에서 다양한 것을 발견한다. 그것들이 모두 다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낙엽은 이렇게 나의 일상 안으로 갑자기 찾아와 다양한 생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