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이제 남극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셔야 합니다.”
2011년 여름, ‘극지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스’를 기획하던 김용민 기획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하는〈극지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스〉에 참여하기 위해 기획하는 중인데 영상 부분을 맡아 참여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지구온난화와 탄소 줄이기 등 기후위기에 관한 일련의 단편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하고 영화제에 참가하던 시기였다. 아이들과 함께 창작한 애니메이션에는 종종 남극 대륙이 등장했지만 실제로 그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남극은 지도상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훨씬 멀었고 마치 다다를 수 없는 다른 행성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당시 남극은 얼음으로 둘러싸인 차가운 영구동토이자 지구상에선 인간의 욕망이 가장 절제된 청정 보호 대륙이라 여겨졌다. 생경하기만 한 남극을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도시의 일상적 삶에서 다가오지 않았던 노마드적 사유를 기반으로 낯선 예술작업을 펼치고 싶었다. 남극 레지던스가 확정된 이튿날, 나는 이번 여정의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전하며 한결같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서울 도심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내게 뜻밖에 주어진 레지던스의 부풀었던 기대감과 고마움은 이후에도 오랜 시간 깊은 여운으로 남게 되었다.
  • 〈극지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스〉 현장
     
  • 〈아름다운 소멸〉
    (2012, 3채널 영상설치, 가변설치, 반복영상)
작가가 만난 대자연 남극
남극에서의 여정은 도시 문명으로부터 고립되고 싶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자, 매우 특별한 일탈이었으며,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극한에서의 생존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빠르고 편리함, 그리고 자본과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사회가 인간에게 돌려줄 수 없는 것, 인간이 문명사회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대자연이 주는 숭고함과 생명성이다. 남극의 유빙 조각을 입 안에 넣었던 날 감각되었던 그 시원함과 산소의 느낌은 형용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기억된다.
우주 안에 있음에도 별을 볼 수 없는 도시, 별을 기억하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일까? 별은 도시가 내뿜는 빛에 가려 더는 인간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안내해 주는 좌표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고은 시인은 어느 인터뷰 글에서 우주라는 시간, 공간의 무한 속에서 자신을 티끌에 비유하며 ‘내 존재 티끌의 무대’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하얀 대륙 위에서 극명한 수평선을 마주하던 남극에서의 시간은 내 존재를 우주라는 시공간 속에서 새로이 발견하고 질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구의 맨 끝자락 남극에서 일렁이는 작은 생명체로 그곳에 내 몸의 지각을 올려놓고자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파리와 산티아고,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남극으로 가는 나흘의 여정은 마치 도시가 원시 자연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빠르게 압축하며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그 속의 도시와 건축, 소리와 공기들이 남극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주변 환경의 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순화되고 있었다.
  • 〈마리안 소만 여름〉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평면(사진): 150x100cm, 2012)
폭, 폭, 틱, 틱, 녹아 사라진 지구의 시간
2011년 12월 겨울, 지구 남반부 끝에 있는 남극 세종과학기지는 짧은 여름을 맞아 기온이 상승하면서 얼었던 대륙이 서서히 녹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블리자드(blizzard, 극지방의 눈보라)와 강한 바람으로 남극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았고 대기가 평온해지기만을 기다리며 오랜 시간 기지 안에서 머물러야 했다. 도시의 삶과 달리 남극에서의 일상은 매 순간 날씨를 관찰하고 그곳에 내 몸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멈추고 하늘이 열리면서 파란 대기와 따뜻한 태양이 드러났다. 세종과학기지 뒤편에 있는 마리안 소만(Marian Cove)은 끝없이 펼쳐진 빙원으로 남극이 시작되는 곳이다. 마리안소만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빙산이 녹아 부서지며 해류를 타고 세종과학기지 앞 해안가로 몰려들었다.
사람 크기의 부서진 유빙들 사이로 가만히 들어서니 커다란 얼음덩이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투명한 얼음표면 속의 반짝이는 기포는 강한 햇볕에 녹아 터지면서 스스로 ‘폭, 폭, 틱, 틱’ 소리를 낸다. 물방울이 해안가 자갈과 해수면으로 떨어져 부딪히며 여기저기 아름다운 합주를 시작한다. 〈아름다운 소멸〉은 세종과학기지 안에서 남극과 마주하고 싶었던 기다림의 시간, 그 자체이자 내가 모르는 지구의 오래된 시간이 눈 부신 햇살과 함께 사라지는 ‘아름다움’과 ‘소멸’이 공존하는 순간을 담아낸 작업이다. 언제 기지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만나게 된 얼음덩이들은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막연함을 풀어주었다.
남극 얼음 속 공기층인 기포는 오랜 시간 쌓인 눈이 중력에 눌리면서 생성되는 것이다. 눈이 1m의 얼음으로 바뀌는 데에는 대략 100년의 세월이 걸린다. 그러므로 20m 높이의 마리안소만의 빙원에서 부서져 내린 얼음덩이는 최소 2000년 이상의 공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세종과학기지 주변 해안가를 메웠던 커다란 얼음과 기포의 청량한 소리는 밀봉된 몇천 년의 시공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소멸의 소리였다. 하루 사이 몇천 년 동안 얼어있던 공기들이 소멸해 가는 풍경은 얼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긴 시간과는 반대되는 찰나의 시간이다. 장대하게 쌓여있던 지구의 시간이 녹아 사라지는 순간은 인간의 욕망이 깨트린 되돌릴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는 카메라를 통해 마리안 소만의 깊은 빙원이 어느 만큼의 속도로 얼마나 사라지는지를 측량하고 있다. 2011년 당시 기지가 위치한 서남극이 동남극보다 매해 점차 빠른 속도로 빙산이 녹고 있으며 빙원의 감소 속도는 매해 증가하고 있다. 남극이 녹는 속도는 실제 속도에 비해 인간에게 느리게 감각된다. 이제 지구온난화는 자연의 시간 패턴을 초월하여 예측할 수 없으며 남극의 1m 크기의 얼음이 고스란히 지금의 얼음층 위에 형성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아이스 기포〉
    (디지털프린트, 라이트박스, 720x530mm)
소멸의 시간을 늦출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앞으로 도래할 지구의 100년 사이의 시간을 예측한다. 100년 안에 남극의 빙하가 녹아 사라짐에 따라 해수면은 상승하고 기온이 높아진다. 가뭄과 홍수가 자주 일어나며 해수의 염도가 낮아져 산성화가 심하게 진행되어 해양 생태계가 무너지게 된다. 또 100년 사이에 진행되는 지구 퇴행의 속도는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끼쳐 우리의 신념 체계를 해체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남극 얼음이 찰나에 소멸하는 광경은 기후 변화를 마주한 우리의 문명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소멸의 시간을 늦출 수는 없을까? 소멸이 아닌 회복과 상생, 자연 – 순환을 살리는 시간으로 나아갈 수는 없을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선택의 가능성」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류를 사랑하는 나 자신보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오래된 줄무늬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중략)
– 「선택의 가능성」 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 수록)
우리는 매 순간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하루하루, 매 순간 우리의 선택이 우리 삶을 살리는 ‘가능성’으로서의 선택이 되길, 앎이 함으로, 함이 앎으로 순환되는 선택이 되길 희망해 본다.
조광희
조광희
영상미디어 작가, 아티스트 커뮤니티 클리나멘 대표, 예술공간 <ㅃㅃ보관소>운영. 드로잉, 애니메이션,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한다. 사물과 기억의 미디어 기능을 탐구하고 그 안의 생명성과 운동성에 관심이 있으며 현대문명과 도시, 대자연의 숭고함, 생태를 연결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kskwanghee@hanmail.net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