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우리 삶과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이슈를 사유하고 질문을 건넵니다.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누리고 나눌 때

예술적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

한국 사회를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힘은 재벌, 보수정치권과 엘리트 관료집단, 보수언론, 사학재단, 검찰 등의 특권동맹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늘날 지배는 개발독재나 냉전문화 같은 반민주적인 강제력이 아니라 새로운 헤게모니에 기초해있다. 그것은 문화적이고 미적인 권력이다. 지배와 특권동맹은 ‘법치주의’나 교육·종교 등의 이데올로기와 인민의 욕망의 내용을 장악하고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근래 흥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 소유를 둘러싼 한국 중산층의 욕망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줘서 호평을 받았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지배한다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인간은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미적인 선택을 통해 주체화를 수행한다. 반복되는 주체화 수행에는 취미판단(Geschmacksurtei)의 계기들이 있으며, 신자유주의

고립과 고독을 지나 다양한 노년의 삶을 찾아

[좌담] 노인 문화예술교육의 변화와 흐름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다양한 방식 뭉뚱그리기보다 세분해야 목적과 방향성을 중심에 두고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며 2018년부터 고령 사회로 진입했고,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둔 시점에 있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연장된 노년기를 위한 노인 대상 예술교육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더욱 복잡다단해지는 만큼 노인의 예술 참여 욕구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단지 나이와 취향뿐 아니라 사는 지역, 경제적 형편까지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면서 노인 예술교육의 목적 역시 더욱 세분화 하는 추세다. 현장에서 노인

한 사람의 노년은 하나의 범속한 미스테리

노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이 넘어서야 할 것

이 할배 쫌 웃긴다! 말인즉슨 멋지다는 거다. 이빨이 다 빠졌으니 직접 보지 않아도 합죽이 얼굴일 게 뻔한 그는 오물거리는 입으로 연애소설을 한 줄 한 줄 읽는다. 틀니가 있지만, 아름다운 사랑 언어에 빠져서 틀니 끼우는 것도 잊었을 것이다. 물론 내 추측이요, 주장이다. 나로선 틀니도 없이 음절과 단어 하나하나를, 문장을 오물거리며 음미하는 노인의 모습이 훨씬 더 멋지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주인공 이야기다. 자신이 글을 쓸 줄은 몰라도 읽을 줄은 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이 노인의 낮과 밤은 연애소설 읽기에 풍덩

희망과 절망이 뒤엉킨 그곳에서, 꿰뚫어 볼 것들

돌봄과 예술에 관한 분열적 소고

5남매 큰딸이자 엄마와 아내와 주부였고, 사회운동 판에서 35년여간 여성 활동가로 살고 있고, 그중 10년은 임금노동 시장에서 최저임금 시급 돌봄 노동자로 밥을 벌어왔으며, 최근 10여 년은 “돌봄”에 대해 글 쓰고 강의하며 사는 사람이지만, 아니 그래서 더더욱, 나는 돌봄이라는 단어와 계속 불화 중이며 여전히 재해석 중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며 “돌봄”이 더 중요해졌다지만 오히려 더 문젯거리가 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돌봄에 관한 숱한 담론과 전망이 왈가왈부 되는 판에 숟가락 하나 얹은 사람으로서, 우선 나부터 인식보다 먼저 닥치는 느낌은 말초적 거부감이며 불화니 재해석 이전에

가꾸고 돌보며 찾아낸 공존의 언어

예술가의 삶과 돌봄

말라 죽어 가던 새싹에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한 물과 거름을 주거든 그 식물은 제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름다움과 향기를 얻고 배를 채운다. 올해의 수고로 어쩌면 이듬해에 향긋한 꽃과 실한 열매를 또 한 번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아이는 자기 자신은 상상도 못 할 만큼의 힘차고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데, 이는 아이를 돌보는 가족 구성원에게 있어 값을 매길 수 없는, 대체 불가 에너지로 환원된다. 아이를 돌보아 받는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다. 지금까지

완벽한 수업을 버릴 때 서로를 채우는 배움이 싹튼다

[좌담] 예술 수업에서 관계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비대면을 지나 새롭게 만나기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기 서로 기대고 배우며 성장하는 관계 예술교육에서 관계성은 늘 중요한 화두였지만, 비대면 수업을 경험한 이후 3년 만에 직접 마주한 수업에서는 뭔가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교육 현장에서도 상호 존중의 태도와 인권 감수성에 관한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예술교육 현장에서 예술교육가와 참여자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서로를 존중하는 예술 수업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좌담 개요 • 일 시 : 2023. 6. 8.(목)

말이 아닌 몸으로 익히는 예측 불가능한 모험

평등하고 친밀한 관계 맺기를 위하여

평어 쓰기를 시작한 이유 작년부터 나는 강의실에서 대학생들과 평어를 쓰고 있다. 『예의 있는 반말』(이성민 외, 텍스트프레스, 2021)이라는 책을 읽고, 왠지 모르게 따라 해 보고 싶었다. 학생들과의 반말.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말끝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강의실이 달라졌다. 모두 조금 들떠 있었고 주고받는 얘기도 날쌔졌다. 평어의 원리는 간단하다. 어떠한 호칭도 쓰지 않고 (성을 뺀) 이름만으로 서로를 부르고 반말로 대화한다. 학생들은 나를 ‘진해’라고 부른다. ‘반말’이라는 기존의 말하기 방식과 ‘이름 호칭’이라는 새로운 호명 방식이 묘한 긴장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선물한다. 배움은 ‘스며듦’이다. 이전에 자신이 알고

우리에겐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위기의 시대, 문화예술교육이 이야기해야 할 것들

어느 날 도서관에서 환경 수업이 끝나고 어린이들이 두고 간 그림을 봤다. 그림 속에는 뻘뻘 땀을 흘리는 지구, 활활 타오르는 지구,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지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북극곰과 꿀벌도 빠지지 않았다. 중간 중간에 구름 그림과 그 속에 CO2, 오존층, 탄소중립 같은 글자를 쓴 것도 보였다. 그림들을 보니 기후위기에 대한 교육을 받고 수업 후기로 그린 것 같았다. 기후위기에 대한 전형적인 표상들이 여지없이 등장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구야 미안해’, ‘기후야 미안해’라는 글귀를 볼 때는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아니, 왜? 어린이들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드러내기, 가능한 희망을 꿈꾸기

거대한 기후변화에서 찾은 예술가의 역할

2019년 겨울, 환경을 주제로 한 레지던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겪은 팬데믹 3년의 시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때이다. 다소 주제가 넓다는 생각에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어 새삼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것이 맞을까, 너무 때늦은 접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기후변화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추상적이고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세 번의 기후변화 레지던시를 하면서 기후변화는 기후위기가 되었고, 위기는 다시 기후비상사태가 되었다. 그리고 요즘 나는 다시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대중성과 예술성을 넘어, 진실한 감동은 자명하다

[대담] 어린이라는 세계를 만나려면

연극놀이 전문가와 어린이 TV 프로그램 연출가의 만남 교육의 목적, 예술의 관점 흥미로움을 넘어 다양성으로 진실함이 주는 감동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어린이의 정서 발달과 감정 표현에 어려움이 커졌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미래세대인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5월 5일 EBS <딩동댕 유치원>에서는 ‘팬데믹 세대’ 어린이들이 예술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싹틔우고 표현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코너 ‘다빈치룸의 반짝이는 예술가들’을 새롭게 열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김정재 EBS PD와 양혜정 연극놀이전문가가 어린이를 위한 예술교육과 미디어가 만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대담

미래세대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생성형 AI 시대 인재 양성을 위한 세 가지 질문

2023년 전 세계가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신드롬에 빠져 있다. OpenAI에서 개발하여 공개한 인공지능 챗봇인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는 2022년 11월 30일 출시 후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며, 출시된 지 5일 만에 100만 명, 2주 만에 200만 명의 사용자를 달성하였다. 1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데 넷플릭스는 3.5년, 에어비앤비는 2.5년, 페이스북은 10개월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단기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인공지능 서비스에서 전례가 없는 기록이다. 이 기록만 봐도 챗GPT에 대한 관심과 활용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이해할 수 있다. 구글(Google)에서도 AI 챗봇 바드(Bard)를 출시하면서

예술의 다리를 놓으면,
소통은 어렵지 않아요

미래세대에게 듣는 예술교육의 미래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청소년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라고 한다.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인 이전 세대와는 다른 특성을 가진 이들에게 예술교육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그리고 예술교육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야 할지에 관하여 청소년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2022 시민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아르택트 랩’ 지원사업 중 ‘시간과방의실험실’이 주최한 <공간너머>에 참여했던 나연주, 전민주 학생을 만났다. 이 프로젝트에는 재외동포 청소년과 서울, 경기, 제주도의 청소년을 온라인 속 하나의 공간으로 묶어내고, 물리적으로는 멀지만 전혀 그 거리감에 느껴지지 않는 낯선 또래를 친근하게 그리고

새로움을 시도할 뿐 도취되지 않는다

예술수업을 바꾸는 도구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업을 주도했던 기술과 매체가 대면 수업으로 회복한 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최근 챗GPT, 이미지 생성 AI 등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소식이 연일 이어지며 한편으로 두려움과 조급함이 생기기도 한다. 예술교육가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소통을 이끄는 새로운 도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예술교육가가 활용하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도구를 통해 새로운 예술교육의 가능성을 살펴보자. 우리는 혁신적인 기술 앞에 주체적일까 성수정&성봉창_푸푸포 2021년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상황에서, 푸푸포는 온라인 공간을 활용한 예술교육으로 어린이를 위한 ‘온라인 미술 학교’와 성인을 위한 [보기를 방해하는

종이는 교실 안 작은 운동장

디지털 시대에 다시 헤아려보는 촉각의 가치

“이 종이, 이 종이, 이 종이에는 햇볕이 비쳐요. 그런데 이 종이에만 햇볕이 안 나요. 그늘이에요.” 6세와 7세 어린이 종이 촉각 워크숍에 사용한 종이들.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미세하게 다르다. 어린이들은 그 미묘한 촉각과 색감 차이가 분명하게 다르다고 감지한다. 따뜻한 크림빛의 다른 종이들에 비해 푸르스름한 흰 빛이 도는 왼쪽에서 세 번째 종이는 복사용지다. ‘햇볕이 안 나는 그 종이’는 복사 용지였다. 비슷해 보이지만 미세하게 다른 하얀 종이를 몇 종류 주면, 어린이들은 ‘다 다르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다른지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려워한다. 말로 표현되지

무게 중심은 컴퓨터와 모니터 너머에 있다

기술 융합 문화예술교육에서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

학생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게 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처음 문화예술교육과 만나는 계기가 된 것은 2017년, 예술교육가 대상 특강이었다. 당시 특강을 인상 깊게 보신 한 교수님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해보자는 제안을 해 주셨다. 평소 전자음악 작곡과 공연을 주로 해왔고, 뮤직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아트 작업이 나의 전문 분야이기에 ‘문화예술교육’은 나에게도 도전과 같은 과제였다. 하지만 워낙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기도 했고, 대학생이 아닌 청소년들과 새로운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설렘이 크게 다가왔다. 또한 평소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관련한 기술적인 내용에 관심이 많았던

시대적 맥락 속에서
능동적‧비판적 관점으로

청소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방향

‘한국 청소년의 문해력은 OECD 최하위이다’라는 주장은 최근의 문해력(literacy) 담론과 관련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 아이들은 어휘력이 현저히 떨어져 단어의 뜻을 모르고,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내용인데, OECD의 문해력 평가 결과는 그 주요한 근거로 인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제기는 결국 디지털 미디어로 그 원인을 돌리게 되며, 디지털 미디어를 멀리하고 읽기 쓰기를 강화하라는 ‘문해력 향상’ 처방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청소년 문해력에 대한 대중적인 교육 담론은 사실 문해력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의 ‘팩트체크’ 검증 도구에 ‘한국인의 문해력은 OECD 최하위이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