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에서 관계성은 늘 중요한 화두였지만, 비대면 수업을 경험한 이후 3년 만에 직접 마주한 수업에서는 뭔가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교육 현장에서도 상호 존중의 태도와 인권 감수성에 관한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예술교육 현장에서 예술교육가와 참여자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서로를 존중하는 예술 수업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좌담 개요
일 시 : 2023. 6. 8.(목) 오후 3시 30분
장 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회의실
참석자
  • 김율리아 무용가‧아르틴 대표
  • 김희경 시각예술가‧예술교육연구소 넘나들이 책임연구원
  • 소수정 음악가‧문화예술교육단체 소리로 대표(좌장)
소수정  오늘은 예술가이자 예술교육가로 활동하는 두 분 선생님과 함께 예술교육 현장에서 참여자와의 관계나 태도의 변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김희경  서울문화재단 어린이 학교예술교육 PL(Project Leader)로 활동했고, 지금은 평화문화진지 예술교육 활성화 사업 입주작가이자 예술교육연구소 넘나들이의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창작 활동의 일환으로 예술교육을 했다면, 올해는 본격적으로 참여자와 협업하여 주제를 탐구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는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
김율리아  움직임 활동 기반으로 문화예술교육을 기획‧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예술교육 현장의 연대와 네트워킹 활동을 하는 등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하는 예술 작업과 교육 활동을 구분했었는데, 요즘은 그것을 굳이 분리하지 않고 아우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소수정  저도 작곡가이자 예술교육가로 활동하며 작품 활동과 예술교육을 분리하여 생각한 지점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하면서 이것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품에 투영하고 이를 다시 교육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를 지나며 예술교육 현장이 특히 달라졌다고 느끼는 지점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김희경  지난 3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엄청난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 더 크게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어린이의 문화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표현력이 눈에 띄게 부족해진 게 실감되었다. 작년부터 대부분 대면 수업을 시작했는데, 참여자들이 이런 수업을 원했다고 하면서도 막상 표현이 미숙하더라. 이러한 활동에 노출되기 어려웠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연극 수업 이야기를 들었는데, 비언어적인 몸짓 표현을 재밌어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심지어 우는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단순히 자신을 표현하고 누군가의 표현을 읽어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 맺기에도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김율리아  지금 돌아보면, 당연한 일상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큰 배움을 얻었다. 무용 분야는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물리적인 접촉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 활동이 모두 차단되니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 후 비대면 수업을 하긴 했지만, 무척 답답했다. 무엇보다 고립감과 개인화가 심해진 것 같다. 거리 두기가 극심하던 시기에 동료들과 우리가 다시 만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낙서하듯 큰 칠판에 적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했는데, ‘다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관계가 차단된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의견이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다. 이 결과를 전해 들은 다른 이들도 공감을 표시해서 더 충격을 받았다. 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크고, 이를 온전히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예전부터 소외나 고립에 대한 문제가 있었지만, 훨씬 급격하게 가속화된 게 큰 변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비대면을 지나 새롭게 만나기
소수정  관계가 개별화되고 서로를 알지 못하는 환경이 지속되다 보니 예술교육 현장에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비대면을 경험한 후 다시 만나 보니, 단체 수업이 어렵고 어색한 느낌이 있고, 존중의 태도나 인권 감수성 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참여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궁금하다. 저는 아이들과 팀 활동을 하거나 작품을 만들 때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서로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느껴진다.
김희경  최근에 20~30대 청년 세대와 만나고 있는데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를 드러내는 상황은 불편해하고, 익명성을 보장해 주는 활동에서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 비유적인 예술 표현에서 소통이 편안하고 자신은 물론 서로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서로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분석하고 어떤 의도로 작업했을지 해석하는 소통의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받는 느낌을 갖게 된다.
김율리아  처음 만나는 대상이 어려운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에 경계심의 벽이 세워지는 건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두려움도 없어지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는 것 같다. 청년 대상의 경우, 본인 작업을 하고 소감을 적을 때는 굉장히 몰두하는데, 한 명씩 돌아가며 말하는 것은 꺼렸다. 어쩔 수 없이 지목하면 어렵게 얘기하긴 하지만, 내가 너무 큰 부담을 주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공감과 지지를 받는 것은 참가자에게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을 꺼리는 이유는 앞서 관계 회복을 굳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던 지점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마땅히 그렇게 느끼고 말해야 하는 어떤 관습과 규정이 압박으로 작용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소수정  현장에서 사진이나 영상 기록을 하려고 할 때, 아이들이 장난처럼 “저 초상권 있어요”라고 말하는 일이 자주 있다. 대면 수업을 경험하지 않았거나 혹은 짧게 경험했다가 최근 다시 경험하는 참여자들에게는 수업을 기록하는 일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사실 예전에도 기록하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 참여자들이 부담스럽고 껄끄러워하며 수업 분위기가 깨지는 순간도 자주 경험한다. 참여자가 초상권을 언급하면서 노출되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항의를 받은 적이 있으신가? 두 분도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율리아  생각보다 빈번하게 경험한다. 사진이 어떤 용도로 사용된다고 최대한 설명하지만, 참여자가 정 불편해하면 게시하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에는 존중해 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김희경  초상권 문제는 좀 심각한 것 같다. 공공기관 프로그램은 대부분 초상권 이용 활용 동의서에 필수적으로 체크해야 참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데, 노출되고 싶지 않으니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기도 한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저도 좀 불편하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카이빙을 신경 써야 하니까 진행자도 힘들고 참여자도 힘들다. 대체 무엇을 위한 아카이빙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일동 웃음)
김율리아  기록자가 별도로 없는 한 수업에 몰입하다 보면 촬영이나 기록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그 순간에 기록의 행위를 하는 게 맞는가 싶기도 해서 많은 부분을 그냥 흘려보내고 놓치기도 한다. 활동에 몰입하고 있는데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집중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몰래 찍는다. 소리 안 나는 앱을 이용하거나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촬영하는 등 참여자가 신경 쓰지 않게 해달라고 사전에 요청한다. 사려 깊은 기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왼쪽부터) 소수정, 김희경, 김율리아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
소수정  그렇다면 환경이나 장소에 따른 변화, 예를 들어 학교와 학교 밖에서 참여자의 태도가 다르게 느껴지는지 궁금하다.
김희경  학교는 학년 초라도 같은 학년, 반이라는 공감대가 있고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라포 형성의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다. 게다가 교과 연계 수업은 재밌으니 언제나 환대받는다. 그런데 학교 외의 장소에서 참여자들을 만나면 라포 형성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한다. 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됐을 때 서로 상호작용하며 아이디어를 심화 발전시키기도 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다. 관계 형성 자체가 예술 활동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장기 프로그램일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단기라면 어려움이 있다.
김율리아  학교 밖에서 참여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주변에서 공모 사업 하는 것을 보면 참여자 모집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유아 프로그램처럼 참여도가 높고 모집이 용이한 집단이 있지만 성인, 청소년 등 그렇지 않은 대상은 프로젝트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지향하는 가치를 소신껏 시도한다고 해도 대면하기까지가 쉽지 않다. 모집의 어려움은 참여자를 수업의 필요 조건으로 대상화하는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것인지, 가치 확산의 문제인지 고민도 하게 되었다.
소수정  평가 지표가 ‘참여자 수’로 정량화되면 수치에 목매달게 된다. 말씀하신 것처럼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하기 싫어도 자리를 지켜야 하니 계속한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는 다르다. 장기적인 회차로 진행하기도 어렵고, 고정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굉장히 낯설어한다고 느꼈다. 똑같은 콘텐츠라도 참여자를 모으기가 너무 어려워졌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수업부터 나오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은 밖으로 나오고 누군가를 만나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어쩌면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김율리아  예전에 문화재단 담당자에게 들었는데, 모집이 안 되어 폐강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많다더라. 시스템상 수업 하루 전에만 취소하면 전액 환불되니 일단 신청해 두고 다른 일정이나 대안이 생기면 직전에 다 취소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야외 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기도 한다. 참여자와 예술교육가의 관계가 균형이 잘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참여자에 대한 존중, 배려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수업하러 가는 길에 폐강 통보를 받아도 아무 말 못 하는 예술교육가의 입장도 있다. 어떻게 하면 이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숙제다.
소수정  비대면 시기에 온라인 강의를 경험한 후 문화예술교육도 맛보기로 들어보고 환불하거나 무료 수강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참여자의 권리와 예술교육가들의 권리가 상충하는 지점도 있을까?
김희경  예술교육가가 가진 가장 큰 권한이라면 주제 선정과 표현 방법의 선택일 것이다. 최근에는 그 권한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지만, 참여자들이 그것을 따라야만 하느냐는 지점에서 권리가 상충할 때가 있다. 학교에서 진행할 때는 교과 학습 목표가 있고, 다수를 대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니 변화를 주기 어렵지만, 제가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융통성 있게 반응을 보며 조율해 나간다.
김율리아  저도 학교와 학교 밖의 환경에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싫든 좋든 의무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반면, 외부에서는 참여자가 자기 마음에 차지 않으면 오지 않을 수 있다. 운영자 입장에서는 그게 큰 위기와 불안이고, 참여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걸 이용하는 사람까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걸 더 해달라’ ‘뭘 해서 가져가면 좋겠다’ 같은 다양한 요구사항을 말하는 경우를 봤다.
소수정  저는 약속된 시간에 참여자들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에 예술교육가의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한 명도 안 나왔던 때도 있었다. 학교 밖에서 예술교육가의 자유도가 높긴 하지만, 참여자의 태도가 비자발적인 느낌이 있다. 적극적인 참여자를 찾기가 어렵다.
김율리아  저도 지난주 첫 수업에 3명이 말도 없이 안 나왔다. 그러나 그것을 내 문제로 여기기보다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특히 불특정 대상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것보다는 기관이나 매개 단체가 과연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가에 민감하다. 수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참여자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고 하거나 수업 진행방식에 개입하려 하면 침해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다.
김희경  저도 기관에서 예술교육가의 권한을 조금 더 보장해 줬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동일한 참여자를 대상으로 몇 회 이상 진행해야 한다는 규정들이 좀 답답하다. 청년 대상 프로그램을 10회차까지 끌어가기가 쉽지 않은데, 규정 때문에 어렵게 모집하고, 수업에 나오지 않으면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술교육가에게 대상에 맞는 프로그램을 융통성 있게 설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소수정  이것은 코로나 이전에도 그랬고 늘 부딪히는 지점이다. 기관에서 예술교육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이 늘 답답하다.
김희경  행정적 편의를 위한 규격화,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 아닐까. 서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율리아  근래 재단과 일하면서 행정가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느껴졌다. 자기에게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윗선에서 어떤 요구가 있기 때문에 정량적인 지표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좁혀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갈등이 반복되는 것이 안타깝다. 믿을만한 파트너가 되면 순환 보직으로 담당자가 바뀌는 문제도 있다. 어쩔 수 없는 규정 안에서도 작은 세심함으로 서로를 충분히 배려해 줄 수 있다. 사실 저도 너무 요구만 하지 않았나 반성하기도 했다. 서로 직업인으로서의 존중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기
소수정  우리가 예술 활동 과정을 공유하면서 라포를 형성하게 된다. 서로 존중한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고, 타인에게 나의 존재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 참여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작업에 투영하도록 유도하는지 궁금하다.
김희경  직접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특정 주제나 사물, 자연 등을 깊이 있게 탐구하다 보면 대상과 만나는 지점에서 자기 자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탐구 대상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감각과 시선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고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하는 방식을 취한다.
김율리아  초보 강사 시절에는 1부터 100까지 활동을 준비해서 온전히 나를 소진해야 ‘오늘 수업 성공이다’ 했었다. (일동 웃음) 그리 늦지 않게 참여자의 무언가가 발현될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반성을 했고, 다행히 근래에는 여백이 있는 수업, 참여자 스스로 채우며 저도 채워지는 수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무엇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잘하자고 생각한다. 어떻게 질문하고 활동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참여자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하기 위한 탐구에 시간을 많이 쓴다. 예측하지 못한 결과나 엉뚱한 결과물이 나와도 그대로 인정하는 거다. 우리가 예술교육을 하는 목적도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발현을 촉진하려는 것이니만큼 ‘달라도 괜찮다’는 것을 모든 참여자가 같이 느끼고 그게 또 하나의 메시지가 되도록 하려고 한다.
김희경  그 엉뚱함의 맥락을 짚어나가다 보면 수긍이 가는 경우가 많다. ‘너는 엉뚱하고 이상한 사람이구나’가 아니라 왜 이런 과정과 결과로 가게 되었을지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소수정  그런데 내려놓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일동 웃음) 저도 자신을 불태우고 재만 남아야 잘된 수업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말로는 자유롭게 하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대하는 방향이 있어서 그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때는 내가 잘못한 건가 싶어진다. 두 분 말씀을 듣다 보니 왜 그런 과정을 겪었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공유하는 것이 ‘예술로 존중하는 법’이라 생각된다.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보며 나와 다르게 표현했더라도 틀렸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왜 이렇게 했을까’ ‘나의 작업에 어떻게 투영해 볼까’ 고민한다. 이런 방식이 참여자를 예술로 존중하는 것이고, 이를 본 참여자도 우리를 존중하게 되는 것 같다. 예술 작품 안에서 공유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서로의 존중이 일어난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인지하면서 건강하고 평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참여자들과의 교육 과정 속에서 건강한 관계를 느낀 사례를 공유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김율리아  참여자를 수혜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예술 창작의 주체로 어떻게 촉진할 것인가로 변화한 것 같다. 예술교육 초창기에는 예술강사들이 독립투사 같은 마음으로 전국 팔도를 누비며 가르치고 전수했지만, 지금은 일방적인 틀에 짜인 형태나 진행 방식은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예술교육가는 참여자 스스로 자신의 예술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촉진자이자 질문을 던져주는 역할로 존재하게 된 거다. 똑같은 프로젝트라도 어떤 대상을 만나느냐에 따라 해야 할 내용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참여자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나 연구, 개별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참여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어야 상호 존중도 자연스럽게 될 수 있을 거다.
김희경  저 역시 동의한다. 저는 조력자, 촉진자, 매개자보다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지향하는 편이다. 예술교육가는 일상적으로 감지되지 않거나 주목받지 않는, 무시되거나 말해지지 않는 세계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역할이라고 본다. 우리는 초대하지만, 그들에게는 응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완벽한 수업이라는 허구를 버렸을 때, 그것을 인정했을 때, 대상을 존중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 철학자 비에스타(G. Biesta)가 ‘아름다운 위험’이라는 얘기를 했다. 실패할 확률이 높고, 실패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열심히 초대하는 거다. 초대받은 이들이 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 역시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했던 그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는 느낌이 든다. 그 순간 나도 예술교육가로서 성취감을 느끼는 호혜적인 관계 맺기가 가능해지는 것 같다. 상호 의존적인 관계, 서로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는 관계라는 의식이 있을 때 존중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로 기대고 배우며 성장하는 관계
소수정  변화하는 관계와 존중의 태도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관계 맺기와 예술 활동 속에서 소통하고 협력하는 존중의 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느꼈다. 새롭게 변화하는 예술교육 현장 환경 속에서 예술가들이 건강하고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더 자유롭게 활동하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더 확장된 세상으로 예술교육을 펼쳐가는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예술교육 현장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는 동료 예술교육가들께 한 마디 부탁드린다.
김희경  수업의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문화예술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이해와 확신, 열정을 가지고 그것에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가면 어떨까 싶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타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실패를 무릅쓰고, 그것이 자신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을 용기와 긍정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성공적인 수업보다 이 시대에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김율리아  오랫동안 현장에서 함께 활동한 입장에서 응원한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실 어려움에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현장을 떠나는 분도 많지만 새로 진입하는 인력도 많아 경쟁도 치열한데,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스스로 채워나가고 만족할 수 있는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 또한 혼자 고립되어 주변 동료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함께 힘을 모으고 서로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생각보다 더 큰 힘이 된다는 이야기도 해드리고 싶다.
소수정  긴 시간 솔직하게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김율리아
김율리아

움직임 기반 문화예술교육가, 기획자, 연구자, 네트워커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N잡러다. 성남문화재단 전임강사(PTA), 학교예술강사를 역임하였고, 문화예술단체 아르틴(ARTIN)의 대표로 삶과 예술을 매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김희경
김희경

서울문화재단 어린이 학교예술교육 TA PL(Project Leader)로 활동해 왔고, 현재 평화문화진지 예술교육 활성화 사업 입주작가이자 예술교육연구소 넘나들이(넘나들이 아트랩) 책임연구원으로 예술 경험이 어떻게 삶에 의미를 주는지 연구와 실천을 하며 일러스트 및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다.
소수정
소수정

작곡가, 음악 감독, 문화예술교육실천가이자 기획자. 게으르지만 늘 성실하고 싶은,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서로를 앎으로 힘을 얻는 예술가.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 영상 음악 작업도 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단체 소리로 대표로 참여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문화예술교육실천가들을 위한 예술가의 정체성 연구도 함께 진행 중이다.
프로젝트 궁리
녹취·정리 _ 프로젝트 궁리 이정아, 남은정
사진 _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