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문제부터, 어린 시절의 나로부터
나에게 관계란 항상 미지의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미로 같기만 한 소통의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내 옆에는 깨어진 관계의 조각만 남아 있었다. 10대 20대를 지내며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극심한 감정 기복과 우울은 내 삶의 경계선을 내 안에 만들도록 했다. 타인과 만남은 늘 부담스러웠다. 외로움에 잠기지 않으려면, 차라리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맺어가는 방법이란 게 따로 있는 것일까?’가 항상 의문이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곳이었고, 항상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서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어렵게 배운 것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초등 방과 후 교실에서 초보 강사와 학생, 인형극 무대의 배우와 관객으로의 만남에서 아이들은 존재로서의 나를 마냥 좋아해 주고 수용해 주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좀 더 준비된 모습으로, 아이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연극놀이와 아동극으로 이끌었다. 아이들에 관해 공부할수록,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게 되었다. 그 시절 아이였던 나는 무엇을 원했고, 무엇이 힘들었고, 무엇을 좋아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길 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한 행동의 이유, 내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먹고살기에 바빴던 우리 부모님과 50명 이상의 아이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 시절 담임선생님에게 그런 나의 마음을 전달할 수 없었다. “조용히 해” “시키는 대로 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으며, 이야기하기에 앞서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때로는 나의 욕구와 주장, 나의 선택은 ‘고집이 세다’는 말로 평가되었다.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것뿐인데, 그것을 비난하는 어른들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 나는 고집이 센 아이답게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나 자신이 내 마음에 충실했던 순간들은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만남의 방식, 프로그램으로 구조화하기
나는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 설사 나와 반하는 의견이어도 응원해 주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수업의 구조에 반영하고 실행하고 싶었지만, 한 교실에 20~30명과 함께 하면서 개별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때로는 목소리 큰 아이들의 말만 듣는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여러 명이 함께하는 학교예술교육에 맞는 방식을 다양하게 고민하고 시도해 보았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 살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의견을 교류하고, 생각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어찌 보면 연극이라는 장르는 일상에서의 의사소통을 연습하는 데 가장 최적의 예술 분야인지도 모른다.
수업의 목표는 개별 아이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에서, 전체 아이들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서로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여기의 포인트는 ‘내 생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영향을 받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도 그 사람이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이 친구를 따라 하는 것을 무작정 못하게 하지 않고 따라 하는 과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기 생각을 덧붙일 수 있도록 하였다. 친구가 자기 것을 따라서 한다고 속상해하는 아이에게는 네 생각이 너무 좋아서 따라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수업안에서 서로의 표현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이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그리고 따라 하는 행동은 어느 시점이 되면 모두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거나, 따라 하는 행동에 주목하지 않게 된다. 연극놀이에는 친구들의 행동을 함께 따라 하거나, 친구의 동작이나 말에 자신의 것을 덧붙이는 활동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아이들을 대하는 강사의 태도이다. 그것이 기준이 되어 수업안에서의 아이들이 서로를 대하는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동등한 만남 속에서 우리의 연결고리 찾기
2022년 지인으로부터 ‘예술로 탐구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교사를 소개받았다. 서로 모르던 사이였지만, 소개해 준 사람을 신뢰할 수 있었기에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다. 믿을만하기에 믿었다기보다는 무조건 믿고 함께 한 것이다. 나는 연극을 전공하고 예술교육을 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초등교사로 교육연극을 공부하였다. ‘교육’과 ‘연극’이라는 우리의 공통점을 기반으로 함께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고 실행하게 되었다. 한 번에 2교시씩 18번을 만나면서 과정드라마와 연극 만들기, 그리고 공연을 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한 명의 예술가와 한 명의 교사가 진행하기에 서로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컸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먼저 수용하려고 노력하였다. 그간이 경험과 배경이 다르기에 나타나는 격차들을 하나하나 짚고 따지기보다는 상대의 관점에서 먼저 생각해보기로 했다.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더라도 상대의 경험과 그에 대한 믿음이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 주었다. 나는 역할연기를 하면서 토론을 이끄는 선생님의 진행에 감탄했다. 이때 아이들이 나누는 생각은 보통의 연극수업에서 경험하기 힘들 정도로 깊이가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열심히 연극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도 집중하여 수업에 참여하였고, 역할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였다. 이것은 결과물의 성과에까지 반영되었다.
연극강사와 함께하는 연극수업이지만, 연극강사의 테크닉과 경력, 실력을 넘어서는 학교 안의 관계, 수업 시간이라는 인식이 만들어 내는 집중을 통한, 개인의 구체적 사고와 감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교사와 예술가가 함께 만들어가야지만 좀 더 나은 학교예술교육의 장을 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우리가 정한 주제가 있더라도 아이들의 관심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원래의 주제를 포기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런 작은 선택들이 선생님께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변화하는 관계, 우리는 어떻게 만날 것인가
예술강사와 교사로 만난 우리는 연극과 교육 분야에 관한 관심으로 시작했으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이들에 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예술교육 안에서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것을 말과 행동,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것들을 함께 살펴보고 공유하며, 서로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고, 서로의 취향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만큼 즐거웠고, 달랐던 생각이 만나는 지점에 감탄하였다. 우리의 만남을 한 해로 마무리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기에 2023년에도 같이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연결고리’ 팀이 만들어졌다. 연극에서 무용으로 분야가 확장되었고, 한 반에서 했던 것을 두 반이 참여하기로 했다.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살아있는 반응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과정드라마와 움직임 활동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두 반을 같은 날 진행하는데, 반마다 너무나 다른 아이들의 반응이 무척 흥미롭다. ‘어떤 원인이 이런 결과를 나타나게 하는 것일까?’를 선생님들과 함께 탐색하고 있다.
무용과 연극 분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이야기의 맥락과 논리를 중요시하는 연극에 비해, 무용은 흐름과 전환이 자유롭다. 에너지가 맥락이 되기도 하고, 움직임 자체가 논리가 되기도 한다. 두 분야의 무게 중심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수업안에서 어느 한 분야만 두드러지는 것보다 각 분야의 특성이 잘 융합되는 것도 우리의 지향점이다. 움직이는 몸과 몸으로 만나 눈빛과 손의 촉감으로 교류한다. 아이들에게 저절로 나오는 웃음소리를 듣는다.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번져가는 움직임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연결되었음을 느낀다.
반면, 중립 가면을 쓰고 강사가 제시하는 움직임을 수행하는 활동을 통해서는 일방적인 명령과 수행이 주는 답답함을 느낀다. 가면을 씀으로써 감정과 눈빛은 차단된다. 일부러 눈빛을 마주치지 말고 걸으라고 하니, 더욱더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두 활동 후에 아이들은 AI 로봇 움직임과 인간 움직임의 차이를 분명하게 느꼈으며 말과 단어로 표현하였다. 오늘의 아이들과 우리가 마주할 미래사회는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여러 가지 정보를 조합하여 상상할 뿐이다. 상상한 대로 되는 미래와 상상한 것과는 다르게 펼쳐지는 미래 두 가지 모두 존재할 것이다. 이런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점점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며, 아이들과 만나서 함께 할 활동, 나눌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다. 각자의 다른 생각이 편안하게 나누어질 수 있기에, 서로 달랐던 생각들이 일치되는 순간이 더욱 짜릿한 것 같다.
존재와 존재의 만남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처음 살고 있다. 미래를 먼저 살아보고 지금으로 돌아와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존재와 존재로서 만난다는 것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 어른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며, 때로는 아이에게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어떤 것들은 아직 모를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순간에 우리가 느끼는 느낌과 생각들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몸과 몸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는 것을 매 순간 느낄 수 있기에, 오늘 내가 만들어 가는 만남이 감사하다.
수업에서 나는 관계 맺음의 방식을 제안하고 경청의 원칙과 소통의 방법을 알려준다. 일상생활에서는 나 역시 그 부분이 무척 힘들지만, 힘들기에 많이 생각하였고, 수업 안에 녹여 낼 수 있었다. 예술 수업은 현실의 어떤 곳보다 안전한 공간이었으면 한다. 이곳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곳이기에, 무엇보다도 자신을 중심에 둘 수 있다. 모두에게 그렇다. 함께하는 순간의 선택과 결정 역시 자신의 몫이다. 예술 수업 안에서 누구든 연습할 수 있다. 이곳에서 즐거운 연습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현실로 나아갈 때 당당하게 실행할 수 있기를. 한 사람 한 사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오늘의 아이들을 응원한다.
- 박정은
- 연극분야 학교예술강사이며, 예술연구소 ‘놀이하는 마음’ 대표이다. 문화소외지역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소규모 예술을 궁리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에 귀촌하여 시골 마을 작은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연극수업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theplay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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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선택과 관계를 연습하는 안전한 공간
‘우리들의 연결고리’가 만들어가는 만남과 수용
잘 보고 갑니다
아직 오지 않은 선택과 관계를 연습하는 안전한 공간
‘우리들의 연결고리’가 만들어가는 만남과 수용
기대만점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순간에 느끼는 느낌과 생각들이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는 문구가 마음에 남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학생들이 쓴 ‘알에게’ 시를 읽으며 ‘너희도 그렇게 자라렴’ 했네요. 우리 모두 그렇게 자라고 싶었겠죠… 어릴적 마음은 ^^ 다시 새겨봅니다.
융합 교육, 협력 수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의 모습이 정말 기대 만점입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