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감상자가 좋은 예술가도 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다. 좋은 감상이라는 것이 단순히 감각을 이용한 체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많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관점과 정보로 이야기하며 생각했던 질문에 다가가게 한다. 대화의 결론이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생각의 마침표가 아닌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때가 더 많지만 나에게 좋은 감상은 그렇게 대화하는 느낌에 가깝다.
나의 감성템들은 작가보다는 감상자로 있었던 음악 장르와 관련된 물건들이다. 미술가로서 미술에 접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산자라는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듯이 취미와 관심으로 바라보는 음악과 관련된 물건들이 미술가로 하여금 감상자의 자리를 언제나 생각하게 한다.
  • <LP 1006-1>(2010)
좋은 소리를 찾아서 – 기타
고등학교 때 받은 용돈을 모아 처음 저렴한 합판 기타를 구매하였다. 록 음악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인데 레슨을 받아도 음반에서 나오는 기타 소리가 나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악기 탓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미술대학에 진학했어도 기타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수입을 악기에 쏟은 것 같다. 대략 100대 정도가 지나가고 현재 6대의 악기가 남게 되었다. 여러 악기를 만지며 악기 구성을 위한 나무 수종, 세팅 상태, 하드웨어에서 오는 여러 음향의 차이를 경험하니 기타는 연주가 아니라 좋은 소리 탐구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악기는 제작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소리의 콘셉트에 따라 재료와 제작방식, 칠의 종류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계획되어 만들어진다. 추론해 본다면 악기 제작자는 단순히 악기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이해와 견해도 있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기타 레슨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네가 들을 수 있어야 표현할 수 있다.’ 미술 또한 그렇지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 현재 소유하고 있는 기타들
  • <Electric Guitar>(2007)
소리와 음악 사이 – 오디오
좋은 음질로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바람일 것이다. 중고 시장에서 인켈 앰프와 JBL 스피커로 오디오에 입문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MP3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할 때여서 오디오 마니아들이 많지 않던 시기이다. 평소 헤드폰 정도로만 음악감상을 했었기 때문에 공간감이 확보된 앰프와 스피커의 청취 방식은 음상과 스테이징(staging)과 같은 다른 정보를 체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 빈티지 오디오에서 현대기기까지 여러 기기들을 섭렵해 들어보았다. 같은 음악이어도 기기의 차이, 음악플레이어(LP, CD, MP3)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음악의 장르나 악기에 따라 어울리는 오디오가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음악을 더 잘 듣기 위해 소리를 찾고자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오디오는 없었지만, 미술가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떤 형태, 방식, 장르가 효과적일 것인지 표현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경험이었다.
  • 현재의 오디오 시스템
감상이 표현으로 – 악보(기보법)
음악을 시각화하려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음악이 시각화 된 것이 음반 커버와 악보라고 생각했고 음반의 아트워크는 이미지로서 음악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음악 자체를 표현한 것은 아닌 것 같아 악보의 기보법을 차용하기로 했다. ‘음=색’, ‘박자=공간’으로 악보를 보며 주관적인 공식을 이용해 회화로 옮겨보았다. 결과는 음악에 따라 예측하지 못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항상 악보가 검은색인 것과 박자가 음표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악보가 아닌 나의 작업을 보고 연주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기존과 다른 음악적 표현도 가능하지도 않을까? 다른 감상법들이 나에게는 감성들을 만들어주고 다른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여지가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 아닐까?
  • <Scuttle Buttin(원곡 Stevie Ray Vaughan)> (2012)
  • <Autumn Leaves(원곡 J. Kosma)>(2011)
강정훈
강정훈
서양화를 전공한 설치미술가이다. 일상의 질문들을 미술 작업으로 표현하고, 평면 회화는 음악을 회화로 해석하는 ‘viewgic’이란 이름으로 작업해 왔다. 설치미술은 예술에 대한 생각들을 묻는 <What is Art?>, 철거촌의 물건들로 양극화를 이야기하는 <Gentrify> 시리즈가 있다.
vai7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