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기억의 쓸모

예술교육과 기록

기억과 기록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잊지 않고 축적하여 다음에 활용하고자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일을 경험해도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하거나 폐기한다. 유동적이고 개별적이며 주관적인, 언제나 현재를 기준으로 재해석 되는 기억의 특성으로 조직이나 단체일수록 어딘가에 경험을 고정시켜 신뢰성 있고 이용 가능한 기록행위를 필요로 한다.
예술교육단체의 기록에는 예술교육 행위 그 자체와 예술교육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생산하거나 획득한 (전자)문서, 시청각 자료, 박물(博物) 등이 있다. 이러한 기록에는 현재의 업무에 활용·참조하는 것도 있고, 지금 업무에 활용하지는 않지만 역사적 가치, 업무의 증거, 행정적 이유 등으로 보존하는 기록이 있다. 예술교육단체의 아카이빙(archiving, 기록관리)은 일하는 과정에서 꼭 생산해야 하는 기록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업무를 할 때 기록이 생산되도록 통제하는 행위와 어떤 기록을 보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참조자료를 만드는 과정
예술교육단체의 아카이빙 사례로 디투문화공동체(이하 ‘디투’)가 설립한 사회적기업 앨리스(이하 ‘앨리스’)의 기록관리 방법을 살펴본다. 디투는 순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공동체다. 2013년 순천 향동 문화의 거리에 갤러리를 마련하면서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수익 창출이 필요하여 ㈜앨리스를 설립했고 2017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디투는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참조자료를 찾다가, 1946년 당시 순천중학교 학생이 순천시가지를 그린 지도를 발견했다. 이 지도는 ‘Back to the 순천읍성’이라는 프로그램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었고, 이 발견을 계기로 ‘우리가 하는 일들을 기록하면 우리의 일 또한 중요한 참조자료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기록관리를 시작하였다.
디투에서는 누가 어떤 업무를 하든 반드시 업무 일지를 쓴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중요한 정책에 대해 논의할 때는 회의록을 꼭 작성하는데 이 회의록 또한 업무일지에 속한다. 업무일지를 기반으로 활용할 것과 보존할 것, 폐기할 것을 정한다. 업무일지의 내용은 공개할 수 있는 것과 공개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눈다.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것은 업무가 일어난 시간 순서에 따라 세부기획서, 활동내용, 참조자료, 예산, 집행문서, 결산 등을 모아 프로그램 폴더 별로 묶어 저장, 관리한다. 외부에 공개할 수 있는 것은 블로그에 프로그램별로 사진을 중심으로 올린다. 사진에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에 대한 설명을 붙이고, 사진을 촬영할 때에도 이 내용이 사진 안에 담길 수 있도록 촬영한다. 앨리스가 기획하고 진행한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의 댓글, 방명록과 앨리스에 대한 언론 기사도 각 폴더에 모아 블로그에 올린다. 이처럼 모든 업무 활동은 기록으로 남고 블로그와 연동되어 축적된다. 블로그는 단체의 홍보 매체이자 아카이브(기록저장소)다.
또한 1년의 활동을 엮어 매년 연말에 자료집을 만든다. 자료집에 들어갈 콘텐츠를 미리 정하고 그 안에 들어갈 자료를 각각 디자인하여 해당하는 자리에 배치한다. 자료집은 신입직원이 들어왔을 때 단체의 업무를 이해하는 데에도 사용하고, 기획할 때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또 외부에서는 자료집을 보고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홍보 책자 역할이기도 하다.
효율적 업무 도구로서의 기록
기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효율적인 업무가 되도록 돕는 도구이다. 현재 하고 있는 업무 과정을 분석하여 어떤 기록을 생산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생산하여 업무에 활용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기록관리가 이루어지면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지게 된다.
첫째, 조직 구성원이 현재의 업무가 조직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살피고 업무의 흐름을 파악하게 됨에 따라 기록관리는 조직의 핵심기능을 지원할 수 있다. 둘째, 조직 활동의 의사결정에 유용한 데이터와 정보가 기록으로 남는 것이므로 이를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다. 앨리스의 사례처럼 과거의 업무 기록의 생산관리가 미래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바탕이 되는 것이다. 셋째, 보존할 기록과 폐기할 기록을 평가, 선별하므로 정련된 정보를 획득하고, 이 과정에서 조직 활동의 목표가 무엇인지 구체화하면서 단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한다.
이처럼 기록관리는 내부적으로는 단체 구성원이 수행한 업무나 의사결정의 성과를 평가받는 것이며 외부적으로는 정책 결정과 집행의 이유와 근거를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단체의 활동 투명성과 민주성, 공정성을 구현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예술교육단체 구성원이 업무 과정에서 생산, 획득한 기록데이터와 정보는 각종 연구와 교육 창작활동에 필요한 자료와 근거를 제공하거나 역사기술을 위한 사료로 활용될 수 있다.
안정희
안정희
아키비스트,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저자,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책임연구원, 서울기록원 아카이빙 북, 문화비축기지아카이브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증평아카이빙, 아산재생아카이빙, 신한지주금융아카이빙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울 마을만들기 중간지원센터 등에서 아카이빙 교육을 진행했다.
kancoltd@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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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3년 02월 18일 at 5:31 PM

    기록된 기억의 쓸모
    예술교육과 기록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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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3년 02월 18일 at 5:31 PM

    기록된 기억의 쓸모
    예술교육과 기록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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