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innovation)”. 최근 십 수년간 기업체의 경영전략 혹은 자기계발 분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되었지만, 혁신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대전제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를 필두로 하는 수많은 기업인이 혁신을 부르짖으며 예술을 언급하는 이유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주위를 둘러싸는 첨단 기술양식 곳곳에 예술이 스며들고 있음을 생각할 때,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할 대학에서의 예술교육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어 고등 예술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해외 예술대학의 사례를 살펴본다.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 맞춘 전공 개설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武藏野美術大學)은 올해 4월 학제를 개편하면서 조형구상학부 내에 ‘크리에이티브 이노베이션(Creative Innovation)’ 전공을 개설했다. 격렬한 환경변화에 따라 미래예측이 어려워진 시대에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조적 사고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된 학문으로 ‘비즈니스(현대 사회와 산업 구조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 ‘기술(최첨단 기술의 문해력)’ ‘인간가치(사회를 형성하는 인간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 ‘창조성’을 핵심으로 하는 다학제적 교과과정을 제공하며, 기존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크레이이티브 이노베이션’ 전공 학습 영역
[이미지 출처] 무사시노미술대학 홈페이지
크리에이티브 이노베이션 전공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 사회 여러 과제에 대해 기존의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구상력을 키우려는 사람
– 혁신(이노베이션)에 필요한 교양과 지식, 발상을 몸에 익히기 위한 기초적인 학력이 있는 사람
– 비즈니스, 테크놀로지, 인간 가치 분야에 관심이 있고, 이에 대응하는 문과 또는 이과의 주요 과목의 학력이 있는 사람
학생들은 4년간 다양한 학문의 기초 영역을 습득하고,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에 접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졸업 후에는 UX 디자이너, 서비스 디자이너, 디자인 엔지니어, 기업가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며, 어느 한 분야로 국한되어 있지 않다.
무사시노미술대학의 4년간의 커리큘럼
학년 학습 목표 세부 사항
1,2학년 창조성의 원천이 될 조형력, 기초학문 습득 조형의 기초를 배우는 실습을 중심으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을 키우는 구성연습, 국제적 커뮤니케이션 능력 연마 등
혁신을 이끌어 사회를 움직이는 비전 리더십의 습득 다양한 전문 기초 영역을 경험하고 각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영역과 진로를 고찰할 수 있도록 함
3,4학년 문제 해결을 넘어 비전을 제시하는 구상능력 습득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 창조적 인간 가치의 세 가지 영역에 대한 개론, 이론, 연습을 통해 창조적 사고력을 활용하는 구체적 방법 습득
사회와의 협력을 추진하는 프로젝트 추진 능력, 통합적 능력 습득 실제 기업 및 지자체와 연계한 산학 협력 프로젝트 및 인턴십
[‘크리에이티브 이노베이션’ 학과 커리큘럼]
예술, 테크놀로지, 비즈니스의 혁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는 2014년 ‘예술, 테크놀로지, 비즈니스의 혁신(Arts, Technology and The Business of Innovation)’ 전공을 개설했다. 아이오빈-영 예술 아카데미(USC Jimmy Iovine and Andre Young Academy) 내에 설치된 이 전공은 마케팅, 경영, 컴퓨터과학, 공학, 디자인, 예술에 걸친 전방위적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을 위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며 독창적인 사고력 함양을 지원한다. 교육의 방법론적 특징으로는 커뮤니티 기반 코호트(cohort, 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편집자주)를 통한 학습, 매년 신입생을 25명만 선발하는 소규모 클래스, 예술가, 디자이너, 기술자, 공공정책 입안자, 기업가 등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과의 멘토십 형성 등이 있다.
정규 교과목을 살펴보면 제품 디자인, 웹 프로그램 개발, 3D 디자인, 모션그래픽과 같은 일반적인 과목 이외에도 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색다른 사고를 끌어내고 이를 구체적 프로젝트로 발전시켜볼 수 있도록 하는 과목들을 개설하고 있다. 해커의 상상력이라는 관점에서 혁신, 디자인, 발명과 관련된 역사적 이슈에 대해 살펴보는 ‘해커의 상상력: 고대 그리스에서 쿠퍼티노까지’와 같은 과목이나, 예술, 과학, 기술, 커뮤니케이션, 뉴 미디어, 정치, 경제 분야에서 파괴적 혁신을 통해 발생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변화를 비판적 접근을 통해 살펴보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과 같은 과목을 보면 이 커리큘럼이 학제적 구분의 틀에서 벗어나 미래의 혁신가를 키우고자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차고(garage)체험’은 4학년에게 제공되는 연구 프로그램으로 개념구상에서 창작, 프로토타입 제작까지 실행할 수 있도록 한다. 학교는 아예 이를 위해 ‘차고(garage)’라 불리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개념을 자유롭게 구상하고,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도록 고성능컴퓨터와 오디오 장비, 3D 스캐닝 같은 최첨단 디지털 제조장비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출처] 서던캘리포니아대학 홈페이지
예술대학의 이러한 변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물론 있다. 미술전문 웹진 [아트넷(artnet)]은 “예술을 공부한다는 것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미술분야에서 혁신이란 미적 비유를 뛰어넘도록 자신을 채찍질하고, 극도로 불편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기업이 데이터를 사용하여 일상적인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혁신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언급된 기사를 통해 아이오빈-영 예술 아카데미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이나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며 변화를 시도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대학들이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이희경
글 _ 이희경
미학을 공부하고, 문화예술분야 공공기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eheekyung@gmail.com

기획 _국제협력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