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소재하는 ‘플레이 아프리카(Play Africa)’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최초로 건립된 어린이박물관이다. 이곳을 창설하고 운영하고 있는 그레첸 윌슨 프랭글리(Gretchen Wilson-Prangley)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포함한 박물관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아직 낯설고 먼 곳으로만 여겨지는 가운데 플레이 아프리카를 방문하게 된 것은 소중한 기회였다. 아프리카에서 어린이박물관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특별히 예술교육의 필요성은 어떻게 찾아질지, 그 효과와 확장성은 무엇일지를 알아보고자 지난 3월 27일 그레첸 대표를 만났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다. 그런데 플레이 아프리카가 옛 형무소 건물 안에 있어 놀랐다. 그래서 처음엔 장소를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어린이박물관과 감옥이라니…….
우리가 있는 ‘올드 포트’(Old Fort)는 군사 요새였던 곳이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감옥으로 전환되어 1983년까지 사용되었다. 1948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남아공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편집자주) 정책 이후 죄수가 넘쳐나면서 포화상태가 되기도 했다. 폐쇄 이후 이곳에 남아공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헌법재판소가 2004년에 세워지면서 이 지역은 ‘헌법의 언덕’(Constitution Hill)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식민지와 아파르트헤이트의 가혹한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를 오늘과 미래적 의미로 살린다는 점에서 ‘리빙 뮤지엄(living museum)’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플레이 아프리카는 언제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는가?
2013년에 플레이 아프리카를 창설한 이후, 올드 포트에 들어온 것은 2017년이다. 이 공간은 이전에 체포된 사람들의 대기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실제로 아이들이 부모를 보러 오기도 한 슬프고도 아픈 기억이 있는 장소다. 우리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창고로 사용되다가, 2017년부터 어린이박물관 공간으로 활용되어 ‘헌법의 언덕’의 일원이 되었다.
여기는 올드 포트와 흑인 남성 전용 감옥인 No. 4, 그리고 여성 감옥과 헌법재판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 어린이박물관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그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곳은 아주 무겁고 우울한 부정적인 공간이며, 실제 역사에서 저질러진 반인권 상황과 불의, 배제와 능멸, 모욕과 잔혹함의 상징인 셈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이 이 공간을 포용적이고 평등하며, 창의적이고 희망에 찬 긍정적인 장소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며, 이를 토대로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이는 곧 우리가 지향하는 박물관을 통한 문화예술교육과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소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그레첸 대표가 생각하는 박물관교육 혹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철학이 공간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의 목표는 창의성을 기반으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와 문제 해결 능력, 과학적 탐구 정신, 자기표현의 의지를 키우는 데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잠재적으로 창의성을 갖고 있다지만, 그것이 점화되지 않고는 발현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플레이 아프리카를 한마디로 ‘놀 권리’(right to play)를 실천하는 곳으로 정의하며, 노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발화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창의성 계발은 그 자체로 권리이고, 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맥락을 갖는다고 본다.
특별히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무엇이 중요할까?
아이들은 남아공의 어려움을 실생활에서 마주하고 있다. 다양한 가정환경의 아이들이 여기에 오는데, 가난하고 가정적으로 불우한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또 학교와 연계한 경우도 적은 비용을 지불하는 공립학교여서 예술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레고 놀이를 할 경우, 10살이 되도록 한 번도 레고를 접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다. 가정이 불안하거나 가정 폭력 등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무엇보다도 문화예술을 통한 치유적 기능이 절실할 것이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남아공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 속에서 교육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당신은 문화예술교육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효과에 대한 믿음을 분명히 갖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교육을 통해 건강과 고용, 사회 행동 등에 변화가 이루어짐을 증명했고, 남아공 정부도 어린이들의 조기교육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투자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성과나 변화는 개인의 변화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놀이인가?(Why Play?)’라는 질문 속에서 명확한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놀이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높이면서 자존감을 갖도록 하고, 나아가 공감 능력과 열정을 키워 다른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서도 훌륭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곧 경제적 의미의 가난만이 아니라, 마음의 가난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놀 권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 자체가, 남아공 사회를 변화하는 동력이라는 논리가 와 닿는다. 그런 점에서 플레이 아프리카가 내세우는 학습체계(learning framework)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학습체계에 책임감(accountability), 탁월성(excellence), 포용(inclusion), 마인드 오프닝(mind-opening), 존중(respect)을 키워드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모든 활동과 파트너와의 관계, 네트워킹에서 신뢰감을 주어야 하고, 프로그램 개발에서 혁신적이며 탁월한 내용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프로그램은 곧 모든 이들이 접근 가능하도록 포용적 관점을 실천하며, 아이들과 부모, 커뮤니티에 영감을 줄 수 있도록 한다. 결국 학습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적용하되, 아이들과 부모, 교육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우선한다.
여기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어린이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유형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대체로 여타의 어린이박물관과 같은 주제별 세션으로 구성된 핸즈온(hands-on, 체험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기본적으로 과학 분야에서는 우주에 대한 내용과 테크놀로지(technology) 사용법을 배우는데, 아이들의 흥미를 높이고자 애니메이션 프로그램과 엮었고, 농장 생활에서는 야채를 가지고 산수 학습을 하면서도 경제 개념을 가르친다. 사회 분야에서는 민주주의, 어린이 권리, 평등, 자유 등의 개념을 놓고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여기 헌법재판소가 있는 만큼, 벽에 “모든 이는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의 보호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평등은 누구나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즐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라는 문구를 적어놓았고, 궁극적으로 모든 주제별 프로그램은 이러한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자기표현 분야에서는 이 장소에 대한 느낌을 글로 쓰게 하고, 거울이 있는 발언대 앞에서 이슈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나 연극 놀이와 같은 예술교육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플레이 아프리카만의 사회 프로그램이 여타 다른 어린이박물관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분명히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우리는 아프리카 최초로 어린이 대상 ‘플레이스 메이킹(Place Making)’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유니세프에 의하면 남아공 아이들의 71%가 안전한 놀이공간에 접근하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스스로 도시 속에서 놀이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을 상상하면서 도시 자체를 바꾸는 가능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처럼 ‘어린이 주도 창조적 장소 만들기(Child-led creative placemaking)’는 아이들에게 퍼블릭 아트(public art)와 디자인적 사고를 익히도록 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공간을 창출한다는 의미 외에도 장소를 매개로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효과를 가져와 그 의미가 크다.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이해를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다. 실내에서도 관련 프로그램이 있는가?
앞서 말한 프로그램은 실제 요하네스버그의 한 지역에서 실시된다. 반면 박물관 내에서는 도구를 사용하여 아이들이 사는 집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놀이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 아이들 가운데는 여러 세대가 한집에 같이 사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당연히 공간이 비좁아 밤에 잘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많은 식구가 같이 잠을 잘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창의적으로 공간을 배치해 보게 된다.
아주 현실적인 공간 만들기 놀이이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마음도 든다. 결국 아이들이 현실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창의적으로 문제 해결력을 키워가는 것일 텐데, 아이들을 각자의 환경에 따라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가 단일한 대상일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스펙트럼을 갖고 접근하는지, 그리고 프로그램은 있는가?
당연하다. 우리는 아이들의 경제적 여건이 각기 다른 것처럼, 문화와 사회적 환경, 건강과 특수한 정치적 환경 등을 모두 고려한다. 이에 따라 자폐증 아이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여러 형태의 난민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서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고 있다. 또한 연령층도 대폭 낮춰, 최근에는 한 살에서 세 살 사이의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함께 발전하기(Developing Together)’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가정과 학교의 노력이 따라줘야 할 텐데, 부모나 교사와의 관계 형성에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기본적으로 플레이 아프리카는 아이들과 부모, 교육자, 커뮤니티를 하나로 본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자체가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학교 생활 자체에서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이곳에 한 번만 와도 집에서 꾸준하게 자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남아공 내에서 플레이 아프리카가 활동하는 지역의 범위는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도 협력하는가?
요하네스버그는 도시 규모가 크고 인구 밀도도 매우 높은 곳이다. 1.5km 반경에 10살 아이들이 4만 명이 살고 있다고 보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주중 프로그램과 주말에는 가족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운영한다. 그러나 광범한 지역으로 보자면, 10살 아이들이 100만 명에 이른다. 여기서는 학교를 통하거나 방문 교육 등으로 진행한다. 여타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 아직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세네갈과 가나, 나이지리아 등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운영 노하우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
플레이 아프리카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우리는 사회적기업이고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사는 3년 임기이지만 자원봉사에 따른 비급여 형태다. 지금 새로운 이사진을 모집 중인데, 그들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꼭 남아공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국제적인 명망가와 옥스퍼드 교수도 포함된다. 정부 보조금은 받지 않고, 대신 공간을 무료로 사용한다. 따라서 사업별로 재원 조성을 해야 하는데, 이 또한 글로벌한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플레이 아프리카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말해 달라.
내가 어린이박물관을 설립한 것은 나 자신이 가진 박물관과 예술에 대한 열정 외에도 아프리카 변화와 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의 결과였음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 미국의 주요 어린이박물관을 방문하고 많은 연구를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플레이 아프리카는 서구적 맥락이 아닌 다른 모델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문화예술교육의 힘은 각기 다른 사회와 지역적 요구에 기반을 두면서 진정한 실천력을 보여주는 데서 발휘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레첸 윌슨 프랭글리(Gretchen Wilson-Prangley)
그레첸 윌슨 프랭글리(Gretchen Wilson-Prangley)

미국 시애틀 근교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공부했다.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사회 변화와 인권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 무역, 기술발달에 따른 작업 환경, 미래를 전망하는 데도 관심을 두어 콜롬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저널리즘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2004년에 남아공 특파원으로 오게 되었는데, 아프리카 대륙의 혁신과 소규모 기업, 개인의 아이디어 등을 취재하면서 이곳이 너무도 멋지고 도전할 만한 곳이라는 판단에 여기서 살기로 결정했다. 2013년부터 남아공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어린이박물관 플레이 아프리카를 설립하고 운영해 오고 있다.
www.playafrica.org.za
사진 _ 필자 제공
박신의
박신의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와 문화예술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문화예술정책, 박물관 경영 관련 연구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 청주시, 부천시를 비롯한 지자체 정책자문,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 인천문화재단 이사, 서울문화재단 정책위원회 위원장, 중소기업중앙회 문화경영특별위원, 외교부 자체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한학기 연구년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체류 중이다.
lunapark@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