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몸이 만나 생각의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배운다

노경애 아트엘 대표, 안무가

안무가 노경애의 이름 석 자는 우리나라 공연계에 있어 점차 하나의 흐름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어가는 듯하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자신만의 움직임 실험을 바탕으로 한 여러 편의 공연작을 발표하는가 하면, 장애인(또는 장애 예술인)과 다양한 방식의 예술교육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한 그녀는 예술의 실험성이 교육의 공공성과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지속해서 고민해왔다. 물론 그녀 외에도 현재 많은 공연예술가가 예술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창작과 교육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노경애의 경우, 창작 방법과 교육 방법 사이의 간극이 애초부터 봉합되어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창작 방법이 곧 교육 방법으로 직접 치환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방법론적 궤도를 그려낸다. 이는 아마도 동작에 가미된 화려한 미사여구를 걷어낸 상태의, 가장 기본이 되는 몸의 움직임이 그녀의 창작 중심에 놓인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걷기, 뛰기, 회전, 서로 다른 요소 간의 결합 등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역학들을 매우 중립적인 시각으로 조합해내는 그녀의 창작 방식은 그 자체로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적용되는데 그 결과, 교육 참가자마다 더도 덜도 아닌,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수행해낼 수 있는 만큼의 움직임 언어를 찾아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창작 작업도 최초의 질문에서부터 한 단계 한 단계 작업이 나아갈 방향을 서서히 찾아 나간다는 안무가 노경애. 그런 그녀의 예술교육은 창작의 순간을 닮아 과정적이며 또한 예측불가능하다. 그 예측불가능함 속에 녹아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몸의 움직임을 통한 예술교육의 실제에 대해 안무가 노경애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최근 활동을 보면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창작 작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격의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까지 적극적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어떠한 계기로 예술교육 현장에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예술교육 관련 활동은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유럽에서 귀국한 이후인 2008년경부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장애인과 함께 하는 작업은 2008년과 2013년경에 진행한 바 있고, 어린이 창의예술교육 역시 2013년에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작업이 요즘 들어 많은 분을 통해 알려지게 되고, 예술교육에 대한 국내에서의 관심 또한 넓어지면서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예술교육 현장에서의 활동이 좀 더 주목받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처음에는 창작 작업에 좀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창작 작업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해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예술교육과 관련한 주변의 제안을 계기로 교육영역으로까지 활동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예술교육을 개인이 개별적으로 추진하는 데 그쳤다면, 예술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그 기회도 더욱더 많아지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예술교육 현장에서 여러 대상을 만나보고 이들을 교육해나가면서 작업의 영역 또한 확장되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부분은 교육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에서 오랜 기간 체류했다. 당시, 안무가로서의 창작 작업 외에도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이자 참여자로서 학업, 워크숍, 세미나 등 다양한 주제와 방식의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체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에 경험했던 유럽의 예술교육은 어땠는지, 이후 본인이 추진하는 예술교육에 있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하다.
유럽에 처음 갔었던 게 2000년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안무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기본적인 것조차 알지 못했다. 네덜란드 EDDC(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re)로 유학을 떠났다. 이때만 해도 컨템포러리(contemporary) 무용의 여러 작업 방식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새로웠다. 이전에 내가 받았던 무용교육은 더 좋은 테크닉을 연마하고 최고를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교육이었던 반면, 유럽에서 처음 마주했던 무용교육 방식은 이와는 많이 달라서 처음엔 당혹스럽고 낯설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예를 들어 균형을 잡든, 균형을 잃든 그 모든 순간을 즐기라는 것,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는 것 등을 들을 때마다 내게는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무용 테크닉 수업 외에도 몸에 대한 연구 작업이 있었는데, 사람 몸의 해부학적 구조와 몸의 상태를 깊이 있게 인식하고 그것에서부터 움직임을 찾아 나가게 한다. 무용 테크닉을 위해 몸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교육을 받아왔던 나에게, 각 사람의 자연스러운 몸을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하면서 몸을 움직여가게끔 하는 작업은 시간이 더할수록 내 예술교육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학생들 간의 협업을 통해 안무가로서 협업하는 작가들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쌓아가게 되는지에 대해 배웠다. 안무가가 퍼포머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작업의 프로세스 안에서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이 퍼포머가 작업을 실행해 가는 데 있어 충분히 논리적일 때, 퍼포머와 안무가 사이의 신뢰가 형성되어 간다고 본다. 창작 작업에서 이 부분이 작업의 결과물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함께 작업하는 퍼포머들이 안무가의 작업을 수행해주는 역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안무가와 퍼포머가 함께 작업을 이루어가고자 노력한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생각은 예술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노경애 안무가의 창작 작업의 핵심으로 리서치 과정을 꼽을 수 있다. 그런 만큼, 한 단계씩 발전되어가는 작업의 각 과정은 작업 결과물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참여자들이 변화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프로세스’로서의 예술교육이 가진 근본이념과 매우 닮아있다. 창작 작업을 위한 리서치와 예술교육 워크숍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분모가 있을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리서치를 너무나 좋아해서 최근 2,3년간은 리서치 자체를 공연 형식으로 가져갔을 정도이다. 궁금해하는 주제가 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 채 작가들과 함께 그 주제를 탐구해간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가치들과 만나게 되곤 한다. 그런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그 과정이 결과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콘셉트가 협업하는 작가들의 몸의 언어, 생각의 언어, 소리의 언어 등 다양한 언어들을 통해 표현되고, 섞이고, 통과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이 점은 예술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예술교육을 시작하는 많은 예술교육가가 수업 내용을 정하면 대상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정해진 교육안 대로만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 경우에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 보는 편이다. 참여 대상이 일반 성인이든, 어린이이든, 장애인이든, 노인이든, 그들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인지를 계속해서 보려고 하다 보니 대상에 맞춰서 혹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따라 작업이 늘 변화했다. 이러한 방법은 창작 작업을 할 때 리서치 과정에서 퍼포머들과의 작업 과정을 바라보며 방법들을 수정해 가는 것과 같다. 그런 면에서 예술 창작만큼이나 예술교육에 있어 프로세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예술교육 결과물을 발표해야 할 때도 발표회보다는 교육 과정을 더 중요시한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들과 이견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발표회를 위해 ‘작품’을 만들려 하지 않고, 과정이 잘 드러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런 시도가 지금까지 전시, 우편, 리서치 공유회 등 새로운 발표회 형식을 만들어냈다.
대표님의 창작 방법과 예술교육 사이에는 실제로 많은 교류가 긴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례로, 공연 작업에서 선보인 창작방식이 예술교육 프로그램에도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더하기 놓기>라는 작업은 A라는 요소에 생경한 B라는 요소를 더하는 작업이다. 이 조합의 기법은 어린이를 위한 창의교육에서는 의성어와 행동 간의 엉뚱한 조합으로 이루어지기도 했고, 작업 리서치 기법의 하나인 글자 조합 방법은 장애인 작업, 그리고 비장애인 작업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2014년에 ‘길이’를 주제로 작업하며 길이를 사물의 길이, 움직임의 길이, 공간의 길이 등으로 점차 발전시켜나갔는데, 이 방법 또한 어린이, 성인, 미술 교육가와의 수업 등에 사용한 바 있다. 또한 기호에 대한 창작 작업에서 이루어졌던 공간 탐구나 소리 탐구 등의 방법도 예술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전문 퍼포머들과 리서치할 때의 방법을 있는 그대로 예술교육에 적용하지는 않는다. 퍼포머와의 작업은 개념적인 부분에 대한 리서치를 포함해 더욱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술교육에서는 대상에 맞게 변형해야 한다. 어린이와의 작업에서는 공감 정도에 따라, 성인과의 작업에서는 그들이 가진 관심의 폭과 관점에 따라 변형한다. 예를 들어, 공간을 탐구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도 어린이들과는 ‘틈새 공간 표현, 몸의 공간’으로 진행한다면, 미술교육가 혹은 신진예술가와의 작업에서는 ‘공간의 특성 탐구, 공간 구성’ 등으로 내용을 달리한다.
리서치 작업을 좋아하는 안무가로서 예술교육을 할 때 좋은 점은 어떠한 주제가 주어져도 그것을 탐구해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점이다. 그 어떤 엉뚱한 주제라 하더라도 창작 작업에서의 리서치를 진행하듯이 예술교육 또한 방법론적으로 리서치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안무적 특수성 때문에 예술교육도 다소 독특하게 보이는 것 같다.

  • 리서치 작업

  • <더하기 놓기>
현재 장애인과의 협업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 중인 예술가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힌다. 장애인 작가들과의 공동 창작 작업 혹은 장애인 대상 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특별히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청각장애인들과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게 2014년 성북예술창작센터에서 주관하는 ‘힐링 아트랩’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청각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운드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했었다. 이 작업은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있어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귀로 듣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정말 듣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운드 아티스트 지미 세르와 함께 소리를 질감화해서 몸으로 소리를 듣고, 그것을 색모래와 물감 등을 이용해 시각화하는 작업을 했다.
최근 들어 장애인의 예술작업과 장애인 예술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장애인 예술교육은 그들의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이 하듯이 음악을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교육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교육도 너무 소중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교육과 작업의 경우, 대부분 그 기준이 비장애인에게 맞추어져 있다. 그러면 장애는 부족하고 못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준을 장애인에게로 옮기면 장애는 특별함이 된다. 장애로 인해 생겨나는 ‘제한’은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다. 뇌성마비 미술 작가들과의 작업은 2013년에 시작해서 현재까지 7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의 몸은 많이 틀어져 있고 움직임은 불균형하다. 그런데 관점을 전환해보면 그들의 몸에서 굉장히 복잡하고도 다양한 몸의 균형점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균형점은 굉장히 복잡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처럼 춤출 수 없다. 그런데 비장애인들도 그들처럼 움직일 수 없다. 몇 년 전의 작업에서 장애인 작가가 비장애인 무용수를 보고 잘한다고 감탄할 때마다 “여러분은 이분들처럼 못 움직여요. 그런데 이분들도 여러분처럼 못 움직여요”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장애인 작가가 비장애인 작가에 대해 일방적으로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의 움직임을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내 작업은 항상 질문에서 시작한다. 뇌성마비 작가들을 처음 만났을 때도, 생각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들에게 ‘춤이 무엇일 수 있을까’ 질문하면서 어떤 춤을 제안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자칫 자기 생각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춤은 폭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작업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창작 작업을 할 때는 작업의 콘셉트가 매체를 통해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를 중요시하는 반면, 예술교육이나 장애인들과의 작업에서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작업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 장애인 프로젝트 <선의 리듬>

  • 어린이 창의 교육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움직임 워크숍 또한 활발히 진행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예술교육 커리큘럼은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는지 알고 싶다.
지금까지 고양문화재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다양한 기관에서 어린이 창의수업을 진행해왔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도 참여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이다. 모든 수업이 재미있어야 하지만, 특히나 아이들과의 수업은 정말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아이들의 재미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환하면서 수업을 구상한다. 처음에는 아이들과의 수업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몰라서 1시간 수업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끝낸 적도 있었다. 아이들의 재미를 끌어내려면 놀이적 요소가 필요했고, 여러 가지 색깔과 질감의 재료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것이 자연스레 통합교육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수업마다 주제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려고 한다. 주제를 몸으로 표현도 해보고, 색깔이나 재료를 이용해서 놀아보고, 공간 속에서 느껴보게도 한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도 아이들 안에서 여러 생각이 다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 창의수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는 ‘선택’이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선택을 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부모님이 아이에게 뭔가를 계속 제시해주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뭔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낯설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에 우리는 그 아이가 선택할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선택을 했는가보다 자신이 한 선택을 어떻게 구축해나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도전’이다. 도전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항상 이곳에 발을 디뎠다면 조금만 옆으로 가보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발걸음 하나가 나중에 또 다른 커다란 결과물을 가지고 오는 것, 이것이 바로 도전이다. 아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실패도 좋은 과정의 하나이다. 아이들이 뭔가를 다르게 보게 하고, 거꾸로 보게 하고, 뒤집어 보게 한다.
어린이 창의수업을 진행하면서 고심했던 부분 중 하나는 ‘창의수업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조건 자유롭기만 해야 하나’였다. 무조건 아이들로 하여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하는 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의교육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표현을 위한 자극(impulse)을 주되, 질서를 지켜야 할 때는 분명하게 지킬 때, 보다 더 조화로운 수업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몸의 움직임을 통한 예술교육’이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듣고 싶다.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예전에는 몸의 움직임이 예술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장르에 비해 더욱 특별하거나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술교육을 해나갈수록 몸과 몸의 움직임이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용의 측면에서 보면 어쩌면 단순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에 손을 얹는 것 하나만으로도 전혀 다른, 매우 깊이 있는 교감을 발생시킨다. 이것은 음악이나 미술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교감인 것 같다. 나 자신도 몸을 움직이며 느꼈던 놀라운 경험이기도 한데, 몸을 통한 소통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계성을 열게끔 한다. 이렇게 몸과 몸이 닿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무게나 호흡을 느껴볼 때도 있지만, 더 나아가 직접 몸이 닿지 않고도 타인의 움직임과 나의 움직임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가 있다. 얼마 전에 장애인 작가들과 함께 작업했었는데, 그중 오랜 친분이 있는 두 사람이 서로 떨어진 채로 단지 거리를 이용해서 움직일 뿐인데, 그들 사이에 쌓여온 오랜 신뢰가 느껴졌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어떤 아이가 뭔가를 하면 다른 아이가 그것에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더해가곤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어떻게 아이들 스스로 그런 교감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바로 이런 것들이 몸의 움직임이 할 수 있는 일인 듯싶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비장애 작가들이 모여 함께 실험하는 예술교육 연구 프로젝트 <듣다>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진행한다. 5월에 시작해서 8월 말쯤 발표할 예정이다. 뇌성마비 작가들과 함께 하는 작업 역시 이어가고 있다. 또한 치매노인센터에서 근무 중인 요양사 한 분의 제안으로 치매 노인들과의 작업도 시작해 나가고 있다. 지금껏 ‘앞으로 이런 걸 해봐야지’ 하고 미리 생각하고 작업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항상 재미있는 걸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어떤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재미있는 일을 해나가고 싶다.
노경애
노경애

2001년부터 3년간 네덜란드 EDDC(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er)에서 공부하며 몸에 대한 이해와 움직임에 대한 연구,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이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작업하던 중 2005년 여섯 명의 유럽 안무가들과 vzwCABRA를 창립해 현재까지 개인 작업과 교류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2010년 한국에서 아트엘(ArtEL)을 창단하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독일 포츠담 댄스 페스티벌, 서울-요코하마 댄스커넥션, 리움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에서 공연 및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통합신체교육 <몸의 학교>(고양문화재단),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상상의 움직임 놀이터>(국립현대무용단), 예술교육 연구 프로젝트 <듣다> 등 다양한 참여자 대상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_ 이재범(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손옥주
손옥주
공연학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과 무용학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연구재단의 박사 후 연구 지원을 받아 <무용 오리엔탈리즘: 근대 독일어권 무용계에 나타난 한국 재현>이라는 제목의 포스트닥터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학술연구와 동시에 리서치 파트너와 드라마터그로 공연예술 현장에서의 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다.
okju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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