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교육동 아트팹랩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주최한 ‘과학기술과 예술, 그리고 창조적 문화예술교육공간을 위한 <오픈토크>(이하 ‘오픈토크’)’가 진행되었다. 이날 프로그램 중 세션2로 진행한 ‘예술+기술+교육’은 올해 아르떼 아카데미에서 예술교육 전문성을 심화하기 위해 개발한 연구 기반 프로그램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예술창작과 교육 ‘데이터미학과 인공지능’> 연수 과정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연수 프로그램은 예술 현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새로운 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을 준비하기 위한 아르떼 아카데미의 노력과 일련의 과정을 가늠하는 일종의 중간 단계로 비친다. 즉, 이날 소개한 연수 프로그램은 완성형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교감하면서 교과과정을 향상해 나갈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날 다뤘던 주요 내용은 예술과 기술 융합의 당위성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당 연수 프로그램의 설계 방식과 방향 설정, 진행 과정 등을 소개하는 발제에 이어 현장에서 진행하는 기술 융합 기반의 예술교육 사례를 소개하는 라운드토크 순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발제자인 이화여자대학교 여운승 교수는 예술창작과 기술 융합의 의미와 그 과정에서 짚어볼 수 있는 쟁점을 다양한 기록과 사례에 근거하여 소개했다. 현재 예술창작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도구가 바로 매체의 활용으로 연결되면서 애초 예술창작에서 과학과 기술을 따로 분리해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경기가 촉발한 인공지능에 관한 다양한 이슈를 놓고 다가올 미래사회에 관한 변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인간 고유의 활동이라고 여기는 예술에 관한 개념이나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을 제시하기도 했다.
가령, ‘예술창작이 비단 인간만의 고유 영역인가’ 하는 물음은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이나 그림의 저작권을 놓고 발생한 분쟁 사례에서 따져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저작권이 인간의 창조적 활동으로 생겨나는 산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이는 앞으로 활동의 주체가 인간만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미적인 구도와 이상적인 리듬, 선율 등을 구현하는 인공지능의 활동이 활발해진다면, 앞으로 예술가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할 시기가 올 수밖에 없다. 물론 여운승 교수는 이러한 미래상이 좋을지 나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히며,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에 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는 본질적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먼저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사람의 일을 대신 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관한 디스토피아적 전개는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지만, 현재 4차 산업혁명으로 일어나고 있는(또는 일어날) 예술교육 현장의 변화는 그렇게 먼 미래상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서 새로운 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준비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라운드토크에서 소개한 다양한 현장 사례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참여자 중심 교육
두 번째 발제자인 대구가톨릭대학교 이준 교수는 이번 연수 프로그램의 설계 원리와 방식을 소개했다. 연수 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매시간 참여자의 요구와 반응에 따라 교과과정의 실행 방식을 다르게 적용한 단계별 과정을 도식화하여 소개했다. 연수 과정에 교육강사로 참여한 연구진은 이러한 전개 방식을 염두에 놓고 매회 수업을 마친 후 다음 실행을 위한 교과과정을 수정하는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방식을 택했다고 하는데, 이는 흔히 교육 현장에서 신뢰하는 ‘안정적이며 고정적인’ 수업 진행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연구진은 소프트웨어공학과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분야에서 사용하는 검증된 방법론인 ‘사용자 중심의 방법론’을 이번 연수 프로그램에 접목했다고 한다. 이준 교수는 다양한 사용자 중심의 방법론 가운데 이번 연수에서 가장 적절하게 변용해 도입할 수 있다고 판단한 린 UX((Lean User Experience, Lean UX)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거의 모든 수업 단계에서 참여자의 의견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최소기능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이는 4차 산업혁명과 예술교육 참여자 간에 이뤄지는 거리감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 향후 교과과정 개발시, 사용자인 연수 참여자에 대한 연구,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이준 교수는 앞으로 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이 사용자 중심으로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번 연수 과정에서 기술 기반의 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진 연수 참여자를 위한 적합한 교과과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참여자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참여자가 원하는 교육 내용이 ‘과연 지금 시점에 적절한 내용인가’라는 발제 말미의 질문과도 맞물린다. 이는 연수 프로그램이 당장 그 실효성과 만족도를 우선하기보다는 장기적이며 종합적인 관점에서 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즉 실질적인 교과과정을 개발한다는 것은 예술교육에 참여하는 대상자를 얼마나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느냐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이 일으키는 예술교육 현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예술강사, 교사 등의 사고와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여운승 교수
  • 이준 교수
핵심은 다시 인간
라운드토크에서는 현재 예술교육 현장에서 활용하는 기술 기반의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먼저,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 김묘은 공동대표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디지털 기술이 일상에 얼마나 가깝게 다가와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어린이들과 진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훌륭한 창작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단순히 디지털 기술을 배우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가령,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라면 미술 활동을 좋아하겠지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아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김묘은 대표는 이럴 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아이들 간 그림실력의 기술적 차이를 줄일 수가 있기에 대상자가 미술이라는 예술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원활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디지털은 철저하게 도구로서 기능해야 하며,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대상자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일상에서는 이러한 원칙이나 기준 없이 어른들이 필요한 경우 아이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디지털을 사용하게 되는 상황을 문제 삼기도 했다.
부개여자고등학교 장재성 교사는 기존 학교 현장에서 모색할 수 있는 예술과 기술을 접목한 교육 사례를 발표했다. 일선 교사로서 그는 교과과정에서 예술 과목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다른 일반 교과과정과 예술을 융합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한편으로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구축하기 힘든 장비를 사용하거나 열악한 교육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학교 주변의 전문 교육기관이나 예술기관, 예술강사와 지역사회의 도움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특히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코딩 담당 교사와 예술교과 교사가 함께 수업계획을 만들고 평가하는 협력 수업 방식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교사의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참여가 확대될 필요성이 있고, 아르떼 아카데미에서도 교사들을 위한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 예술강사로 활동하는 정윤기 사진작가는 학생들과 진행한 교육 사례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특성과 이들이 디지털 기반의 기술을 만날 때의 반응을 소개했다. 그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학생들이 디지털 기술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표현하는가에 더 큰 관심을 표하고 재미있어 했다고 한다. 따라서 수업의 진행 목표를 ‘무엇을 표현할 것이냐’로 설정했고 기술은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디지털 기술에 관심을 가졌던 아이들도 한 번 기술을 익히면 기술에 관한 호기심은 사그라들었던 반면, 기술을 가지고 이야기를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아이들의 적극성이 더 오래 지속한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예술강사의 역할은 도구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이나 관점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아이들에게 새나 동물의 시선과 눈높이로 주변 환경과 사물 사진을 사진 찍어보라고 주문했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평소 느껴보지 못한 시선의 범위와 위치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 김묘은 공동대표
  • 장재성 교사
  • 정윤기 사진작가
오픈토크 세션2 ‘예술+기술+교육’은 현재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 교육을 매개로 어떤 시너지를 낼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자리였다. 또한 올해 아르떼 아카데미가 진행한 연구 기반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교육 현장의 변화 양상과 앞으로의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발제자인 이준 교수도 언급했지만, 아직 예술과 기술 융합 교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교육성과와 교육만족도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에는 인간이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인공지능에 의해 소외당하는 인간의 운명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더욱 인간 중심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만 4차 산업혁명이 예고하는 변화에 적응하는 또 하나의 방법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 _ 이재범(POV스튜디오)
염혜원
염혜원
자유기고가. 연극을 공부했고 월간 [한국연극], 국립오페라단,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일했으며,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나오시마 삼인삼색』(웅진리빙하우스)이 있고, 『연극 속의 청소년극, 청소년극 속의 연극』(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등을 기획·편집했다.
byeyum@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