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관계의 방식

베티 서전트, 저스틴 드와이어 / 호주 플러그인휴먼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인간, 예술 산업, 융복합 등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표현들이 어느새 예술계의 대표적 키워드가 되어버린 오늘, ‘예술’을 다시금 ‘발견’하려는 시도는 자칫 발전 지향적 시류를 거슬러 한 발 퇴보하려는 시대착오적 의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상상되어온 예술의 조건들로부터 벗어나 2018년의 우리에게 있어 예술이란 실제 ‘어떠한 예술’이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새로이 상상해보자.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문화산업이 태동한 원천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임을 의식한다면, ‘예술의 발견’은 곧 ‘기계의 인간화’와 ‘인간의 기계화’가 혼재되어있는 2018년 현시점에 대한 반영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 타인의 뇌파를 퍼포먼스의 소재로 삼고, 계획된 알고리즘을 통해 측정 불가능한 우연의 순간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의 정적인 일상에 움직임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지향하는 호주의 미디어아트 그룹 ‘플러그인휴먼(PluginHUMAN)’의 공동디렉터 베티 서전트(Betty Sargeant)와 저스틴 드와이어(Justin Dwyer)가 바로 그들이다. 기술을 통해 사람들 간의 상호소통 가능성을 더욱 확대시키고자 한다는 그들의 예술적 목표는 현재 첨단 과학 기술을 활용한 관객참여형 작업을 통해 하나씩 구체화되고 있다. 플러그인휴먼의 작업은 작년 가을, 아시아문화전당 ACT페스티벌에서 발표되기도 하는 등 이미 여러 차례 국내 관객들과 만난 바 있는데,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두 아티스트를 만나 예술과 기술, 그리고 관객들의 직접 참여가 갖는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베티 서전트와 저스틴 드와이어
플러그인휴먼은 2000년에 설립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밀레니엄이라는 설립 시점이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과 기술을 접목시킨 플러그인휴먼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다.
베티 서전트(이하 베티) : 저스틴 드와이어와 나는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왔다. 대학에서 예술 관련 전공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음악, 연극, 무용, 시각예술, 문학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활동해왔는데, 이와 같은 다양한 장르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미디어 아트로 활동 방향을 넓히게 됐다. 어느 특정 예술 장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집합적으로 포괄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음악이든 무용이든 어떠한 인간의 상태나 조건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예술 아니던가. 한편, 단체 설립 시기가 밀레니엄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에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경험을 표현하는 예술작업을 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컴퓨터적인 요소를 이용해 작업하는 동시에, 개인적으로도 인간이 되기도 하고 컴퓨터가 되기도 하는 하이브리드적 감각을 갖게 됐다. 내게 있어 자연, 컴퓨터, 인간성에 대한 감각은 내 경험 안에서 모두 결합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예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며, 저스틴은 이러한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이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에서 ‘참여형 미디어아트: 예술, 기술, 그리고 더 나은 삶’이라는 주제 발표와 더불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도 진행했다. 이번 워크숍의 진행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저스틴 드와이어(이하 저스틴) : 이번 워크숍에서는 우선 우리가 지금까지 선보인 작업에 대해 소개했다. 그리고 참여자들이 자신의 예술작업 혹은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기간 동안에 각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해서 그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프로젝트화 시킬 것인지, 시작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작업을 발전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가장 처음에 가졌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획하되, 퍼포먼스가 됐든 다른 형식이 됐든 어떠한 형식으로든 최종 마무리 작업이 완성 단계에 이를 때까지 과정을 함께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가 해오고 있는 작업 시스템을 형성하는 기술에 대해서도 설명했고, <단어로 된 나무(Word Tree)>의 예를 통해 사람들의 사회적, 신체적 참여를 증진시키는 방법과 의도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 <단어로 된 나무(Word Tree)>
그렇다면 이번 워크숍은 일반 관객이 아니라 예술교육자 등 특정 집단만을 대상으로 했던 건가?
베티 : 워크숍에는 예술가, 예술강사 등 예술 관련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작업의 과정이 뭔가 베일에 싸인 듯 신비롭기만 한 과정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매일 작업실에 가서 열심히 작업하는데, 그럴 때마다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방법론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은 반복될 수 있어야 하고 복제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과정, 또는 갑자기 찾아오는 영감처럼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매일 자신이 하는 작업을 만들어내고 복제할 수 있는 어떠한 틀(framework)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틀을 통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나 워크숍을 만들어내는 방법 등에 대해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워크숍은 예술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함께 작업해 온 예술가들을 통해서도 종종 느꼈던 부분인데 한국에서 활동 중인 많은 예술가의 경우, 자신이 지니고 있는 추상적인 관심을 어떠한 구체적인 방법론, 어떠한 구체적인 툴을 통해 발전시켜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다.
베티 : 복제 가능한 방법론을 갖는 것이야말로 예술계에 근본을 이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냥 흘러가 버리는 애매모호한 생각만을 갖게 될 뿐, 규율이나 훈련과 같은 정말 어려운 작업 과정 없이 이것을 왜 하는지에 대해 자각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저스틴 : 뉴미디어, 특히 기술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뉴미디어 작업을 하는 데 있어 기술 장비가 많이 활용되기 마련인데, 최초의 아이디어부터 완성 단계까지 계획이나 방법론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이를 전달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느새 작업 초반의 영감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일반 시민 대상으로 한 <스토리텔링 머신>은 어떤 프로젝트인가?
베티 :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일반 시민이 참여한 작업으로 자동화된 시스템인 ‘스토리텔링 머신’의 이면에 어떤 프로세스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자동화가 일상화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점차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재취업이나 재교육의 기회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내가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아니다’라는 식의 생각을 갖게 되곤 하는데, <스토리텔링 머신>을 통해 모든 참여자가 특별한 지식 없이도 함께 놀이를 해볼 수 있다는 콘셉트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어린이와 노인이 함께 참여했던 이 프로젝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기술에 대한 이해가 빨랐던 아이들과 달리, 노년층의 경우에는 스토리텔링이라는 측면에서 강점을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각의 참여자에게 ‘본인의 삶에서 의미 있었던 일’이나 ‘인생이 변화한 시점’ 등에 대해 써주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들의 스토리를 모두 모아 편집 과정을 거쳐 굉장히 짧은 이야기(micro story)로 만들었다. 이 과정 중에 삶의 경험이 많은 장년층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빛을 발했다. 아이들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것은 어떻게 작동하고 저것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노년층은 집을 이사했던 당시에 친구들과 헤어져 기분이 어떠했다 하는 식의 스토리텔링적인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의미 있는 삶의 순간에 대해 공유하게 만들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예술작품의 의미를 재정의 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보다 더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플러그인휴먼의 작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참여자 개개인이 자신만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 머신>이 참여자가 보물찾기하듯이 직접 단어 조각을 찾아다니는 프로젝트 <플레이그라운드(The Playground)>로 변화, 발전되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전자가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방식의 즉흥적 감각을 요구한다면, 후자는 이에 덧붙여 참여자의 신체적, 물리적 이동까지도 요구함으로써 ‘실천에 의한 학습(learning by doing)’이라는 오늘날의 교육 이념을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플러그인휴먼의 작업이 이처럼 관객의 직접 참여, 더 나아가 관객의 신체성(physicality)에 주목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베티 : 의식적으로 신체성을 포함하는 작업을 계획했다. <스토리텔링 머신>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참여를 보였으나 신체적으로는 많은 활동 참여를 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오히려 신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참여시키는 프로젝트가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런 과정에서 ‘놀 수 있는 도시(playable city)’라는 아이디어를 찾게 됐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게임판처럼 생각하면서 그곳의 환경을 이용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도시가 나의 놀이터가 된다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셈이다. 이를 계기로 참여자들이 신체적으로 더 큰 참여를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많은 경험을 하지만, 기술을 경험하면 할수록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뭔가를 더 활발하게 하기가 어려워진다. (스마트폰 같은) 기기만 보고 중독되어버리기 때문에.
기술이나 기계를 활용한 예술작업들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역할이 가져왔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플레이그라운드>의 참여자에 대해서도 참여자(participant)라고 해야 할지, 선수(player)라고 해야 할지, 퍼포머(performer)라고 해야 할지, 관객(spectator)이라고 해야 할지 매우 난감한 게 사실이다. 어찌 보면 참여자의 특성상, 이 모든 용어의 특징을 고루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플러그인휴먼의 작업에 있어, 이 같은 역할 경계의 와해는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저스틴 : 역할 구분이 되어있다기보다는, 참여자가 모여 예술작품을 만들었다면 그들을 ‘예술가’라고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 머신>의 경우, 직접 만든 이미지를 넣기 때문에 ‘참여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들에겐 여러 다양한 역할이 결합되어있다. 아이디어, 콘셉트, 예술가와 참여자의 역할 등이 혼합되어, 우리가 참여자가 되기도 하고 참여하는 관객이 예술가가 되기도 하는 등 하나의 예술 활동이 집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예술가의 역할은 모든 사람이 와서 경험해볼 수 있는 어떠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베티 :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 작업에 함께 하는 이들은 관객이나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참여자’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연습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젝트를 구체화해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훈련된 아티스트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참여자의 예술 활동에 대해 저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참여자들이 없다면 참여형 예술작업은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랙티브 아트의 경우에는 가령, 버튼을 누르면 화면 색깔이 변하는 반면, 참여형 예술의 경우에는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참여형 예술이야말로 참여자와 예술작품 간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와서 참여하지 않으면 작업이 완성될 수 없다는 특징이 인터랙티브 아트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우리 작업의 경우에도 참여자가 직접 뇌파를 측정하지 않으면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직접 뭔가를 적어주지 않으면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고, 직접 단어 조각을 찾아주지 않는다면 조각들이 만들어낼 거대 조형물은 텅텅 비어있을 것이다.

  • 브레인웨이브 아트 프로젝트 <드림 2.2 (Dream 2.2)>(2018)
<브레인웨이브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EEG(electroencephalogram, 뇌파도-편집자주)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수면 상태를 측정해 시각화하는 동시에, 시각화된 뇌파를 통해 역으로 타인의 현재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는 프로젝트 콘셉트가 매우 흥미롭다.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 등에 대해 듣고 싶다.
베티 : 어려운 점이 정말 너무 많다. (웃음)
저스틴 : 프로젝트에 착안한 이유는 우선 이 아이디어가 매우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페이스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누군가가 키보드를 가지고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 기존의 표준적인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 장비인 헤드셋을 이용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것을 정작 어떻게 진행해야 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정말 연구를 많이 해야 했다. 우리 작업은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베티 : 기술이 얼마나 긴밀하게 인간의 신체와 통합될 수 있는가에 대해 묻고자 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컴퓨터, 스크린, 모니터 등만이 예술작업을 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신체도 예술작업을 위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무용을 공부했고, 신체적으로 활동적인 사람이다. 수면이나 잠자는 동안의 신체 등이 예술작업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기술적으로 실현시키기 어려울지 몰라도 예술적으로는 흥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작업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건 컴퓨터가 한 일이지만, 우리는 사람의 신체에 주목했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뇌파였는데, 뇌파가 우리 작업의 중심 원천으로 호출된 셈이다. 잠과 관련해서 12시간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를 계획하기도 했다. 멜버른에서 저녁 6시부터 아침 6시까지 개최되는 백야 페스티벌에서 시도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로, 10대 청소년 두 명이 잠을 자면 다른 관객들이 그들의 잠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퍼포먼스이다. 다른 사람이 잠들어있는 걸 본다는 건 매우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바로 이 퍼포먼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사이버 잠자는 미녀’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야 하는 시간에 다른 사람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다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이런 질문을 던져주고 싶었다. 이 아이디어를 소셜미디어 등 우리 현실 모습에 대입해보면 우리 스스로 깊고 풍부한 경험을 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깊이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놓치게 되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저스틴 : TV 프로그램에 리얼리티 쇼가 정말 많은데, ‘가짜 리얼리티’라고 볼 수 있는 쇼가 다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아티스트로서 지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베티 : 올해에는 아쉽게도 대만국립미술관에서 5개월간 진행되는 퍼포먼스 제안이 들어와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백야 페스티벌에서의 12시간 퍼포먼스를 할 수 없었다. 내년쯤 다시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플러그인휴먼의 작업에 있어 궁극적으로 ‘기술’이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듣고 싶다. 기술이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인가? 아니면 인간을 능동적 주체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수단인가?
저스틴 : 나에게 있어 기술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기술로 인해서 발전 가능성이 커지고,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작업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특히 기술을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뭔가 좋은 것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익이 동기부여가 되어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럴 경우에는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많다. 좋은 일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술을 사용하고 싶다.
베티 : 기술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생태학이나 건강과 관련해 긍정적인 해법을 제공할 수도 있다. 우리 작업은 단순히 미적인,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우리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리서치를 굉장히 많이 한다. 우리 작업의 기본 목표는 인간의 조건, 인간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문제점은 신체, 사회, 자연 등과의 연결이 끊어져 있다는 것인데 이 연결을 회복시키게끔, 그리고 정신이 더욱 건강해지게끔 어떻게 하면 기술을 이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질문이다.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기술이 우리를 위해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기술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스틴 : 기술을 위해서만, 기술을 목표로만 뭔가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대신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기술을 이용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술은 그림 그릴 때 쓰는 붓과 같은 도구이다. 도구로서의 기술을 이용해 우리가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들을 하면 된다.
플러그인휴먼(PluginHUMAN)

플러그인휴먼(PluginHUMAN)

2000년 결성된 호주 출신 미디어아트 그룹으로 베티 서전트(Betty Sargeant)와 저스틴 드와이어(Justin Dwyer)가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다. 사람들이 기술의 사용으로 고립되는 것이 아닌, 기술을 통해 상호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예술작품을 통해 체험하고 탐구하도록 하고자 한다. 유럽, 북미, 아시아 지역에서 빛과 이미지 등을 이용한 실시간 참여형 설치예술을 주로 선보이며, 3D조각물, 터치디자인 등 기술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예술작품에 참여하고 상호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주요 프로젝트로 <스토리텔링머신> <브레인웨이브 아트 프로젝트> <플레이그라운드> 등이 있으며, 호주 RMIT대학의 신체활동 게임연구소(Exertion Games Lab for Design Research)의 상주 크리에이터 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www.pluginhuman.com
사진_이재범(pov스튜디오)
손옥주
손옥주
공연학자. 연극학과 무용학을 공부했으며, 한국연구재단의 ‘박사 후 연구 지원’을 받아 <무용 오리엔탈리즘: 근대 독일어권 무용계에 나타난 한국 재현>이라는 제목의 포스트닥터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학술연구와 동시에 리서치 파트너와 드라마터그로 무용 현장에서의 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다.
okju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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