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로 오소리오 폰세카. 왠지 낯익은 이름이었다. 2001년 겨울, 나는 멕시코 과나후아토 거리 위에 있었다. 당시 중남미 여행이란, 모두가 뜯어말리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겁도, 두려움도 없던 창창한 한 때였으므로 혼자 거리를 걷다가 세르반티노 페스티벌 지역 참가단체를 선발하는 오디션 광고를 보고는 무작정 축제 본부로 찾아갔다. “쎄울, 꼬레아, 국제무용축제에서 일한다.”고 말하자, 유쾌한 멕시코 축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심사를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된 오디션에서 축제 심사위원들은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을 같이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한국식이라면 팔짱을 끼고 진지해야 할 심사위원들인데. 이렇게 유쾌했던 멕시코 여행 이후 세르반티노 페스티벌과 당시 내가 일하던 축제는 몇 건의 무용 국제공동제작을 함께 추진하게 되었고, 라미로 오소리오 폰세카는 당시 이 축제의 예술감독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는 것인가. 2018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 참가로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나 콜롬비아의 문화예술,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예술과 정치
2001년 세르반티노 축제 오디션에서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벤하민 발디비아에게 그의 시집을 선물로 받았다. 과나후아토의 환대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17년 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오! 놀랍다. 벤하민은 나의 제자였고, 내가 운영하던 극단의 배우였고, 지금은 멕시코를 대표하는 유명한 시인 중 하나다. 나는 콜롬비아 사람이지만 멕시코에서도 20년 이상을 보냈다. 과나후아토 대학에서 공부하던 1976년 무렵 극단을 만들어 멕시코 전역을 돌며 함께 공연했다. 벤하민의 시집이 바다 건너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니, 정작 본인은 이 기막힌 사실을 알고 있을까?(웃음)
콜롬비아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셨고, 지금은 훌리오 마리오 산토도밍고 아트센터(이하 마요르극장)의 이사장을 맡고 계신다. 그전에는 멕시코 주재 콜롬비아 대사로 외교관 역할도 하셨다. 그밖에도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 콜롬비아 이베로아메리카노 국제연극제 등 여러 예술축제의 감독을 역임했고, 직접 30여 편의 연극을 연출하신 바 있다. 문화계와 정계에서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다. ‘예술과 정치’라는 주제는 중요한 철학적 테제이기도 하고, 현대예술의 중요이슈이기도 한데,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이 둘의 상호관계를 정의해줄 수 있는가?
너무 거대한 질문이다. 나는 이미 8살에 내 인생의 진로를 예감한 것 같다. 연극반 활동으로 한국의 국립극장과도 같은 콜롬비아의 콜론극장 무대에 서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무대에서 예술가가 관객을 마주하는 짜릿한 한순간의 경이로움. 어떻게 하면 이 순간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 평생 고민하면서 이 길을 걸어왔다. 정치에 관한 한, 정치에 대해 뜻을 두고 있었던 것도, 정치인으로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문화부 전신인 문화국 총책임자로 일하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게 되었다. 당시 나는 문화 분야가 국가의 중요한 열쇠라는 확신에 차 있었고 정치권에서는 이 사람이 정치인이 아니라, 문화계의 리더라는 점을 주지한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정치권 진입에 대한 제안이 있었지만, 나는 정치인이 아니지 않은가. 늘 문화예술인이라는 생각을 지니며 지내왔다.
예술가로 살아온 나의 경험은 정책 분야에서 대단히 유용했다. 배우는 연습실 청소도 해야 하고, 의상도 직접 다려야 하고, 조명도 직접 다뤄야 하는 일인다역의 만능인이다. 밑바닥에서부터 무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해왔기 때문에 정책 분야에서도 이러한 현장경험에 기반해 모든 일을 추진했다. 창작을 하는데 예술가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예술을 하려면 어떤 인프라가 요구되는지, 이미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모든 결정의 주체인 정부기관과 기관 종사자들의 전문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할 수 있었다. 멕시코의 한 기자는 나의 경력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예술가에서 정치가의 길로 접어든 사람들 대부분은 예술가들이 한 계단, 한 계단을 어렵게 오르고 있을 때, 혼자서 고속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편하게 고위직에 오른다. 당신의 경우는 다르다. 예술가로서 한 계단, 한 계단을 밟고 올라 예술가들을 위한 정책을 지휘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라틴아메리카
‘4차 산업혁명과 문화예술교육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셨다. 발제자 명단을 보면서 우루과이의 문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의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가 떠올랐다. 서구 시간대 중심의 역사발전이나 세계인식에 반대하는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의 어떤 아이들이 방탄유리로 만든 자가용 차 안에서 레이저 장난감 총을 쏘며 놀고 있을 때, 라틴아메리카의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실제로 날아오는 총탄을 피해 가며 살아간다.” 얼마 전까지 내전으로 고통 받던 콜롬비아에서 오셨는데, 다른 발표자들의 이야기 중에 공감대도 있었겠지만, 이질감을 느낀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심포지엄 중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첫 특별연설자는 UCLA 대학에서 온 로봇 전문가 데니스 홍 교수였다. 로봇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 인간의 삶과 로봇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발제는 개인적으로 신기술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물론 콜롬비아가 처해 있는 상황은 이 발제들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콜롬비아는 2016년 정부와 무장 혁명군(FARC) 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50년간의 내전을 끝냈다. 이 내전을 통해 유랑민이 된 사람만 740만 명에 달한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내전 피해를 입었고, 자신의 도시를 떠나 유랑민으로 살고 있다. 이런 현실 속의 콜롬비아는 문화가,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기본적인 질문에 집중하기에도 벅차다. 그러나 콜롬비아도 이 세계의 한 부분이다. 이런 새로운 기술이 콜롬비아 사회에도 예외 없이 계속해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신기술들을 받아들여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분명 중요하다. 예를 들면 마요르극장과 같은 공공극장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여 최고의 공연을 보다 많은 시민들이 볼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제작한 공연들도 있다. 게릴라에게 납치되어 오랫동안 감금되었던 여성 정치인 잉그리드 베탕쿠르(Ingrid Betancourt)를 다룬 작품이 있는데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해 성공한 사례다.
신자유주의의 확대, 기술의 진보를 통해 우리는 세계화, 국제화의 환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 어느 곳이든 연결할 수 있다고 믿는 기술의 확신만큼 개인과 개인의 단절, 넓게는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은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미래예측도 가능하다. 국제화 사회 속에서 예술은 절대로 스타벅스나 유니클로와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콜롬비아의 현 상황과 연계하여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
현대사회일수록 예술교육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 특히 기초교육에 있어 예술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예술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기술과 정보에 의해 획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서도 존중할 수 있는 태도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 전통에 대해 지니는 긍지를 콜롬비아 사람들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이나, 기술의 발전은 어떤 측면으로는 현대인들의 눈을 속이는 속임수일 수도 있다. 또 굉장히 피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콜롬비아의 경우, 예술교육을 통해 어린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미리 발견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서 세계가 좀 더 열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 후에야 기술을 통해 예술을 접하거나 예술을 통해 기술을 접할 수 있는 열린 마인드가 가능할 것이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세상이 왔을 때 잘 적응하며 보다 민주적이고 참여적이고 관용을 가진 세계시민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정보와 기술은 이미 권력이다. 구글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전 세계의 정보를 습득해온 아이들과 컴퓨터조차 접근할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 사이의 급격한 격차는 한 인간의 삶, 혹은 한 사회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와 기술이 생산해내는 불평등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술발전의 차이가 실제로도 이미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불평등한 조건에 처해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소수의 기술과 정보를 소유한 사람들이 대다수의 부를 모두 소유하고, 더 많은 빈곤층이 생겨나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최근 콜롬비아의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둔 일은 전 지역의 인터넷 보급, 설치였다. 콜롬비아로 볼 때 모두에게 기술적으로도 평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주장하고 싶은 의견도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콜롬비아에는 여전히 작은 시골 원주민 부족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 기술과 정보 접근성의 공평한 분배 측면에서 이 아이들에게도 인터넷과 같은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기술만이 한 사람의 인생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도리어 이 아이들이 지금의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희소하고 유일한, 자신이 속한 부족 공동체가 여전히 지키고 있는 선험적인 가치, 철학, 문화를 지키고 습득하면서 현대사회와 공존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격변의 시기, 문화예술의 역할
콜롬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긴 전쟁을 끝낸 나라’다. 게다가 내일(5월 27일)이 콜롬비아 대선투표일인데 혹시 주간행사 참석 때문에 중요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 아닌가? 현재 대선 후보들 간에 평화협정 수행과 관련한 입장이 다르다. 대선 결과에 따라 변화가 있겠지만, 이런 격변의 시기에 콜롬비아의 새 정부가 취해야 할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원거리 투표기술이 아직 발달하지 못해서 투표하지 못했다. 마음으로 투표했다. 마음을 전하는 투표기술이 발달할 수 있기를!(웃음) 어떤 후보든지 문화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오랫동안 붕괴된 콜롬비아 사회를 재건설하기 위해서 문화정책은 필수적이다.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는 깊은 대화는 문화정책으로만 가능하다.
콜롬비아는 다인종 다문화 국가이기는 하지만 스페인의 카탈루냐처럼 분리 독립을 원하는 지역이 없다. 지역 간 갈등이 일어나지 않고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는 점이 콜롬비아가 지닌 잠재력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새 정부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각 지역 문화 리더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각 지역에서 일생을 바쳐 온 문화 리더들이 콜롬비아의 현실을 함께 타개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곳곳에서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문화산업, 창조산업 부문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다. 콜롬비아는 음악 산업 클러스터가 전국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는 일반 시민의 예술 기초교육부터 최고 수준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음악대학 교육까지 치밀하게 연결된다. 예를 들어 그래미상을 음악 산업의 척도로 본다면, 과거에는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쿠바 출신 뮤지션들이 상을 받아 왔는데 현재는 콜롬비아가 그래미상을 휩쓸고 있다. 음악 산업이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로 1998년도에 국내총생산의 3.2% 정도였는데, 문화산업 부문이 현재는 놀라운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콜롬비아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콜롬비아 동시대 예술인들의 활동이 궁금하다. 흥미로운 것은 보고타 중심부 볼리바르 광장에서 많은 예술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도 2016년 대통령 탄핵 정국 시기에 볼리바르 광장과 같은 서울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예술 검열에 반대하는 예술인들이 ‘블랙텐트’라는 극장을 세우기도 했다. 콜롬비아는 2016년 평화협상 진행 당시 국제적 예술가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가 3,500명의 시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내전 희생자 2,300명의 이름을 써넣은 천 조각을 이어 붙이며 볼리바르 광장을 뒤덮는 <부재 잇기(Sumando Ausencias)>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평화 시대를 염원하는 콜롬비아 동시대 예술가들의 활동은 무엇이 있는가?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자면, 콜롬비아는 상처가 굉장히 많이 나 있는 몸과 같다. 과거의 상처도 있고, 지금 새로 난 상처도 있고, 이런 상처들이 온통 섞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리스 살세도는 콜롬비아의 모순과 상처를 국제적으로 발화하고 있는 작가다. 예전에 영국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미술관 한 층 전체 바닥에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몸에 난 큰 상처처럼 균열을 낸 강렬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요르극장은 대극장과 소극장을 합쳐 연간 118개 공연이 장르 관계없이 다양하게 소개된다. 국제적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기능도 있지만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지닌 콜롬비아 작가들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가감 없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극장의 역할이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에서 소개한 조형예술가 마리오 구스만(Mario Guzman)은 윌라(Hilla)의 알헤시라스(Algeciras)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이 지역은 게릴라 피해를 가장 많이 본 곳이다. 통상적으로 게릴라 반군은 경찰서나 군 시설 등을 공격하지 성당을 공격하지는 않는데, 이곳은 예외적으로 성당이 피해를 입었다. 성당의 성상과 성모상이 온통 깨진 상태가 되었는데, 그는 이것이 콜롬비아 사람들의 상처라고 생각했다. 팔이 없는 성모상을 예술작품으로 보여주면서 재생을 이야기했는데, 그가 말하는 ‘재생’이란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상태로 회복해 가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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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 잇기(Sumando Ausencias)
고통과 상처는 고름을 짜내듯 쉽게 회복될 수 없다. 그것이 전쟁과 같이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면 더욱더. 결국 상처와 고통을 안고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 아니겠는가.
또한, 어떻게 우리 스스로 상처를 용서할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 현재 콜롬비아가 당면한 문제다. 평화협정 후 첫발을 내디딘 작업 중 하나로 인권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이 만들어졌다. 내전 희생자들이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직접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우리 스스로 말하고 토론해 내지 못하면 콜롬비아 사회는 절대로 치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문화예술교육자들과 나누고 싶은, 예술교육의 가치에 관한 본인의 철학을 마지막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
“예술가가 된다는 것, 예술 교육자가 된다는 것은 최고의 특권입니다.”
라미로 오소리오 폰세카(Ramiro Osorio Fonseca)
멕시코 과나후아토대학에서 스페인 문학을 전공했다. 콜롬비아와 중앙아메리카, 멕시코에서 30여 편의 고전과 현대 연극을 연출한 바 있으며, 멕시코 과나후아토, 바히오, 아과스칼리엔테스 대학 등의 연극학과 교수,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학교 문화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30년 이상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예술경영 및 공연 제작에 힘써온 그는 멕시코 그란 페스티발, 콜롬비아 이베로아메리카노 국제연극제, 코스타리카 산호세 아츠 페스티벌, 스페인 세비야 문화 페스티벌 창립자이자 총감독으로 활동했다. 콜롬비아 문화국 국장, 멕시코주재 콜롬비아 대사직을 거쳐,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콜롬비아의 초대 문화부장관직을 역임하였다. 현재 보고타의 훌리오 마리오 산토도밍고 아트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96년 콜롬비아 문화훈장, 1998년 도쿄 소카대학 명예박사 학위, 2000년 프랑스 명예훈장 등을 받았다.
사진_이재범(pov스튜디오)
- 우 연
-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및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기획실장(1998-2005), 서울예술단 기획PD(2006),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장(2007-2012)을 역임하며 서울아트마켓(PAMS)및 국제교류 사업을 총괄했다. LIG문화재단 기획실장 (2013-2014)으로 LIG아트홀 강남·합정·부산 3개 제작 극장을 운영했고, 현재 창작연극 제작극장인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으로 일하고 있다.
yeoniri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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