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네틱스, 삶의 변화를 예견하는 예술

예술로 읽는 미래② 시각예술

“사이버네틱 예술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이버네틱스화한 삶을 위한 예술이 더욱 중요하다.”

– 백남준 ‘사이버네틱스 예술’(1965) 중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 기술이 우리 사회에 혁신적인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기대를 그대로 대변하는 용어이다. ‘혁명’이란 과감한 단어를 우리 사회가 큰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4차 산업혁명이 진정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진정한 혁명일지, 아니면 과장된 명명론일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삶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영향력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화한 삶에서의 예술의 입장 혹은 역할은 어떠할까. 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필자가 기획했던 몇몇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를 반추하여 이에 대한 세 가지 의견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인류의 촉각(antenna)
첫 번째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속 미디어아트와 미디어 아티스트의 역할이다. 캐나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전자미디어가 서구 문명에 끼칠 영향을 예견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책 『미디어의 이해』(1964)에서 그는 예술의 역할을 기존과 다르게 정의했다.
“ (중략) 예술가를 ‘인류의 촉각(antenna)’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예술은 일종의 레이더로서 기능하여 우리로 하여금 사회 목표와 정신 목표를 발견할 수 있게 하고 시일이 경과한 뒤에는 그것에 대처할 수 있게끔 해주는 일종의 ‘조기경보(警報) 체계’로 작용한다. 예술을 이와 같이 예언적이라고 보는 개념은 이를 단순한 자기표현이라고 보는 통속적 개념과는 대비를 이룬다.”
미래를 위한 단초를 예술가의 활동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은 또 다른 의의를 지닌다. 이를 4차 산업혁명에 빗대어 이야기한다면,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미술에 활용하는 미디어아트는 미래를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예견하는 행위라는 것을 뜻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예술의 중요성은 단순히 테크놀로지를 도구로 활용한 예술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 혹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예술을 통해서 예견하는 것에 있다.

  • 얼굴 인식 알고리즘이 구름을 사람의 얼굴로 인식한 오류 장면을 인화하여 설치한 작업
    <Cloud Face> (오스트리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Ars Electronica Center) 설치, 2014~2017),
    신승백김용훈, 2012, Pigment print on DIBOND, composition of 50 images, 100 × 100cm each
    이미지 제공 : 신승백김용훈ShinSeungBack KimYongHun
기술과 예술에 대한 사유
두 번째는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창의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인간만 해왔던 예술 활동을 인공지능이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쏠리고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특정 화풍으로 사물을 묘사하는 것, 소설을 쓰는 것, 영화 대본을 쓰는 것 그리고 시(詩)를 만들어내는 것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결과물과 인간의 결과물을 구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정도로 기술력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예술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의 도구적 활용과 재현의 정확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대 미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현대 미술의 중요한 특징은 기계적 재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현대 미술가 혹은 미디어 아티스트에게 인공지능은 재현의 툴(tool)이 아닌 소재나 주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신승백김용훈’은 인공지능의 기술적 특성 그 자체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그들은 <클라우드 페이스>(Cloud Face) 작업에서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 시각 매체(카메라, 스캐너 등)를 통해 입력 받은 영상에서 인간의 시각적 인식 능력 일반을 재현하는 기술-편집자 주)과 얼굴인식 알고리즘을 활용하는데, 이 기술은 완벽하지 않아 가끔 오류가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아티스트는 이를 활용하여 구름 속에서 얼굴의 형태를 발견한다. 구름을 얼굴로 오인하는 알고리즘의 특성 또는 한계를 통해 이 작업은 인공지능의 판단 오류를 언급한다. 인공지능 역시 착각을 한다는 것과 얼굴을 인지한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실 인공지능의 예술 활동이 지시하는 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폭넓을 것이다. 인간만이 행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정신적인 활동과 영역들을 인간이 아닌 타자가 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예술가들은 오래전부터 상상해 왔었다. 그리고 첨단화된 기술은 이러한 상상을 더욱 정교하게 펼칠 수 있게 해주거나, 또 다른 사유를 촉발시키고 있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믿어왔던 감수성과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활동까지 기계에 의해 대치될 수 있을지 혹은 그것이 불가능할지를 예술(미디어아트)을 통해 상상하고 시도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고유성이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 성서를 필사하는 로봇으로 성서 전부를 필사하는데 9개월 정도가 걸린다.
    모 뉴스 매체는 이 로봇을 ‘홀리 로봇’(holy robot)이라고 불렀다.
    <bios [bible]>, 2007, robot installation, 가변크기
    이미지 제공 : robotlab
개체화로서의 미디어아트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바는 미디어의 위상이다. 얼마 전까지 미디어아트에서 미디어를 바라보는 관점은 인간 감각 기관의 확장이 주된 입장이었다. 물론 여전히 그 주장과 논지는 유효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최근의 기술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점은 바로 개체 간의 통신과 연결 그리고 인공화된 지능이다. 이들은 단순한 사용 도구가 아니라, 생명체와 비슷하게 나름의 발생과 진화를 겪어 개체화된 ‘기술적 대상’인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점차 고도화되고 독자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러한 개체에 대한 관점 변화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미학적 대상’과 다르게 인공지능, 로봇, 3D 프린터,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드론 등의 ‘기술적 대상’은 예술 안에서 인간과 기술 간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한다. 비슷하게 과학과 기술을 사회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출발한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Actor-Network Theory)’은 세계를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관계적 효과’로 이해한다. 네트워크상에서는 인간, 사물(컴퓨터)뿐만 아니라 정보까지 모두 행위자(actor)로 규정된다.
그런 관점에서 알고리즘을 이용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MIOON)의 작업은 또 다른 질문을 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작업에서의 주체(성)에 대한 것이다. 전시를 함께 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의 데이터를 최대한 수합하여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많은 데이터 가운데 숨겨져 있는 유용한 상관관계를 발견하여, 미래에 실행 가능한 정보를 추출해 내고 의사 결정에 이용하는 과정-편집자 주) 기법으로 분석한 이 웹 작업은 어떤 큐레이터가 어떤 아티스트와 많이 전시했는가, 누가 얼마나 많은 전시를 했는가를 보여주는 데이터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이 작업은 작품의 주체에 대해 지난 세대와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 질문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저작권의 문제로 연결된다.

  • <아트솔라리스 Artsolaris.org>, 2016, 웹아트, 가변크기
    이미지 제공 : 뮌(MIOON)
결국, 세 가지 제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술적 환경 변화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민감한 이들이자 그 변화를 수행하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라는 점이다. 이들은 인공지능이나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대상들을 예술에 과감하게 가지고 와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해준다. 테크놀로지는 단순한 예술 활동이나 공학 활동의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예술’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백남준 선생의 말씀처럼 기술은 사이버네틱스화한 삶을 구성하는 행위자라는 것을 말이다.
사진없음
성용희
현재 마쿠 디렉터, 싱가포르 오픈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2017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조감독을 역임했다.
3340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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