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로서 생활문화, 그리고 문화예술교육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해지고 향유되기 때문에 지역 범위, 즉 생활권 단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당연히 지역적 한계, 즉 지역성을 띨 수밖에 없다. 아리랑이 모두 다 같지 않고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특성을 지닌 채 구전되어 전해지는 것처럼, 생활문화는 개별성, 지역성, 특이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으며 지역 문화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물론 모든 생활문화가 지역성을 담고 있거나 지역 문화활동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생활문화가 주로 일상을 소비하는 ‘소비중심의 생활문화 욕구 충족’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의 소비중심 생활문화는 주로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자기만의 고유한 특질의 지역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추세를 따르는 경향이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
이러한 개인적이고 소비 중심적인 생활문화를 극복하고 생활문화에 지역성이라는 미세한 숨결과 공공성의 가치를 불어 넣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교육이다. 생활문화의 역동성과 공공성을 지역에 전파하는 촉매제로써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적이고 자족적인 생활문화 활동의 한계를 넘어 공공성과 지역성을 갖춘 생활문화로 나아가게 하려면 일상성, 접근성, 지속성, 자발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앞으로 지역문화예술교육은 이러한 방향으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문화, 지역 문화를 문화예술교육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고정관념들이 있다. 자족적인 단순 취미 동아리 활동을 생활문화 활동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 전문예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생활예술’(일상생활과 예술의 분리를 비판하면서 나온 개념이지만)을 규정하면서 결과적으로 장르중심의 아마추어 예술 활동이 생활문화(예술)활동의 전부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 문화예술교육 후 생활문화동아리를 구성하는 것과 같이 문화예술교육과 생활문화동아리 활동을 분리된 단계로 규정하는 것, 모듈화된 프로그램 틀로써 문화예술교육을 단정 짓는 것, 생활문화동아리를 유일한 문화커뮤니티 활동구조로 인식하는 것 등이다.
지역성을 띈 생활문화의 한 예로, 필자가 있는 ‘북구문화의집’에서는 잊을만하면 하는 행사가 있다. 그것은 담양 수북에서 진행되는 <모내기 퍼포먼스>라는 거창한 이름의 행사다. 올해에는 소박하게 몇몇 마을 유지 분들과 주민들이 추렴하여 행사를 준비했다. <모내기 퍼포먼스>는 농부의 생산 과정과 예술가의 창작행위의 맥락이 비슷해, 모내기하는 행위야말로 멋진 예술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박문종 화가의 주도로 2000년부터 때때로 해온 예술행사이자 농사 이벤트다.
이는 예술과 농촌의 일상이 만나는 현장이다. 퍼포먼스를 보고 있으면 ‘모내기’라는 전통적인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이 어울려 일하고 쉬고 노는 일과 놀이의 공동체를 표현하는 재현극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일노래를 부르며 일하고 난 뒤 못밥을 먹고 막걸리 한 잔 기울이는 것이 복원된 생활문화라면, 아이들이 “용그림 내걸었으니 비를 주옵소서!”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용(龍)그림 농기(農旗)’를 그리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이 된다. 그리고 예술가에게는 대지라는 화폭에 모심는 사람들이 점으로, 못줄이 선으로, 논둑이 면이 되어 하나의 땅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예술창작과정이 된다.
모내기 프로젝트가 계기가 되어 <땅과 예술>이라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생기게 되었다. 아이들이 동네를 누비며 흙장난, 물장난을 거듭한 끝에 시골의 한 예술가의 작업실이 마을 예술학교가 되고 있다.

주민들이 함께 하는 <모내기 퍼포먼스> (2012)
바퀴달린학교 <땅과 예술> (2017)
지역문화예술교육의 전환, 마을 예술학교
마을 예술학교는 마을 단위의 예술교육 공동체의 가능성을 여는 통합체계다. 기존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처럼 교육 커리큘럼에 지역의 문화적 역사적 자원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욱 통합적인 접근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마을 예술학교에서는 생활단위, 즉 마을 내에서 가능한 자원을 엮어 생활영역과 밀접한 예술교육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새로운 예술교육 실천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 예술학교는 ‘적정기술’의 개념과 닮았다. 적정기술은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지역적, 문화적, 경제적 조건과 양립할 수 있고 간단한 기술과 현지 재료를 사용하여 활용하고 그 지역의 사람들에 의해 도구와 과정이 유지, 작동할 수 있는 ‘적정’한 것을 지향한다. 마을 예술학교에서 그 지역의 자원과 내용에 의지하여 마을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잘 활용한 소박하고 작은 지역사회학교를 추구한다고 볼 때 ‘지속 가능한 기술로서 적정기술’이라는 의미처럼 마을 예술학교를 통해 ‘지속할 수 있는 삶을 위한 예술교육’의 실천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예술이 마을 단위의 적정교육(?)이라는 방법을 통해 지역 사람들의 삶에 적용되어 일상의 변화를 이끌어 나갈 때 지역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질 것이다.
마을 예술학교를 상상한다면
첫째, 마을 예술학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역사회학교로서 통합 모형이다. 따라서 마을 예술학교는 마을 단위로 각각의 개별적이고 차별적인 모습을 띈다. 마을 예술학교는 단일한 프로그램으로 존재할 수 없다. 마을 내 지역사회의 교육 문화, 주민자치, 복지, 환경, 생활문화와 연이 닿아 있어야 한다. 어떤 마을에서는 방과 후 학교와 연계가 된 ‘방과 후 마을 예술학교’, 함께 고민하는 주민 주체를 성장시키는 ‘시민 환경문화학교’, 또는 몇 개의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이 함께 예술을 배우는 ‘지역 아동마을 예술학교’가 있다. 또 다른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은 어떤 마을에서는 ‘예술 작업장학교’, 마을극장이 중심이 되는 ‘마을 극장 연극학교’ 등이 있다. 마을 예술학교는 장르 영역을 초월하며, 시민교육이나 평생학습의 성격에 더 가까울 수 있으며, 학교교육과 학교 밖 교육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둘째, 마을 예술학교는 지역의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마을 예술학교를 꾸리는 운영 주체, 교사들도 마을 사람들이어야 한다. 물론 당장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소박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재능과 일속에서 터득하는 지혜와 기술(암묵지)을 배운다. 예를 들자면 마을전파사 수리장인, 마을목공소 목수, 동네 예술가, 학교교사, 마을에 살고 있는 동화작가, 문화시설에서 활동하는 예술강사에 이르기까지 마을사람들로만 선생님의 인력풀을 구성한다. 숙련된 예술교사는 아니지만 마을사람들과 함께 학습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서서히 그 교수역량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마을 예술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특화한다. 앞서 여러 가지 마을의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른 몇 가지 학교유형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학교유형에 따라 독특하고 창의적인 예술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할 수 있다. 마을 수리장인들에게서 배우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워크숍’ 형식의 프로그램에서부터 노작활동이 강조된 집짓기 교육과 같은 ‘노작 프로젝트’ 형식의 프로그램, 마을텃밭을 가꾸고 마을 뒷산이 교육장소가 되는 현장 생태교육 형식의 야외 프로그램, 마을 작업실에 의한 시민예술교육 프로그램, 마을연극 프로그램 중심의 마당극 학교, 생활디자인을 배우는 바우하우스와 같은 ‘디자인 마을학교’, 마을놀이터를 고민하는 ‘놀이터 학교’, 적정기술을 배우는 ‘마을기술학교’ 등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마을 예술학교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지역문화예술교육, 로컬에서 하이퍼 로컬로
지역문화예술교육에서 말하는 ‘지역’은 가까운 곳에 있고 만질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며, 교육프로그램의 주제나 교육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동네 안에서 무형식의 배움이 생기고 이웃과 서로 관계하며 활동할 수 있는 관계의 터전을 말한다. ‘동네’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하이퍼 로컬(hyper-local)의 개념이다.
하이퍼 로컬이란 ‘아주 좁은 범위의 특정 지역에 맞춘 것’, ‘가장 지역적인 것’을 의미하며, ‘철저하게 시공간을 소지역에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지역문화예술교육에서는 대상이 자신의 이웃이기 때문에 자기가 사는 지역 관심사를 주제로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따라서 지역문화예술교육은 이러한 소지역성을 근간으로 접근성, 일상성, 관계성(네트워크)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 위 내용 중 마을예술학교에 대한 부분은 필자가 문화예술교육정책포럼(2017. 5. 31./광주문화재단)에서 발표한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전민룡
정민룡_광주북구문화의집 관장
광주북구문화의집에서 일하면서 문화예술교육과 시민문화활동을 매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문화를 디자인 하는 일들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현재 ‘착한목공소’ 등 공방 프로그램, 노작 중심의 예술교육인 <바퀴달린학교>를 2005년에 시작하여 2005년부터 2007년, 2012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9년째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