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을 직업으로 하는 기획자이지만, 기획의 방법론을 설명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그나마 잘 설명하는 방법으로,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 찾기’로 기획을 이해하면 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모든 사고에는 전조가 있으며, 그 전조를 바로 잡아내면 결과적으로 비용과 시간, 노력과 고통이 줄어든다.
문화기획을 이야기하는데 사고라니,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기획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의 방법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과거에 이미 지나가버린 문제의 근원을 찾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문화기획을 의뢰하는 경우 그 문제의 근원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인 문제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개 기획을 위해 만나 처음 듣는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이고, 기획자로서 필자의 질문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로 시작하게 된다. 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에 대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방법론이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다.
흔히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 아이디오(IDEO) 창업자 데이비드 켈리(David Kelley)가 디자인 싱킹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아이디오는 1980년 애플의 첫 마우스를 포함하여 1980년대 대중화된 컴퓨터의 초창기 인터페이스 디자인, 오랄비 어린이 칫솔 디자인 등 현대 디자인에 한 획을 그은 회사로 유명하다. 개념의 출신이 그렇다 보니, 디자인 싱킹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방법론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디자인(design)’의 어원은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로, 우리말로는 ‘지시하다, 표현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이다. 즉,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현실에 결론을 내놓는 것이 디자인 싱킹의 목표다. 디자인 싱킹은 실질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우리말로 기획이라고 부르는 과정 전체의 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디자인 싱킹은 1. 공감하기, 2. 정의하기, 3.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4.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기, 5. 테스트하기의 다섯 단계로 나누어진다. 아이디오의 업적은 이 다섯 단계를 분리하여 프로세스로 정착시킨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 중 1~3단계를 세 권의 책과 함께 다룬다. 4, 5단계는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적용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고, 이는 자신의 기획 영역에 따라 너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하기: 공감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디자인 싱킹의 첫 단계인 공감을 위해서는 기획 대상의 상황과 입장을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문화기획 영역에서는 특정 대상인 경우보다 불특정다수인 경우가 많고, 이는 문화예술교육 기획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연령대나 지역 특성 등을 기본적인 대상의 상수로 설정하지만, 이런 기준점으로 기획을 진행하다 보면 실질적인 교육당사자의 니즈를 파악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워싱턴포스트]와 [뉴요커]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특히 학술적 연구를 현실 상황과 결합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타인의 해석』에서 타인을 오해하는 일은 타인의 태도와 내면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착각과, 특정 행동은 사실 특정 상황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감정이나 감각을 서로 해석하기 어려우며,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직접 사람을 만날 때 그에게 속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타인을 오해하는 일이 일어날 때, 타인만큼이나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일 것이다. 글래드웰은 타인의 상황과 함께, 그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분리하여 생각해보도록 제안하고 있다.
정의하기: 정의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 찾기와 이해하기
문화기획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교육 기획에서 객관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획하는 경우는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는 예술인으로서의 경험, 교육자로서의 경험이 이전에 존재하는 교육 형식과 방법론을 따라가는 경향이 더 크다. 하지만 경험만으로 기획할 때 그 기획이 성공하는 경우는 이미 익숙해진 장르 내에서를 제외한다면 없다고 보아도 좋다.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사고를 예측할 수 있는 데이터가 이미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 있다면 이미 해결했을 테니까. 그러므로,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아무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그 원인을 데이터 속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흔히 기획자를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결과를 내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기획자는 데이터와 상황을 기반으로 분석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육의 수신자가 어떤 교육을 원할까’라는 질문은 ‘수신자에게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이전에 ‘수신자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를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미 성공한 기획을 이식하는 경우 생각보다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이러한 이해의 기반은 객관화된 데이터에서 습득하는 것이, 직관적인 커뮤니케이션이나 경험적 이해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방법을 찾아내는 방법을 찾아내기
기획자로서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많은 경우 기존에 주어진 조건 중 어떤 지점을 없는 것으로 가정하거나,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한 번에 돌파’하는 획기적인/놀라운/새로운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있었다면 외부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기획자가 아니라, 그 현실 안에서 살고 있는 당사자가 더 먼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 구상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객관화다. 그러나 객관화에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연습과 훈련의 방법으로는 자신이 전문성을 갖지 못한 영역에서의 기획 진행과 성공 프로세스를 관찰하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
‘크로스오버’의 사전적 의미는 정형화되어 이해되는 다른 장르가 한 작품 안에서 교차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레이먼 벌링스는 책 『시장을 뒤흔드는 크로스오버 아이디어』에서 다른 산업 영역의 프로세스와 아이디어를 내가 진행하고 있는 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적용을 통해 어떤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가를 사례로 설명한다. 이 사례들은 그 결과가 비현실적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둔 이야기들이라 현실감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나의 관점은, 이미 이 일을 포함한 생태계에서는 아주 익숙한 방식이며, 나 또한 그렇게 익숙해져 있다는, 자신의 편견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성공한 모든 기획은, 밖에서 바라볼 때는 놀라운, 기적과 같은 일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문화예술교육은 힘이 세다. 그 힘은 예술이 가진 공감과 이해의 힘이 개인에게 작용하고, 그 작용들이 모여 우리의 문화가 되고, 그 문화가 다시 그 기준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성장하는 데서 온다. 이 책들은 디자인 싱킹의 관점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포함한 문화예술기획의 사이클을 잊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전문가야’ ‘내가 이쪽은 다 알아’ 하는 오만과 그 오만에서 시작하는 오판으로 필연적으로 발생할 사고를 막기 위한 방법론이 디자인 싱킹이다. 그러므로 디자인 싱킹은 성공하기 위한 방법보다는 실패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 김상윤
- 문화인류학을 공부했지만 현장에서 일하며 공부하는 일이 더 많다. 정책 기획, 기업의 서비스 기획, 공간 기획, 제품 기획, 전시, 출판 등 기획이라면 영역을 가리지 않고 있지만, 이 모든 일이 결국 문화를 이루는 부분들을 기획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연구소에서 19년째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miseryrunsfast@gmail.com - 이미지 제공_김영사, 한겨레출판사, 더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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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를 맞아 다시 책을 잡으려는 중이었는데 반짝이는 도서리스트들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