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사회주택, 소셜 디벨롭먼트(social development) 쪽으로 대학원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LH(한국토지주택공사)연구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게 잘 되면 내년에 재밌는 걸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부를 계기로) 작가들 데이터 모으는 것도 그렇고, 제가 했던 것들을 실효성 있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는 집도 짓고, 작업실도 만들고, 아예 마을 전체를 설계하는 쪽으로 해보고 싶어요.
[작은도시이야기]라는 뉴스레터 발행도 2년째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을지예술센터를 나오면서 네트워크를 더 조사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여기 있는 예술가들이 왜 중요한지 누군가는 기록하면 좋겠다 싶어서 인터뷰 다니고, 조사하고, 이벤트 있을 때마다 글로 정리했죠. 그 데이터를 갖고 전시를 기획할 생각도 있어요. 가끔 중구의회에서 무슨 얘기들이 오갔는지 자료도 찾아보고요(웃음). 2024년에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의 아트랩 페스티벌이 인천에서 본사가 있는 장충동으로 옮겨왔거든요. 새로운 지역에 왔으니까, 지역에 있는 예술가, 문화 자원과 엮고 싶던 차에 연락이 닿아서 파트너 기획자로 작가들이랑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로컬 아트 프로그램〉 ‘이웃, NEIGHBORHOOD’도 진행했습니다.
2016년 서울 중구청의 예술공간 지원사업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로 산림동에 터를 잡았습니다. 지금의 ‘힙지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을 텐데, 그때는 어땠나요?
지금 하고는 매우 다르죠. 작업하다 밤에 나가면 어둡고 무섭고. 입주하고 나서 골목에서 퍽치기 사고도 있었어요. 조명도 거의 없어서 처음 했던 게 작업실 건물 밖에 조명을 다는 거였어요. 간판 형태로라도 등이 있어야겠다 싶더라고요. ‘R3028’ 팀이 함께 쓰는 공간이었고, 아래층에는 도도새 그림으로 유명해진 김선우 작가가 있었어요. 작가들한테 공간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참여했던 작가들이 각자 역할을 다하게끔 성장했고, 그게 지역에도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아요.
세운-을지로-충무로는 오랫동안 예술가, 디자이너, 메이커 등 창작자의 강력한 배후지로 역할을 했습니다. 그만큼 이곳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창작자들이 많았는데요. 작업을 위해 이곳을 드나드는 것과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건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학교 다닐 때는 여기서 수업한 적도 있어요. 교수님들이 여기서 이런 거 할 수 있으니까 배우라 하셨죠. 그때는 이 동네 힘들다, 냄새, 쇳가루 때문에 못 오겠다, 필요할 때 잠깐씩 와야지 생각했는데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니까 제 현실이 자각되더라고요.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때에, 세운상가에 있던 ‘스페이스바421’에서 전시를 했어요. 그때 동네를 보니까 완전히 다르게 감각하게 되더라고요. 여기서 뭔가 해볼 수 있겠구나. 그래서 들어가게 된 거예요.
공공에서 세금으로 지원해 주는데, 지역 주민과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야 건강할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제가 여기 올 수 있었는데 예술가로서 뭘 해야 하나. 학부 때부터 만드는 게 너무 좋은데 이게 전시장에서 작동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 만족으로 끝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 때문에 교육대학원에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예술가면서 교육자가 되고 싶은 입장에서 을지로에 온 건데, 이 지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맞물린 거죠.
공공의 지원을 받았으니 공공에 내어주는 게 의무라고 인식했나 봐요.
그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작업실에서 행복했어요. 여기 오래 있으려면 저만 행복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저희가 있음으로써 주위 분들도 좋고, 또 누군가 작업실이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까 중요하다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가끔 현타가 올 때도 있었어요. 이러다 내 작업은 언제 하냐(웃음). 제가 생각했던, 하고 싶었던 예술이 되게 협소했던 거죠. 오랫동안 그걸 해왔으니까요.
저는 고대웅 작가를 작가보다 기획자, PD로 인식했는데 본인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제가 을지예술센터에서 한 일이 좋은 작가를 모셔 와서 빛나게 해주는 역할이었는데, 그것도 되게 즐거웠어요. 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한 편으로 계속 드는데, 그러려면 성장하는 작가들에게 느끼는 부러운 감정을 잘 정리해야겠다, 내 정체성을 정리해야겠다, 그런 나와 한번 마주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작은 도시 이야기]로 글을 쓰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제가 원했던 작가로서 삶도 있지만, 저랑 맞아서 지향했다기보다 그게 좋은 거라고 학습했던 것 같아요. 조금 떨어져서 인지하게 되고, 덕분에 조금 더 자유로워졌고, 남들 잘할 때 찾아가서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을지예술센터에서 한 역할을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민원 담당이었어요(웃음). 거기서도 각자의 역할이 있었죠. 예를 들어볼게요. 공공예술프로젝트로 운영되었던 ‘을지서비스센터’의 경우엔 다른 PD가 작가랑 계약하고 야외에 작품 위치도 정하면 제가 해당 위치의 건물주를 만나고 재단하고 협의하고 같이 상인회장 찾아가는 거죠. 의사소통은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공무원과 일할 때는 기관장이 호의적인 편이어서 좀 수월했거든요. 사실 을지로 사장님들하고 조율하는 게 몇 배 힘들어요. 일단 박카스 준비해서 만나고 얼굴 비춰야죠. 건물주 만나려면 흥신소처럼 등기도 찾아보고요. 고생할 사람이 고생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해요.
아까 마주한 시간으로 정리한 본인의 정체성은 뭔가요?
지금 저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 형태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좋은 사람들 모셔서 좋은 자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제가 정리한 ‘예술가’라는 정체성은 예민한, 감도가 높은 편에 속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그냥 지나치는 것을 보거나, 못 듣는 것을 듣거나, 못 움직였던 걸 움직이거나, 그걸 공유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살아온 서사가 예술가인지 얘기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형태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로 작업할 수 있으면 하고, 더 잘하는 사람들하고 나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잘하는 사람들이 잘하는 건 그대로 또 즐거운 일이니까 그걸 한 다발로 묶을 기회가 있으면 엮어보기도 하고, 좋은 제도나 정책이 있으면 나누는 기회도 만들고 싶어요.
소셜 디벨로퍼에 관심이 생긴 걸 보면 공간에서 제도로 나아간 것 같아요.
작가들이 공간이 정말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자기 공간과 섞일 수 있는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왔다 갔다 해야 건강하게 예술가로 성장하는 것 같아요. 을지로는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잖아요. 그 덕분에 다양한 군집이 오는 걸 봤죠. (인터뷰하는) 여기 ‘아트쉬프트’에 잭과 전아영 작가가 있으니까 유학 다녀왔거나 외국 국적의 작가들이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더라고요. ‘육일봉’도 퀴어와 함께 하는 활동이나, 자신도 신진 작가지만 ‘초(超)신진 작가’를 위한 워크숍도 하고요. 각자가 지향하는 대로 존재함으로써 중력이 생기고, 예술을 안 하는 사람도 거기서 위안을 받는 거잖아요. 나 같은 사람이 있네, 숨통이 좀 트이네, 이런 게 도시 전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거든요. 공공에서 작은 단위의 작업실 같은데 신경 쓰긴 어렵겠지만 그런 안전장치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입정동이 허물어질 때 힘들었어요. 거기 공공 소유 건물이 몇 개만 있었어도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해줬을 텐데,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 싶죠. 공공의 역할, 안전장치 역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부키’라는 회사를 만나면서 가능성이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거주하던 분들은 임대료 문제로 쫓겨나지 않고, 작가들은 공간을 지원받아서 성장하는 시간을 버는, 서로 원하는 걸 합치는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장인의 화원〉 〈철의 골목〉 〈을지산수〉 등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거리에 펼쳐지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되게 단순해요. 누군가가 점유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곳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죠. 빈 땅, 거리, 건물 외벽이나 공원 같은 것이 그런 역할을 하는데 거기 관심이 많이 갔어요. 2024년에 〈자립건축사무소〉라는 프로젝트를 했던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생들이 R3028 스튜디오를 건물 외부랑 건물 내부 전시 공간이 이어져 있다고 해석해 주더라고요. 저한테 공간은, 제가 점유하는 공간은 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제가 딛고 있는 곳을 어떻게 같이 쓰느냐가 중요하죠.
기억에 남는 것 중에 〈도시열섬〉이라고 거리에서 전시하고 스모그를 깔았는데, 사장님들이 공장을 열고 “여기가 VIP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연기 속에서 아저씨들이 같이 앉아서 술 마시고 춤추고. 마지막 행사라서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마무리해서 되게 좋았어요. 같이 나누는 장소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이야기를 감각하는지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는구나. 우리가 다른 것을 만들어볼 수 있겠구나. 다음날 가보면 거리는 깨끗하고, 쇳소리 나고, 그러니까 다 같이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은데, 지역에 계신 분들 포함해서 거기 있던 관객들이 다 같이 감각한 것이 공통의 기억이 되고 계속 쌓이는 것 같았어요. 첫해 힘들었던 게 다음 해 편해지고, 힘든 일 생기면 누가 도와주시고, 그렇게 관계망이 형성되고 서로를 도와가고 이해해 가는 것들이 있었어요.
을지로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땠나요?
저에게는 모두가 선생님이었어요. 을지로에서 와서 배운 게 많은데 그중 하나는 저희 아버지 세대를 제대로 보게 된 거예요. 같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 생겼죠. 그러면서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지역에 쌓여있는 이야기에 관심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같이 지낼 수 있는지 학습하게 하는 많은 분이 계셨어요. 동네 아저씨들도 그렇고, 구청 직원들도 많이 도와주셨죠. 사업자 만드는 거, 견적서 쓰는 거, 공모사업 쓰는 거,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고 기다려주고 도와주셨어요. 때로 멱살 잡히고 술도 먹었지만, 울타리 같았어요. 울컥하네. 그래서 너무 감사했죠. 어쨌든 그분들 덕분에 많은 걸 할 수 있었어요.
이런 일이 다른 데서도 가능할까요?
상상해 봤는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을지로가 가진 여러 요소 중에 먼저 자리 잡은 작가님들이 만들어 놓은 분위기(mood)도 되게 중요한데요. 지역하고 작가들이 맞물려서 만드는 어떤 분위기가 저변에 깔려 있었죠. 제가 산림동 갔을 때도 거기 사장님들이 작가나 학생들을 고객으로 응대하던 분이었고, 그중에 미대를 나오신 분도 계셔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예술가 들어오면 동네 망친다고 이야기할 때 조용히 하라고, 너희는 본질을 못 본다고 하면서 응원해 주셨죠. 도시재생 사업에서도 계속 연결되고 확산하는 과정이 있었고요. 예술가들이 처음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해주는 분위기, 어떻게 보고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랄까.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게 절묘했던 것 같아요. (다른 곳에 비해) 을지로는 훨씬 느슨하게 있어요. 있다가 성장하면 나가고, 필요하면 또 오고, 성장했더라도 좋으면 계속 있고, 누가 오면 환영하고, 그런 분위기를 애초에 계셨던 선배 세대가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하나로 뭉치기도 어렵지만 서로의 간섭도 없죠. 지금은 이런 것들을 다른 데 이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 지역을 설계한다고 하면 여기 있던 가치들을 복사하거나 일부 다른 형태로 변경해서 적용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기획하거나 참여했던 프로젝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장인의 화원〉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을지로 산업 골목 내에 조경 작업을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중구청 시장경제과와 기념비적인(monument)녹지공간을 만들어보자고 했죠. 그때 사장님들이 키웠던 식물 이야기도 들었는데, 볼트공장 사장님 아버님이 뒷산에 심으셨던 라일락이 있었대요. 매해 식목일마다 심어서 군집이 됐는데 거기가 개발 지역으로 묶여서 두 그루를 뽑아오신 거예요. 처음에 고무통에 심어놨을 때는 잘 안 자라더니 저희가 옮겨 심고 나서 꽃이 폈어요. 어쨌든 만들어놓고 보니까 처음에 싫어하셨던 분들이 물 주고 계시고, 같이 아끼고 청소하고 그러시더라고요. 거기가 그전엔 고양이 배설물 때문에 쥐약을 뿌려서 고양이 새끼들이 죽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화단 흙이 생기니까 고양이들로서는 파묻을 수 있는 거대한 화장실이 생긴 거잖아요. 덕분에 파리 끓는 게 많이 없어졌죠. 훌륭한 무당거미들이 나타나서 엄청나게 큰 거미줄도 치고. 작은 변화가 예상치 못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도시나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려는 예술가나 기획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견디세요(웃음). 5년 이상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어쨌든 그런 분이 지역에, 그 위치에 계시는 건 되게 중요해요. 그리고 잘 견뎌야죠, 나를 잘 지키면서. 상처를 승화시키면서. 그리고 한곳에 오래 있다 보면 내가 만든 거야, 내 영역이야,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거든요. 그런데 오는 사람들 환영하고 공동의 결과를 같이 나누고 성과를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해요. 같이 만든 거니까 누구 거랄 게 없다, 나는 내 역할을 한 거다, 그렇게 마음먹는 게 좋습니다.
• 인스타그램 @chngdoo
- 임혜경
- 문화기획자. 문화정책, 도시재생, 공간운영 분야에서 일했다. 세운협업지원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상인의 감각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담론보다 실천을 선호한다. 집수리기술을 연마하며 새로운 일과 삶의 방식을 모색 중이다.
hyegyung.lim@gmail.com - 인터뷰 사진_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프로젝트 사진 제공_고대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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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를 관통하는 예술가의 우연한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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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웅 미술작가·작은도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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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웅 미술작가·작은도시이야기 를 읽고 어릴때 철근덩어리가 쌓여있고
쇳소리 망치소리 나던 그곳 을지로 골목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예술로 다시 태어났으니 어른이 되어서도 자주 가 봐야 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