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전공하고, UX 디자인 분야, 영상 및 프로젝트 감독으로 활동하는 등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간의 작업 여정이 궁금한데요, 어떤 작업을 해왔고, 무엇이 작가님을 아티스트로 이끌었나요?
초기에는 비디오자키(VJ)로 활동하며 공연이나 패션쇼 등 무대 영상을 믹싱하는 디지털 작업, 영화 아트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 작업을 했어요. 이후 서울 재개발 지역이나 소멸지역 빈집 등에서 게릴라성으로 진행하는 어반아트 작업을 통해 그 공간에서 받은 영감을 그래픽 패턴과 설치 작업으로 풀어내면서 디지털에서 물리적인 작업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키네틱, 설치, 그래픽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고 있고요.
‘빠빠빠탐구소’의 탐구대장이라는 소개를 봤는데요, 빠빠빠탐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빠빠탐구소는 가상의 스튜디오에요. ‘빠빠빠’의 의미는 제가 빠키이니까 발음적인 유사성으로 상징화한 부분도 있고, 어린아이의 옹알이 소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기들이 언어를 배우기 전에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다양한 소리로 의사를 표현하는 옹알이를 상징한 것으로, 저의 창작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와 의지 등을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빠빠빠탐구소’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그렇다면 ‘빠빠빠탐구소’의 탐구대장은 무엇을 탐구하시나요?
세상을 탐구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요, 탐구의 결과물이 쌓이는 곳이 아니라 작업을 대하는 태도, 즉 무엇이든 탐구하는 태도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가상의 탐구소에서 가상의 인물로 설정한 것은 성별이나 출생 연도 등의 일반적인 정보나 관념으로 정형화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정체성으로 탐구하는 탐구 대장의 역할을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단편영화 연출, 공연 및 무대 연출, 입체 설치 및 공간 연출, 그래픽 디자인, 키네틱 아트,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일면 모두 연결된 듯하지만, 또 한편 각기 다른 영역을 오가며 작업해 오셨어요.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아이디어, 또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다루고 있지만 불완전한 장치를 통해 ‘시각적인 유희 요소’를 만드는 것, 그리고 ‘관계성’으로 사람과 사람, 저와 작업, 작업과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진행형의 작업을 하고자 했어요. 각기 다른 매체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작업이 다음 작업으로 연결되며 주제나 매체적 순환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내면적으로는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등에 대한 사고가 바탕에 있는데, 모든 작업이 존재했다가 소멸하는 순환의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유한한 삶과 순간 자체를 인식하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 자신과 세상을 탐구하고 좀 더 재미난 방법으로 소통하면서 살아갈 방법들을 찾고 싶어요.
애플, 현대자동차 등 다양한 기업 및 프로젝트와 협업했습니다. 브랜드 및 기업과의 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업 또는 다른 작가들과의 협업에서도 무엇보다 제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바탕으로 저만의 컬러를 온전하게 유지하면서 유연한 변형과 협업을 펼쳐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협업 작업이 작가 본인에게 주는 영감 또는 기회는 무엇인가요?
주로 혼자 작업하는 데 협업 과정이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역할로 그동안 저만의 방식으로 접근했던 작업을 이전과 다른 방식의 해석을 접하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관계를 가지며 조우하게 되는 거죠. ‘관계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결합할 기회들은 저의 작업을 만드는 또다른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흥미로운 것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될 때 기존에 행했던 작업의 이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에요. 마치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가 우주의 기초원소는 요소가 아닌 ‘관계’라고 했듯이 독립된 작업으로서의 존재가 다른 분야와 협업했을 때 만들어지는 ‘관계’를 통해 또 다른 상상력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저와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면 틀을 가지지 않고 조우해서 감각이 확장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되면서 제 안의 에너지 요소가 재료가 되어 흥미롭게 실험할 수 있는 자극이 시작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에 늘봄학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인 ‘찾아가는 마스터클래스’에 강사로 참여했는데, 진행한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늘봄학교 마스터클래스는 초등학교에 작가 및 다양한 전문가가 방문하여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인데요, 저는 <기하학 패턴 놀이>로 제 작업을 베이스로 그림 그리기, 만들기, 색칠하기, 패턴 만들기 등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세종시 의랑초등학교 학생들과 교감했어요. 수업의 과제를 제시하고 아이들이 각자 본인의 방식대로 해석한 신선한 표현을 펼쳐냈어요. 오래전에 어린이 워크숍을 했을 때 학교를 그리면 네모난 회색 건물에 네모난 창문과 문을 그려서 당황한 적이 있었어요. 지금 아이들은 그런 틀이 많이 깨졌다는 변화가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들이 가진 상상력이 더 확장될 수 있도록 예술이 좀 더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정말 신기하게 표현하는 과정과 결과물을 바라보며 제가 되려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저는 어린이들의 상상력, 창의력을 확장 시킨다는 부분에서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수업하면서 이렇게 창의적인 아이들의 10년 뒤, 20년 뒤 모습은 어떨까 굉장히 궁금해지더라고요.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작업을 보면 어린이들이 훨씬 더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감상하는 좋은 감상자일 것 같아요.
제 작업을 소개하는데 이미 봤던 작업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세종시 국립어린이박물관 로비에 제 작품이 소장작품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학생들이 그 작품을 본 것 같더라고요. 요즘은 아이들이 정보습득이 빨라서인지 궁금한 것을 사전에 리서치하는 것 같아서 놀랐어요. 그러다 보니 수업에 반응도 잘하고 집중을 잘하더라고요.
기하학적 도형과 컬러를 조형적인 주 언어로 사용하고 계시는데요, 이러한 조형적 요소를 선택하게 된 배경과 의미가 궁금합니다.
제 작업에는 점, 선, 면, 형 등 사물을 이루는 조형의 기본 요소들이 질서나 규칙 안에서 만들어지는데, 이런 작업들은 VJ로 활동하면서 영상 클립을 많이 만들면서 형성된 것 같아요. 조형적 요소나 컬러가 단순히 하나로 존재할 때는 의미가 없지만 두 개 이상의 형태, 컬러를 반복적으로 깜빡이며 만들어내다 보면 시각적인 일루전(illusion, 착시)과 같이 컬러 간의 관계, 긴장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영상 클립의 이미지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진 패턴의 결과물들은 색상이 무척 다채로워요. 이런 디지털 패턴 이미지에 들어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업의 과정에서 걸러지고 걸러져 기본적인 요소인 기하학적 도형으로 간소화되었어요. 이렇게 점점 심플해지는 과정을 거치다가 다시 매체에 따라 확장되고 복잡해지면서 작업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작은 시각적 단위들은 단순한 형태(form)에 머물지 않고 반복과 균형적 배치를 통해 리드미컬한 박자감(beat)을 가진 대상으로 변모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존재하던 것도 사라지기도 해요. 인간의 육체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없어지죠. 소멸되는 것을 슬프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작과 끝은 늘 같은 것이라는 믿음을 애써서 갖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존재하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영원히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지만 말이죠. 순환이죠. 작품에서도 보면, 제 주위에 마주하는 사물들을 선이나 면, 컬러의 요소들을 분해하고 반복해서 패턴 이미지들을 만들어나가는데 이것도 또 다른 순환이에요. 어떤 작업은 모터를 이용한 움직임을 통해 이미지들이 연속적인 리듬을 만들고 확장해요. 마치 삶의 모든 것이 흘러가고 다시 되돌아오는 것처럼요.
그간 다양한 공간에 놀이적 상상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특히 공단, 거리, 박물관 입구와 매장 등의 공간에 개입하여 활력과 균열을 동시에 일으키는 작업들이 특별한 에너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을 풀어내는 빠키 작가만의 방식이 궁금합니다.
제 작업에 도형이 계속 변화하고 확장되는 이미지가 많은데, 프로젝트를 진행할 공간에 오래 머물며 이러한 요소들의 조합과 결과물을 계속 상상합니다. 그 공간에 저든 관객이든 들어섰을 때 관계하는 것이나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가 흘러가고 다시 되돌아오는 공간의 흐름, 그리고 공간에서 느껴지는 것들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시공간에 있든 동일한 요소의 반복이고 과거나 미래나 그 지점은 내가 어디에 눈을 두느냐에 따라 하나의 점(순간)일 뿐이라는 것이에요. 그 속에서 저는 시각적 유희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불안과 불규칙으로 가득한 무질서한 상태 속에서 시각적 유희인 ‘놀이’를 저만의 의식(ritual)을 통해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거죠.
작품 이미지가 반영된 의상을 착용하신 것을 보았는데 의상도 직접 제작하나요?
몇 년 전에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작가로 참여하면서 공간 및 설치 작업과 의상을 제작해서 관람자가 패턴 의상을 입고 작품의 일부가 되는 참여형 전시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저도 그때 만든 의상을 입고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는 일들이 있었어요. 제 자신이 작품의 하나의 요소가 되기도 하고 또 확장되기도 하는 것 같아서 종종 입는 것 같아요.
디제잉, 퍼포밍, 라이브 페인팅 등 직접 관객과 만나는 이벤트성 작업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관람객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작가의 방편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본인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위치와 의미를 점하는지 궁금합니다.
전시 방식에서 공간적인 공감을 할 수 있지만 공연 형식이 포함되면 관람객과 작업과의 에너지 흐름을 시간 개념과 함께 교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음악을 틀거나 혹은 퍼포먼스를 하면서 제 자신에게 또 다른 역할을 만들어 가듯이 새로운 시도나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작은 에너지들이 모이고 이전과 다른 인풋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또 하나의 실험장치가 만들어지기도 하죠. 얼마 전 했던 개인전 《형박색음 形拍色音 Form : Beat ≒ Color : Frequency》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작업에서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진 공감각적 작업으로 진화하길 기대하고 있어요.
상당히 선도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NFT 발행 및 거래의 경험은 어땠나요? 작가로서 디지털 작품의 거래 및 향유 측면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는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들여다보고 연계해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해보는 편이에요. NFT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이전인 이른 시기에 혼자 리서치하면서 NFT를 발행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NFT와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대중화가 됐는데, 이 시기에 업비트와 같은 코인 관련 기업들과 NFT를 발행해 판매하기도 했죠. NFT는 디지털 작품을 사고팔고 또 작가의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 거래 방식이라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었어요. NFT 발행, 메타버스에서의 전시 등을 통해 새로운 유형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도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해온 작업 중 스스로가 가장 인상적으로 꼽는 작업은 어떤 것인가요?
모든 작업은 각기 인상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초창기에 시행착오를 겪고 새롭게 시도하려고 했던 작업이 기억에 남아요. 우연히 접한 버려진 장소에서 영감을 받아 설치 작업을 하고 비디오로 과정들을 기록했었어요. 기록하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설치 퍼포먼스를 즉흥으로 시도하고 연출하면서 영상 작업을 했는데, 이 영상을 인디뮤지션의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재편집해서 만들며 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어요. 누구에 의뢰받은 것도 아닌데 자발적인 행위와 즉흥적인 연출로 의외로 해외에서 반응이 좋아서 더 기억이 남는 거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장소에 대한 영감이 큰 편이에요. 저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했을 때 마주하는 에너지가 크게 와 닿았어요. 생경한 감각을 느끼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노출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기존에 생각했던 절대적 가치가 변화하고 다른 시각과 생각을 탐구하면서 다각적으로 작품을 발전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공간을 이동해서 작품 활동을 할 기회를 열어두고 낯선 환경에 저를 노출해보고자 합니다.
· 홈페이지 www.playvakki.com
- 심지언
-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 비엔날레 등에서 전시기획자로 근무했으며,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 전시팀장 등을 역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운영위원(2022~2024), 해외문화홍보원 월간지 [KOREA] 기획·편집 자문위원(2021) 등 공공기관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정책과 미술시장, 국제교류 등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하고, 시각예술 전문 매체인『월간미술』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며 동시대 미술 현장을 기록・진단하고 있다.
rachel.monthlyart@gmail.com - 인터뷰 사진·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빠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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