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삼춘(제주에서 남녀 무관하게 웃어른을 일컫는 말)에게 물었다.
“삼춘, 언제까지 물질할 꺼?”
삼춘이 답했다.
“나는 언제까지고 하고픈데, 나보다 바다가 늙어 못할 거라. 해녀가 줄어 바다에 잡을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세상이 발전하는 만큼 바다는 늙어가더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막내 해녀인 명자 삼춘의 말이었다.
“삼춘, 언제까지 물질할 꺼?”
삼춘이 답했다.
“나는 언제까지고 하고픈데, 나보다 바다가 늙어 못할 거라. 해녀가 줄어 바다에 잡을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세상이 발전하는 만큼 바다는 늙어가더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막내 해녀인 명자 삼춘의 말이었다.
2012년, 우연히 제주에 들렀고,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 모습에 홀려 카메라를 이고 지고 바다에 들었다. 온평에 살면서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찍었던 해녀 사진은 나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명자 삼춘과 나도 이제는 함께 늙어가고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건만, 바다가 같이 늙었다니.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터였다.
삼춘의 이야기를 듣고 바닷속에 다시 뛰어들었다. 바다가 희영했다(‘허옇다’의 제주 방언). 흔들리며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할 바다풀(제주에서 해조류를 일컫는 말)들이, 바다풀 사이에서 놀고 있어야 할 바다 생물들이 없었다. 과거 촬영했던 사진과 영상을 뒤져보았다. 변화가 너무나 분명했다. 나 역시 여전히 제주에 살고 있었고, 여전히 종종 바다에 들곤 했건만….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강렬했던 삼춘의 표현을 가져와서 <해녀보다 빨리 늙는 바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해녀 삼춘들과 함께 2020년의 온평리 바다를 다시 찍기 시작했다. 온평리 위성 지도를 기반으로 하는 웹페이지를 하나 만들었다. ‘여’라고 하는 해녀들의 물질 스팟을 표시하고, 2013년 찍어두었던 과거와 2020년을 비교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었다. 해녀들이 그 장소를 회고하는 구술을 함께 넣어 두었다. 누구나 그 변화를 직접 볼 수 있게끔.
감태가 가득한 2013년의 바다와 백화현상이 진행된 바다.
theageingsea.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theageingsea.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위)가 죽은 감태
프로젝트의 진행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나온다. 사실 명자 삼춘은 이 파국의 징후를 보았더란다. 어느 날 감태가 잎 부분은 없고 줄기만 빼짝하게 남아있었다. 줄기만 남아있으니 무성한 감태 잎 아래 있어 찾기 어렵던 전복이며 소라가 너무 잘 보여서 횡재했다고, 기뻐하며 마구 건져 올렸다. 그리고 그걸로 끝. 그 후로 감태도, 전복과 소라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것이 ‘바당(바다)이 죽기 전 전조 증상이었구나’라는 사실은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다음에 깨닫게 되었다.
명자 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작업이 과거와 현재의 강렬한 대비였다면,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는지에 대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후위기가 거대 의제이자 담론으로 존재하지만, 너무 거대한 흐름이라 압도되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작게 접근해 보자. 온평리 마을 지도로 시작했으니, 온평에서 해녀들이 살면서 느꼈던 바다 변화의 원인을, 제주 지역의 변화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 사진 매체를 넘어서 팀원을 모아 바다풀 책도 만들고, 그림과 애니메이션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 이 프로젝트는 미디어아트로 확장되어 2025년 3월 제주현대미술관 수장고에 전시될 예정이다.
바다와 애도
바다와 새롭게 만나고 있노라니 내 눈도 또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 버렸다. 나의 대표작에는 ‘해녀’와 함께 ‘제주 4·3’ 작업이 있다. 4·3 당시 수장 학살된 시신들이 해류를 타고 대마도까지 흘러갔고, 대마도의 주민들은 시신을 수습해 매장해 주었다고 한다. 그 영혼을 애도하는 위령제가 대마도 주민을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어 2023년에 촬영을 하러 갔다. 시신이 떠내려왔을 그 해안에는 이제 제주 삼다수와 막걸리병이 찰박이고 있었다. 4·3 영령을 애도하러 갔던 많은 사람은 삼다수병이 4·3 당시 수장 학살된 사람들의 시신이 이곳까지 밀려온 증거라며 환호했지만, 내 눈에 삼다수병은 그 뒤에 있을 바다 생물들과 생태계의 죽음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시신은 국민과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수습하고, 위령제를 치르면서 애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제주 삼다수병 뒤에 있을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애도는 어디 있을까. 2024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고 있는 <바다, 애도>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바다가 매개하는 섬들이 겪었던 ‘학살’이라는 재난과 현재 겪고 있는 ‘기후위기’라는 재난을 ‘애도’를 키워드 삼아 영상으로 풀어냈다. 11월 30일로 전시가 마무리되었지만, <바다, 애도>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깨지기 쉬운 섬세한 것들의 메아리
삼다수병을 보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관심은 인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을, 우리의 인지 영역과 사유로 한정되어 생각하는 이 세계를 어떻게 다시 사유할 수 있을까 질문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인식 가능한 영역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니 인간의 인식 영역을 넘을 수 있는 기계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인간은 들을 수 없는 인프라사운드(infra-sound, 저주파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녹음기를 사서 제주 곳곳을 누비며 소리를 채집했다. 부엌의 가동되지 않는 전자레인지, 바닷속에 울리는 풍력발전기의 인프라사운드는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우리보다 몇 배로 넓은 소리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돌고래에게 과연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얼핏 느낄 수 있었다.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하는 월드뮤직 밴드와 협업해 녹음된 소리와 연주를 섞어 <기후위기 음악회-Echoes of Fragility: 깨지기 쉬운 섬세한 것들의 메아리>를 진행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크고, 가장 높고, 가장 많은 인공물로 생각되는 풍력발전기, 비행기, 집(제주 예래동 주거단지)의 이미지와 소리를 엮어 영상으로 만들었다.
Echos of Fragility : 깨지기 쉬운 섬세한 것들의 메아리
[출처] 박정근 유튜브
[출처] 박정근 유튜브
해녀를 찍던 내가
어쩌다 보니 기후위기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어버렸다?!
다큐멘터리 작가로 사람을 찍고, 역사와 시대, 사회를 찍어왔다. 그런데 정말 인류가 처한 위기 상황이 맞는 모양이다. 나의 오래된 작업들이 나를 기후위기와 인류세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기후위기, 인류세, 비인간 근래 유행하는 키워드다. 2024 광주비엔날레도, 제주비엔날레도 모두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에 담론은 더 흘러넘쳐야 하지만, 동시에 식상하고 지겨운 것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폭풍과 같은 흐름 속에서 이 주제를 소재로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가 필요하다. 이 순간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하며 우리의 삶,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설정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느껴지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지어나갈 수 있을까. 답 없다 느껴지는 질문을 품고,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나갈 수밖에.
- 박정근
- 바다가 없는 내륙의 깊은 산골에서 나고 자라 밀물지는 파도에 이끌리듯 제주섬으로 들어와 카메라를 든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앵글에 잡히는 아름다운 풍광의 실루엣 너머에 있는 해녀, 4·3, 굿 등을 만나며 제주의 내밀한 사연을 마주하면서 사진, 영상을 넘어 다양한 예술 분야를 접목한 기후위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ori5808@naver.com - 사진 제공_박정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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