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테이트미술관의 러닝부서를 총괄하고 있는 안나 커틀러(Anna Cutler, Director of Learning at Tate)를 만났다. 2017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심포지엄과 2017-20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계기로 진행된 양국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녀로부터 최근 테이트미술관과 영국의 문화예술교육 동향, 동시대를 함께 하는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등을 들어봤다.
영국 테이트미술관은 많은 문화예술교육자가 방문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테이트미술관 4개 분관의 교육부문을 총괄하고 있는데, 최근에 러닝부서에서 중점을 두는 추진방향과 전략을 말해 달라.
최근 테이트미술관 러닝부서의 전략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10년간의 장기 계획이 끝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크게 3가지의 전략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말하겠다.
첫 번째 러닝부서의 전략은 ‘변화의 촉매제가 되자’이다. 테이트미술관이라는 기관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역할을 하자는 거다. 이는 전략이라기보다는 교육 분야 전문가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기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축적된 연구 결과를 실천으로 옮기자’라는 것이다. 테이트미술관의 러닝부서에서는 지난 몇 년 간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다량의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제는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파악하면서 해당 지식을 적용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전략은 ‘학습을 가시화하자’이다. ‘러닝, 학습’이라는 모토를 테이트미술관의 교육프로그램 안에만 녹아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학습의 요소들이 곳곳에 녹아들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취지다. 관람객이 자발적으로 배움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 말씀해주신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분들도 궁금하다. 러닝부서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먼저, 테이트미술관의 러닝부서에는 학교와 교사, 해설팀, 디지털교육팀 등 총 7개의 팀이 있다. 팀마다 인원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보통 4명에서 8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디지털 팀 같은 경우는 인원이 적다. 학생과 교사들이 관람객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 팀의 인력이 가장 많다. 해설팀(interpretation)은 작품과 관련된 정보를 텍스트 혹은 디지털 형태로 제공하고 있는 팀으로, 항상 러닝부서에 상주하고 있으며 핵심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테이트미술관의 프로그램을 직접 전달하는 분들은 아티스트로, 늘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의뢰를 드리는 상황이다.
지난 5월 24일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행사의 국제 심포지엄의 발표에서 ‘창의 학습 공간’으로서 미술관의 역할과 ‘감각적인 경험’에 대해서 강조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인구변화 등 다양한 미래변화와 이슈들을 고려했을 때, 예술을 직접 만나고 경험하는 기회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프로그래밍을 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강조하는가?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하는 기획자, 강사, 교사가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말해 달라.
테이트미술관 러닝부서의 핵심 가치는 신뢰와 존중, 그리고 관대함이다. 거기에 더하자면 개방성과 호기심 정도가 있을 수 있겠다. 이렇게 우리가 강조하고 있는 정신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별도로 지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테이트미술관 러닝부서의 팀원들은 이미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출발지가 어디인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7개의 팀마다 접근방식이 다르고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할 때 특정한 모델이 적합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자면, 영유아 팀과 청소년 팀이 프로그램 의뢰를 하는 아티스트가 다를 수가 있다는 점을 염두하고 있다. 하지만 청중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아티스트는 누구일지 파악하는 원칙은 동일한 것 같다. 분야를 불문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아티스트와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아티스트가 본인의 정체성을 놓고 갈등하기 때문에 호흡이 잘 안 맞을 때도 있다. ‘내가 아티스트인가, 교육자인가?’를 놓고 갈등을 하는데, 이 기로에 섰을 때는 교육적으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뻔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그 사이의 균형을 잡기란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예술교육에 있어서 ‘타인의 학습과 창의성’에 방점을 찍고 있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술적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확실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 아티스트를 선정할 때도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한국은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으며 문화정책을 되돌아보는 시기다. 영국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영국의 문화정책, 문화예술교육 정책 부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영국 교육의 담론을 살펴보면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극과 극으로 나누어진다. 최근에 들어서는 다시 창의성, 학습 쪽으로 기울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만큼 세계가 빨리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된다고 인지하는 것 같다. 보통 ‘무언가를 다르게 본다’라고 가정하면 예술가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 이유가 예술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참신하게 풀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국에서는 창의적인 예술교육에 대한 관심이 이제 다시금 생겨나고 있다.
또한 최근 교육과 학습에 관심을 두고, 여기에 헌신하려는 예술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들 스스로가 전문적인 창의학습자라는 생각이 든다. 테이트미술관의 러닝부서와 문화예술교육분야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도 해당된다. 본인 스스로 예술 작업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술적인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이것을 교육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창의학습자들과 함께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지금의 문화예술교육이 훨씬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을 할 때도 ‘당신은 전문적인 창의학습자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훨씬 더 빨리 우리가 원하는 지점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영국사회의 동향과 문화예술교육의 움직임을 공유했다. 심포지엄에서도 ‘창의학습자’, ‘창의적 학습의 리더로서 예술가’의 역할과 중요성을 언급했다. 성공적인 문화예술교육을 위해서 ‘예술적인 프로세스’를 잘 이해하는 예술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신 것 같다.
미술관이야말로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을 교육에 투입을 시킬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영국을 기준으로 보면 학교에서는 제약이 굉장히 많다. 일정, 연간 일정표 등에 따라 규칙이 있는 반면, 미술관에서는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많다. 언젠가 영국에서 정책을 담당하시는 분이 “용기를 내서 대담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험해라. 이는 미술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얘기를 해주셨다. 한국도 비슷할 것 같다.
끝으로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에서부터 테이트미술관까지 영국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경험해온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로서 이번 방한을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느낀 점을 말해 달라. 더불어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전문가에게 전할 메시지도 부탁한다.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받은 인상은 문화예술교육 관계자들이 솔직하고 자기반성을 잘 한다는 것이었다. 영국보다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며 발 빠르게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점은 굉장히 용기가 있는 행동이다. 흔히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렇지가 않다. 그만큼 문화예술교육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가짐과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관계자 분들께 전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저 같은 경우에는 반성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뭐든지 ‘빨리빨리’를 추구했던 것 같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들만큼은 느긋한 시간을 가지고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위험을 감수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일을 하면서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그 자리에서 안주해 버린 채 늘 하던 대로만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새로운 방향으로 한 발짝만 씩만 나간다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안나 커틀러(Anna Cutler)
테이트의 학습 책임자. 테이트의 갤러리와 온라인 전반에 걸친 학습 관련 비전, 전략 및 전달 모델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학습이라는 관점으로부터 테이트의 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 황지영
-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분야 학예연구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창립멤버로 교육개발팀장, 창의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서울교육대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과 미술관교육분야 강의를 하며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 문화예술교육 정책 효과분석, 미술관교육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museum11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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