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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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0일, 부산 놀이마루(부산청소년복합문화센터) 운동장이 분주하게 들썩였다. 운동장에 기역 자로 둘러쳐진 6개의 천막에는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모두 얼마 전 수능 시험을 마친 고3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피로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도 손을 꼼지락대며 쉴 새 없이 재잘대는 학생들의 모습은 역시나 명랑하고 경쾌했다. 11월 29일부터 12월 6일까지 진행된 2016 ‘상상만개 고3 아트페스티벌(Art Festival)’은 새로운 시작을 앞둔 부산의 고3 학생들에게 보내는 선생님들의 응원과 격려였다. 현직 교사로서 이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부산 반여고등학교 박해원 수석교사가 수험생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사소한 활동 속에 담긴 소소한 의미
박해원 교사가 고3·수험생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상상만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프로그램의 방향성과 내용을 보고 ‘우리 지역, 우리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하고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실제로 작년에 박해원 교사가 근무 중인 반여고등학교에서 한차례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그 짧은 일회성의 이벤트가 그는 못내 아쉬웠다. 그는 조금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학교에서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마침, 2016년 상상만개에서는 학교와 현직 교사들이 직접 만들어나가는 문화창작형 프로그램이 신설되었고, 그의 노력으로 부산지역 6개 학교 학생들이 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고3 수험생들에게는 대단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학교 현장에서는 수능 시험 치고 나면 별로 할 것이 없어요. 말 그대로 시간을 때우면서 보내게 됩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 스트레스도 풀고, 문화예술도 즐기고, 힐링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는 없을까 생각했죠.”
박해원 교사가 ‘상상만개 고3 아트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치유’와 ‘놀이’다. 커플가면 만들기, 예술딱지 치기, 부메랑 날리기, 행운 주사위 놀이, 소망 인형 만들기, 치유 몬스터 만들기, 예술악기 연주해보기로 구성된 활동 프로그램은 단순하고, 소소하다. 새로운 체험이나 거창한 목표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학생들은 꼬물꼬물 손을 움직이며 친구들과 마주 앉아 그간의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부메랑이며 딱지를 가지고 게임을 할 수도 있다. 현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고3 대상의 프로그램치고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고 3학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진짜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아무리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해도 아이들은 잘 참여하지 않더라고요. 오죽하면 ‘난 바위가 되고 싶어요.’ 라는 학생들도 있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최대한 즐겁게 놀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상처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수능이 끝난 후, 시간은 참으로 길고 느리게 흘렀다. 지금의 고3 학생들 역시 그 더딘 시간에 잠겨 초조하지만 나른하고 한가하지만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박해원 교사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사소한 활동 속에 담긴 소소한 의미를 발견하기를 바랐다. 학생들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 해봤던 일들을 직접 만든 주사위에 적어보기도 하고, 자기가 만든 한지 등(燈)에 소망을 쓰기도 했다. 상처받은 마음은 치유 몬스터 위에 그려 넣었고, 버리고 싶었던 습관들은 부메랑에 적어 날렸다. 그 모든 바람이 꼭 이루어질 것이라 믿을 만큼 어리진 않지만, 자신의 꿈과 소망을 적고 그리고 나누면서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졌을지도 모른다.
종횡무진 수석교사
박해원 교사는 올해로 28년째 교직에 몸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들과 소통하고, 함께 수업하는 것이 재미있다. 새로운 교육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도 열심이다. 때문에 그가 관리자의 길이 아닌 수석교사의 길을 선택한 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현재 부산 지역 내 고등학교 미술 교사 중 유일한 수석교사이다. 수석교사는 현장 수업은 물론이고, 교육청을 통해 신청한 타 학교 교과 교사들의 수업 컨설팅까지 병행한다. 교사 대상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는 이 바쁜 업무 중에도 부산 중등미술교사연구회를 2년째 이끌고 있다. 연구회 이야기를 할 때 유독 강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는데, 실제로 이번 ‘상상만개 고3 아트페스티벌’만 하더라도 연구회 소속 교사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고 한다. 기획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연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행사 당일에도 연구회 교사들은 주강사로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연구회는 역사가 꽤 오래된 편인데요. 교사들이 현장에서 수업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토의하고 연구하고 현장 연수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관(官)의 주도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스스로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 주체적인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거죠. 사실 지역마다 교사들의 교육 연구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연구회를 잘 활용한다면, 상상만개 같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이 지역적으로 더 많이 확장될 수 있을 겁니다.”
박해원 교사는 학교 안에서의 수업뿐 아니라 학교 밖 문화예술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생과 문화예술 간의 접점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산미술협회와 함께 ‘부산청소년미술캠프’를 기획하여 학생들이 작가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고, 교사 작품 전시 중심이었던 연구회 정기 전시회를 사제간 협업 전시 ‘사제동행 아트쇼’로 재탄생시켰다. 뿐만 아니라 2014년부터는 교육청 및 일선 교사들과 협력하여 ‘부산학생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특히 부산학생비엔날레는 타 지역에서까지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청소년 문화예술 행사로 성장하고 있다. 아무리 수업 시수가 적은 수석교사라 할지라도 이 많은 일들을 학교 업무와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막 부임해 혈기왕성한 초임 교사도 아니고, 28년이나 교직 생활을 한 미술 교사가 이렇게나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니, 왠지 낯설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애써, 만들어 사서 고생하는 듯하다고, 짓궂게 여러 번 힘들지 않은지 되물으니 박해원 교사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제가 즐겁고 재미있으니까요. 또 모든 것이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보니 힘든 것을 잘 못 느낍니다.”
가치를 아는 삶을 위한 예술교육
이쯤 되니 박해원 교사의 평소 수업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대학입시가 가장 중요한 과제인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미술 교과는 그리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은 수업 내용보다 수행 평가에만 집중하기 십상이다. 시험 기간이 되면 미술 시간에 다른 과목 공부를 하게 해달라고 선생님에게 조르기도 한다. 박해원 교사 역시 현장에서 늘 겪는 일이다.
“학생들에게 ‘예술작품’은 너무 어렵고 지겨운 것이에요. 미술관에 데려가 보면 아이들은 그저 보는 둥 마는 둥, 30분도 안 돼서 그냥 나와요. 왜 이렇게까지 우리 아이들이 예술을 즐기지 못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스포츠도 규칙을 모르고 보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잖아요? 아이들이 예술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던 거죠.”
그의 수업은 ‘감상’과 ‘놀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기능 중심의 표현 교육은 지양한다. 잘 그리고 잘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은 학생들이 예술과 친해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해원 교사는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장담한다. “선생님이랑 1년만 수업하면 100명 이상의 작가, 100점 이상의 작품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는 1년 동안 놀이 수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박해원 교사는 퀴즈나 게임의 방식을 수업에 적극 차용한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방식을 참고하기도 한다. 좋은 전시가 있으면 기회가 될 때마다 미술관 수업도 진행한다. 물론 그냥 데려가지는 않는다. 미술관 큐레이터에게 부탁하여 사전 교육을 실시하거나 수업 시간을 활용해 관람 미션지를 만들어 보도록 한다. 한 번을 봐도 좀 적극적으로 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수업 내용과 노하우를 공유하는데도 적극적이다. 특히 SNS를 많이 활용한다. 교사들의 온라인 그룹(밴드)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했던 수업 내용이나 효과적이었던 방법을 공유한다. 지금은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참여해 주고 있어 수업 공유가 대단히 활성화되었다. 미술 감상 교육에 대한 책과 자료집, 워크북을 만들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예술과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단순한 의구심을 해결해보고자 한 노력들이 다년간의 고민과 연구를 통해 점점 확대된 셈이다.
“아이들이 좋은 것을 좋다고 느끼고,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좋은 성적 받아서 좋은 대학 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살면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가치를 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예술을 더 많이 접하고,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해원 교사가 근무하고 있는 반여고등학교가 올해,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미술 중점 학교로 선정되었다. 현재의 미술 대학 입시는 전반적으로 예술 고등학교에 유리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학생들이 미술 대학을 가려면 실기는 필히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술 중점 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와 예술 고등학교의 장점을 모아,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도 미술 대학 진학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자는 취지의 정책이다. 박해원 교사는 요즘 반여고등학교를 성공적인 미술 중점 학교로 만드는 것에 전력투구 중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단순히 예술가를 육성하는 데에만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교육은 예술과 함께 하는 삶을 추구한다. 예술과 삶의 접점을 찾는 미술 선생님. 제도권 내의 예술교육 문화를 바꿔 나가고 있는 박해원 교사의 묵묵한 행보가 잔잔한 파장이 되어 넓게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예술과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지금의 미술 교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 예술을 부담 없이 친구처럼 즐길 수 있도록 말이죠.”
박해원
부산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신라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컴퓨터교육을 전공했다. 금정고등학교, 부산디자인고등학교 등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했으며, 2012년 수석교사의 길을 선택하고 교과수업과 연구, 컨설팅을 병행하고 있다. 1990년부터 부산중등미술교육연구회, 컴그림연구회, 창의체험자원발굴연구회, 부산예술교육연구회 등 다양한 연구회 활동을 하고 있다. 미술영재교수학습자료 개발(2007), 고등학교 문화예술교육 수업자료개발(2009) 등 63편에 달하는 자료개발과 고등학교 문화예술교육 자료집 「미술감상수업」(부산광역시 교육청, 2009), 2015개정 『고등학교 미술교과서』(해냄에듀) 등을 집필했다. 현재 반여고등학교 수석교사로 재직하며, 부산청소년미술캠프 운영위원, 부산학생비엔날레 운영위원으로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다.
영상 _ 강장원(미술작가)
- 박유미
-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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