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를 한 학기 동안, 그것도 시험도 안 보면서 배운다고요? 나 학교 다닐 때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에요!”
사실 취재 의뢰에 관한 전화를 받았을 때 나의 반응은 이랬다. 그간 방과 후 예술 활동이나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올해부터 전국 중학교에서 전면 시행된다는 자유학기제는 다소 파격적이라고 느꼈다.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고3 수험생 시절을 빼고는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갔다. 그나마 동아리 활동마저 없었다면 이 시절의 기억은 좀 암울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학생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관심거리를 접할 기회가 훨씬 늘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관심거리에 일정 시간을 들여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경험하거나 구체적인 활동을 할 만한 여유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유학기제를 통해 청소년이 누리게 될 경험의 가능성과 시간의 잠재적 가치를 측정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바로 청소년기의 하루는 성인의 그것과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연예술분야 전문가와 함께하는 동아리 활동
원주여자중학교 뮤지컬 동아리 ‘뮤지컬러’는 7년째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지원금과 지자체 예산을 통해 독자 사업으로 학생들에게 여름방학 뮤지컬 캠프와 공연예술 전문가로 구성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뮤지컬러를 이끄는 김영기 선생님의 의지와 사명감이 빚어낸 성과였던 셈이다. 그렇지만 한시적 예산을 반영한 것이라 올해 외부 강사를 초청해 동아리를 지원하는 게 불투명한 상황이었는데, 마침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2016 드림스쿨’ 운영사업 공고를 보고 지원 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드림스쿨은 청소년의 예술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중학생들이 직접 연극과 뮤지컬 등 예술 창작활동에 참여하여 기획부터 제작과 실연까지 전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프로그램이다. 5개 권역, 총 5개 학교에서 16회차 프로그램과 마무리 공연이 진행되는데 강원권에서는 원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치악무대의 권오현 대표가 연출을 맡고 엄소라 음악감독, 이지현 안무가 등이 참여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자유학기제를 비롯해 동아리 활동에 학생들의 관심이 많다고 해도 실질적인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학교의 의지, 담당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나 예산은 늘어날 테지만 학생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경험하거나 참여하기 쉬운 편은 아니다. 당연히 노래하는 게 좋아서 뮤지컬러에 들어온 아이들인데, 지역 내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하기에 학교 안에서 관련 활동 대부분을 해결하는 상황이다. 마땅히 연습할 공간도 확보하기 어려운데, 지난해부터 연습실로 쓰고 있는 컴퓨터실에 연습용 거울도 설치하고 카메라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도 11월 공연을 앞두고 그동안 연습했던 내용을 전체적으로 펼쳐놓고 확인해봐야 하는데 그럴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 참 아쉽다.”
김영기 _ 뮤지컬러 담당 교사
11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드림스쿨 참여 학생들의 공연이 지역별로 진행될 예정이다. 뮤지컬러 동아리방을 방문하게 된 날은 공연을 앞두고 캐스팅을 정하는 날이었던지라 학생들의 표정은 다소 상기된 것처럼 보였다. <드리머, 꿈을 꾸는 사람>(가제)이라는 대본을 학생들이 몇 차례 읽어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동안, 학교 안의 풍경은 낯설지가 않았다. 나이든 내가 젊은 나를 만나는 것 같은, 왠지 모를 그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앳된 소녀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대사 한 마디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지금 이 시간을 누리면서 얻고자 하는 그것이 무엇일지가 궁금해졌다. 아마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떤 살아있는 것을 붙잡으려는 건 아닐까.
“1학년 때는 합창반을 했지만, 작년부터 뮤지컬러에서 활동하고 있다. 워낙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작년 여름 캠프를 통해서 알게 된 뮤지컬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아직 이 분야를 진로로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관심은 간다. 사실 동아리 반이 학교 가는 낙이다! 다 같이 모여 연기, 춤, 노래하면서 서로를 봐준다. 지난주 학교 축제 때, 25분짜리 갈라 콘서트 형식의 공연을 준비했었다. <써니> 버전으로 복고풍의 춤과 노래로 축제를 살렸다. 다들 우리 아니었으면 이번 축제에서 볼 게 없었다고 말한다.(웃음)”
송지원 _ 뮤지컬러 부장, 3학년
관계를 배우고, 무대를 경험하다
뮤지컬러는 24명의 학생이 배우와 스태프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중학교 전 학년이 고른 비중으로 함께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들 선후배 사이에는 나름의 위계질서가 잡혀 있는 듯하다. 이건 학생들의 인사법과 발성을 통해서 파악된다. 1학년 학생들보다 3학년은 대사를 하는데 제법 배에 힘이 들어가 있다. 이제 3학년이 되어서야 앞서 동아리를 거쳐 간 선배들의 고충과 심정을 알겠다는 송지원 학생의 마음을 나름 헤아리게 된다. 동아리는 어느 정도 학생들의 자율과 자치권이 부여되고 있는데 이것이 그들에게는 소속감과 자부심을 부여하는 측면도 있다.
올해 1학기 때부터 뮤지컬러에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대본 작업에 집중했다고 한다. 작년 축제 때 공연한 대본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진로 선택을 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연결한 내용이다. 갈등의 중심에는 부모와의 입장 차가 있으면서도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관한 고민도 담아있다. 물론 다소 과장된 내용과 상투적인 설정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들 속내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2011년부터 원주 치악무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권오현 연출가는 지역에서 극단의 지속가능한 활동 기반을 만들어나가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는 ‘드림스쿨’ 사업 이전에도 일반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 활동이 잠재적 관객 개발과 문화 인프라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대개 주강사 혼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비해 ‘드림스쿨’은 다른 전문가와 함께 수업의 내용을 공유하고 분담하며 협업하면서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임을 피력했다.
“아이들에게 재미와 호기심을 채워줄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연기 외에도 뮤지컬 제작에 관한 여러 경험치를 제공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아이들에게 극장이라는 메커니즘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뮤지컬러는 별도의 연습 공간도 있어서 그나마 환경이 좋은 편이라고 본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제작에 관한 여러 노하우를 전달하고 싶다. 연기 외에도 제작에 관한 다양한 분야가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한편,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까지 성과나 결과를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400석 공연장 무대에 선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흔치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을 학생들이 온전히 느낄 수 있게끔 모든 준비를 다 할 것이다.”
권오현 _ 연출가, 치악무대 대표
보통 중학생쯤이면 자신의 진로에 관심을 둘 만한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제대로 된 탐색 경로를 통해 자신의 관심거리를 발견하고 집중할 뭔가를 알아챌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이들의 꿈 꿀 권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 2016 드림스쿨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됨에 따라, 중학생을 대상으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과 결합하여 더욱 심도 있는 문화예술 경험을 확대하고자 중학교 연극, 뮤지컬 동아리에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중학생들이 직접 예술창작 과정에 참여하여 기획부터 제작과 실연까지 전 과정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드림스쿨’ 사업은 올해 수도권, 강원, 충청, 전라, 경상 등 권역별 1개 학교씩 총 5개 학교를 선정 지원하여 16회차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11월 마지막 수요일(30일)에는 참여학생 공연이 개최될 예정이다.
- 염혜원
- 자유기고가. 연극을 공부했고 월간 [한국연극], 국립오페라단,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일했으며,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나오시마 삼인삼색』(웅진리빙하우스)이 있고, 『연극 속의 청소년극, 청소년극 속의 연극』(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등을 기획·편집했다.
byeyum@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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