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를 사랑해에~~ 이 세상은 너뿐이야!”
울산 함월초등학교 오케스트라의 <붉은 노을> 연주에 관객들의 우렁찬 소리가 더해지니, 대극장의 열기가 한층 후끈 달아오른다. 중·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의 엄청난 호응 속에 연주자로 무대에 선 초등학생들의 흥도 더해진다. 무대에 선 이들도, 객석에 앉은 이들도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있는 곳, 예술꽃 씨앗학교 성과 공유회 ‘예술이 꽃피는 숲’을 찾았다.
  • 울산 함월초등학교 함월예술꽃씨앗오케스트라의
    <천국과 지옥-캉캉>과 ‘이문세 모음곡’ 연주
  • 충북 음성초등학교의 창작 음악극 <오선이의 꿈>
저마다의 빛깔, 공연으로 말하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2박 3일 동안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2016 예술꽃 씨앗학교 성과 공유회 ‘예술이 꽃피는 숲’에는 전 일정에 참여한 4기 3개 초등학교와 2일차에 합류한 5기 3개 중·고등학교까지 총 6개 학교 450여 명이 참여하였다. 작년에 비해 규모가 작아져 그런지 좀 더 차분하고 소박한 분위기에서 행사가 치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 준비한 공연을 보니, 각 학교와 학생들의 열정과 담아내고자 하는 내용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술꽃 씨앗학교는 학교의 특성에 따라 통합예술, 공연예술, 시각예술, 음악예술 등의 분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올해 참여한 학교는 음악과 공연예술을 기반으로 예술꽃 씨앗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들이다. 자연스럽게 모든 학교가 공연을 준비해 성과를 공유한 만큼, 각자의 이야기와 빛깔 있는 공연의 향연, 그것이 이번 성과 공유회의 핵심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래도 무대에 섰을 때가 가장 짜릿하죠. 이제는 어떤 타이밍에 박수가 나오는지, 이 친구가 나오면 어떤 반응이 벌어질지 대충 감을 잡을 수도 있게 됐어요.”
– 김민균 (경북항공고등학교 3학년)
울산 함월초등학교 함월예술꽃씨앗오케스트라의 <천국과 지옥-캉캉>과 친숙한 ‘이문세 모음곡’ 연주를 시작으로 경남 거제 성포중학교의 성포하모니앙상블의 <가브리엘 오보에(Gabriel’s Oboe)>, <마이 웨이(My Way)>, <힐 더 월드(Heal the World)>의 따뜻하면서도 울림 있는 연주로 1부 ‘흠뻑흠뻑 예술로 물들이자’ 공연이 이어졌다. 음악과 공연에 익숙해져 있는 학교들이 모여서 그런지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작년과 달리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참여해서 적극적인 호응과 반응들이 공연을 더 재미있고 뜨겁게 만들어주었다. 충북 음성초등학교의 창작 음악극 <오선이의 꿈>은 아이들이 공부만 강요당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극에 담아내어 큰 울림과 감동을 주었다.
“행사 준비 하면서 만났을 때는 각 학교 담당교사들이 걱정을 그리 많이들 하시더니, 오늘 공연 보니 그게 다 엄살이 아니었나 싶어요.(웃음) 다들 너무나 잘하더라고요. 하나하나 공연에 정말 감동 받았어요.”
– 박찬희 (경북항공고등학교 교사)
그 외에도 전북 군산남고등학교의 창작 뮤지컬 <땡큐 포 더 뮤직(Thank You for the Music)>, 경북항공고등학교의 합창 ‘레미제라블 메들리’와 ‘애니메이션 메들리’가 대극장을 꽉 채워주었다. 특히 제주 북촌초등학교의 창작 뮤지컬 <사랑과 농경의 신 자청비>는 이 학교가 그동안 해온 제주 신화 뮤지컬로는 무려 다섯 번째 작품이다.
“제주에는 신화가 무척 많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신뿐만 아니라 제주의 자연과 문화, 제주 사람들과 제주어가 포함되어 있어요. 제주 문화를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신화이고, 학생들과 관객들이 제주신화를 좀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친숙한 소재를 선택하여 뮤지컬을 만들고 있습니다.”
– 강성주 (제주 북촌초등학교 교사)
  • 경남 거제 성포중학교의 성포하모니앙상블
  • 제주 북촌초등학교의 창작 뮤지컬 <사랑과 농경의 신 자청비>
만남이 있는 자리
“느영 나영 혼디모영 오름에 올라와보난, 막 지꺼정 좋다게~ 다음에 또 고치오게~!”
(너랑 나랑 모두모여 오름에 올라와보니, 막 재밌고 좋구나~ 다음에 또 같이 오자~!)
나래홀에서 오선초등학교와 함월초등학교 학생들이 제주 북촌초등학교 친구들에게 <오름올랑>이라는 제주어 노래를 배우고 있다. 외국어(?) 같은 제주어가 신기한지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예술꽃 씨앗학교 성과 발표회에서는 공연만 하고 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르치고 배워보는 시간이 있다. ‘서로서로 예술로 배워보자’라는 교류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제주 친구가 가르쳐주는 가사 아래 ‘육지’ 말로 뜻을 적어보며 진지하게 노래를 불러보기도 하고, 망설이다가 친구가 내미는 활대를 받아들고는 난생처음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연주해보는 것도 이런 시간이 주는 즐거움이다.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가르쳐보는 경험, 그리고 또래들끼리 서로 다른 예술적 경험을 나누는 시간은 아마도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또 다른 배움의 장이 되리라.
성과 공유회 둘째 날 도착한 중·고등학생들은 나래홀에 모여 힙합크루 ‘라스트포원’과 전문 디제이의 디제잉을 관람하고, 댄서들과 함께 각자 자기 학교 응원 동작을 만들어보는 것으로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예상했지만, 막상 본인들이 직접 추려니 많이 쑥스러웠나 보다. 아마 다른 학교 학생들이 섞여 있어서 아직은 서먹하기도 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중 흥과 끼가 많은 친구들이 분위기를 이끌어가면서, 아이들은 이내 댄서들과 함께 쉽고 즐거운 동작으로 자기 학교 응원 댄스를 발표하며 교류의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잘하기보다는 재미있게, 부족함을 채워주는 예술의 힘
‘성과’라는 것은 사업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꽃 씨앗학교를 통해서 우리가 학교 현장에 뿌리고 싶은 씨앗은 무엇일까? 이번 성과 공유회에서 만난 몇몇 교사들의 말 속에서 ‘경험’과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예술꽃 씨앗학교의 존재 이유이자 성과이리라.
“학예회 같은 걸 하면 다른 학교는 ‘걸그룹’ 댄스 하는 아이들 몇 명 정도 나갈까 말까 해요. 무대 경험이 없다 보니까 자신감도 없고, 자신감 저하가 누적되다 보면 점점 할 용기도, 기회도 없어지게 마련이거든요. 한데 우리 학교 아이들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자연스럽고 자신감도 있죠. 무엇보다 공연을 하다 보면 무대 디자인도 필요하고 춤도 춰야 하고 연기도 해야 하니까 각자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길러줄 수 있기도 해요. 물론 학교에서 아이들을 예술가로 키워야지, 멋진 공연을 해서 방송 출연을 해야지, 하는 건 전혀 아니에요. 다양한 경험을 주자는 취지로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죠.”
– 강성주 (제주 북촌초등학교 교사)
“우리 학교는 예술꽃 씨앗학교가 된 뒤 밖으로 드러날 정도의 학교폭력이 없어졌어요. 항공정비사를 양성하는 학교라서 평생 기계를 만지며 살 아이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예술적 경험이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장 선생님 의지도 강하시고, 저도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아이들한테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저희는 잘하기보다는 ‘좋아서’ 합니다.”
– 박찬희 (경북항공고등학교 교사)
뿐만 아니라 예술꽃 씨앗학교는 학생 대상 만족도에서 무척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자존감 영역(‘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 ‘예술 활동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사회적 영역(‘학교에 등교하는 것이 즐겁다’, ‘친구와 함께 의견을 나누거나 조별활동을 하는 등 함께하는 활동이 즐겁다’), 감성적 영역(‘다양한 표현 능력이 향상된 것 같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등에서 모두 5점 만점에 평균 4점 이상의 학생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러 예술꽃 씨앗학교에서 재학생 수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 전북 군산남고등학교의 창작 뮤지컬 <땡큐 포 더 뮤직>
  • 경북항공고등학교의 합창 ‘레미제라블 메들리’와 ‘애니메이션 메들리’
“처음 입학할 때는 계이름도 읽을 줄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면 3년이란 활동을 통해서 제 가치관이 다듬어지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 성장하는 것도 보고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느낀 것도 많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런 활동이 필요한 것 같아요.”
– 김민균 (경북항공고등학교 3학년)
“잘하기보다는 좋아서”라는 말은 전교생이 예술교육을 받는 예술꽃 씨앗학교에서 무척 중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아이들이 잘하려고 하면 힘들어지기 쉽지만, 모든 아이들이 좋아서 하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모든 아이들이 좋아서 하는 예술, 예술로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학교, 그런 것들을 떠올리니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덕유산에 단풍이 흐드러진 가을날,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나쁘지 않다. 이 씨앗이 자라 무엇이 될지 누가 알까. 그저 꽃을 상상하며 한 개의 씨앗을 땅에 심을 뿐.
예술꽃 씨앗학교 지원사업
2008년부터 시작된 예술꽃 씨앗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학교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지역이나 빈부 격차와 관계없이 전교생 모두가 문화예술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4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가 대상이며, 단기 지원이 아닌 4년간의 장기 지원을 통해 예술꽃 씨앗학교의 학생들이 문화적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 공연예술, 음악예술, 시각예술, 통합예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예술꽃 씨앗학교는 올해 신규 선정된 7기 14개 학교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총 87개 학교가 선정되었다.
· 예술꽃 씨앗학교 홈페이지
이은진 _ 칼럼니스트
이은진
칼럼니스트. 지역, 교육 및 육아, 커뮤니티 언저리에서 끄적거리고 싶은 사람. 지리산 자락 경남 함양에서 커피를 내리며 산다.
svjin9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