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학교 밖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 중 ‘주말문화여행’은 미술, 음악, 무용, 사진, 문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과정이다. 그중 <댄싱 인 더 다크>(dancing in the dark)는 김주빈 현대무용가의 진행으로 눈을 감고 오롯이 내 몸의 움직임과 자연의 소리에 집중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마련되었다. 이 과정은 1주차에 여행 방법과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방법을 경험하고 2주차에 함께 여행을 떠나는 방식으로, 매 회 출발지도, 여행지도 각각 다르게 구성된다. 주말문화여행 2기 참가자들은 지난 주 대전에서 첫 번째 만남을 가진 후, 오늘은 전주로의 여정을 떠났다. 여행하기 좋은 쾌적한 날씨의 10월 주말, 여섯 가족 열여섯 명이 참가한 <댄싱 인 더 다크>가 전주 자연생태체험학습원에서 진행되었다.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의 여행
시각의존도가 90%이상인 현대인들의 시각을 차단한다면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게다가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시야를 가린 채 이동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모임 장소에서 여행지로 향하는 버스 안, 도착하기 5분 전 즈음이 되면 참여자들은 안대를 받아 착용하게 된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없이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버스가 멈추면 한 사람씩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다. 시야가 차단된 만큼, 첫발을 내딛을 때 발끝의 느낌, 냄새, 주변의 소리, 손에 와 닿는 감촉 등 모든 것이 두렵고도 새롭다. 기차놀이를 하듯 앞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서로에게 의지한 채 안내자인 강사가 이끄는 대로 조심스레 한걸음씩 떼며 어디론가 향해 나아간다. 눈을 가린 아이들은 긴장감을 풀려는 듯 느껴지는 모든 것들을 바로 입 밖으로 꺼낸다. 어둠속의 행진이 이어지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멈추면 이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던 손을 떼어내고 한 사람씩 떨어져 독립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나마 안도감을 주던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불안한 마음에 손을 뻗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혼자의 시간을 견디다보면, 어느새 자신을 둘러싼 흙냄새, 손끝을 지나는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나무 옆에 서서, 누군가는 벤치 위에 누워서 그렇게 자기만의 시간 속에 머문다.
“눈을 가리고 버스에서 내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주변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면서 머릿속으로 그 공간을 그리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머릿속으로 보고 있는 그림을 그리는 거지요. 그 과정이 끝나면 안대를 벗고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상상했던 이미지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맞추어 보면서 낯선 경험들을 통해 감각적 경험을 재구성하게 됩니다.”
– 김주빈 무용가, <댄싱 인 더 다크> 주강사
김주빈 강사는 혼자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이 과정의 클라이맥스라고 강조하며, 이 시간은 일차적으로는 감각을 일깨우는 과정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공간 안에서 잠시나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의도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5분에서 10분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을 참여자마다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는 모습에서 각자의 살아온 여정을 압축해 놓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익숙한 감각이나 감정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낯선 감각이 주는 두려움에 도전해 그 순간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만 차츰 확신을 갖고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헤쳐 나가며 얻게 되는 자신만의 경험을 가져갈 수 있다면 성공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개인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를 테니. 그래서인지 이 프로그램은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는 있으나, 개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에게 익숙한 자기표현인 ‘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참여하길 강조한다. 그렇게 독립적인 자기인식을 경험한 후 다시 모이면 서로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모인 가족끼리 가족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자신에게 다가가는 시간
여행을 마치고 출발지로 돌아가기 전, 참가자들에게 여행의 마무리를 스스로 계획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참가자들은 전주 시내에 들러 각자가 제안했던 여행지 중 두 곳을 선택하여 함께 방문하고 돌아가기로 의견을 모은다. 마지막 여정을 남긴 버스 안, 마이크를 쥔 강사는 참가자들에게 간단한 느낌을 묻고 나서 한사람씩 마이크를 넘겨 참가 소감을 듣는다.
“과정 내내 남들보다 무서워했고, 정보가 통제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눈을 가렸기 때문에 서로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런 상황을 겪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안대를 벗고 싶어 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 재잘거리며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가더라고요. 나중에는 그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어요.”
참가자들의 소감에 이어 강사는 이 과정을 통해 몸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일상을 조금이나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며,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작은 변화에서 예술이 시작될 수 있음을 당부하며 과정을 맺는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여행의 코스는 비슷하다. 온라인을 통해 검색을 하고, 여행지의 명소를 찾아가 눈으로 보고 사진 찍고 맛집에 찾아 가서 밥 먹는 것으로 끝난다. 안전하지만 어쩌면 뻔한 경험으로부터 여행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김주빈 강사는 최대한 낯선 경험을 이끌어내기 위해 눈을 가리고 주변 환경을 다르게 느끼는 것으로 출발해보고자 했다. 참여자들이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몸과 피부를 통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게 된다면 그것이 춤의 출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고, 눈을 감은 채 온 감각을 곤두세우고 움직이고 있는 것 자체가 춤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제한된 감각으로 인해 손 끝 하나하나에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가 생기고, 계획되지 않은 우연의 순간 속에 내 몸 안의 충동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 그것이 ‘댄싱 인 더 다크’인 셈이다. 내 안의 충동을 따라갈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예술의 시작이 될 수 있으며, 자기 확신에 대한 경험이야말로 예술과 가까워지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안무가이자 무용수, 사진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주빈 강사는 “오랜 기간 기능적 숙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만이 예술적 경험은 아닐 것이다. 자기 감각을 되살림으로써 나도 모르는 새에 예술에 다가가는 경험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반영되어있다. ‘주어진 대로 맞춰 흘러가면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내적 충동을 발견하고 자기의식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예술교육을 통해 전해보고 싶었다’는 김주빈 강사의 말처럼, 짧은 2주간의 과정이지만 일상을 탈주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다시 일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길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문화여행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문화예술기관 및 단체 등과 하는 학교 밖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주5일 수업제 실시에 따라 매주 토요일 아동·청소년 및 가족들이 문화예술 소양을 함양하고 또래, 가족 간 소통할 수 있는 여가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그중 ‘주말문화여행’은 미술, 음악, 무용, 사진, 문학 등 각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다. 청소년 또는 가족단위로 참여하여 예술가와 함께 당일 또는 1박 2일로 여행을 떠난다. 2014년부터 시작된 ‘주말문화여행’은 올해 9월부터 시작되어 11월까지 6개 프로그램이 각 4회씩 진행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홈페이지 : www.toyo.or.kr
홍은지
홍은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 중인 공연예술 연출가.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mo, collectors of moments)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순간을 채집하고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팰름시스트>, <카페더로스트>, <벙어리시인> 등을 연출했다.
eufy654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