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를 통해 꾸는 ‘꿈’

2016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공연

두 마리의 날아가는 갈매기 모습을 한 통영국제음악당 계단에 올라서니, 너른 한산도 앞바다가 불현듯 눈앞에 펼쳐진다. “히야, 좋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하는 공연장 안팎으로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이동 중이다. 체험 부스로 가는 아이들, 리허설 하러 가는 아이들, 로비에서 공연 입장을 기다리는 아이들까지. 고즈넉한 음악당이 오늘만큼은 시끌벅적 아이들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깊어 가는 가을, 2박 3일간 바다와 아이들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이곳은 ‘2016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공연’ 현장이다.
합동공연이라고 하니 혹시 각 거점기관 오케스트라의 ‘발표회’ 성격이 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허나 이번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공연은 ‘합창으로 하나 되는 공연’, ‘오프닝 콘서트’, ‘영화가 있는 음악회’, ‘해설이 있는 음악회’, ‘로비 콘서트’ 등 다양한 주제와 공간을 활용한 알찬 구성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내부 행사의 성격을 지양하고 완성도 높은 공연, 참여하는 관객들 또한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려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같은 학교 학부모가 같이 가자고 해서 왔어요. 아이들이 하는 공연이라고 해서 기대를 별로 하지 않고 왔는데 수준도 높은 것 같고 재미있어요.”
– 김윤정(관객, 통영시민)
꿈의 오케스트라 무안 〈영화가 있는 음악회〉(왼쪽)와 〈TIMF 앙상블, 전문 연주자와 만나요!〉 공연 중 ‘꼬마작곡가’ 최민권 어린이와의 인터뷰
전문 연주자들과 함께
“클라리넷의 높은 소리를 깨끗하게 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바이올린을 하면서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내시는지 궁금해요.”
“왜 호른이라는 악기를 선택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10월 1일 오후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TIMF 앙상블’ 공연 중간에는 아이들이 미리 제출한 질문에 대해 전문 연주자들의 답변을 듣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TIMF 앙상블은 통영국제음악제 홍보대사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문 연주단체 중 하나다. 어쩌면 아이들이 닿고 싶은 그곳에 먼저 도착한 선배일 수도 있는 그들의 연주도 듣고 질문도 할 수 있는 시간. “처음엔 트럼펫을 했었는데 옆 친구가 너무 잘해서 그 친구를 이겨보고 싶은 마음에 호른으로 바꾸었어요. 그런데 저한테 이 악기가 정말 잘 맞는 거 있죠.” 연주자가 내놓은 뜻밖의 대답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자신만의 슬럼프 탈출법, 호흡법 등을 설명해줄 때는 무척 진지한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이날 TIMF 앙상블은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일반 관람객들을 위해 브람스의 <호른 3중주 내림마장조 작품 40 중 2악장, 4악장>, 프랑스 작곡가 미요의 <르네왕의 벽난로>, 베토벤의 <클라리넷 3중주 ‘거리의 노래’>, 풀랑크의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6중주> 등의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무엇보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에 참가한 최민권 어린이가 작곡한 <다람쥐가 아니라 고양이>라는 곡을 TIMF 앙상블의 연주로 들어볼 수 있었던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시끌시끌 떠들어대던 아이들은 (걱정이 무색하게도) 공연 시작과 함께 일순간 조용해졌고, 누군가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긴 시간 동안 대체로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었다. 역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더니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많이 알고, 많이 좋아하고, 많이 즐기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없어서는 안 될 오케스트라 단원
2층 로비에 공연을 앞둔 아이들이 대기 중이다. 꿈의 오케스트라 청주(청주꿈나무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다리는 달달 떨고, 배가 아픈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은 친구에게 “많이 긴장돼요?” 하고 물었더니 “아~ 떨려요.”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지 1년이 좀 넘었지만, 공연을 앞두고 긴장되는 것은 여전하단다.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옆 친구가 한 마디 툭 던진다. “그래? 나는 하나도 안 떨리는데.” 어떤 악기를 담당하느냐 물었더니 ‘타악기’란다. 우연히 말을 붙이게 된 녀석들은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3인방’이었던 것이다. “공연 잘 볼게. 파이팅!”
극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이들이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객석의 박수 소리와 함께 단원 입장이 시작되었다. 앗, 녀석들이다! 녀석들이 제일 뒤 오른쪽 구석 타악기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고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첫 곡이 시작되었다. 떨린다며 잔뜩 웅크리고 있던 녀석이 아주 의젓한 모습으로 팀파니를 두드리고 있다. 아까 주야장천 게임만 하고 있던 녀석은 간간이 일어나 박자를 놓칠까 긴장한 표정으로 지휘자를 살피며 심벌즈를 챙! 챙! 친다. 북을 치다가 얼른 악기를 바꾸어 트라이앵글을 치기도 하고, 긴 기다림의 순간에 지루해하는 옆 친구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하며 독려하기도 한다.
그래, 맨 앞에서 돋보이는 건 다른 악기들일 수 있어도 둥! 둥! 팀파니가 웅장하게 받쳐주지 않는다면, 절정의 순간에 챙! 챙! 하고 울리는 심벌즈가 없으면 안 될 일이지. 자신으로 인해 곡이 웅장해짐을 알기에 기다릴 줄 아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우연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하나의 관현악곡이라는 것이 이런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 모여 ‘지금 이 순간’ 한순간에 발현되는 것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동적이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 경쟁이 아닌 화합
“원래 제 성격이 굉장히 어두웠거든요. 그런데 악기를 배우고 합주를 하다 보니 음악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마음도 많이 치유된 것 같아요.”
– 최한결(꿈의 오케스트라 목포 단원)
“첼로를 연주하니까 뿌듯해요. 올해 합동공연에 처음 참가했는데 신기하고 멋졌어요.”
– 김태영(꿈의 오케스트라 안동 단원)
“가슴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 같아요.”
– 허준원(꿈의 오케스트라 목포 단원)
“이제 공연 좀 그만 봤으면 좋겠어요~!” 하고 엄살을 부리다가도 ‘음악이 준 선물’에 대한 ‘증언’들을 늘어놓는 아이들. 악기 가방 하나쯤 메고 다니면 ‘쟤네 집 좀 사는가 봐’ 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데, 아마도 형편 탓에 꿈꾸기 힘들었을 이 악기가 아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가 보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서 부디 이 아이들만큼은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경쟁이 아닌 화합의 기쁨,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즐거움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꿈’의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 아닐까.
[인터뷰]
꿈의 오케스트라 청주 이강희 음악감독(한국교통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음악으로 아이들과 ‘맨땅에 헤딩’하는 어른들의 헌신과 열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열악한 환경 탓에 교육 강사들이 직접 아이들의 통학을 지원하는 등 열정이 남다르다는 ‘꿈의 오케스트라 청주(청주꿈나무오케스트라)’ 이강희 음악감독을 만났다.
청주꿈나무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으신 지는 얼마나 되셨는지?
작년에 시작해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개인적으로 1982년부터 충청북도에서 어린이청소년교향악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키워내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꿈나무오케스트라의 첫 협연자이기도 했기에 관심 있게 지켜보던 중 마침 음악감독을 모집하기에 결심하게 되었다.
꿈의 오케스트라 청주 교육 강사님들이 무척 열정적이라고 들었다.
단원의 70% 이상이 어려운 가정 아이들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직접 차로 데려 오고 데려다 주고 하는 일이 잦다.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아이들도 많고 부모들의 지원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열심인 교육 강사들과 열심히 나오는 아이들 모두 기특하다. 서로의 관계 형성을 위해서 악기 연습만 하기보다는 운동회같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이 하는 편이다.
실제로 느껴지는 아이들의 변화가 있는지?
처음 음악감독으로 와서 아이들을 면접할 때 ‘아저씨, 왜 저한테 말 거세요?’ 하며 차가운 눈빛을 보내던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많아서 마음이 닫혀 있었고, 남자 선생님께는 레슨도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던 아이였다. 첫 부임 날 아이에게 그토록 서늘한 눈빛을 받고는 정말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걸 할 수 있을까? 해야 할까?’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연주 끝나고 나에게 조그만 초콜릿을 하나 주고 가더라. 정말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한다. 지금은 그 애가 선배가 되어 더 어린 친구들도 손수 챙겨주고 굉장히 열심히 한다. 그런 변화가 눈으로 보이니까 음악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감독으로서 어떤 점에 신경을 쓰시는지 궁금하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지역에 다른 연주 단체가 많은데도 전공자들까지 우리 오케스트라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 보면서, 우리 수준과 프로그램이 많이 좋아진 것을 느낀다. 작년 12월에는 우리가 주도하여 청주의 다른 오케스트라들을 초청해서 페스티발 형식으로 정기연주회를 했다. 200명 합동 연주도 하고. 우리 아이들이 큰 무대,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꿈의 오케스트라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150명 후원회를 조직했다. 정부 지원이 끊기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원해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예전에는 소외계층 아이들의 연주회라니까 초청장을 보내도 반응이 없더니 이제는 지역사회 인사들과 정치인들도 관심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합동공연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다.
통영국제음악당 무대에 서는 건 전문 연주자들에게도 환상적인 일이다. 아이들이 이런 무대에 서 보는 것 자체가 큰 경험 아닐까. 2박 3일 내내 공연 준비하고 공연하고 공연 보는 일이 아이들한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을 거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음악도 좋아지는 것 같더라. 그러니 아이들 하나하나를 버릴 수가 없다. 꿈의 오케스트라가 그런 취지를 잃지 않고 계속 잘 운영되길 바란다.
[꿈의 오케스트라 청주 이강희 음악감독과 단원들]
‘꿈의 오케스트라’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추진하는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 지원사업’이다. 아동‧청소년이 기존의 악기 중심의 음악교육에서 벗어나 오케스트라 합주교육과 음악 감수성 교육을 통해 ‘상호학습’과 ‘협력’을 경험하고, 자존감과 공동체적 인성을 갖춘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12년 2월 베네수엘라 시몬볼리바르음악재단(엘 시스테마)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기존의 도제식, 악기 중심의 음악교육에서 전면 탈피함으로써 오케스트라 합주교육을 중심으로 아동·청소년의 다면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2016년 현재 전국 42개 거점기관에서 약 2,400여 명의 아동·청소년들이 함께하고 있다.
‘2016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공연’은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축제의 장으로 유네스코가 음악 창의 도시로 선정한 경남 통영에서 9월 30일(금)부터 10월 2일(일)까지 2박 3일간 개최되었다. TIMF 앙상블 공연 등 전문 연주자와의 만남, 다양한 콘셉트의 무대와 무료 체험 프로그램 등을 마련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인 600여 명의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 뿐 아니라 일반 관객, 학부모 등이 함께 참여하여 더욱 뜻깊었다.
‣꿈의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 http://orchestrakids.or.kr
이은진 _ 칼럼니스트
이은진 _ 칼럼니스트
지역, 교육 및 육아, 커뮤니티 언저리에서 끄적거리고 싶은 사람. 지리산 자락 경남 함양에서 커피를 내리며 산다.
svjin9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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