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토)에 시작한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문화예술교육 체험·전시 현장을 찾았다.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광장, 상암DMS 거리에 조성된 체험·전시 공간은 문자 그대로 ‘예술교육’을 매개로 이루어진 다양한 결과물을 전시 형태로 전달하고 있었다. 주말 오후에 접어들면서 고층 빌딩가의 인도 사이에 놓인 설치물과 부스 등 행사장 곳곳은 문화예술교육 관계자, 가족 단위의 관람자와 일반 시민 등이 뒤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이러한 결과물들을 잠시 ‘구경’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까지 예술교육의 가치와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애초 예술교육이라는 영역의 특성상 완벽한 기성품과 같은 모델 제시나 시연에는 어려움이 따를뿐더러, 프로그램별 체험에 대한 관람자의 기대치나 요구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문화예술교육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까지 다가가기 위해 일종의 놀이터로 치환해 프로그램을 구상한 듯하다.
‘예술체험워크숍’이나 ‘예술놀이터’와 같은 프로그램은 관람자에게 예술교육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종의 참여 퍼포먼스 형태로 이루어진 ‘아트큐브’는 관람자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놀이적 형태로 꾸며졌다. 또한 예술교육에 관한 그간의 변천사를 통해 이뤄진 정책의 변화, 담론의 흐름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기 위해 구성된 정책전시는 상당한 분량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문화예술교육 수혜자 등 일반인들의 공연과 전시로 구성된 ‘커튼콜 온 스테이지’ ‘청춘제’와 같은 공연도 병행되었다. 체험, 전시장 구석구석은 그야말로 국내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깨알 같은 재미와 정보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큐브에 담은 우리들의 이야기 – 예술 퍼포먼스: 아트큐브
상암DMS 거리에 설치된 아트큐브는 이번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에 앞서 전국에서 9개 지역의 문화예술교육 단체와 수혜자들이 참여해 만든 작품들과 주간행사 개막식 및 체험·전시 참여자들이 함께 꾸민 방명록 아트큐브를 포함하여 총 10개로 구성되었다. 예술교육의 다양성을 드러내듯 ‘큐브’라는 똑같은 재료에 표현된 설치물은 모두 제각각의 특성을 드러내며 관람객들을 맞이하였다. 아트큐브는 일반 시민들의 아이디어와 참여가 더해져 풍성한 예술체험의 장을 마련하였다. 행사장을 오가는 아이들은 광주 북구문화의집의 <나무 놀이터> 큐브에 깡통, 그릇 등으로 만들어진 타악기를 연주하거나, 황새둥지의 <양말목 그물> 큐브 안팎을 넘나들며 큐브를 놀이터 삼아 놀기도 하고, 큐브 옆에 마련된 양말목을 활용해 계속해서 작품을 확장시켜나갔다. 마지막 10번째 큐브는 5월 23일(월) 개막식부터 참여자들이 남김 방명록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그중 상세한 작품설명서와 함께 설치된 과천고등학교의 <고등학생 품질보증서> 큐브가 눈에 띄었다. ‘2016년을 살아가는 고등학생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으로 학생들은 72시간에 걸쳐 여기에 자신의 정체성, 휴식, 꿈을 담아내고 있었다. 큐브에 무엇을 담을지를 생각한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통해 얻은 내용을 큐브 안에 설치한 것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수능 등급 품질 보증서’와 같은 장난기 어린 표현으로 이야기한 것이 재미있다 싶지만 이를 통해 드러나는 청소년의 현실을 떠올리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빡빡한 일과에 대한 스트레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청소년은 시를 읽고 바깥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의자 하나를 큐브 안에 마련했다. 그 옆에는 자신들의 분신처럼 만들어진 인형 하나가 있었다. 이 의자에 앉아 인형을 바라보니 큐브를 만든 아이들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된다. 지금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시 한 줄을 읽고 싶다는 소망 말이다.
문화예술교육 정책 흐름을 한눈에 – 정책전시
예술교육 정책을 소개하는 부스 중 누리꿈스퀘어 광장 입구에 마련된 지역특성화 사업전시관은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사업의 성과와 주요 내용, 사업 방향의 전체적인 흐름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2004년 11월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종합계획’이라는 정책이 추진되면서 사회 문화예술교육의 일환으로 시행되어온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의 궤도를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궤도를 통해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정책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한편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에 관한 전문가와 관계자들의 대담을 영상과 리플렛으로 담아 관련 사업에 관한 다양한 이슈와 담론을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하기가 딱딱한 정책의 내용을 관람자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좀 더 친절하고도 세밀한 정보 전달을 위해 노력하고 배려한 흔적이 돋보이는 부스였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에 관한 정보를 얻는데 있어 입체적인 학습의 장으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사업 내용과 예술교육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와 결과물(자료집 등)을 전시하고 공유하는 ‘아르떼관’과 국내 문화예술교육 관련 주요 기관 소개, 마을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시민 문화예술교육 사업과 프로젝트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 부스도 운영되고 있었다.
함께 만들어가는 놀이터 – 예술놀이터, 예술체험워크숍
관람자가 다양한 예술교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일종의 놀이터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 놀이터는 처음부터 완성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참여해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예술교육의 현장에서 빚어지는 과정의 산물은 예술교육자와 참여자 모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내용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상호 교감을 해야지만 비로소 그 온전한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예술’을 매개하고 있으므로 이 현장은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예술체험워크숍은 여러 분야와 연령대를 고려하여 예술교육과 창작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이번 예술체험워크숍 가운데 ‘영상 되감기’ 원리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인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진행하는 ‘시네버스’의 전현구, 김태훈 작가를 예술체험워크숍 부스에서 만났다. 영화를 전공한 두 사람은 개별 영상작업을 진행하면서 시네버스 내에서 교육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 외에도 사진, 공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10명의 작가들로 구성된 시네버스는 그야말로 통합예술을 시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다.
“영상을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참가자에게 무언가를 만들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단순하게 노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백워드 플레이(backward play)’는 그렇게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영상으로 접하기 전에 그 모습을 머릿속에 상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단순히 영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 전개 과정을 미리 이해하고 상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의도이다.”
– 전현구 작가
“예술강사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수업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적이라고 본다. 이들과 왁자지껄하며 두어 시간가량을 지내다 보면 우리가 어떤 수업을 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린다. 그런데 여기 와서 다른 체험장을 둘러보다 보니 여러 선생님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는 다른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에 참여하여 다른 예술강사(교육자) 분들과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다.”
– 김태훈 작가
단순하지만 일상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예술 형태를 수업과 접목하기 위해 이 두 명의 프로그래머는 평소에도 틈틈이 리서치를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술강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직도 6년 전 첫 수업 때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난생처음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을 들여다보니 그들이 자라서 자신과 같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꼭 영화의 한 장면처럼 뇌리에 파고든 순간이었다. 그때 이후 이들은 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달려졌다고 한다. 물론 영화 작업과 더불어 교육에 임하는 자세, 진정성과 유연함을 유지하면서 서로 즐겁게 놀 수 있는 판을 제공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 어떤 일들에 비해 스트레스 유발지수가 그리 높지 않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업인 것은 확실하다.
시네버스 두 명의 작가를 만나며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의 슬로건 ‘예술, 스스로 피어나 서로를 물들이다’가 떠올랐다. 예술교육자, 행정가, 일반인 등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예술교육으로 피어나고, 예술교육으로 서로가 서로를 행복으로 물들이는 장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가 문화예술교육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문화예술교육 축제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 관련링크
-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www.artweek.kr
사진 _ 마루스튜디오
- 염혜원
- 자유기고가. 연극을 공부했고 월간 [한국연극], 국립오페라단,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일했으며,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나오시마 삼인삼색』(웅진리빙하우스)이 있고, 『연극 속의 청소년극, 청소년극 속의 연극』(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등을 기획·편집했다.
byeyum@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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