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비장애인의 편견으로는 알 수 없는, 그래서 소중히 생각하지 못했던 경험과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또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에 대해 표현하는 장애인 예술가들을 만나보세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세상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고 듣고 소통하는 ‘특별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소개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화를 보다
미국에 사는 토미 에디슨(Tommy Edison)은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 특별한 ‘재능’을 활용하여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그의 작업은 1994년 라디오 방송 채널인 스타99.9(Star 99.9)에서 교통리포터로 활동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교통체증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가 어떻게 교통 리포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하루 종일 통근자들의 제보를 받고, 경찰들의 무전과 TV 방송에 귀 기울이며 15분마다 정확한 교통 환경을 알렸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라디오 청취자들은 이런 그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지요.
그가 좀 더 주목받게 된 것은 영화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한 후부터입니다. 어떻게 영화를 ‘보지’ 않고도 평론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그의 영화평론은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웅장한 배경음악, 일상적인 행동과 움직임이 담긴 소리, 대사를 들으면서 감상한다는 점이죠. 그는 소리만으로 상황을 유추하면서, 어떠한 부분이 인상 깊은지, 또는 대부분의 경우 어떠한 소리들이 성가시고 궁금증을 유발하는지 시각 장애인의 입장에서 불평과 유머를 섞어내는 새로운 평론을 해나갑니다. 이런 작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그는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비장애인들이 알게 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말합니다. 다른 영화평론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평론에서는 내용을 전혀 알려줄 수 없다는 장점이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으면서요. 그 외에도 그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도 시각예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상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며 세상과 소통합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맹인이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방법” “맹인들도 그림을 그릴 줄 아나요?” “색상의 개념을 이해하시나요?”와 같은 질문이나 주제로 짧은 동영상들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집중을 했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 개설 1주년을 맞이하여 ‘맹인 영화평론 콘테스트(Blind Film Critic Contest)를 개최하여, 비장애인들이 직접 맹인의 입장이 되어 UCC를 찍어 올리게 합니다. 사람들은 눈을 가리고 분리수거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요리를 하거나, 화장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맹인의 삶을 체험하는 UCC를 공유하며 이 축제를 함께 즐깁니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다
재미교포 3세이자 사운드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은 한 번도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녀는 ‘소리’라는 개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는데, 사회생활 속에서 소리에 의해 행동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소리 에티켓’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소리는 반드시 귀로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생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한 그녀는 소리를 기록하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스피커의 진동을 활용한 ‘스피커로 그림 그리기’, 목소리를 녹음하여 높낮이나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피아노 줄의 떨림을 퍼포먼스화한 ‘페이스 타임 시그니처’와 같은 작업을 통해 말이죠.
그 외에도 그녀는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를 관찰하고 표현합니다. 수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활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배치하고, 말을 전달하는 ‘목소리 없는 강연’, 종이에 적힌 감정을 악보 삼아 표정으로 연주를 하는 ‘얼굴 오페라(Face Opera)’, 85 데시벨을 넘어가지 않는 소리들을 찾아 다 함께 악보로 만들고 연주하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시끄러움(Subjective Loudness)’과 같은 작업을 통해서요. 수화를 매혹적인 음악으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있는 크리스틴 선 킴의 음악 연주를 감상해보세요. 때로는 들리지 않는 것이 더 꽉 찬 무언가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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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voiceless lecture at drifter projects
(출처 : https://vimeo.com/68031095) -
[영상] face opera ii
(출처 : https://vimeo.com/68027393)
- 김다빈 _ 상상놀이터
- beyondlisa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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