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레이먼이 꽃병을 그리고 있을 때, 형 레온이 웃음을 터뜨리며 뭐라고 했지요?”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고 레온을 흉내 낸다.
“하하하하, 너 도대체 뭘 그리는 거야?”
레온의 비웃음에 그림을 그리던 종이를 던져버린 레이먼.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여동생 마리솔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레이먼, 이제 어떻게 그림을 그릴 거예요? 표현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번에는 아이들 모두가 레이먼이 되어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느끼는 대로!”
도봉초등학교에서 공예수업을 하고 있는 안령 예술강사의 수업은 피터 레이놀즈(Peter H. Reynolds)의 동화 『느끼는 대로』로 시작했다. ‘느끼는 대로 표현하기’ 얼핏 당연한 듯 쉬워 보이지만 곱씹어 보면, 깊고 어려운 과제이다. 안령 예술강사의 수업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표현할까.
가르침을 위한 배움
안령 예술강사는 공예부문 예술강사가 처음 모집되었던 해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학생들을 만나온 7년차 베테랑이다. 쌓인 시간만큼이나 수업을 준비하는 자세와 진행하는 방식에 여유가 묻어난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 기법을 설명하는 노하우도 돋보였다. 아이들에게 젖은 한지와 마른 한지의 물성(物性)을 이해시키기 위해 “교실 안에서 한지를 찢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한지를 조심스럽게 찢어보기도 하고, 빠르게 찢어보기도 하면서 방법을 찾았다. 정답을 던져주기 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자연스레 유도하는 모습이 과연 노련하다. 막힘없는 수업 진행에 감탄을 표하니, 그녀는 명랑하게 웃으며 처음 수업하던 날의 한 조각을 꺼내 보인다.
“처음 예술강사가 돼서 수업하러 간 곳이 흥인초등학교였어요. 첫날이라 나름대로 차려 입는다고 기다란 코트에 높은 뾰족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메고 갔죠. 담당 선생님이 저를 딱 보시자마자 한숨을 쉬셨어요. 수업을 해보니까 그 의미를 알겠더라고요. 첫날 너무 피곤했어요.”
그토록 능숙했던 안령 예술강사의 모습은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서 다져진 결과였다. 처음 예술강사 모집 공고를 우연히 발견하고 지원했을 때에만 해도 그녀는 예술강사가 무엇인지,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대학에서 하던 강의와 별 다를 바 없겠거니,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에게 공예를 가르치는 일이란 녹록지 않았다. 말 안 듣는 초등학생들을 단속하고 주목시키는 일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공인 도자 공예만 주구장창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지도방법은 물론, 콘텐츠의 다양화에 대한 고민도 절실했다. 안령 예술강사는 특유의 적극적인 태도로 배우고 또 배웠다. 먼저, 현장 교사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그들의 교수법을 모방하며 흡수했다. 예쁘고 화려한 외모의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기호에 맞춰 “샤방샤방한” 옷도 입었다. 같은 공예분야 예술강사들과 자체 연수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프로그램도 공유했다. 원체 무엇이든 배우기를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가르침을 위한 배움 또한 자연스러웠다. 이러한 배움은 예술강사 7년차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예술강사로 활동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오히려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게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교육학적인 이론들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3년을 고민하고 3년 동안 학교를 찾았어요. 그렇게 지금의 지도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다시 대학에서 교수학습공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교육
인터뷰 당일 우리가 참관한 피터 레이놀즈의 동화로 시작한 수업은 예상 외로 한지와 유리병을 이용해 꽃병을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언뜻 보기에는 연관성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안령 예술강사만의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는 결과물 위주의 수업을 거부한다. 생각 없이 만들어내기에만 급급한 수업은 아이들에게나 강사에게나 좋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결과물 위주의 수업에만 익숙해지다 보면, 아이들은 내가 ‘무엇을’, ‘왜’ 표현해야 하는지를 곱씹을 수 없고, 강사들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백번 지당한 생각이다. 하지만 결과물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학교 현장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이에 안령 예술강사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예술강사가 더욱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답한다. 꽃병 하나를 만들면서도 표현의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조금이라도 더 전달하려는 그녀의 마음이 바로 보이기 시작한다. 깊고 세심하다.
“공예는 손으로 하는 언어이자 표현이죠. 머리와 마음에 있는 생각과 감정들이 손으로 연결되어 손끝에서 표현되는 것이 바로 ‘공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표현에는 내밀한 의미가 존재한다. 그리고 예술은 그 의미를 확장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가시적 결과와 통계, 효율성을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도 문화예술교육이 꼭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장의 한계와 현실적인 규제에 무기력해지다 보면 의미보다는 당장의 결과물만을 좇기 쉽다. ‘예술’교육이 아닌 단순 ‘만들기’수업에만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안령 예술강사는 현장의 어려움을 직시하는 동시에, 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하려 노력했다. 2011년 제 1회 예술강사 교안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프로그램 ‘자연에게 받은 선물, 자연에게 주는 선물’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실 학교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만드는 수업이 그리 달갑지 않다. 재료 준비부터, 작품 관리, 수업 후의 청소까지 번거로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령 예술강사는 도자 수업을 꺼리는 학교의 입장을 고려하면서도 교육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수업을 고민했다. 그녀는 1년 동안 수업을 하면서 발생한 자투리 흙을 마지막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교실 밖 화단으로 들고 나갔다. 시간과 추억으로 한데 모인 흙을 화단 곳곳에 올려 두고, 이 흙이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아이들이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자투리 흙이 바람을 맞고 비를 맞아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순환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좋은 교육 프로그램은 화석이 아니에요. 완결된 프로그램이라도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어야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살아 숨 쉬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예술강사로서의 저의 역할인 것 같아요.”
즐거운 교실에서 움트는 창의성
장담컨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공예 수업을 하는 일은 단연코 쉽지 않다. 필자 역시 10년 넘게 초등학생 대상의 미술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을 때는 여전히 한숨부터 내쉬게 된다. 화를 내거나 엄하게 다그칠 때도 있다. 차분하게 그림 그리는 수업만 해도 만만치가 않은데 하물며 활동이 많은 공예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안령 예술강사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연신 웃는 얼굴이다. 비결을 묻자, 그저 마음을 평안하게 다스리려고 노력할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저는 아이들이 최대한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조금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야단을 치면 주눅이 들잖아요. 그래서 아이들과 저만의 약속을 만들어서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요.”
아이들이 조금 소란스러워질라치면, 그녀는 “짝! 짝! 짝짝짝!” 리듬 박수를 친다. 그러면 아이들도 자연스레 따라서 박자를 맞춘다. 박수 몇 번의 짧은 순간에 산만했던 교실이 다잡아지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즐거운 교실을 위한 안령 예술강사의 노력은 프로그램 안에도 속속들이 배어있다. 공예의 형식에서 벗어나 감정을 몸짓이나 소리로 표현해보는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공예의 기본을 지루하지 않게 가르치기 위해 노래도 만들어 가르친다. “도기와 자기 합쳐 도자기 짝짝!” 그녀가 만든 <도자 콕콕송>은 듣자마자 절로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꽤 중독성이 강하다.
안령 예술강사는 아이들만 보면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이들 모두가 마냥 귀하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이 어느새 하트를 그린다. 하지만 이는 그저 예쁘다,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마음이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책임감과 사명감은 보다 묵직하다.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 경험에 일조 할 수 있고, 일조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고요. 선생님은 물을 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예술의 물을, 공예의 물을 주면 아이들 마음속에 있던 씨앗들이 그 물을 먹고 자라면서 다양한 경험의 층위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이 경험의 층위 속에서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이죠. 창의성은 느닷없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도 문득 기억나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은 그녀는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될 아이들에게 봄볕 같은 온기로 마음을 감싸는 추억이 되고 싶다. 안령 예술강사는 오늘도 아이들의 작품과 아이들이 준 쪽지, 사탕 부스러기까지도 소중히 모아둔다. 예술강사 활동이 10년차에 접어드는 2020년이 되면, 아이들과의 시간을 굽이굽이 펼쳐 전시할 예정이다. 그 날,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녀를 찾아올까.
안령
경희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도예학을 전공했고, 올해 교육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다양한 공모전과 전시 활동을 하며 대학 강의를 하던 중 1기 공예분야 학교 예술강사 모집으로 아이들과 만나게 되었다. 매년 새로운 학교, 새로운 아이들과 만나며 예술강사로서 안주하거나 멈춰있지 않으려고 한다. 삼육보건대, 경희대 교육대학원 등 대학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배움을 통해 가르친다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겸재정선미술관과 출강하는 학교 아이들이 함께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즐겁고 즐겁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 박유미
-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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