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화예술교육의 본질과 마주할 때

좌담 - 한국 문화예술교육의 변화와 전망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16년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5.21~27)을 맞이하여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진단과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두 차례 마련한다. 그 첫 번째 좌담회로서 문화예술교육 정책 초기부터 각기 다른 위치에서 정책의 변화과정을 지켜봐 온 네 명의 전문가와 함께 사회적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진단하고 그 가능성을 발견해 보고자 한다.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1차 사전 좌담회
주제 | 한국 문화예술교육의 변화와 전망 –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를 중심으로
일시 | 2016. 3. 29(화) 오후 3시
장소 | 카페 하우
참석자 | 김재웅(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교수), 박영정(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신승환(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윤현옥(aec비빗펌 대표)
  • 신승환
  • 윤현옥
  • 박영정
  • 김재웅
왼쪽부터 신승환, 윤현옥, 박영정, 김재웅

먼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11년간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린다.
신승환 2006년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적 정립을 위한 기초연구에 참여했었다. 당시 문화예술교육의 개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최근 3년 정도 문화재단 등을 통해 지원사업 현장 모니터링을 간 적이 있는데 현장이 너무 열악해서 놀랐다. 작년 연말에 지역 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사업의 평가에 참여했었는데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하시는 분들의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교육을 실행하는 사람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하고 싶은데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보면 창의성보다는 기법을 가르친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 적어도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이어야 한다.’는 합의된 내용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김재웅교수님 말씀에 공감한다.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는 예술교육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조화로운 창의적‧인지적‧감성적‧미적‧사회적 발달의 근간으로서 접근성을 확보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모든 예술교육 활동과 프로그램은 그 기획과 운영에서 양질의 수준을 유지할 것을 주창하고 있다. 또한 예술교육이 예술적 원리와 실천을 적용함으로써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사회적‧문화적 도전과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대로만 된다면 이상적인 문화예술교육이 될 수 있겠으나, 현실에 부딪혀 보면 그렇지 않다. 삶, 혹은 제도와 관련된 실질적인 부분이 다르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다. 교육이라는 것도 사실은 서로에 대한 교감을 통해서 성장해 나가는 건데 의도적인 틀 안에서 시행하다보니 제도와 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은 떨어져 안타깝게 생각한다. 보고서를 보면 항상 굉장히 화려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지만, 교육현장에서 얼마나 실천이 되고 있는가도 궁금하다. 기법위주의 예술교육은 지금도 사실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장 평가를 가보면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단순히 기능전수에 많이 치우쳐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윤현옥1999년 귀국했을 당시 개인적으로 이전의 입시교육이 아닌 좀 다른 교육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마침 2005년에 학교 문화예술교육 공고가 나서 그동안 해왔던 내용, 혹은 하고 싶었던 내용으로 기획서를 썼고 본격적으로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화정책이 세상을 이렇게 바꿀 수 있구나, 사람을 이렇게 바꿀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문화예술교육 개념연구를 하는 신승환 교수님을 만나서 철학적 바탕도 배울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들도 있지만, 사실 시작은 기존 예술교육에 문제가 있고 기존과는 다른 교육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초기에 학교 문화예술교육, 사회 문화예술교육의 기획, 실행을 주로 작가들하고 했었는데 우리에게 가장 큰 이슈는 ‘작가냐, 교육자냐’였다. 우리는 예술가였기 때문에 돈을 벌기위해서 교육을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했고, 교육자가 되려면 교육자로서 아이들의 인성, 변화, 발달도 학습하고 교육방법도 충실히 학습을 해서 학생들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답을 ‘커뮤니티아트(Community Art)’를 하면서 찾았다. 기존의 잘 발전된 교육 틀대로 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형태의 교육도 있다고 생각했다. 교육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고민했는데,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에 의해서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교육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했다. 최근 인기 있는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무지한 스승’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그러한 교육행위들에서 학생들 스스로 알아서 학습한다고 하는 점을 지지해주는 것 같아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당시에 같이 했던 작가들 중에는 김월식, 이철성 같은 분들이 계신데 지금도 예술현장에서 활발하게 작가활동을 하고 있다. 나의 경우는 좀 더 삶의 현장으로 가게 되면서 문화기획이나 지역재생 등을 하게 되었다. 박찬국 작가의 경우도 초기에 밀머리미술학교로 문화예술교육에 기여하신 분으로 커뮤니티아트, 공공미술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했고 최근에는 청년들과의 상호작용활동도 활발한데 예술과 교육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박영정문화예술계에서는 오랫동안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논의와 실행이 있었지만, 2005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설립되고,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만들어지면서 문화예술교육이 사회적 이슈로서 본격화되었다. 이후 지난 10년간의 문화예술교육은 정부주도형 고도성장 모델로 부를 수 있을 만큼 양적 성장이 눈부실 정도다. 제도화 초기를 돌아보면 예술교육이냐, 문화예술교육이냐 하는 논의가 활발했고, 결국 문화예술교육으로 귀결되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이 기존의 학교 예술교육이 기능 중심의 예능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문화예술교육이 단순 기능교육을 넘어서서 참여자의 문해력이나 창의성 증진에 기여하길 바라는 바람이 들어 있다. 그런데 지난 11년간 예술교육이라는 용어 사용을 회피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의 중심 영역인 예술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던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에서 가장 핵심적인 에너지가 예술교육에 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그래서 뭔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외적인 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개발, 운영되었던 것 같다. 예술(또는 예술 활동) 그 자체에 창의성이나 교육성의 원천이 있기 때문에 예술교육을 진행하는 예술가 정체성을 갖는 예술강사가 필요했던 것인데, 그동안의 문화예술교육에서 예술강사는 주로 예술교육가로서의 전문성보다 또 다른 교육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요구받았던 것 같다.
네 분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사회적 요구에 따른 필연적인 것이었으나 여전히 그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현장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대해 좀 더 말씀을 나누시면 좋겠다.
신승환원론적으로 얘기하면 문화예술교육을 정책적으로 실시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율배반적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정책효과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독일의 경우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는 자각에서 그렇게 한다기보다 그들의 삶 안에서 문화예술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연적으로 문화예술교육도 함께 형성되었다. 반면 우리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 또한 자연적인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11년 동안 많은 일을 했지만 사실은 문화, 예술, 교육의 개념 연결이 안 된다. 문화예술교육 개념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반조성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문화나 예술이 나온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토대와 기반이다.
독일에는 두 가지 방식의 교육이 있다. 관료제하고도 연결되어 있지만, 훈육을 하려고 하고 내가 보는 틀을 그대로 주입하려는 방식과 자신 스스로를 양성하는 것이 있는데, 교육 패러다임을 후자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매개자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 패러다임을 바꿔서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양성이 되고 예술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기존 교육방식을 다른 말로 하면 산업화 패러다임이고, 일정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을 그렇게 접근하면 역기능이 벌어지는 거다. 문화예술교육 자체가 산업화 이후나 탈산업화를 겨냥한 거다. 한국 공교육은 사실 산업화시대의 패러다임인데 그것에 대한 자각이 없으니 문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김재웅산업화의 폐해는 현재 예술대학에서 여실히 발생하고 있다. 예술학과나 인문학과의 통폐합이 물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문화예술교육 정책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교육사 제도가 시행되면서 대학의 교육과정이 문화예술교육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은 사실이다. 예술대학에서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매우 긍정적이나 만만치 않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여전히 질적 성장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취득자가 폭발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실천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사 교육과정은 교수 업무 뿐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 기획 업무에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는 에듀케이터들이 있어 왔다. 차별화되는 지점이 필요하다. 조정자, 커뮤니케이터, 코디네이터, 행정가 등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다함께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실현에 있어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사회적 토대와 기반을 조성하는 것인데 과연 정책이 우선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책 평가에 있어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대한 평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포함하여 앞으로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어떠한 해법을 강구해야 할까?
박영정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성과는 따로 말할 필요 없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이고, 그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예술강사 지원사업이 일자리정책과 맞물리게 되면서 예술교육이 지닌 핵심적인 가치가 간과되었던 같다. 그로 인해 창의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많았지만, 현장의 교육 진행은 창의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그동안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성찰을 통해 비어있는 부분을 회복하면서 재정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다양한 맥락에서 예술교육의 가치를 재발견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이 정책 주도로 이루어지다보니 수혜자수, 예술강사 일자리 수 등 성과 중심으로 운영된 측면이 있다. 또한 소외계층 대상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과도한 강조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예술강사 정책에서는 일자리 정책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고용 여건 마련 없이 추진되어 오히려 예술강사의 자존감도 복지환경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 놓인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 서비스를 개발하여 제공하는 가운데 예술강사의 일자리가 안정화되는 선순환 구조 마련이 필요한 때이다.
김재웅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과 유사한 사업을 타 부처에서 중복 시행함으로써 발생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지금처럼 접근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는 사업이 생겨난 취지나 사업의 특징이 있었을 텐데, 현장에서 이를 실행하는 예술강사는 어떤 정보나 별도의 연수를 제공받지 못하다 보니 차별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유사한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윤현옥소위 ‘향유자 지원’이라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지난 11년간 엄청난 일을 이루었고 여러 분야에서의 영향도 커져 그 성과를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문화예술교육 관계자들이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회패러다임의 변화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무엇을 바꾼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그 흐름 가운데 도태되는 것과 살아남는 것 그리고 새로이 무언가 생겨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정책은 분배, 나눔이라고 본다. 바다 속에 구조물을 넣어서 생태계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처럼 비어있는 곳에 정책을 넣어주는 것이다. 행정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하는 시스템에 교육이나 예술을 넣게 되면 충돌한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기존의 것을 깨고 자기점검을 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화부나 교육부는 틀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고착화하고 싶어 한다.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어느 순간 경화하여 현장에서는 본질적인 취지는 사라지고 형태만 남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바닥 생태계가 살아있을 수 있도록 기본 틀을 만들어주고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는 행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즉흥성, 우연성, 자율성과 같은 예술의 언어를 행정의 언어로 바꿔주는 번역과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
그동안 탁월한 문화정책들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간 것이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현장보다 앞서가는 것이 늘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와 요구가 성숙하여 문화정책이 되는 상향식 지원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면 원주문화재단에서 생활문화 정책을 토론하면서 제안했던 것처 한 해의 예산 가운데 일정 부분을 ‘주민참여예산’과 같이 몫을 미리 정하지 않고 있다가 한 해 동안 시민의 활동을 통해서 발굴, 제안된 사업에 쓰도록 하는 방식이다. 정부주도의 하향식 지원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시스템 안에서도 가능한 방법을 조금씩 찾고 이를 점차 늘려가야 한다. 최근에는 많은 지자체들이 이와 같은 예산을 운영하고 있다.
박영정문화예술교육은 정부 지원 없이 존속하기 어려운 만큼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역할에 기대는 부분이 크다. 다만 정책은 그 환경을 조성하되, 문화예술교육계와 참여자들의 자율적 움직임이 강화되어야 그 기반이 탄탄해질 것이다. 관료제의 틀 안에 있는 문화예술정책만으로는 우리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장의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정책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은 현장 기반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장의 문화예술교육가 입장에서 정책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관점에서 현장과 정책이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 개념에 대해 좀 더 이야기 나누어 보면 좋겠다. 결국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문화부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부처 정책 내에 어떤 흐름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이 시대의 우리 사회가 ‘예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승환‘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은 잘 붙인 것 같다. 그런데 ‘문화’에 대한 배려가 없지 않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문화를 예술적인 결과나 문화재로만 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문화를 분리시키거나 뭔가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사실 60년대 이후에 철학계에서 문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과 삶 자체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이성적 원리에 따라 자신을 계몽하는 방향에서 주어졌다. 즉 문화와 예술을 작품이나, 그 결과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성취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려는 전환에 따른 것이다. 또한 문화와 예술은 이러한 이해를 재현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문화예술교육 역시 기술전수나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 비평의 능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이를 수행하는 주체의 이해와 이해의 재현으로, 이를 통한 존재 실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명확히 문화예술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전환이다. 문화예술교육 역시 교육에 관계하는 모든 이들, 교육자와 매개자, 교육받는 이들 모두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변화될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도약시키는 계기로 이해해야한다. 문화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삶 안으로 확산시킬 수 있으면 된다. 현장 활동에 문화적 토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입식이나 끌어가는 식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윤현옥예술은 결국 사회와 삶에 대한 관심, 그리고 상호작용에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예술이 삶과 관계를 긴밀하게 묶어주면서 그것이 하나의 공공적 지위를 얻게 되고 이러한 측면에서 여러 정책들이 ‘예술’에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예술교육의 방법도 중요하지만 관계를 맺는 방식과 관심영역이 좀 넓어졌으면 한다. 예술, 예술교육을 공공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에서는 문화, 예술, 교육의 개념 외에도 공공성, 행복 등 유의해서 사용해야 할 개념들이 자주 등장한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왜 이러한 개념들이 중요하며 어떤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까?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통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신승환지금 논의의 핵심은 공공성이지 않을까. 정책 초기부터 많이 이야기 했던 것인데, 공공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공공장소에 내놓은 공공예술이나 일반사람들이 가꾸는 조건일 때 공공이라 하는데, 거기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가 제시한 ‘문화예술교육이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사회적‧문화적 도전과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 연관되어 있다. 공공(公共)에서 앞의 ‘공(公)’은 공익, 공정 등에서의 쓰임과 같다. 그러나 뒤에 있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공(共)’과 앞에 있는 ‘공(公)’이 붙으면 공평, 공익, 공정 등 제 3의 의미가 된다.
윤현옥영어의 퍼블릭(public)을 공공(公共)으로 번역하는데 공동체(共)보다 공익(公)만 너무 강조되어 왔다. ‘공(共)’은 함께, 나눔의 의미이다. 개인을 타자화 하는 공공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개별적인 것 다양성을 인정하는 공공이다. 그동안 퍼블릭에 중점이 있던 것이 변화해야한다.
신승환시장이나 백화점은 공적인 장소이면서 사실 굉장히 사적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쾌락을 채우기 위해 온다. 시장이, 백화점이, 마트가 퍼블릭이냐 공(公)이냐 사(私)냐, 이렇게 따지면 공공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결국 공공을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예술이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차이’이다. 차이를 만들어내고, 이해하고, 생산해내는 것이 예술인데, 예술에서 차이를 빼버리면 뭐가 있나. 차이를 말소시키는 퍼블릭이어서는 곤란하다.
윤현옥예술적 원리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문화적 과정에 대해서도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갔으면 한다. 행복한 삶이라는 것은 당연히 지향해야 할 가치인데 행복한 삶이라는 게 모든 여건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예술에 대해서도 예쁜 것을 보거나 위로하고 치료하는 것, 행복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예술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을 깨트리면서 불편하게하고 되돌아보도록 계기를 만들고 다시 세워나가도록 하는 힘이라고 본다. 그래서 때로는 낯설고 엉뚱하고 기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에서 예술은 경화된 시스템에 침투하는 바이러스와 같이 세포벽을 부서트리고 내부를 교란하는 악성인자로 기능한다. 당연히 타자를 퇴치하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다보면 내부의 기능들을 점검하고 벽도 보수하고 다음에 올 적에 대비하기 위한 계획도 세우면서 분주하게 돌아가게 된다. 일정 시간이 흐르면 서로 적응하고 순화되어 일부로 흡수된다. 당연히 위로하고 편안한 존재보다는 불편하고 낯선 것일수록 강력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신승환행복은 어려운 개념이다. 행복을 충족이나 풍요로 생각하는데, 언제까지 충족되어야 하는가? 충족을 요구하다가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절제로 넘어가는데 우리 자본주의 사회, 현대에서는 절제의 삶을 매우 싫어한다. 사실 행복은 결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결여를 어떻게 알아듣느냐, 어떻게 수용하느냐, 그것이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술은 자본주의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배반이다. 예술은 존재론적 결여를 재현하고, 이를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박영정문화예술교육 정책의 궁극적 목표이자 효과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이 국민 행복으로 연결되려면 단순히 좋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더 많은 국민이 그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다. 본질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수요에 맞추어진 프로그램이 좋은 프로그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지역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전달체계로서의 기능에서 나아가 현장 문화예술교육의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탄생했으면 한다. 그때 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제가 상호 교섭하면서 사회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국민 행복감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 주도의 거대한 정책에서 지역 현장 중심의 작은 움직임으로 중심축이 이전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즘에 자주 언급되는 지역공동체형 문화활동이나 시민참여형 문화활동의 경우에도 적절한 방식의 문화예술교육이 결합되지 않으면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문화예술교육이야말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문화활동 역량을 키워주는 발판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문화정책의 미래도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전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윤현옥시장에 적합한 노동인력을 빠르게 많이 키우는 교육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점차 창의적인 능력이 중요해지고 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러한 시점에 문화예술교육 10년의 역사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아직 문화나 예술은 여유로운 사람들의 것이고 인기 있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새벽부터 줄을 서야하는 상황은 소외된 사람들을 더욱 소외시킨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술교육의 공공적 가치에 주목하고 교육을 담당할 사람을 키워내는 변화가 시급하다. 독일과 같은 사회민주주의국가들은 교육을 공공의 책임이라고 본다. 앞으로의 10년은 문화예술교육을 공공재로 바라보면서 생태계의 건강성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길이 되기 바란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진단과 발전방향의 모색에 있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이루어진 자리였다. 다음 좌담에서는 지난 11년간 문화예술교육의 접근성과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수준을 유지하는 측면에서의 실제적인 변화에 대해 진단해 보고자 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김재웅

김재웅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교수. 홍익대학교 대학원과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애니메이션 정책과 기획, 조형이론과 기획·제작,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학문적 체계를 연구하였다. 앙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등 세계적인 페스티벌에서 10여 편의 단편애니메이션 상영, 월드컵개막식 영상 등 산학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국내외 저명 논문집에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박영정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일문화연구센터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진흥기금 사업 평가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15 사회문화예술교육 중장기 연구」 「2013 시민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기초 연구」 「지역문화예술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 등 다수의 연구에 참여했다.

신승환

신승환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 독일 뮌헨 철학대학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적 지평』(2008),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2003)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근대와 탈근대의 문화해석학」 「생명철학」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윤현옥

윤현옥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디렉터. aec 비빗펌 대표. 홍익대학교 대학원과 독일 슈트가르트 주립조형예술대학에서 수학했다. 2000년 재개발아파트 프로젝트 《대원연립 가동 101, 102호》를 시작으로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놀자, 방방!’(2010), ‘통인시장의 발견 프로젝트’(2011) 등 다양한 공공예술 프로젝트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등 장르와 분야를 넘나들며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_ 마루스튜디오

정리 _ 기획사업단
정리 _ 기획사업단 장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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