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흥시 배곧생명공원에서 ‘2015 배곧 대학생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윤현옥 총괄계획가(aec비빗펌 대표)를 만났다. 배움터라는 의미를 가진 장소에서 대학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학습하며 경험을 쌓고, 지역에는 젊은 에너지와 참신한 아이디어를 불어넣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윤현옥 총괄계획가는 2000년대 초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2005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에서, 재래시장과 지역재생사업에서 문화와 예술의 역할을 모색해왔다.
작가로서 여성주의와 생태주의 등 사회 공공적인 영역에서의 미술이 접촉하고 있는 전통이나 순수한 예술형식으로서 회화와 오브제, 또 나아가서 조각과 설치 영역으로의 조형언어 확산을 실험해 왔다. 2004년도엔 안양에서 안양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바 있고 그 이전엔 기획자로서 잠실에서 있었던 재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로서의 작업이 지금의 활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1990년대 독일 유학 후 10여년 만에 돌아오니 작가로만 활동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예술가로서의 창작행위 뿐 아니라, 때로는 전시기획이나 교육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아이도 길러야하고 생활고도 해결해야 했는데, 이런 한계적인 상황이 다양한 활동을 겸하게 했던 것 같다. 그 당시만 해도 작가들이 나서서 기획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2000년대 초반 아직 우리나라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붐을 이루지 않았던 시기에 재건축하는 건물에서 생활의 흔적이 담긴 버려진 가구나 기물들을 모아 《대원연립 가동 101호, 102호》 전시를 기획했다. 처음에는 개인전으로 시작했는데, 이게 점점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는 잠실 재건축 프로젝트 2002로 커졌다. 2000년에 올림픽대로를 지나가다가 아는 작가가 사는 오래된 아파트가 재건축하느라 창문을 다 떼어놓은 모습을 발견했다. 마치 해골 같은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재건축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어떤 건물이 용도를 다해서 부서지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 과정에 개입한 것이었다. 이런 공간에서의 예술활동이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자유롭고 참신한 실험들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후에는 여성작가들에게 전시기회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백미현, 김미경, 성경화, 오귀원 등의 작가들과 모여 《나쁜 엄마들 땅에 발붙이다. 2003》 전시를 만들었는데, 이 전시는 당시 제 현실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저항이었다고 볼 수 있다.
며칠 전 우연히 청주대 엄기홍 교수님과 김주연 작가님을 만나 한국 모더니즘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 모더니즘 세대로부터 교육받은 선생님께서 사회정치적인 주제는 물론, 교육자로서의 예술가나 최근 청년 세대들과 함께 진행하신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몸담게 된 배경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예술이 ‘작동하는가’에 관심이 있었다. 미니멀리즘과 민중미술이 양분되던 시기에 공부하고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왠지 둘 다 제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미니멀리즘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아서 젊은 나에겐 답답했고 민중미술은 뭔가 자신들이 너무 옳다고 믿는 태도가 계몽적이라고 느껴졌다. 뭔가 다른 것, 사회 안에서 작동하면서 잘난 척하며 가르치지 않은 예술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했던 것 같다.
잠실에서 있었던 재건축 프로젝트 때부터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게 되었는데, 당시 제가 출강하던 대학교를 포함해서 청주대, 경원대, 계원대, 서울대, 홍대 등 학생 80여명이 참여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독일의 쿤스트 아카데미는 입학하면서 다양한 현장 프로젝트에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학생들에게 졸업 후에 현장에 나가서 어떻게 작업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그런 경험을 한국에서도 하고 싶었고 다행히 여러 대학의 교수님들께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또 흥미로운 것은, 학생들 뿐 아니라 고승욱, 김주연, 김월식, 김해심, 손성진 등 이제는 예술계에서 유명해진 작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잠실아파트 주민대표가 아파트를 못 쓰게 해서 장소를 찾다가 안양 석수시장에서 시작된 스톤앤워터에 옮겨와서 전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2005년부터 적극적으로 활동하신 문화예술교육 영역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스톤앤워터에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체계화하고 이후 aec비빗펌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선생님께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의미가 있나?
나에게 문화예술교육은 가교와 같은 것이었다. 예술과 일상생활,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동체를 이어주고 연결해서 무엇인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활동성이다. 개인들이 각자의 활동성을 가지고 움직이면서 연결되고 뭉쳤다 흩어지고 다른 연결을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미술대학교 교육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리터러시 교육’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위치에서 사회적으로 네비게이션(navigation)이 가능한 능력인데, 변화하는 사회를 통시적으로 사고하고 비평적으로 사고해야 예술이 됐든 뭐든 작동할 텐데, 이게 전혀 안 되는 거다. 그나마 건축이나 디자인 쪽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반영하는 노력을 하다 보니 세계 해독능력이 순수예술 학과 학생들 보다는 나은 거 같다. 스톤앤워터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처음 시작할 때도 석수시장이나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들을 ‘나’에서부터 출발해서 ‘너’ 그리고 ‘우리’로 확장되는 관계교육을 우선시 했던 것 같다.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다루다 보면 여기에서 문화예술이 어떻게 세계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주는지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가 혹은 기획자로서 문화예술교육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예술강사가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제도, 정책적인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작가 교육자나 기획자 교육자들이 어떤 태도로 문화예술교육 활동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스톤앤워터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예술가인가 아니면 교육자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던 기억이 있다. 결론은 ‘우리는 교육하는 예술가다, 교육도 예술이다. 좋은 작가가 좋은 교육도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이 갖는 내재적 성격이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였다. 그에 따라서 교육의 방식이나 방향,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교육계획안을 짜고 그에 따라서 교육을 하며 맞추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학생들과의 즉흥적인 상호관계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생활비를 버는 ‘일자리’라는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하는 교육이 스스로의 예술작업과 연결되기를 바랐고 상호적이기를 원했다. 당시 함께했던 김월식, 백미현, 이철성 작가님들은 문화예술교육 분야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작가로, 공동체예술 전문가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예술강사 연수프로그램 ‘태도가 교육을 만든다’도 3회 운영했는데, 이 과정을 이수했던 많은 분들이 현장에서 작가, 공동체 활동가, 기획자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교육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작가가 아닌 전문 강사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표준화되고 체계화되고 있다는 생각인데 각자의 장단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했던 초심을 생각하면 저는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이 교육이 되는 것에 여전히 더 흥미가 있다. 잘 작동하는 예술은 그 자체로 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시흥시 배곧생명공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청년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라고 들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청년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청년들에게 이런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교육 과정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나?
공공미술의 중요성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점차 시장도 넓어지고 있지만 대학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고 전문비평도 부족한 상황이다. 많은 작가들이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우고 십여 년간 쌓인 노하우가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배곧 대학생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여러 장르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공동학습을 하면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실제 현장에 적용해보는 프로젝트다.
전문가, 멘토교수들로부터 공공미술의 의미와 가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자기 안의 담론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고, 실제 현장과 사람을 조사하면서 미술이 놓이는 공간, 공동체,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미술이 어떻게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기여할 수 있는가를 배우기도 하는 장(場)이다. 또 자신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들어보는 기회를 통해 실무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2박3일간의 워크숍에서 순수예술 전공자들은 건축 전공자의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방법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건축과 역시 순수예술 분야의 색다른 시각을 보면서 새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하는 건축의 특성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미술의 조우만으로도 매우 신선했다. 1차 심사에서 8개의 안을 발표했는데 학생들은 그야말로 숨소리하나 없이 발표를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단순히 경쟁공모에 이기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열기였다.
요즘 제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복잡계(複雜系)’이다. 여러 가지 자원들을 찾고 모아서 연결하는 판을 벌이고 연결 속에서 새로운 창발을 이끌어내는 것인데, 제가하는 ‘기획’의 가장 기본적인 틀이고 이번 배곧 대학생 공공미술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기획 중 하나이다. 30여 년 전 제가 미술을 전공하고 작가로 데뷔했을 때는 ‘기획’이라는 분야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작동’하는 미술에 대한 열망이 지금의 길을 가게 한 것이다. 지금 눈에 보이고 알 수 있는 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는 다른 많은 새로운 일들이 펼쳐질 것이므로 직업으로써의 미술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면 좋겠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 시흥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으로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윤현옥
홍익대학교, 대학원과 독일 슈트가르트 주립조형예술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홍익대, 추계예대, 청주대, 충북대, 공주교대, 수리고등학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에서 강의한 바 있다. 현재는 공공예술, 문화예술교육전문단체 aec비빗펌의 대표이며, 청주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0년 재개발아파트 프로젝트 《대원연립 가동 101, 102호》를 시작으로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놀자, 방방!’(2010), ‘통인시장의 발견 프로젝트’(2011) 등 다양한 공공예술 프로젝트,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2005, 2006), 관악어린이 창작놀이터(2011, 2012) 등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등 장르와 분야를 넘나들며 기획자로 활동해왔다. 2015년부터 시흥시 배곧 예술작품조성 사업의 총괄계획가이자 지역발전위원회 문화복지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의 미적 요소와 더불어 사회적인 기능에 대해서 고민하고 학습하고 있다. 작가와 문화기획자로 예술의 역할과 소통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예술교육, 공동체예술, 문화기획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사진 _ 마루스튜디오
- 백기영
- 1969년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학사)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예술(석사)을 전공하였다. 안드레아스 쾌프닉 교수의 마이스터슐러(2002)를 거쳐 귀국 후, 영상미디어 작가로 광주비엔날레(2004, 2008),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05), 공주자연미술비엔날레(2004) 등에 참여하였다. 2006년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디렉터를 거쳐, 2007년 안산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설립하여 디렉터를 역임했다. 2009년 경기창작센터를 새로 개관하여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2012), 문예지원팀 수석학예사(2014), 북부사무소장(2015)등의 직책으로 경기문화재단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kpei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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