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할매들이 쓴 시를 모은 시집 『시가 뭐고?』(삶창)가 지난해 큰 화제가 되었다. 칠곡 인문학도시 총서로 출간된 시집 『시가 뭐고?』를 기획하고, 2020년까지 칠곡군이 추진하는 인문학도시 사업을 주관하는 인문사회연구소 신동호 소장을 대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우리 시대 노인은 누구이고, 노년 문화예술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집 『시가 뭐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시가 외면당하는 시대에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지난해 10월 말 발행 후 현재까지 4쇄 찍었다. 할매들은 “내가 쓴 글이 시가 되는구나.” 말씀하시고, 자녀 세대인 학부모들은 시를 읽으며 “엄마 생각이 난다.”고 말한다. 머리맡에 두고 한 편씩 곱씹으며 읽는다는 분도 계시다. 시인들은 할매들 시는 시의 초심(初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시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레 속고 저레 속고」 「시방」 「시가 뭐고」 「컵피」 같은 작품들을 좋아한다. 앞으로 할매들 시를 어린이·청소년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과 공유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살아 있는 입말[口語]의 매력이 참 대단하다.
시집 「기획의 말」에 쓴 그대로 마을에서 만난 할매들은 “인문학, 그기 뭐고? 우리 사는 모습이 인문학이지”라며 말씀하시더라. 할매들은 “경로당 화투 치냐”며 면박을 주는 타짜였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끊임없이 삶의 경험들과 직조하는 스토리텔러였고, “먼저 간 영감이 못 알아볼까봐 들고 갈라고” 혼서지(婚書紙)를 보관한다는 로맨티스트이셨으며, “찬바람 고들고들 할 때 볕에 날라리날라리” 무말랭이를 말린다는 이야기꾼이셨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구술[口述]의 세계에 사시는 분들이셨다. 문사철(文史哲) 같은 강단 인문학이 아니라 삶의 인문학, 생활의 인문학을 이미 암묵적으로 터득해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셨다.
시집의 성과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진짜 궁금하다. 2012년부터 추진해온 칠곡 인문학도시 조성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칠곡 인문학도시 조성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느리게 가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빨리 성과를 내려고 하지 않고, 우리가 왜 이 사업을 하고 뭘 얻으려 하는가 질문한다. 처음 인문학도시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한 일이 지역 주민들을 만나 ‘간담회’를 조직하고 진행한 것이었다. 나중에 마을 단위에서도 ‘생각밥상’이라는 이름으로 주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인문학도시 사업은 마을당 한두 개 사업이 전부이고, 예산도 많지 않다. 다시 말해 무엇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지역의 농업인 단체, 로타리클럽, 라이온스클럽 사람들 다 만나서 소셜디자이너 양성교육하고, 마을을 하나씩 맡아달라고 했다. 돈은? 당신들 돈으로 해라 했다!(웃음) 지자체에서는 당장 사업성과를 내기 힘든, 시간이 드는 일은 생략하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올 한 해 잘 놀고 잘 살았다”라고 말하는 주민들이 많아지더라. 그런 주민들이 성장하며 스스로 리더가 되어갔다. 사업설명회 때도 그분들이 직접 다 하신다. 마을사업하다 올해 쉬고 싶다 그러면 쉬게 한다. 사업평가를 할 때도 냉철한 분석보다 ‘올해 어떤 점이 아쉬웠는데, 우리 내적 역량이 부족했다’는 식으로 평가를 한다. 분석적으로 하다보면 서로 관계가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人文/人紋)정신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 어르신들에게 배움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어르신들에게 배움은 중요한데, 그것은 공동체에서 같이 놀고, 즐기고, 소통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의정부 축제에서 실버 록밴드그룹에서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던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난 기억이 난다. 그 어르신은 음악교육을 배우며 록밴드를 결성했다. 그런데 음악교육 때는 악보 원곡(元曲)이 복잡하니까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편곡을 해서 연습했는데, 축제 공연에서는 원곡 악보를 보고 연주하시더라. 집에서 혼자 원곡 악보로 열심히 연습하신 것이다. 배움에 대한 각별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평생 ‘손’으로 살아온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오면서 습득한 지혜와 삶의 기술을 가진 ‘삶의 장인’인 것이다. 인문학도시 조성사업을 하면서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지혜와 삶의 기술을 공유하고 싶었다. 무엇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어르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걸 끄집어내고 발견하려고 했다. 노인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할 때는 강사들이 ‘매개자’가 돼야 한다. 어르신들을 교육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서 함께하려는 과정 설계가 중요하다. 노년 문화예술교육의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
노인을 ‘문제’의 대상이 아니라 노인 한 분의 ‘존재’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문화예술교육은 노인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 방식이 강사를 파견하고,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언젠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할매들이 그림 그리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거나 못 그리는 건 중요치 않았다. 할매들은 그 사람 이야기를 듣고 그림에 덕담을 써주셨다. ‘속구치 말고 살그래이’(속지 말고 살아라) 같은 덕담을……. 구술(口述)이 가진 힘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야생(野生)의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한글로 소통한 역사는 1백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할매, 할배들 이야기는 땅에 착 달라붙은 언어들이다. 이것을 되살려야 한다.
학생이건 노인이건 교육 대상자들을 ‘문제’가 아니라 ‘존재’로 인식하려는 시선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그들의 세계를 탐문(探問)하는 과정이 먼저다. 예를 들어 마을에서 1년이면 두세 번씩 버스 대절해 관광을 가곤 한다. 예전 식으로 말하자면 화전놀이, 봄가을 놀이 같은 것이다. 관광버스에서의 놀이는 그분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다른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관광버스에서 노는 것은 위험하고, 나쁜 것으로만 이야기한다. 그런 문화를 인정하고, ‘문화버스’ 같은 것을 개발해야 한다. 사실 버스에 뭘 싣고 가느냐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닌가. 그처럼 매개자 역할이 중요한데, 그 역할은 ‘잘 노는’ 일이다. 문제는 문화예술교육이 하향 평준화되었다는 점이다. 지역 사회에서 뭘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고, 지원사업으로만 존재한다. 물론 이해는 되지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현장과 멀어지며 급격히 관리체계로 가고 있고, 해가 바뀌면 지역센터 담당자가 50%씩 바뀌고, 한정된 예산에 사업 가짓수가 늘어가면서 문제가 더 심해지고 있다.
매개자를 ‘재(再)매개’하는 교육이 중요해졌다.
문화예술교육이 시작된 지 10년 되었는데, 이제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민(民)과 관(官)의 협력이 필요한데, 지금은 ‘관리’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예술강사건, 예술(교육)단체건, 일종의 ‘매개자’로서의 제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일선 현장에서는 기능 내지는 강습 위주로 교육이 진행된다. 학습을 구매하는 것이다. 창의성, 자기 주도성을 중시하려면 무엇보다 참여자들의 ‘내러티브(narrative)’를 잘 들어줘야 한다. 참여자들의 내러티브를 잘 듣는 과정에서 공동체적 시민성이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시민성, 관계 설정, 공동체에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이 되려면 조금 느리게 가야하고, 잘 놀아야 한다. 교육은 자극이고, 강사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다. 교육자-피교육자 구조를 깨는 발상 전환이 시급하다. 시민문화예술교육이라는 큰 틀에서 학교문화예술교육-사회문화예술교육 간 통합이 필요하고, 평생문화예술교육을 설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공적 주체로서의 시민, 자율적이고 창의적이며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그런 시민 양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정책사업은 있지만, 노년문화 담론이 부재한 것 아닌가.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고영직 선생이 언급한 것처럼, 문화정책은 ‘추진’하는 것인가 ‘추구’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만난 어르신들은 다들 삶의 에너지가 있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지난 정부 때 ‘일자리’ 프레임이 세팅되면서 동아리를 만들고, 지역문화 공동체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이제는 ‘호모 헌드레드(homo-hundred)’라고 말하는 100세 시대이다. 프로그램 자체도 그렇지만, 과정 자체도 더 섬세해져야 한다. 예전에 농촌진흥청에서 품질 관리 같은 거 말고, ‘게으른 농업’인 태평농법 같은 농법을 암묵지로 알고 계시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모셔서 농법을 전수받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문화예술교육처럼 음악, 미술, 연극 같은 장르 나열적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다. 누구나 통합성을 말하지만,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가 없다. 어르신들 스스로 디벨로프(develop)할 수 있는 교육과정 설계가 요구된다. 결국, 집단지성의 힘을 신뢰해야 한다. 자꾸 현장을 모르는 어떤 사람들이 교과과정을 설계하고, 여전히 학교교육 체계대로 세팅해 현장에 적용하려 한다. 교육과정과 경로 설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공적 주체로서의 시민이 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최근 세대 간 갈등이 문제되고 있다.
마을 차원에서는 그런 문제가 나오지는 않는다. 농촌 마을의 경우 덜한 편이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실제로 매개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인구 13만 명이 사는 칠곡의 경우 대다수 20-30대는 아파트단지에 산다. 젊은 세대가 전통마을에 가서 교사가 되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다보니, 아파트단지 아이들이 어르신들을 잘 알고 인사를 한다. 젊은 세대들도 계모임을 식당가서 하는 대신에, 그쪽 마을회관 가서 1박2일 머무르며 하곤 한다. 매개 프로그램을 권하고 있고, 스스로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주민들이 구경꾼 신세가 되는 일은 하지 않고, 마을과 깊게 교류하는 방식을 더 만들려고 고민한다.
인문학도시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이번에 통계를 내보니 인문학도시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 수가 2만여 명이고, 관련된 사업에 참여하는 분을 포함해 3만~4만5천여 명 되더라. 앞으로 2020년까지 인문학도시 조성사업은 인문학 여행과 문화귀촌 콘셉트로 진행하게 된다. 시집 『시가 뭐고?』를 지역 어린이·청소년들 교과서로 만드는 걸 추진할 계획이다. 적어도 지역에서 ‘3만부’ 정도는 읽어야 한다. 노트도 아이들이 워크북 형태로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할매들 마음을 지역 어린이·청소년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겠지만, 교육청과 논의할 예정이다. 그리고 인문학축제도 허브형 축제 형식에서 벗어나 19개 인문학마을 스스로 ‘작은 축제’ 형태로 분산해 진행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지역 내 인력양성에 신경 쓰려고 한다. 외부 단체가 참여할 경우, 무조건 지역 인력 1명을 채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점차 예산을 줄여나가되 나중에 스스로의 힘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자활(自活)의 힘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쓰레기 없는 마을, 이런 콘셉트를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하고 있다. 결국 인문학도시 조성사업이란 우리 ‘몸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욕심을 낸다면, ‘교과서’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잘 안 되는 것들을 ‘모조리’ 한 번씩 직접 부딪쳐가며 하고 싶다.
신동호
문화정책, 축제/문화행사, 문화예술교육, 마을/공동체/지역재생, 사회적기업/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평가위원 및 컨설턴트, 대구예술발전소 운영위원, 경상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12년부터 칠곡군 인문학도시 사업단장을 맡아 주민들과 함께 협력하며 10년 이상 평생학습 체제를 구축하고 주민주도형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칠곡 할매들의 시를 묶은 『시가 뭐고?』(2015) 매물도 섬놀이를 담은 『이 바다를 너와 함께 함께 걷고 싶다』(2012) 등 10여권의 책을 기획/출판 했으며, 현재 (사)인문사회연구소 상임이사 겸 소장, 코뮤니타스 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 _ 마루스튜디오
- 고영직_문학평론가
- 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gohy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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