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박설 예술강사의 수업과 만나기 위해 방문한 삼혜원은 여수의 작은 동네에 자리 잡고 있는 아동복지시설이다. 아이들이 가족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함께 생활하는 아동복지공동체다. 필자가 예상했던 수업은 잘 갖추어진 시설에서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거나 발성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 대면한 수업 풍경은 작은 강의실 공간에 책상을 멀찍이 밀어 놓고 맨바닥에 둥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참새들처럼 함께 동요 ‘네잎클로버’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음악교실처럼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낮선 풍경은 오히려 추억을 자극해주었다. 예전에 후미진 동네 사랑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수다 떨며 손장난 하며 놀고 있는 소꿉장난 같았다.
흔히 발도르프 음악교육에서 강조하고 있는 몸을 통한 스킨십 놀이, 손가락 놀이, 함께 부르는 노래를 통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필자가 문화예술교육에서 보았던 다른 음악수업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멋지게 잘 차려 입은 모습의 예술강사라기보다는 친숙한 동네 형 같고, 여러 가지 매체의 음악 교보재 보다는 입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며 손뼉 치는 몸이 악기가 되는 그런 음악수업이었다. 내가 본 박설 예술강사는 아이들의 음악 사랑방에서 마치 빠끔살이(소꿉장난의 전라도 방언)와 같은 음악놀이를 리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몸은 악기, 이야기는 악보
그의 음악수업과 그에 필요한 교재는 매우 단순하다. 음악수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육용 악기나 음악 감상에 필요한 다양한 음악자료들이 생략된다. 그 대신 아이들의 이야기와 말소리 그리고 몸을 활용한다. 덴마크 자유교육에서 강조하는 수업의 기본원칙처럼 말이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게 하며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하게 한다. 수업 내내 떠들고 이야기하고 노래 부른다. 악기는 아이들의 몸이고 수업에 필요한 악보는 아이들이 떠들며 대화하는 이야기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은 결코 선생님이 계획하고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의 충분한 관계형성을 통한 그만의 교육 노하우가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 박설 예술강사는 수업의 목적을 오로지 즐겁게 음악을 하기 위한 것으로 귀결시킨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아이들과 다섯 가지 약속을 합니다. 첫 번째는 즐겁게, 두 번째는 더 즐겁게, 세 번째는 더 더 더 즐겁게, 나머지 두 가지는 ‘선생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과 친구들끼리 서로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모든 음악활동에 게임을 활용해 신체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해서 ‘아, 우리가 하는 음악활동이 이렇게 즐거운 거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의도였습니다. 마치 모국어를 배우듯 음악을 즐기며 배워야 한다며 음악에서 신체활동을 중요시여기는 코다이 교수법을 적용하였습니다. 몸의 움직임을 활용한 계이름, 동요를 활용한 박자치기 수업을 중심으로 합니다.
활동 중에 예술강사가 개입해 들어가면 아이들의 자유도는 이와 반비례해서 저하됩니다. 저도 어제 모든 친구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설명을 하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 이해해야만 빨리 수업에 젖어들 수 있고 이러한 습관이 서서히 몸에 배다 보니 그 친구들이 노래로 자신들의 자율성을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의 수업에서 주목했던 것은 한 아이가 게임과정에서 노래를 부르면 다른 아이들이 약속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합창하는 모습이었다. 예술강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끼리 게임을 하면서 흥에 겨워 정말 즐겁게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코다이 교수법(Kodály method)
코다이(Zoltán Kodály, 1882∼1967, 헝가리의 작곡가・음악교육자)는 우리가 글을 읽고 쓰듯이 음악을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악보를 읽고 기보하는 능력에 중점을 둔 교수법을 개발하였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인간이 내는 소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악보 읽는 것을 노래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코다이 교수법은 가창지도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코다이는 모든 사람들이 모국어를 갖고 있듯이 음악도 모국 음악이 있으므로 자기 나라의 음악부터 잘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음악수업 자료로 민속음악을 주로 활용하였으며, 음악 지도를 시작할 때는 동요를 활용하였다.
자유로움과 음악적 상상력의 비례관계
이처럼 그의 수업은 주로 기악수업 보다는 노래수업이 대부분이다. 그가 게임 형식으로 수업하는 것은 단지 지루함을 없애기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음악을 관계를 형성하고, 인성을 기르는 수단이나 도구로 활용한다. 물론 기능을 익히거나 발표회와 같이 음악적 형식을 갖추기 위한 수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음악활동에 있어서 아이들의 주도성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어떠한 특별한 기능이나 형식을 익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의 교수법에서 음악은 관계형성, 인성교육을 위한 매개입니다. 도입 부분에는 관계형성을 위한 방법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전개 부분에서는 특별한 음악이론보다는 실기를 중심으로 하고, 마지막에 필요하다면 발표회 형식과 같은 작은 음악회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형식도 아이들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공연 시나리오도 짜고 순서도 진행하며 주도성을 갖게 합니다.”
박설 예술강사의 음악수업은 음악교육에 있어 자유로움과 자율성을 높이는 수업 방식이 음악적 상상력을 높이는데 어떤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실제 음악이라는 장르는 미술에 비해 엄격한 질서와 규칙을 요구하며 숙련된 기능을 필수로 하는 매우 보수적인(?) 장르이다. 음악교육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하지만 그의 수업은 정의되고 지시되지 않는 즉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박설 예술강사도 은연중에 자신이 교육받았었던 것과 같은 도제식 음악교육 방식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음악적 형식과 틀 안에서 자유로움을 고민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음악적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수업하기 전에 큐시트를 작성해서 갑니다. 순서와 연계성을 갖고 수업하려고 합니다. 의자에 앉아서 하면 편하긴 하겠죠. 하지만 저는 어떤 수업도 의자에 앉아서 하지 않습니다. 운동장 시설 등 열린 공간을 주로 활용합니다.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면 다 됩니다. 어떨 때는 밖으로 나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과 같이 자연을 느끼면서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은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즉흥적으로 아이들 스스로 개사를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음악적인 상상력은 즉흥성을 동반하면 더 잘 발휘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주변의 모든 것이 음악적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음까지도. 이렇게 보았을 때 리듬, 화성, 화음이라는 것도 음악을 구성하는 하나의 작은 요소일 수도 있겠죠. 따라서 음악적 상상력을 위해서는 음악적 요소 뿐 아니라 주변의 일상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동네를 소개해보기도 하고 ‘우리 이웃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지역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것이 음악적 상상력의 기본 재료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에 즉흥성을 가미하여 자유도를 높이려 합니다.”
일상에서 꿈틀거리는 음악
그는 스스로를 음악선생님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인생 후원자라고 칭했다. 그것은 아마 그가 음악을 통해 소소하지만 꾸준히 아이들의 삶에 작은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역할을 더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오로지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아이들이 관계 맺는 모든 것, 음악으로 인해 달라지는 아이들의 문화적 환경이 아이들의 삶에 조그마한 변화의 단초가 된다. 음악교육은 수업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업의 과정과 결과가 일상 영역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이처럼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 음악이 꿈틀거리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이 그의 음악수업이다.
수업 참관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작은 입으로 불렀던 동요가 계속해서 입에 맴돌았다. 아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의 수업은 2시간이라는 시간적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살아 숨 쉬는 생동감 있는 수업은, 수업 그 자체보다 그 뒤의 여운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아이들 개인의 일상생활, 또래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어 음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문화로 향유하거나 음악활동을 놀이화 하는 것이다.
기존의 많은 음악교육이 일상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이 노래를 배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신의 일상에 돌아가 입으로 다시 불리게 만들어 주는 역할이 바로 음악예술강사의 역할이고 문화예술교육에서 음악교육의 목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워서 익히는 vs 즐기며 나누는
박설 예술강사가 줄곧 강조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을 통한 삶의 변화와 예술강사로서의 태도다. 인생의 음악 후원자로서 아이들과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에게 음악교육에서 기능의 범주는 음학(學)이 아닌 음악(樂)입니다. 음악을 즐기면서 스스로의 삶에 위안을 주고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음악수업을 합니다. 제가 함께하는 아이들은 수업 끝나고 그만 볼 아이들이 아닙니다. 지금도 계속 안부를 전하고 물어옵니다. 계속 함께 만날 수 있는 인생 친구들입니다. 제가 교육자로서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같이 떠들고 웃고 호흡하고 즐기고 느끼다 보니 아이들이 저에게 갖는 감정이 남다른 것 같아요. 음악을 통해서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저에게 음악은 설렘입니다. 중간에 음악을 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무대를 항상 그리워하며 갈망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설레지만 어느 순간 퇴색되면서 그런 마음이 사라집니다. 저에게 음악은 첫사랑처럼 변함없이 설레는 존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초심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에게 음악교육은 단순히 음악 그 자체가 아니다. 음악을 통해서 삶을 가꾸는 수업, 음악이라는 질서 안에서 자유로움을 배우는 시간이다. 서로 소통하고 생각에 개입해 들어가고 양보하고 협력하는 법을 배워 인성을 가꾸어 나가는 그런 통합적인 수업이다. 음악을 통한 인문수업, ‘어린이를 위한 음악 인문학’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만드는 배려하고 소통하며 음악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그런 ‘착한 음악수업’을 오랜만에 만났다.
박설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강숙자 오페라라인 합창단, 졸업 후 빛소리오페라단 등에서 활동한 바 있다. 2007년부터 광주・전남지역 음악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지역 곳곳 문화소외계층을 찾아가는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대표 예술강사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 목포시립합창단 베이스 상임단원, 메이트남성중창단 단원으로 연주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따분하고 지루한 음악이 아닌 세계로 떠나는 음악여행이 될 수 있는 수업을 하며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 수업을 통해 만나는 아이들과 동네 형, 동생처럼 스스럼없이 지내며 인생의 동반자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수업사진제공 _ 삼혜원
정민룡
71년 전남 완도생, 현 광주북구문화의집 관장.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목포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광주비엔날레 시민참여프로그램 <광주별곡>,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프로젝트 <나도 디자이너 작가>, 대인예술시장프로젝트 2010~2012 등 공공예술 프로젝트와 <518 레드페스타> 등 다수의 청소년축제와 <우리집살림살이전> <기념사진전> 등 박물관형 전시를 기획했다. 북구문화의집에서 <바퀴달린학교>(2007~2009, 2012~현재)를 운영하고 있으며 평생교육과 마을학교에 관심이 많다. a3a4@naver.com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 참 좋은 생각인데요. 수업을 하다보면 진도 맞추기에 급급해서 잘 지켜 나가기 힘든 것 같아요.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박설안녕하세요저는혜진이에요
음악중잉맡정총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