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서울 창일중학교 멀티미디어실에서는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반 친구들 중 한 명은 감독, 한 명은 촬영감독, 또 한 명은 슬레이트 담당이 되고, 모든 학생들이 배우로 출연하고 있었다. 약간은 어색하지만 제법 진지한, 그리고 무척 유쾌한 분위기 속에 촬영이 진행되다가, 어느 한 장면의 촬영을 앞두고 갑자기 토론이 벌어진다. 반 친구들 중 한명이 사라지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인 상황. 선뜻 답이 나오지 않다가 이윽고 한 학생이 말한다.
“카메라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번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저 친구가 없는 빈 의자를 보여주는 건 어떨까요?”
그러자 김혜옥 예술강사가 눈을 반짝이며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한다. 이렇게 아이들 스스로의 의견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되면 커다란 멀티미디어실에 온통 활기가 느껴진다. 예술강사와 아이들이 영화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그 빛나는 순간.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영화는 더더욱 ‘표현’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그런 영화가 빚어지는 김혜옥 예술강사의 영화 수업에 다녀왔다.
어떻게 진행되는 수업인지 궁금하다.
1학기를 시작하면서 앞으로 1년 동안 영화를 한 편 만들자고 이야기한다. 처음엔 영화적으로 이야기 상상하기, 그리고 숏 사이즈나 앵글 같은 기초적인 영화언어를 배운다. 그런 다음 학교에서 영화를 촬영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쓴다. 우리의 목표는 영화 만들기이니까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찍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예를 들면 “이 교실에서 우리가 모두 모여 있는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은 뭐가 있을까?”에 대한 의견을 모아서 같이 시나리오를 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어떻게 보이는 게 좋을지 앞서 배운 기초적 영화언어를 떠올리면서 토론해서 스토리보드를 만드는데, 그림이 아닌 글로 쓴다. 그 후 자원을 받아 감독, 촬영감독, 슬레이트맨 같은 주요 스태프를 정하는데 지원자가 많은 경우는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하면서 서로서로 가르쳐 주도록 한다. 촬영할 때에는 반 아이들 모두가 한번 씩은 배우로 등장하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촬영까지 하면 1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되면 NG컷까지 포함해서 촬영한 걸 모두 보고, 영화 편집을 배우고, 자원한 학생들은 간단한 툴로 직접 편집을 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편집한 영상에 음악도 넣고 제목도 붙여서 완성하고 나면 함께 감상한다. 다른 반 작품들도 같이 보고.
1년 동안 이렇게 제한된 환경에서 영화 한편 만드는 전 과정을 모두 체험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영화 만드는 법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보다는 이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이 얻었으면 하는 다른 게 있을 것 같은데?
자기 스스로 의견을 만들고 발표하는 것. 그런데 그게 의외로 잘 안 된다. 보통의 수업은 주로 선생님이 얘기하고 학생들은 그걸 수동적으로 들으면서 진행되다 보니 이런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에서는 굉장히 힘들다. 대부분은 그냥 적당히 시간 때우고 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어느 순간에 하고 싶은 걸 딱 얘기하면 그게 또 좋다. 아까 수업에서 카메라 회전 아이디어가 나온 것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걸 좋아하게 되고, 좋으니까 생각하고, 그러다 원하는 걸 말하는 그런 순간이 제일 좋다.
힘든 점은 없나?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들이 늘 자발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오늘 수업한 반은 굉장히 참여가 좋은 편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내가 많이 나서서 진행해야 하는데,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면 힘들다. 그럴 때면 차라리 영화 제작 과정을 최대한 쉽게 줄이고 영화 리터러시(literacy) 수업으로 바꿔 볼까 싶기도 한데, 그런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의견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실 의견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서로 생각을 편하게 말하고 굉장히 어른스럽지만, 어른이 같이 있을 때는 어린애가 되고 생각을 감춘다. 그게 참 힘들다.
또 하나는 수업을 쭉 진행하다가 촬영에 들어갈 때인데, 반 전체가 참여하는 경우는 괜찮지만, 몇 명만 촬영하게 되는 경우에는 나머지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다. 분반해서 반은 촬영하고 나머지 반은 다른 영화를 보게 한 적도 있는데, 그래도 혼자서 전체를 다 통솔할 수 없으니까 불안하다. 선생님이 한명 더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요즘은 혼자서도 컨트롤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정해진 환경에 맞게 수업하는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수업 외에도 학교 교사나 타 분야 예술강사들과의 교류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어떤 활동을 했고, 그런 활동들이 실제 어떤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한창 통합, 융합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문화예술과 교과과목과의 연계에 대해 많이 얘기할 때가 있었다. 그때 연수를 많이 들었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면서 꽤 재미있게 작업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내 수업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학교라는 곳이 보수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니까 현장에서 바로 적용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그리고 방학 때 문화예술 소외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상상 체험대’ 지원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때 너무 복잡하고 힘든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가 엄청 고생하고 그 팀이 바로 해체됐다.(웃음) 아이들에게야 무척 즐거운 체험이었겠지만, 막상 진행을 해야 하는 우리한테는, 어휴…… 의욕만 너무 컸지.(웃음) 오랫동안 잘 해오고 있는 팀도 있는데, 그 분들은 최대한 프로그램을 단순하게 해서 운영하는 노하우가 있더라. 성공 사례는 나중에 그런 분들에게 들으면 더 좋을 거다.(웃음) 그래도, (정색하고) 문화예술이 취약한 지역에 가서 잠깐이나마 아이들에게 예술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준 것은 뿌듯했다.(웃음)
원래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어떤 계기로 예술강사가 되었나?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모두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찾다가 폴란드에 있는 우쯔 국립영화학교에 갔고, 2006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졸업 작품 찍고 논문을 준비하다가, [씨네21]에 예술강사 모집 광고가 난 것을 보고 지원했다. 그때는 단순히 생활비를 벌 수 있고 시간 조절도 가능할 것 같아서 지원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 가르치고 같이 얘기하는 걸 좋아해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하다 보니 벌써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8년이면 꽤 긴 시간이다.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2009년에 두 학교에서 수업을 했는데 공교롭게 둘 다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함께 하게 됐다. 일반 고등학교 특수학급과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였다. 아이들이 대부분 혼자서 하고 싶은 걸 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하곤 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어느 순간 함께 하는 활동에 집중하게 되고 스스로 다른 친구들과 협동하는 걸 배우는 게 보이더라. 기분이 좋았다. 또, 비장애 학생들에 비해서 장애학생들은 창피해하거나 남 신경 쓰는 게 덜하니까 속도는 더뎌도 자기 색깔이 더 많이 나온다. 영화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런 게 훨씬 재미있다고 느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학생들이 장애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자신감이 적은 편이었는데 1년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토론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겪고 또 리더의 경험을 하면서 자존감을 찾아 가더라. 그 1년의 작업을 통해서 ‘영화라는 게 예술작품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교육적으로도 굉장히 좋은 매개체구나’하는 걸 느꼈고, 굉장히 뿌듯했다. 지금도 그 아이들은 참 많이 생각난다.
매년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다시 영화감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있다. 언젠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학교 졸업 작품 단편 만들고 나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잘 안됐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영화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나도 모르는 상황까지 돼서 일단 그만뒀다. 그렇지만 언젠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게 되면 그때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제대로 된 영화 찍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선생님에게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인가?
뭔가 멋있는 말로 답하고 싶은데, 안 떠오른다. 그냥 좋은 거, 재미있는 거. 난 정말 재미있어서 한다. 예술강사 하기 전에는 주변에 아이들도 없고, (아이들에 대해) 뉴스나 TV에서 본 이미지로만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매일 직접 부딪치면서 아이들을 보면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만이 가진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게 되는 것 같다. 억지로 끌고 가려 하지 않고 그냥 마음 내려놓고 편하게 하면 좋다. 아이들을 만나는 건 항상 좋다. 이 일을 하고 있는 자체가 참 좋다.
김혜옥 예술강사
강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폴란드 우쯔 국립영화학교에서 영화연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우연한 계기로 예술강사를 시작했다가 아이들과의 만남이 재미있고 좋아서 8년째 예술강사로 살고 있다. 영화를 통해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조금씩 변화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언젠가 세상 사람들과 정말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면 다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산다. 영화 <우쯔에서의 시간여행>(2005), <아름다운 밤>(2007) 등을 연출했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허경
서울독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지금은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일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어느 영화제에서인가 일하고 있을 것이다. jeol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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