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우라사와 나오키(Urasawa Naoki)의 만화 <몬스터(Monster)>는 치밀한 스토리와 철저한 고증,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심리묘사로 유명하다. 그리고 만화가 얼마나 독특하고 세련된 표현수단을 지닌 매체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컷의 수와 크기로 독자의 몰입을 조절하는가 하면, 의성어의 글꼴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으스스한 공포를 연출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만화를 묻는 질문에 박근애 예술강사가 꼽은 것이 바로 이 <몬스터>였다.
8년차 예술강사인 박근애 예술강사는 산업디자인과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만화는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PC통신의 만화 커뮤니티 운영자도 했고, 코스프레 행사도 구경하러 다녔다. 휴학을 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때문에 보게 된 <몬스터>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미술강사로 활동하던 그녀가 만화/애니메이션 분야까지 발을 넓히게 된 계기가 됐다. 대학원에서도 「협동학습에 기초한 애니메이션 지도방안연구」(2009)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전까지는 보기 좋고 예쁜 그림체가 만화의 전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몬스터>처럼 작품성이 뛰어난 만화를 보고 놀랐죠. 아, 세상에 이런 만화도 있구나.”
학생 뿐 아니라 학부모, 교사와도 소통해야
만화는 그림과 글이 합쳐진 예술이다. 그림과도 다르고 글과도 다르다. 앞서 <몬스터>의 예에서 말한 것처럼, 사용하기에 따라서 무척 다채롭고 독창적인 표현이 가능한 매체다. 박근애 예술강사는 만화/애니메이션이 일반적인 미술교육과 다른 특징을 ‘소통’이라고 정의했다.
“어떤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그림 또는 글로만 표현하는 것과, 글과 그림을 함께 이용해서 표현하는 건 다르잖아요. 그래서 일반 미술수업을 하는 것보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효과가 높아요.”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 만화 관련 학과가 생긴 지 오래이며, 유명 만화가가 예술의전당에서 대규모 전시를 여는 시대다. 그렇지만 만화의 사회적 이미지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박근애 예술강사 역시 만화/애니메이션을 가르치면서 이런 어려움과 마주친다고 했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학부모 세대에게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게 첫 단계다. 워크숍이나 포럼 등에도 부지런히 참여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만화/애니메이션 수업의 장점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국영수 공부하기에도 바쁜데 수행평가에도 안 들어가는 걸 왜 배우는지, 선생님은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러 이 자리에 왔는지, 이걸 배우는 게 왜 중요한지 등을 먼저 설명해요. 그런 설명을 하고 수업하는 것과 그냥 하는 것은 너무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예술강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늘 그런 고민들을 이야기해요.”
그래도 막상 수업을 시작하면 학생들의 호응이 폭발적이다. 이날 그녀가 서울 광진구의 광양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메르스 예방 캐릭터 마스크 만들기’ 수업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교실은 산만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무색하게, 학생들의 집중력과 적극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수업을 즐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능동적이고 자유분방하게 아이디어를 주고받았고, 예술강사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박근애 예술강사는 30명이 넘는 아이들 사이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한 명 한 명을 열성적으로 지도했다.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사소한 칭찬
박근애 예술강사는 매 시간 아이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한 번 이야기하면 잊어버리기 쉬운 기초적인 것들을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다. 색칠과 표현 등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것, 기초를 탄탄하게 쌓는 것은 그녀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지금은 지루하더라도 천천히 기초를 쌓으면 나중에는 저절로 빨리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강의 초반을 지나면서 점점 탄력이 붙고 아이들이 뭔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단계까지 가면, 박근애 예술강사도 깜짝 놀랄 정도의 작품이 종종 나온다고 한다. 이날 수업에서도 지난 시간에 그린 카툰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어린 학생들의 표현력이라고는 믿기 힘든 작품들이 많았다.
“예술강사 모임에 아이들 작품을 가지고 가면 다른 선생님들이 놀라요. 얼마나 아이들을 쥐어짰으면 이런 퀼리티가 나오느냐는 말도 들어요.(웃음) 그림만 서툴 뿐이지 기성 작가보다 나은 작품이 나오기도 해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과 거의 흡사한 아이디어가 나온 적도 있거든요. 아이들은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에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껴요.”
그렇지만 박근애 예술강사가 제일 신경을 쓰는 것은 ‘성장률’이다. 현시점에서 얼마나 능숙하고 잘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아이들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고 동기를 부여하는가 하는 것. 그래서 수업시간에 흔한 그룹작업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모든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역할을 분담한다. 그룹이 있으면 그 안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사소한 변화까지 알아챌 수 있는 관찰력과 세심함이 교사에게 필요한 이유다.
“사소한 발전이라도 기억해주고 칭찬해주면 아이들은 그만큼 더 노력해요. 그리고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스스로 뿌듯해 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해가는 거죠.”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
자신과 같은 길에 들어선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냐고 묻자, 박근애 강사는 “솔직히 다른 일 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으로 모두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예술강사의 길이 쉽지 않다는 뜻일 거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일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못하는 성격인데, 아이들 앞에만 서면 괜찮아져서 주위 사람들이 다 신기해한다.
“연수나 세미나 참여할 때도 준비는 많이 하는데, 정작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는 너무 편하더라구요. 아이들은 뭔가 다른 거 같아요.”
박근애 예술강사는 “예술강사는 부지런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장래 목표는 심리학을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미술심리치료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만화/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심리치료 연구는 지금까지 논문 세 편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미미하다. 박근애 예술강사는 이 분야를 개척하고 싶다고 한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다.
“예전에 미술치료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한 게 강사를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림이 확실히 다르게 보이거든요. 민감한 학생을 대할 때 특히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아이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게 그림에서 느껴져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아이들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더 조심하게 됐어요.”
성장한다는 것은 행복해지는 것
그녀는 자신의 수업이 아이들에게 단순히 ‘재미있는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에 유익한 무엇이 되기를 원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나서 배운 것을 응용할 줄 알고,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 질문으로 “예술강사님에게 성장이란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행복”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 대답에 그녀가 예술교육자로서 가진 철학,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아,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구나.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성장은 행복인 거 같아요. 제가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아이들이 강사 평가에 ‘선생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좋아요’라고 적은 거 보면 너무 좋아요. 아이들에게 칭찬받으니까 행복하고, 그게 저를 더 성장하게 하니까요.”
박근애
국립군산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2009년 건국대학교에서 미술교육 석사과정을 마쳤다. 교과미술 및 방과 후 교실 강사, 도슨트 등을 거쳐 2009년부터 만화/애니메이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한 욕심도 많아 유아및아동교육지도사, 미술치료교육사, 디자인공예 및 미술 중등 정교사 2급, 문화예술교육사 등 자격증도 많다. 앞으로 심리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그림으로 아이들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최승우 _ 자유기고가
2011년까지 월간 [PAPER] 에디터로 일했으며,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스포츠토토 온라인 분석패널 등을 거쳐 음악, 영화, 만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써왔다. 현재 만화웹진 [에이코믹스]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http://facebook.com/loonytunaloonytun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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