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은 우리나라가 그 탄생을 이끌어냈다. 2011년 11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제3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우리 정부가 발의한 ‘서울 아젠다 : 예술교육 발전 목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매년 5월 넷째 주를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으로 선포한 것이다. 당시 그 과정을 함께했던 데이비드슨 헵번(Davidson Hepburn) 전 유네스코 총회 의장이 주간 행사 개막식 축하인사, 국제심포지엄 발표를 맡아 4년 만에 한국에 다시 방문했다.
20여 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그중 15년 넘게 유엔,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온 데이비드슨 헵번은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교육의 힘을 믿으며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열세시간이 넘게 걸리는 비행시간만 제외하고는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는 ‘카리브 해에서 온 노신사’를 만났다.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을 선포했던 제36차 유네스코 총회 당시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2011년 유네스코 총회 때 아주 중요한 채택을 하였다. 바로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이다. 당시만 해도 예술교육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던 때였는데, 만장일치로 의결될 만큼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의 호응이 컸던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교육이라는 아이디어, 개념을 받아들이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어떻게 예술교육에 접근할지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었고,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이 예술교육을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그 후 4년 만에 다시 한국에 방문하신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는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을 이끌어낸 주도국으로서 매년 다양한 행사를 펼쳐왔고,
특히 올해는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주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어떤 기대가 있는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이번에 부산에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는데 여기서 연설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두말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서울 아젠다’ 채택 이후, 그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번에 다시 방문해서 다른 국가들이 예술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비교해서 들어볼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되었다.
처음으로 지역에서 개최하면서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아주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연극 쪽에는 “일단 (작품을) 올려 봐야 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은 후에는 전념해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웃음)
내가 지금 사는 곳은 바하마(Bahamas)인데 그곳에서도 예술교육의 발전과 개발을 목도하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서 별로 질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좀 더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공연과 시각 등 예술 전반에서 더 큰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특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그동안 해왔던 노력의 결실이 이러한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부와 함께 문화예술교육 지원 정책을 활발히 펼치고 있을 뿐 더러 예술교육의 개념과 중요성을 놓치지 않고 가는 것이 참 고무적이고, 잘 해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에서 ‘예술교육의 비전’을 주제로 발표했다. 간단하게 설명 부탁한다.
어떻게 해야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전달할 수 있을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메시지를 던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먼저 예술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다음으로 바하마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의 현황, 마지막으로 예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분야들, 즉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기후변화, 이주 등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다. 내가 던지고자 했던 ‘예술교육의 비전’이라는 특별한 메시지는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자는 것이다. 매우 중요하지만 간과되고 있는 예술과 지역 사회와의 관계의 문제들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활동했는데, 문화예술교육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을 것 같다.
아주 옛날에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인문학을 전공했고, 언어와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예술이 어떻게 표현되고 진행되는지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연극 같은 공연예술 뿐 아니라 시각예술까지 모두를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외교관으로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외교관의 태도가 일반인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내가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외교관을 “지금 당장 지옥에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 여행을 아주 고대하고 있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다.(웃음) 나는 정치색이 강하거나 정부 간의 갈등과 싸움을 유도하는 쪽이 아니라 그 안에서 중재자, 조정자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내가 공부했던 것들이 유효했던 것 같고, 내 관심을 예술로 옮기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하마에서 ‘창의 나소(Creative Nassau)’를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문화나 예술교육과 연결하여 보다 풍요로운 문화예술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된다.
경제가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 시민들을 잘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경우에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어떤 문화유산이 있고, 어떤 문화적인 발자취가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하마에도 몇 가지 자연자원이 있다. 짚이라든지 열대・아열대성 식물 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잘 활용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관광에만 너무나 치우치지 않도록 해보자고 얘기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하마 나소의 관광지에서는 보통 외국에서 값싸게 수입해온 기념품이나 유물들을 판매했다. ‘창의 나소’를 통해 교육과 접목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고유한 스타일을 찾고, 관광객들과 나눌 수 있는 상품들도 만들어 보자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이에서 노인까지 전 세대에 걸친 예술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은퇴 이후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에 대해 당신 역시 관심이 있을 것 같다.
(웃음) 청소년 뿐 아니라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 부분에 대해 내가 전문가라고 생각해 줘서 고맙다.(웃음) 나 역시 예술에 대한 애착이 크지만, 기본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기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바하마에는 아이들이 주변 환경을 돌아보고,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교육받는 특별한 청소년 프로그램이 있다. 간단하게는 썰물 이후에 해변 가에 쌓인 잡다한 것들을 치우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을 주관하는 기관이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AMMC(Antiquities, Monuments & Museums Cooperation)이다. 낡은 건물이나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정상화하는 역할에 매진하고 있다. 어른들 뿐 아니라 어린이・청소년들도 여가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러한 지역사회 활동과 연결시켜 보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지역의 장애인과 재가 노인 등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전통’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지역사회에 연세가 지긋하신 8,90세 정도의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현재의 바하마와 과거의 바하마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한국도 이런 활동을 하기에 이상적인 나라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을 조직하는 역할이나 매개체의 필요를 느낀다. 지역사회에 있는 많은 노인, 은퇴자와 젊은이들을 연계하는 보다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한국은 올해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문화예술교육의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내실을 쌓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
조언해 주시면 좋겠다.
현재 상황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한국정부가 문화예술교육의 발전과 성공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하마에서는 이제 막 교육부가 커리큘럼을 변경해서 영어, 수학 외에 예술교육 쪽에도 초점을 맞추는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부의 변화야말로 실제적인 예술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일으키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이런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것 외에도, 예술교육을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현실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 사회구성원들이 그만큼의 책임을 이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젊은이들이 예술교육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예술교육은 정치, 종교 등을 떠나 사람들을 한데 묶는 등 다기능적이고 다채로운 쓰임이 있다. 이러한 중요성을 좀 더 부각해야 할 것 같다.
[아르떼365]의 주요 독자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종사하고 있는 예술강사나 활동가, 연구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분야 종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달라.
이렇게 [아르떼365]같은 매체나 다양한 자료를 읽고, 정보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이런 웹진을 보면서도 대충 수박겉핥기 식으로 훑어보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독하며 그 안에 있는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인터뷰가 기사로 발행되면 내게도 보내주겠는가? (웃음)
데이비드슨 헵번(DR. Davidson L Hepburn, OBE)
1932년 바하마의 작은 섬 뉴 바이트(New Bight)에서 태어났다. 미국과 스페인에서 영문학 석사,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스위스 제네바 국제관계대학원(Institute of International Relations)을 졸업했다. 20년 넘게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그중 10년 간 유엔 대사로서 봉직했고, 제35차 유네스코 총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2년간 활동했다. 현재 AMMC(Antiquities, Monuments & Museums Cooperation) 대표이며, 작년 11월 첫 소설 『The Short Happy Life of Alexander Mann』을 출판하기도 했다.
1995년 프랑스 슈발리에 공로 훈장(Chevalier du Legion d’honneur), 2008년 대영제국 4등 훈장(OBE, Offic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훈했다.
사진 _ 장영주 (마루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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