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2011년에 선보인 <조상님께 바치는 땐쓰>를 본 적이 있다. 이 ‘잘 나가는 무용가’는 전국을 돌며 ‘아주 평범한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리곤 할머니들의 춤, 흔히 막춤이라고 불리는 일상적인 춤을 통해 그 세대를 들여다보았다.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쳐 테크놀로지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파란을 겪은 이들의 삶을 춤으로 살펴본 것이다. <조상님께 바치는 땐쓰> 공연에는 그 어르신들이 직접 출연하여 막춤을 추었다. 아프다던 관절에 힘을 불어넣은 것은 의학의 힘이 아닌, 신명과 흥이었다. 안은미는 그 때 ‘이것은 막춤으로 쓰는 인류학 보고서다’라고 말했다. 그런 할머니들과 막춤을 통해 그 세대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국제시장’도 그랬다.
임소영 예술강사의 수업을 보면서 위의 작품이 떠올랐던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어쩌면 임소영 예술강사의 수업은 단순한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음악으로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이제 임소영 예술강사가 있는 곳으로 가보자.
어르신들이 피우는 음악의 꽃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성가정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우쿨렐레 소리에 맞춰 뉴질랜드 민요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돋보기 너머로 악보를 보고, 우쿨렐레의 운지법을 짚는 모습이 진지한 어르신들이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들의 운지법을 부지런히 고쳐주는 임소영 예술강사가 보인다. 임소영 강사는 2010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복지기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노인분야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노인’이라는 단어에서 무조건 ‘나이가 많은 분’이 떠올랐어요. 이런 배움 자체를 어려워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무엇보다 기력들이 되실 지도 궁금했어요. 하지만 강의배치를 받고 첫 수업을 할 때, 에너지가 저보다 더 많으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소영 예술강사는 1주일에 2시간 씩 수업을 진행한다. 이곳 외에도 강동노인종합복지관과 이천시노인종합복지관에서도 수업을 맡고 있다. 성가정노인종합복지관에서 임소영 예술강사가 만나는 어르신들의 연령층은 60대부터 80대로 다양하고, 수업은 20명 정원이지만 건강과 가정 상황에 따라 대략 출석인원이 달라져 보통 16명 정도 참여한다고 한다.
수업은 초급자와 중급자가 한 자리에 모여서 진행된다. 어르신들은 우쿨렐레의 운지법을 배우고, 그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합주로 끝을 맺는다. 임소영 예술강사는 수준을 그분들의 눈높이에 맞췄다고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분들이기에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래서 악기를 잘 다루는 기술보다는 “배우려는 학생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합주로 마무리를 하는 이유도 부족한 부분은 다룬 분이 채워주며 하나 되는 느낌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일종의 아름다운 빚을 지는 셈이다.
오늘은 16명이 출석했다. 여학생(?)들 중에 유일한 남학생(?)도 보인다. 집에선 호통 치는 가장이지만, 이 수업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다.
“20대 때의 사진을 보여주신 적이 있는데, 여러 악기를 배우셨더라고요. 남성분들 중에는 여성분들만 계신 분위기가 힘들다고 나가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이번에도 남자 혼자라서 못 할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제가 꼭 계셔야 한다고 당부의 말씀을 드렸어요.”
지금, 그 남학생은 자리를 지키며 차임벨로 여학생들이 부르는 ‘포카레카레 아나’에 맛깔나게 반주를 담당하고 있다.
딸 같은 예술강사, 엄마 같은 학생
두 시간 수업의 중턱,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임소영 예술강사를 챙기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여기 와서 시원한 거 한 잔 마셔요” 어떤 분은 내 옆으로 오셔서 귀띔한다. “우리 선생님은 최고예요! 내가 잘 못해서 그렇지.” 임소영 예술강사가 말한 대로 ‘20명의 학생’이 ‘20명의 어머니’가 되는 순간이다. 예술교육이 맺어준 다리에는 이처럼 음악과 정이 오간다.
“아이들은 부모가 보내서 오거나 의무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르신들은 출석이 건강과 가정 상황에 따라 들쑥날쑥하지만, 본인의 의지에 의해 나오세요. 아이들은 예술강사가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서 음악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반면, 어르신들은 그냥 저 하나만을 보시고 오시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은 정말 사랑을 많이 주세요. 늘 힘들지만, 이 점이 제가 이 수업을 계속하는 원동력이에요. 뭔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매번 들어요. 어르신들과의 수업을 통해 제가 더 크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보니, 이 수업은 앞으로 나이가 들 임소영 예술강사를 위한 인생 교실 같아 보이기도 한다. 수업을 참관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나 또한 질문지를 ‘리셋’ 했다. 내가 들고 있던 메모지에는 ‘노인들의 신체활동 촉진’ ‘사회활동의 감소로 저하하는 사회성 방지’ 등의 딱딱한 용어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이 시간은 어르신들이 그간 잊었던 감수성을 회복하고, 가슴 속 한 구석에 출렁이던 미지근한 물을 뜨겁게 덥히는 시간이었다.
정책(政)보다 앞서는 정(情)이 있다
세대 간의 갈등과 통합이 이슈로 떠오르는 지금, 임소영 예술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이곳에 작은 해답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에 어르신들의 음악회가 있었어요. 자녀분들이 음악회를 보고 악기를 선물해드렸다고 해요. 어떤 할머니는 손자들과 우쿨렐레는 함께 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작은 악기가 가족 간의 소통의 징검다리가 된 것이다. 이것이 임소영 예술강사가 갖는 제일 큰 보람이라고 한다.
“80세가 넘은 분이 계세요. 작년에는 우쿨렐레가 부족해서 두 분씩 악기 하나를 나눠서 쓰셨어요. 그런데 그분은 본인 악기를 직접 구매하셨더군요. 그 악기를 들고 수업 받으러 오시는데 동네의 젊은 엄마들이 악기를 멘 모습을 보고 어디 가시는지, 너무 보기 좋아 보인다고 했대요. 자신이 난생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는 게 뿌듯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일까. 이렇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통해 만남의 다리가 놓이고, 그 사이로 정과 보람이 오고 가지만, 지원이 종료되어 이별하게 될 때는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럴 때, 임소영 예술강사는 딸처럼 아껴주던 어르신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예술강사로서의 책임감을 앞선다고 한다. 그 속상함이 깊었는지, 개인적인 징검다리를 놓아 어르신들과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라도 인연을 이어가는 게 어르신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인 것 같아요. 물론 예술강사 대우보다는 부족한데요. 어머니들의 사랑이 그 나머지를 채워주세요. ‘의리’인 것이죠.(웃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情)’은 ‘정책(政)’보다 더 앞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가슴이 시켜서 하는 일인 것이다. 앞으로 정책적 차원에서 문화예술교육의 다리와 고리를 어떻게 놓아야 할지 더 많은 고민을 했으면 하는 나의 바람도 여기에 남겨본다.
노인은 우리의 미래다
흔히들 어린이와 청소년을 우리의 미래라고 한다. 그런데 노인 또한 우리의 미래, 나와 직결된 미래이다. 그분들이 지금 앉아 계신 곳에, 어느덧 우리의 어머니가, 그리고 나 자신이 앉아서 우쿨렐레는 배우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것을 지켜보는 자녀가 그 자리에 앉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맞아요. 이분들이야말로 저의 30~40년 뒤의 모습이에요. 그 때는 저도 이분들처럼 뭔가를 열심히 배우는 학생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열심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배운 게 있어서 선생님한테 딴죽 거는, 좀 엉뚱한 학생이 되지 않을까요.(웃음)”
임소영 예술강사에게 ‘나이 듦’이란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여유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싶어요. 그게 삶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제 자신도 지금은 직업으로 노인음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지만, 언젠가 직업이 아니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나이 든다’라는 말은 은퇴(隱退)라는 말과 직결된다. ‘퇴(退)’란 물러난다는 뜻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날은 ‘퇴(退)’가 ‘퇴(堆)’로 느껴졌다. ‘퇴(堆)’는 쌓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노인들은 사회에서 한 발짝 물러난(退) 분들이지만 인생의 지혜를 쌓은(堆) 세대이기도 하다. 이분들과 만날 수 있는 문화예술의 다리가 많이 놓아졌으면 한다.
임소영
선화예술고등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서울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음악교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2010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활용한 교감을 위해 실버국악·아동국악 실기, 타악과 모듬북, 우쿨렐레 등의 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노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늘 고민하며, 자신의 음악적 지식과 어르신들로부터 받는 정을 교환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기획실장.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