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과 함께 만드는 전시, 스웨덴 국립 세계 박물관의 ‘트래피킹’ 전

관람객과 함께 만드는 전시, 스웨덴 국립 세계 박물관의 ‘트래피킹’ 전

사회적 이슈를 전시 소재로 택해 지역 사회 시민들에게 다양한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는 스웨덴 국립 세계 박물관의 트래피킹전을 소개한다.

‘트래피킹’은 국제 무역 중에 악덕하거나 부적절한 교류를 일컫는 말이다. 국가 간의 무역 중에는 합법적인 재화의 교류도 있겠지만, 사람들을 매매하거나 문화재를 매매하는 등 어두운 부분도 도사리고 있다. 스웨덴 예테보리에 소재한 스웨덴 국립 세계 박물관의 새 특별전 ‘트래피킹(Trafficking)’ 은 최근 세계화로 인해서 사람(특히 여자나 어린이)을 사고파는 국제 인신매매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여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기획되었다. 스웨덴 국립 세계 박물관의 설립취지문에는 ‘이 박물관이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고, 사회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장 역할을 하고 다양한 문화 배경의 사람들이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인 장소’ 임을 강조하고 있다. 전시에 사회문제를 반영시켜 사람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박물관의 주된 방향이다. 이 박물관은 애초에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서 19세기 말에 수집된 컬렉션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민족지학(Ethnographic) 박물관이었다. 2004년 재개관하며 지금까지의 성향을 바꿔 서구 박물관의 식민주의적인 수집 정책 등을 비판하고, 사회 문제를 반추하는 프로젝트로 거듭났다. 특히 종전 단일민족에서 최근 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스웨덴의 현재, 다양한 문화배경을 가진 그룹을 관람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관람자 조사’이다.

특별전 ‘트래피킹(Trafficking)’ 로고

전시된 인신 매매 피해자의 여권

오브제 보다는 이야기 중심의 전시

전시 ‘트래피킹’ 은 사회문제에 대한 피해자들의 개인적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동유럽 등지의 소녀들이 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을 악용하여 마수의 손을 뻗는 무리들이 존재함을, 꿈과 맞바꾼 끔찍한 현실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당해야만 했던 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을 전하기 위해 범죄에 사용되었던 물건들, 경찰에서 제공한 관련 자료, 관련 주제로 작업한 설치 예술가들의 창작품들, 사진, 다큐멘터리 필름,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서 시각화시켰다. 한국의 사회고발형 시사 프로그램이 박물관에 전시된 것이다. 조명, 음악 등 효과가 집적된 장소에서 직접 범죄에 쓰였던 물건과 관련된 문서를 보면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신매매가 얼마나 끔찍한지 관람객이 직시하게 된다.
이 전시는 박물관의 독자적인 기획물이 아니다. 펀드를 마련하고 전시 자료를 제공하고 관점을 제공하는 등 수많은 단체들의 협력으로 2년간의 준비 끝에 현실화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단체를 들자면 스웨덴 경찰, 종교 단체, 페미니스트 단체 등을 꼽을 수 있다. 국제 경찰의 공조가 트래피킹의 주제에 필수요소이듯 그리스와 라트비아, 이탈리아 등지의 관련 기관도 협력해 스웨덴 예테보리 전시 후 유럽 순회가 예정되어 있다. 공적 기관의 협력이 자칫 전시회의 방향을 통계와 경고문의 도배로 메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예술가들의 현대 설치 미술과 오브제 이용한 전시로 일단락됐다.
박물관은 무거운 사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관람객의 주 타깃 층을 선정하고, 이들에게서 의견을 듣기 위해 전시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관람자 조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로써 전시회에는 관공서, 종교 단체, 페미니스트 그룹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시를 관람하고 반추할 관람객의 목소리가 반영된 셈이다.
특별전 ‘트래피킹’은 그 내용 자체로도 사회적 이슈나 문제에 대한 생각을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민들, 특히 청소년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보는 눈을 가지게 되는 인권 교육의 예를 보여준다. 여기에 본질적으로 박물관이 직접 이들을 찾아가 의견을 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일방적으로 이들을 가르치는 모델이 아니라, 쌍방향의 예술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예를 시도하고 있다.


이야기 중심의 전시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 이 전시는 청소년층을 주 타깃으로 만들어졌다.

‘관람자 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컨설턴트 페르 안델손씨와의 일문일답.

– 전시 초기부터 도입된 ‘관람자 조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특별전 ‘트래피킹’의 주된 타깃 그룹인 16~25세 연령 대에 있는 청소년층이 ‘트래피킹’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자신의 삶과 연결시키고 있고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점을 전시에서 직접 보고 싶은지 파악하기 위해 시도된 프로젝트입니다.”

– 관람자 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전시를 위해 조사, 수집된 ‘트래피킹’ 사진 30장을 포커스 그룹에게 보여주고 심층적인 인터뷰와 마인드맵을 통해서 의견을 모았습니다. 전시의 방향에 포함될 내용, 포함되지 않아야 할 내용을 전시 팀에게 보고서로 전달하였습니다. 기획 큐레이터가 30장의 사진을 준비했고 이때 사진은 사람의 매매를 내포하는 사진뿐만 아니라, 문화재 도굴, 밀수 등을 암시하는 사진도 포함했습니다. 애초에 큐레이터 측은 트래피킹이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고 때로 불교 국가에서 도굴된 부처상을 아무런 책임없이 전시할 수 있는 서구의 박물관처럼 윤리적인 부분에 무감각할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 포커스 그룹에 대해서 설명해주십시오. 포커스 그룹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포커스 그룹이란 박물관 측에서 의견을 듣고자 하는 샘플 그룹이라고 보면 됩니다. 큐레이터와 협의 하에 우리는 예테보리에 있는 4개 학교 학생들 60명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15명씩 이루어진 4개의 그룹은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남녀 비율이 반반으로 20~25세 가량의 직업전문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17~20세 가량의 자연과학 고등학생들로 15명 중 3명이 페르시아, 인도 등의 문화배경을 가진 여학생이었고 세 번째 그룹은 19세 가량의 미술학도들로 전원이 여학생이었습니다. 마지막 그룹은 17~19세의 교외 지역 이민자 출신 그룹으로 전원이 남학생이었습니다.”

–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공통적으로 전 그룹이 주제에 ‘전쟁’ 또는 ‘암울함’등의 표현을 썼습니다. 박물관 측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할 희망을 전시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케이스를 보여주라고도 했죠. 피해자 말고도, 누가 매매로 이익을 보는지 가해자와 이용자도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이미 상당부분 페미니스트 이론 등에 해박함을 보여주었고 사람의 트래피킹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등 지식이 풍부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 트래피킹 쪽으로 유도하는 질문에는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연령층이 가장 어린 그룹으로 다른 그룹에 비해서 말 하는 데 부끄러움을 많이 탔습니다. 이 중 3명의 학생이 다른 나라에서 이민 온 문화배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신매매의 실상보다 어릴 시절 스웨덴에 가족과 도착했을 때 느꼈던 스웨덴 공권력의 공포를 기억해 내면서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인신매매 산업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접근하면서 빈곤하고 독재에 억압받는 나라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서방세계로 구해내기 위해 선의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트래피킹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네 번째 그룹은 이민자 가정의 남학생들로 전시에서 이민자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이민자같이 보이는 희생자의 얼굴을 전시하면 또 이들이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형성되고 이런 이미지 때문에 자신들은 직업도 갖지 못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사진도 보여주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 실제 전시에 어느 정도 반영이 되었습니까.
“정확히 수치를 낼 수는 없겠지만 약 3분의 1정도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피해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시가 꾸려진 점이 특징입니다. 초기에 연구자, 큐레이터 등이 제시한 문화재 트래피킹 부분은 보고서 결과이기 때문에 아예 전시에 다루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큐레이터, 박물관장, 디자이너, 교육 담당, 참여 기관 대표 등으로 이루어진 전시 팀이 내용에 대해서 회의를 할 때 관람자 조사 보고서가 늘 회의석에 놓여 있어 이들이 수시로 참고로 했다고 합니다.”

– 전시에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실제 피해자 상황 묘사와 인신매매 대상국 통계, 사창가 거리 재현에 치우친 나머지 현실적인 대처노력에 관해서는 보다 해석이 애매모호할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처리한다거나 관련 사회 그룹을 나열한다는 식의 미온적인 ‘희망’을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교외지역 이민자 가정 출신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사는 주거 지역이나 유색인종 사람들의 이미지가 전시에 언급되거나 사진으로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의견을 표출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시 도입부에서 이 의견을 묵살하다시피 한, 특정 지역의 주거지역이 마치 범죄의 온상인 것처럼 표현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예테보리 지역에 사는 사람이면 건축 형태로 미루어 곧 이 지역이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다. 트래피킹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과 경찰, 교회 등 기타 기관들이 타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시에 관람객 조사 결과가 이 정도로 반영된 것도 큰 발전입니다. 박물관이 상을 차려놓고 관람객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다양한 관람객을 찾아가 문화 소비자의 의견을 토대로 결국 관람객들이 전시기획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 관람자 조사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스웨덴 국립 박물관 측에서 이미 2007년 말 오픈이 예정된 기획전에는 기획 초기, 준비 과정, 전시 오픈 후 3단계로 포커스 그룹을 만들어 관람자 조사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아직도 관람자 조사하면 박물관 이용객의 인구통계학적 조사만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제품 기획처럼 문화 기관이 상업화된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관람자 조사는 결과를 평가하는 것보다 다양한 이용자들과의 소통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문화 민주화의 맥락에서 중요한 작업입니다.”


‘당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혹시…’ 인신매매가 일어났음직한 아파트를 소재로 한 사진 작품

(참고 : 스웨덴 국립 세계 박물관 홈페이지http://www.varldskulturmuseet.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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