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 문화예술교육 국제 실행 매뉴얼 개발 연계 시범사업

나는 왜 자카르타에 가야 하는가?

 

예술가인 나에게 이 질문은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입니까?’와도 같다. 20여 년을 예술가로, 혹은 예술을 가르치는 선생의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이 질문은, 삶의 이유와 목적을 묻는 것만큼이나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다. 삶의 성찰을 통해 작업 하거나 근근하게 길러온 예술가로서의 사명으로, 자카르타에 스스로 감내하고 마주해야만 할 명분과 가치가 있다면 특별한 제안 없이도 스스로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섬광 같은 찰나의 이끌림으로 자카르타로 향했다. 서구의 합리적 미학에 지치기도 했거니와 이미 10여 년 간 삶의 상상력이 디자인된 아시아 여러 지역에 숨어 있는 문화적 감각에 매료 되었었던 경험을 믿었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인류학적 호기심과 아시아 전체에 점선처럼 끊어진 삶 속 문화적 예술적 감각의 지도를 연결해보고 싶은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자카르타에 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 섬광 같은 찰나의 연결의 지도는 ‘야생의 사고’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힌다.

 

‘야생의 사고’ 아시아의 문화와 예술, 교육이 만나는 지점의 영토

 

‘미숙한 사고로 간주되는 신석기적 사회의 사고는 불안전하고 부정확하며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몇 가지 점에서는 현대의 사고를 훨씬 능가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즉,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경지에 이른 ‘야생의 사고’로서 완벽함을 갖추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야생의 사고’를 부정함으로써 발달하기 시작한 세계가 택한 길,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택된 목적이나 수단이 과연 의문의 여지가 없이 올바른 것인지 재검토하는 것이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중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지원이 많은 부분 제도화 되면서 프로그램이 합리적 상식과 판단 속에서 하향평준화 되거나 패턴화 되어가고 있는 지점이 국제 문화예술교육의 교류 프로그램을 마주하면서 직면하게 된 문제 의식이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잘 짜인 시간 안에 미션을 수행하듯 동일한 사고의 속도와 수행의 속도를 요구한다. 강사의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은 너무도 확고해서 실수와 실패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키고,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결과 중심의 교육에 함몰된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선을 넘어서는 위반과 위법의 상상력은 상당한 용기를 가진 참여자만이 가능하고, 그 차이로 오히려 집중력과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취급을 받게 되기도 한다. 이는 문화예술교육의 원론적 철학인 ‘차이의 공존’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기 위한 단초 마련에 대한 원칙을 위반하는 꼴이다.

 

이성, 합리성, 상식, 언어적 구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좌뇌적 기능이지만 보완이 필요한 방식이다. 비언어적이지만 통합적이고, 감성을 활성화 하여 다양한 감각적 관찰과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우뇌적 사고와 이해가 지금 우리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더욱 필요하다.

 

함께 참여할 예술강사의 선발과 네 번의 사전 워크숍

 

함께할 예술교육가는 문화예술교육자가 갖추어야 할 원론적 자기 철학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과 수행력에 그 기준을 두었다. 많은 경험과 다양한 경력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문화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진정성과 삶을 통해 견인된 교육 관점이 더욱 필요했다. 또 매뉴얼과 합리적 구조를 의심할 수 있는 용기와 서구적 방식의 문화예술교육에 익숙한 자신에게 대안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선구안도 필요했다. 자신의 예술장르를 포기하고 삶의 영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추출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균형감도 중요한 선발 조건이었다.

 

그렇게 선발된 국내 예술강사들과 출국 전, 네 번의 사전 워크숍을 가졌다.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었던 문화예술교육의 경험들을 흔들어 재배치하는 시간이었다. 익숙한 교육 사례 대신 몇 가지 질문들의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 처음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사전에 프로그램을 먼저 기획하는 안정적 수를 버리고,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타자간 만남이라는 질문과 답만을 손에 쥔 채 자카르타로 출발했다. 양국의 예술교육가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 우리는 왜 양국간(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문화예술교육 교류프로그램에 참가할까?
– 양국간의 예술강사들이 함께 모여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을까?
– 각각의 예술강사들이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인가?
– 예술교육가가 작가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 이번 시범사업의 성과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 이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인가?
– 나의 예술작업과 나의 예술교육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참여 예정인 예술교육가들은 구조가 명확하게 짜이지 않은 우리의 만남을 불안해했다. 물론, 비단 예술교육가들만의 불안감은 아니었다. 계획 없는 실행을 보는듯한 걱정 속에서 우리가 합의한 최소한의 규칙과 단계를 정리해 모두에게 메일을 보냈다.


제목: 양국간 매개자 워크숍은 이런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step1 먼저 ‘우리는 왜 문화적 예술적 삶을 필요로 하고, 이를 왜 타인과 나누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워크숍 첫 날 서로의 교육 사례공유와 함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차이를 배우는 시간을 가집니다.

 

step2 청소년들에게 왜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비단 인도네시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청소년,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모든 청소년들에게도 중요하게 적용되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강사의 철학과 태도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step3 이틀간 진행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 것입니다. 총 7명의 예술가?예술강사의 경험을 활용하여 청소년에게 즐거움과 상상력을 만들어 주고, 이를 통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할 프로그램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의견을 합하여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각자 가진 다양한 수업 방식의 노하우도 공유 합니다.

 

step4 프로그램은 총 8시간에 맞도록 구성되어야 합니다. 프로그램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수정, 보완 합니다.

 

step5 완성된 프로그램은 인도네시아 국립 고등학교(SMAN7 Tangsel) 학생들의 수업을 통해 직접 실행해 봅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예상했던 부분과 예상치 못했던 반응, 학생들의 관심에 대하여 꼼꼼하게 모니터링 합니다.

 

step6 프로그램 종료 후 전체 강사들이 모여 좋은 점, 좋지 않았던 점, 수정?보완 사항 등 프로그램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step7 시범사업을 통해 얻은 경험을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 변형, 발전시켜 봅니다. 다시 양국의 예술가 예술강사들이 만나는 시점엔 충분한 실행을 통해 발전된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다음 스텝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메일 내용을 바탕으로 편집하여 게재하였습니다.


밍글링 리셉션

 

밍글링 리셉션의 기본은 ‘캐쥬얼한 섞임’이었다. 어색한 자기 소개 보다 몸이 만나는 장면, 마주하고 스치는 과정 속에서 친화의 시간이 축적되었다. 우뇌의 출렁거림이 양국의 언어적 통로를 무시하고 비언어적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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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과 기다림의 미학이 만든 풍경 – 교류 워크숍

 

교류 워크숍(한-인도네시아 예술교육가 교류 워크숍)이 열린 이틀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간격을 메울 수 있는 교육의 철학을 세우는 시간이었다. 무수하게 반복되는 차이를 간단히 절충해 버리면 가장 낮은 질의 절충안을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고, 중요한 관점을 이동시켜 새롭게 배치해보는 과정이 이어졌다. 너무 많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무엇이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는 계획이 될 것인지 첨예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했다. 차이와 차이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식에서 여러 통로가 열렸고, 이를 연결하니 ‘길고 지루하고 기다림이 필요한’ 그 길이 마침내 열렸다.
우리는 ‘15분’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15분’은 인도네시아 고등학교의 쉬는 시간을 모티브로 했다. 예술가와 디자이너, 연극 강사와 연출가, 무용가,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함께 모였지만 그 중 누구도 자신의 분야를 수업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기로 했다. 일상의 ‘15’분이 인도네시아의 고등학생들과 함께할 최초의 프로그램이 된다. 팀을 나누어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오히려 가장 쉬운 마지막 단계가 되었다.

 

히잡을 둘러 쓴 문화예술교육

 

인도네시아 국립 고등학교(SMAN7 Tangsel)는 자카르타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학생의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간혹 긴 생머리를 드러낸 여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히잡을 쓰고 발목까지 내려온 교복을 입었다. 고대 인도의 영향을 받아 불교와 힌두교적 전통이 남아 있고 해양 오지의 애니미즘적 전통까지 포함된 자카르타의 무슬림들은 히잡 안에 그들만의 DNA가 존재한다. 적도를 횡으로 함께하며 인도양과 태평양의 문화를 교류하던 그들의 DNA는 외지인에 친절하고 관계에 적극적이다. 더욱이 최근 아시아 전체에 유행하는 ‘한류’ 덕에 학생들은 한국의 예술강사들을 더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식 인사법은 한국 학생들처럼 자연스럽고 친절했다.

 

몸풀기

 

아스리와 밤방의 몸풀기로 준비활동(warm up)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신체를 깨우는 셀프 마사지와 내장을 공명시키는 소리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손끝으로 근육과 뼈, 피부에 길을 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체언어는 언어 이전의 언어, 즉 비언어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이다. 직관적 선택이 중요한 이 소통의 방식은 개별화된 사고와 그 사고에 대한 개별적 신념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성과 감성의 대칭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이 방식으로 참여자들은 몸을 깨우며 개별적 자율성과 창의적인 통로를 횡단했다.

 

‘15분’

 

나만의 관심과 경험이 15분이라는 시간 활용에 길잡이가 되어준다. (편집자 주: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쉬는 시간인 15분 동안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든 기획, 실행하는 활동을 하였다.) 학생들은 히잡 안에 숨겨두었던 타인에 대한 관용과 존중, 그리고 함께 해서 더 즐겁고 행복한 경험을 도구로 사용한다. 숨겨두었던 개인의 욕망도 꺼내어 다양함의 가지들을 만든다. 다양한 사건들이 공유되는 이 ‘15분’이라는 플랫폼에서 참여자들을 즐겁게 머물다가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플랫폼은 언제나 열려있고, 다시 방문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영토가 된다. 노래를 하든, 놀이를 하든, 여행을 하든, 수다를 떨더라도 상상력을 수행하는 흥미로운 삶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이 ‘15분’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삶의 성찰을 만들 그 단초가 되는 셈이다.

 

에필로그

 

SNS에서 자카르타의 소식들이 연일 들려온다. 미완으로 끝났던 ‘15분’ 프로젝트가 학생들 스스로 자발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된다는 소식이다. 아무도 제안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완성해나가고 싶은 의지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이다. 학생들의 기특함을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고, 손쉽게 이런 즐거운 소식이 전달되는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즐겁다. 처음부터 실수해도 좋고 완성되지 못해도 좋았던 ‘15분’ 프로그램은 경험을 통한 성장이라는 철학 위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약속하지 않았지만 이런 소식들의 연결은 결국 지속성에 대한 새로운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업의 긍정성을 이끌어 낸다. 이 자율적 선택과 수행은 결국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건강한 소통의 길을 계속 다져갈 것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여기서 또 즐거운 ‘15분’의 경험을 멀리 자카르타의 학생들과 나눌 것이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김월식

김월식작가 _ 글
김월식은 고도의 압축 성장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을 함께한 커뮤니티의 전체주의적 목적성을 경계하며, 발전과 성장의 동력이자 조력자로써의 개인의 가치에 주목하는 작업을 해왔다. ‘무늬만 커뮤니티(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생활문화예술재생 레지던시 인계시장 프로젝트, 지우는 공공미술 지동 프로젝트, 학교폭력 솔루션 ‘아방가후르드’, 장애인과의 협업극 ‘총체적 난 극’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계원예술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무늬만 커뮤니티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2014 한국 문화예술교육 국제 실행 매뉴얼 개발 연계 시범사업 책임튜터를 맡았다.

 

관련기사
– 천 개의 섬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인도네시아를 만나다 (참여 예술강사 4인 인터뷰)
   http://www.arte365.kr/?p=38930
– 2014 한국 문화예술교육 국제실행 매뉴얼 소개 http://www.arte365.kr/?p=38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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