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씨와 재봉틀〉을 통해 바라본 어르신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우리는 스스로의 뜻에 의해서 인생을 살아온 게 아니라 체면이나 가문이나 어떤 그런 것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고 가정을 지켜왔어요. 오직 나는 없고 내 주위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 왔어요. 내 인생에 나는 없었죠. 그런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나를 찾게 됐죠. 나를…. ‘금방 죽어지면 썩을 육신이니 내가 있는 힘을 다해서… 희생을 한 거야 한마디로 나 없이. 그런데 이제 앞으로는 진짜로 나를 위해서 아주 살 거예요. 나를 사랑하면서요.” -<경자씨와 재봉틀> 프로그램 참여자

 

경자씨와 재봉틀

 

우리네 어머니들에 대한 오마주 〈경자씨와 재봉틀〉

 

시작은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일하는 딸(임아영, 프로그램 기획자)이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는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갓 돌 지난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출근을 시작했으나, 딸의 미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엄마는 20년 넘게 학원을 하다가 몇 년 전에야 은퇴를 선언하고 귀향하신 터였다. 엄마의 휴식도 잠시였다. 육아 노동에 엄마의 한숨과 눈물이 는다. 딸로서 엄마의 인생에 대해 처음으로 다른 시각의 질문이 자꾸 생긴다. 문화예술교육 하는 사람으로서, 내 어머니, 동시대 어머니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경자씨와 재봉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작 오마주의 실제 대상인 경자씨(임아영씨의 어머니)는 육아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했다.

 

생애주기 문화예술교육 기획과 연구

 

〈경자씨와 재봉틀〉은 2014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노인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기획, 진행한 50-60대 여성 대상 프로그램이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나, 이 프로그램의 기획과 연구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의 추구’라는 관점을 담고 있다. 동시에 보편적 인간의 생애주기를 전제로 문화예술교육의 향후 역할에 대한 모색이 담겨 있다.

 

〈경자씨와 재봉틀〉프로그램 기획과 연구 참여자는 모두 문화예술교육에 종사하는 여성들이다. 본인의 결혼과 출산, 양육이라는 생애주기 상의 변화와 함께 ‘어머니’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전환을 겪었거나, 경험 중이다. 그리고 50-60대 어머니들의 삶과 욕구를 보다 다층적이고 세밀한 방식으로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성을 공감하였다. 프로그램 기획은 ‘쉼과 치유, 자기발견’에 초점을 맞추었다.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는 프로그램 현장을 관찰하고, 참여자의 ‘말과 글, 상호간의 대화’ 등을 기록함으로써 내면의 욕구와 갈등, 이후의 변화 등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의 기획 단계부터 진행과정, 마무리까지 참여 관찰을 원칙으로 했다. 프로그램 안팎에서 참여자가 남긴 기록, 개별 인터뷰, 대화들을 참고하였고, 참여자와 밀착된 관계 속에 최대한 사실적 연구 접근을 시도했다. 설문조사는 총 2회 실시하였으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차원의 수업 만족도 조사와 연구진 차원의 욕구 조사를 실시하여 분석하여 상호 참고하였다.

 

회차 일 자 제 목 내 용 장 소
1 10.21(화) 경자 씨를 찾습니다 공개 오디션 3분 이야기‘나는 왜 경자씨인가’
영화 ‘할머니와 란제리’ 감상 후 다과
아트스페이스
(광주문화재단)
2 10.28(화) 나는 경자 씨 박희석 선생님과 심리극(소극장) 센터 연습실
3 10.30(목) 나의 몸뚱이 그 때 그 사진으로 나를 소개하기
마사지와 네일아트로 내 몸뚱이에 사과하기
타로점으로 내 삶을 반추해보기
바른체형
뷰티샵,
언니네
4 11.04(화) 르포‘경자’
(가을소풍과 집밥나눔)
살면서 잘했던 것, 실수했던 것, 좋았던 것, 싫었던 것 등 서로를 심층 인터뷰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풍암저수지
5 11.06(목) 스물 일곱 경자 씨 나의 ‘한 때 꿈’을 이야기 (참여형 연극) 센터 연습실
6 11.11(화) 마무리(편지쓰기) 및 여행기획 광주 문화공간
7~8 11.13(목)~14(금)
(1박2일)
경자 씨와 재봉틀 2주 전부터 여행 기획 병행.
명상과 인생디자인 워크숍. 깜짝 공연.
담양 창평
삼지내 마을 (예정)
〈경자씨와 재봉틀 진행과정〉

 

참여자들의 갈등과 내적 욕구의 변화

 

이 사업이 노인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이기에 기획 단계에서는 참여 대상자를 불특정 다수의 ‘노인’ 혹은 ‘완경기 여성’이라는 다양한 용어로 지칭하였다. 그러나 연구를 준비하면서 여러 문헌 조사와 참여 관찰을 통해 본 결과 50-60대는 노인이라기보다 또 다른 성장을 준비하고 있는 중년 후반부로 파악되었다. 연구자들은 윌리엄 새들러의 ‘제3연령기’ 개념을 참고해 이 용어로 참여 대상자들을 통칭하고, 그의 관점을 연구에 반영하였다.1)

 

프로그램 참여자 수는 12명으로 시작되었으나 최종 참여자는 7명으로 분석 역시 이들 7인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 대다수이다. 또한 50-60대 여성이라 할지라도, 교육 및 경제 수준, 건강 등의 개별적 차이가 있으며, 이에 따라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과 반응 정도에도 영향이 있었다.

 

연구진의 주요한 관심은 이 연령대 여성들이 가진 기본 갈등과 내적 욕구를 규명하고, 프로그램을 통한 욕구 변화를 살피는 것에 있었다. 개인이 처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반응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었으나, 적어도 동시대를 살아왔다는 점에서 보편적 갈등과 욕구들이 감지되었다. 주로 참여자의 참여과정의 녹취를 통해 분석한 참여자들의 갈등과 내적 욕구와 프로그램 참여 후 변화된 욕구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참여자들의 내면의 갈등과 욕구 프로그램 참여 후 변화된 욕구
(본인)상처 입은 내면의 어린아이
– 유년 시절의 상처
–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한 불이익
– 어머니와의 갈등
– 공부 못한 설움
– 배움에 대한 욕구
– 직업과 사회적 성취에 대한 열망
– 낀 세대로서의 고충
– 젊음에 대한 미련
(남편 또는 시댁 식구들) ‘사랑’ 또는 연애로 하지 못한 ‘결혼’ 생활의 아쉬움
– 부부 관계에 대한 회의
– 연애와 사랑어린 관계에 대한 열망
–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
(자녀 또는 며느리) 자녀에게의 희생, 며느리와의 어려운 관계 설정
– 자녀 뒷바라지
– 자녀 해바라기
– 며느리 맞이하고 관계 맺기
– 감정의 매듭이 풀림
– 고립에서 확장으로 관계 방식의 개선
– 새로운 배움과 일에 대한 의지
– 인생에 대한 새로운 계획 정립
– 나와 타인의 삶과 고통에 대한 공감
– 나를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
〈경자씨와 재봉틀 참여자를 통해 본 욕구〉

 

여성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여성의 자아 정체성이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주로 가족구성원과의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낀다. 프로그램 진행 과정 속에서 강사들이 부단히 참여자 개인의 욕구와 감정에 초점을 두었으나, 늘 이야기는 관계와 연결되었다. 그래서 이들의 현재 내면의 욕구와 갈등 역시도 결국은 주요 관계의 대상과 연결된 욕구로 정리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프로그램 참여 후 변화된 욕구들은 ‘나’의 욕구에 집중되어있다는 점이었다. 관계 속에서 오는 갈등과 책임감 등에서 보다 자유로워진 나 개인의 욕구를 발견하고, 존중하고 싶은 욕구가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를 돌보는 데 초점을 둔 변화가 도리어 가족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었다고 참여자의 가족들은 말한다.

 

1)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에서 임상실험을 통해 ‘중년‘의 삶을 연구해 온 윌리엄 새들러(William Sadler)는 그의 저서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의 삼십 년〉에서 생애주기를 네 단계로 정의한다. 그 중에서 제3연령기(third age)는 ‘생활을 위한 단계’로 확연히 업그레이드된 2차 성장을 통해 자기실현을 추구해가는 시기로 40대에서 70대 중후반의 시기가 이 단계에 해당된다.

 

경자씨와 재봉틀

 

‘제3연령기’를 위한 향후 문화예술교육의 역할과 매개 지점

 

〈경자씨와 재봉틀〉 프로그램 참여관찰을 통해 본 제3연령기 여성의 갈등과 내면의 욕구 연구를 하면서 향후 유사 대상의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제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생애주기, 삶: 생산자와 향유자의 간극을 넘어서는 공동의 場이라는 점이다.
장르 경험에서 오는 몰입과 재미 자체도 중요하나, 생애주기 상의 변화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적응하도록 참여자들에게 재인식의 계기를 마련하는 삶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 기획이 필요하다.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기획자와 참여자의 역할 구분은 명확하였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생애주기’와 ‘삶’이라는 공통의 장 안에서 모두가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프로그램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기획자들이 제 3연령기 참여자들의 삶을 관찰하며 자신들의 미래상을 그려보고, 인생에 관한 교훈을 얻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진행 중 발생하는 교육의 생산자와 수혜자 역할의 무수한 전복은 양 측 모두에게 삶을 고찰하고 종국에는 삶에 대해 긍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② ‘나이 듦’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는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
40대 이후 ‘중년과 나이 듦’의 인식은 동서양 모두 부정적인 경우가 다수다. 윌리엄 새들러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흔히 다섯 개의 치명적인 D와 연결되어 왔다고 한다. 쇠퇴(Decline), 질병(Disease), 의존(Dependency), 우울(Depression), 노망(Decrepitude)이 그것이다. 그러나 서드 에이지를 부정적인 D가 아닌 새로운 성장을 위한 미래 설계로서 R- 갱신(Renewal), 갱생(Rebirth), 쇄신(Regeneration), 원기회복(Revitalization), 회춘(Rejuvenation)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중년 이후의 나이 듦에 대해서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퇴화라는 부정적 자기 인식들이 도리어 노화를 가속화 시킨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예술교육이 가진 창의성과 몰입, 즐거움은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성장의 시기로 패러다임, 즉 생각의 틀을 바꾸는 계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

 

③ 대상 연구에 기반 한 표본 추출로 구체성 있는 문화예술교육 기획이 가능하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는 참여자 2명의 상황은 공통적으로 아래의 세 가지 양상을 보인다.
1)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 수선 집과 베이비시터
2) 남편과 자녀 등과 비교적 관계가 좋고, 가정생활에 스스로 성공했다고 여기고 만족한다.
3) 배움의 욕구와 자기 발전의 욕구가 크나 교육 수준이 높지 않고 가정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는 점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부유하여 경제활동의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는 기존에 많은 활동에 참여해보았기에 이 프로그램에 의한 감동이나 변화 양상이 훨씬 약하고, 일종의 문화서비스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 제3연령기의 나이 대에서도 경제, 사회, 교육, 문화적 조건에 따라 개인의 욕구와 관심사가 상이하다. 따라서 향후 기획자들은 구체적인 대상의 표본을 추출하고 연구한 이후 기획 및 홍보한다면,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④ 일회성 프로그램을 넘어 성장 단계별 선택을 넓히는 대안형 교육 시스템 모색이 필요하다.
이번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이 삶을 돌아보며 내재된 욕구를 발견하고 표현함으로써 자기 치유와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문화예술교육 입문 프로그램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참여자의 대다수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더 배우고 싶은 욕구를 표현했는데, 그 욕구는 주로 글쓰기, 그림 그리기, 연극 등 예술 분야였음도 흥미로운 점이다. 이는 자기실현의 욕구와 행복감이 예술과 연관되어있다는 생생한 증거이지 않을까. 이번 프로그램이 일종의 쉼과 치유를 통해 인식의 전환을 이루는 인트로 프로그램의 역할이었다면, 이를 보다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다음 단계의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단발성 프로그램 사업을 넘어, 성장 단계별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종의 대안형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1기 참여자들이 언니이자 멘토로서 차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타인에게 기여할 수 있는 협력과 연대, 소통의 관계망도 필요하다. 이러한 대안적 교육시스템의 모색은 지역에 기반을 둔 광역단위 지원센터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처음도 끝도,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어머니들뿐 아니라, 스텝으로 참여한 이들이 프로그램 진행 과정 속에서 얼마나 울고 웃었는지 모른다. 신기할 정도로 같은 감정의 결 속에 참여자와 스텝의 경계가 없어지며, 경자씨와 그들의 딸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의 처음도 끝도,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참여자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광주 지역이 공명해주었을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해서도 문화예술교육은 존재할 수 있다. 그 사실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한 사건이었다.

 

경자씨와 재봉틀


천윤희

글_ 천윤희 /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팀
광주비엔날레가 좋아서 광주로 내려온 이래, 생각보다 오래 일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통해 ‘사람’과 ‘삶’이 보다 풍요로워 질 수 있는 지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문화매개’, ‘매개자’, ‘예술경영’, ‘문화예술교육’을 연구하고, 글 쓰고, 일한다.
uni94@hanmail.net

[아르떼 리포트] 2014 노인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의 시도와 진행, 그리고 과제
http://www.arte365.kr/?p=39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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