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랍 속 코끼리
〈서랍 속 코끼리〉가 열리는 전북 진안의 ‘진안에코에듀센터’는 전주터미널로부터 차를 타고 한 시간여 더 달려야 나오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택시 기사님이 ‘거기는 여름에 가야 놀기 좋은 곳이라 이 계절에는 할 것도 없을 텐데’하고, 왜그리 걱정을 하셨는지 도착해서야 눈치 챘다. 산새가 깊었고, 고요했다. 고즈넉하고 한가롭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 날은 하늘이 묵직했고 흩뿌리듯 비가 내리고 있어서 겨울의 느낌이 물씬 났다.
그러나 여기는 ‘우락부락’. 제 아무리 흐린 날씨라고 해도 그곳의 분위기는 아이들의 신나는 발걸음에 좌지우지 되는 법이다. 실내는 쾌청, 그야말로 맑음!
“고구마가 모자랄지도 몰라요.”
찬 공기에 빨개진 손으로 열심히 아지트를 지으면서 아이들이 걱정했다. 유일하게 바깥 활동을 하고 있는 〈두껍아! 새집 줄까?〉부락의 아이들이었다. 페어웰 파티 때 친구들을 초대해 군고구마를 대접해야 하는데, 모두들 아지트를 짓는 동안 하나 둘씩 집어먹은 통에 준비된 고구마의 반은 이미 사라졌다고 했다. 아침부터 동네 이곳 저곳을 쏘아 다녔으니 자꾸만 허기가 느껴질 만도 하지. 마당 곳곳에는 벌써 봉긋한 아지트가 솟아있었다. 설명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탄탄한 밑그림이 그려져 있던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뼈대를 만들고 바람이 들지 않도록 꼼꼼히 비닐을 감싸고 있었다. “이런 거 처음 해봐요! 하나도 안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벌써 역할분담도 되어 있었다. 한 명은 뼈대를 잡고, 한 명은 테이프를 잘랐다. 처음 해본다는 아이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모두들 실팔찌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문방구 앞, 아이들 무리가 한쪽으로 이동하는가 싶더니, 그 중 한 명이 다짜고짜 벽에 붙어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그러자 아이들이 이곳 저곳으로 쏜살같이 흩어졌다. “이 건물 안이라면 어디든지 OK!”를 외치는 사람은 <동바 코믹스 챌린지>의 똥구 선생님. 누구 하나 ‘숨바꼭질 하자!’고 제안한 것도 아닌데, 급작스러운 숨바꼭질이 시작된 것이다.
해적들의 아지트 〈전설의 놀이왕〉 부락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한 곳에 동그랗게 모여 허리를 웅크린 채 무언가 집중하고 있었다. 살그머니 들어가 안을 살폈다. 조금씩 다가가던 그 순간! ‘땡!’ 하는 소리와 함께 해적들이 일제히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할리갈리가 한창이었다. 이 곳에서는 해적들의 신분을 지켜주기 위해 모두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웠다. ‘갱플랭크’, ‘구미젤’, ‘하리보’ 등 어감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름이었다. 처음 해적들은 다른 부락에 침투하여 무작정 게임을 벌이고, 반드시 이겨서 양말 한 짝씩을 약탈한다는 법칙이 있었으나, 양말들이 모이니 냄새가 너무 심해서 다시 돌려주었다는 아이들만의 비밀스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들려온다.
향긋한 커피 향에 이끌려 옆 부락으로 들어갔다. 〈어린왕자와 서랍 속 인형극단〉부락이었다. 부락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차분하게 인사하며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그리고 조용히 글라인더에 콩을 넣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콩을 갈았다. 콩이 갈리고 물이 끓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 이야기로 책을 만들 거예요.” 발행인, 편집인, 저자, 일러스트레이터, 인쇄까지 모두 같은 이름으로 새겨지는, 이곳은 출판사이기도 했다. 커피와 책, 이토록 낭만 넘치는 부락이라니.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계단에 커다란 물음표가 발길을 붙든다. ‘뭘까?’하고 묻는다. 물음표가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뭘까? What?〉 부락이었다. 아이들은 무언가 만들었고, 그렸고, 누웠고, 웃었다. “우리 아이들이 그린 그림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꿈틀 선생님의 두 눈은 이미 하트가 되어 있었다. “무슨 그림인가요?”하고 물으니 “글쎄요! 뭘까요!?”하고 오히려 되묻는다. 그러고 보니 우락부락 캠프 입구로 들어오는 길, 여기저기에 붙어있던 ‘뭘까?’ 카드가 생각났다. 아이들은 벽이며 형광등, 실내화, 화장실 팻말에까지 ‘뭘까?’카드를 붙이고 다녔다.
다시 음악소리를 따라 걸었다. 〈창작!? 그때 그때 달라요~〉에서는 다양한 악기의 소리가 어우러져 멋진 합주를 펼치고 있었다. “원래 악기 다룰 줄 아는 친구들인가 봐요.” 묻자 “여기 와서 이 악기 이름도 처음 들었는데요?” 봉고 연주자가 말했다. 어제 처음 만난 아이들의 세 번째 합주. 어떻게 이틀 만에 각자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걸까. 크림 선생님은 “아이들이 연주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악기를 만지고 소리 내보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했다. ‘연주’보다는 ‘합주’로 시작한 아이들의 소통은 자연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내 마음 속 나만의 캐릭터가 눈 앞에 나타나는 신비의 부락 〈따! 복! 따! 복!〉. 공중에 풀풀 날리는 하얀 천과 하얀 실과 하얀 솜이 반겨주었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자 주머니에서 꺼낸 인형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제가 만들었어요. 아직 이름은 못 붙여 주었지만요.” 주먹이 발사되는 원숭이 인형과 자동차의 바퀴를 가진 거북이. 원숭이에게는 힘을, 거북이에게는 스피드를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문을 나서자 다시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또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대낮에도 말간 태양을 만날 수 없었지만, 해질 무렵의 하늘은 한층 무거웠다. 저 아래에서 “불 붙었다!”하는 환호가 들려왔다. 〈두껍아! 새집 줄까?〉 부락에서 아까부터 노력 중이던 고구마를 구울 화롯불이 드디어 붙었나 보다. 이제 정말 모두가 신나게 즐길 일만 남았다.
2. 동네 한 바퀴
인천아트플랫폼에 차려진 〈양반김 매장〉 앞에 사장님들이 쪼로록 섰다. 색색의 리본테이프 앞에 고무장갑을 끼고.
“자, 우락부락 페어웰 파티를 시작합니다!”
사장님들이 호쾌하게 웃으며 리본테이프를 컷팅하자 그곳에 모인 모든 골목 시민들이 박수를 쳤다. 호황이다. 〈양반김 매장〉은 금세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장님들이 만든 ‘꽝’이 넘치는 롤링판 게임과 로또 게임, 종이로 만든 진짜 공갈빵 등 해보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김사장님, 최사장님, 권사장님을 부르며 모두들 물건을 골라본다. 이곳의 물건은 착한 사람만 살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덕담’을 써야 살 수 있다. 제 아무리 돈 많은 스쿠루지 할아버지라 해도 그의 고약한 심보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
매장 밖에서 쿵짝쿵짝 신나는 음악이 들린다. 〈렛잇비 탐험대〉의 캠프파이어가 한창이다. 빙 둘러앉은 불가에 환하게 불이 타오른다. 전구로 빛을 내고 종이로 불 모양을 만들었다. 실은 이날 낮, 소방서에 찾아갔다. 저희 불 좀 피우면 안 되겠느냐고. 캠프의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에 ‘불’이 빠질 수는 없지 않겠냐고. 소방법에 의해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대신 전구를 켰다. ‘이럴 거면 전화로 물어보지 뭐 하러 소방서까지 찾아가느냐’고 볼멘소리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취사가 가능한 공원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서운한 마음은 모두 잊었다.
캠프장 곳곳에는 〈우리 동네 기레쓰레기〉 골목 친구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축구공도 아니고 농구공도 아닌 공으로 하는, 축구도 아니고 농구도 아닌 묘한 구기 종목이었다. 허공에 매달린 농구골대에 집어넣어도 좋았고 벽에 붙은 축구골대에 차 넣어도 되었다. 조금 있으니 어느새 테니스 라켓으로 그 커다란 공을 주고 받는다. 어제 하루 종일 동네를 쏘아다니며 손수레에 담아온 것들로 만든 공이고, 골대이고, 테니스 네트라고 했다. 길에 버려진 현수막이 친구들의 2박 3일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캠프장 한 켠에서 닭강정의 향기가 솔솔 풍겼다. 요리하는 골목인가 싶어 향기를 따라 가니 팻말 〈인천 개항장을 사진으로 접수하자!〉이 나타난다. 이 골목의 친구들은 사진작가다. 하루 종일 여기 저기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인화 되었고, 사진을 벽에 붙이자 전시회가 되었고, 한걸음 멀리서 바라보니 포토그래퍼 집단의 멋진 작업실이 되어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친구들의 사진 속에는 하늘도, 자동차도, 친구도, 차이나타운의 단청도, 동네 강아지도 담겨있다. 집시처럼 인천을 휘젓고 다니다 들른 신포시장에서 신포 닭강정을 사서 그들만의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낮부터 뚝딱뚝딱 지어 올린 〈피라미드 아지트하우스를 우리 손으로 뚝딱〉 골목의 아지트가 드디어 손님을 맞이했다. 몇 명이 올라와도 거뜬할 만큼 튼튼하게 완성되었다. 원래대로라면 페어웰 파티를 기념해 ‘야간 작업’을 할 계획이었지만, 뜻밖의 열정으로 해가 지기도 전에 완성해버렸다. 목공은 처음이었다. 망치질도, 톱질도 해본 적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2층짜리 아지트를 지었다. 이 아지트가 영원히 이곳에 남아서 부모님을 모시고 와 김밥도 먹고, 친구들이랑 게임도 해야 할 텐데, 완성 그 너머를 바라보는 박충의 작가는 벌써 아쉬워했다.
한 켠에서는 아이돌 연습생 생활만 무려 16년째인 듀오 리스키의 공연이 한창이다. 리스키를 아이돌로 만드는 것이 〈사랑해요 리스키! 우유빛깔 리스키!〉골목의 특명이다. 두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은퇴하세요.’, ‘힘들 것 같군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두 손을 내저었던 아이들이 어느새 코디부터 사생팬까지 역할을 나누어 우락부락에서 본격 데뷔 무대를 준비했다. 공연장 앞에는 벌써 많은 인파가 몰려 ‘리스키!’를 외치고 있었다. 공연장의 셋팅은 〈L.A.C Graffiti Skool-알록달록중구난방 프로젝트〉 아이들이 맡았다. 리스키가 리허설 무대로 들어서자 그들의 헤어스타일을 만져주거나 경호를 맡고 있는 친구들이 함께 등장했다. 머리를 만져주고, 안경을 고쳐 씌워주는 등 최상의 무대 컨디션을 위해 끊임없이 준비했다. 모든 관객이 안전하게 자리를 잡자 리스키의 데뷔곡 ‘Bread Shuttle’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듀오는 열정적으로 춤추고 노래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에는 〈L.A.C Graffiti Skool-알록달록중구난방 프로젝트〉 골목이 실시간으로 그래피티 아트를 펼치기 시작했다. 어두운 무대에 그들의 스프레이가 춤을 추었다.
우락부락의 밤은 그곳에 모인 모든 골목 친구들의 눈부신 함성과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 최민영 _ 글·사진
우락부락’은 ‘예술가와 놀다’라는 콘셉트로 2010년부터 시작되어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창의예술캠프이다. 예술가와 함께 놀며, 작업하는 경험을 통해 예술을 즐기고, 삶의 의미와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우락부락 시즌9는 처음으로 지역으로 찾아가 지난 1월 19일~23일 전북 진안에코에듀센터에서 ‘서랍 속 코끼리’를, 1월 26일~30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에서 ‘동네 한 바퀴’를 각각 개최했다.
주최: 문화예술교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관: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협력: 인천아트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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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 전문가의 이야기] 전북·인천지역 기획자가 말하는 우락부락 시즌9
http://www.arte365.kr/?p=38132
우락부락 홈페이지 http://www.woorockbooroc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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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락부락 예술캠프에 2013년에 참여했던 작가입니다.
올해 두지역에서 지역작가들의 참여로 변화되고 발전된 ㅇㄹ ㅂㄹ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
날로 달로 해마다 성장해가길 바랍니다.